<노평구전집>정신의 천박
천고마비의 가을! 그러나 사람의 정신이 수척한 바에야 하늘만 높고 말만 살쪄 무엇 하겠는가. 맑고 푸르른 가을하늘 아래 황금물결로 덮인 들판을 바라보면서 나는 요사이 우리의 정신의 수척과 천박을 탄식하지 않을 수 없다.
이리하여 오랫동안 중단했던 고전독서회를 다시 열기로 했다. 주일 성서집회 후 8, 9명이 먼저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에서 시작하여 밀턴의 <실낙원>, 괴테의 <파우스트>, 단테의 <신곡>,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딧세이아>, 그리고 나아가 키에르케고르․파스칼․칸트, 그리고 플라톤의 소품 등까지 섭렵하기로 했다.
우선 <고백> 첫머리에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유명한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해 지었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 쉬기까지는 평화가 없습니다”라고 한 말에 접해, 마치 오랜 애인이라도 만난 듯 반갑고 감개무량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이 고백의 배후에는 그의 청년 시절 절제를 잃은 육체적 방종에서 시작해, 마니교의 미망(迷妄)과 극단적 회의주의의 신아카데미파 철학, 그리고 신비주의적 신플라톤주의 철학을 거쳐, 마침내 기독교의 회심을 통해 하나님의 품안에 영혼의 안식을 발견하기까지의 20년 가까운 정신적 방황과 절망과 고투가 가로놓여 있었다.
그는 장기간의 고투 가운데서도 끝까지 이성적 판단과 도덕적 감각, 그리고 진리에 대한 사랑을 잃지 않았기에 산 하나님과의 대면을 통해 결정적으로 문제의 해결을 보게 되었다. 그는 비록 인생에 대한 회의와 타락과 절망 가운데 헤매었지만 마지막까지 한 가닥 인생의 진실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우리 현실을 바라본다. 아, 너무도 천박한 현실이다. 그것은 단테가 지옥에 들어갈 자격조차 없는 자들이라 하여 지옥 밖에 방치한, 선악 간에 진실 없는, 다만 인생을 향락하려는 무리들로 가득 차 있는 현실이다. 쉬운 예로 설명해보자. 현대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그리고 곧장 그들의 생활상을 표현하는 어휘들을 상기해보라. 영화, 라디오, 텔레비전, 스포츠, 바둑, 배우, 가수, 탤런트, 신문, 잡지, 정치, 쌀값, 사랑, 돈, 맥주, 술, 노래, 댄스, 담배 같은 것이 아닌가. 그리고 그들이 가장 싫어하는 말은 무엇인가. 도덕, 영혼, 양심, 종교, 신, 진리, 희생, 진실, 성실 같은 것들이다.
그들은 문예작품이나 심지어 종교 경전마저도 영화로 즐기려 한다. 너무도 천박한 인생이다. 아니, 여기 벌써 인생은 없다. 육적 인간, 본능적 인간, 그렇다, 동물로 떨어진 인간이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는 종교도 동벌이로 떨어지고, 교육과 학문도 장사로 변질되고, 정치도 집권을 위한 난투극으로 탈바꿈한다.
그러나 기독교는 말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의 그의 의를 구하라”(마태 6:33)라고.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되, 영원히 서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 진리뿐이다”(이사야 40:8)라고.
<성서연구> 제114호 (1963년 9월)
첫댓글 멜 깁슨이 감독한 영화 <The Passion of the Christ> 보셨어요? 같이 간 성도들은 다들 훌쩍거리고 우는데 저는 자꾸만 짜증이 나서 나와버리고 싶더군요. 제가 믿음이 약한 탓인지, 감정이 메마른 탓인지, 성질이 더러운 탓인지....암튼 그 영화가 전 싫었습니다. 감독은 그 영화로 돈 많이 벌었다던데...
이미지와 활자는 각기 중세(가톨릭)와 근대(프로테스탄트)를 대표하죠. 활자가 죽고 이미지가 기승을 부리는 현대는 또 하나의 암흑시대...
책에서 길을 찾고, 책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는 사람은 봤어도(저도 그 중 하나), 영화 보고 인생 바꿨다는 사람은 못 봤어요...^^ (물론 저는 영화도 즐겨 봅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