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OK 책임은 NO
서문순
옆집 대상자 집으로 요양 일을 하러 가고 있을 때였다. 앞집 철제 울타리에 코 박고 있는 노란 털에 회색 줄무늬를 가진 길고양이 한 마리가 눈에 띄었다. 철제 울타리 사이에는 노란색의 씀바귀꽃이 한창 만발 중이다. 씀바귀꽃에 코를 박고 꽃향기 맡고 있는 모습이 내 눈에는 천상 소녀 모습으로 비쳤다. 나처럼 멋을 아는 낭만고양이가 아닐까 하는 생각에 반달 미소가 입에 걸렸다.
대상자 집에서 일을 마치고 대문을 열고 나오려다 깜짝 놀랐다. 대문 앞 길가에 죽은 새끼 고양이 세 마리가 버려져 있었다. 그리고 아까 길고양이가 씀바귀꽃을 맡고 있던 자리에도 죽은 새끼고양이가 한 마리 더 있었다. 아직 탯줄이 붙어있는 걸로 봐서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생아였다.
범인은 아까 그 길고양이가 분명했다. 씀바귀꽃 향기를 맡고 있던 것이 아니라 죽은 고양이를 보고 있었던 거였고, 내가 대상자 집으로 들어간 사이 죽은 새끼를 물어다가 길바닥에 놓은 거였다.
괘씸하였다. 본능에만 충실했지 아직 어린 나이여서 새끼 돌볼 모성은 부족했었던 것. 제멋대로 돌아다니다가 배 아파 새끼를 낳고 보니 어리둥절했고, 젖만 파는 새끼가 귀찮았을 것이다. 마른 탯줄을 달고서 젖을 얻어먹지 못하여 뱃가죽이 등에 붙은 네 마리의 새끼 고양이를 보니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집으로 가서 삽과 상자를 챙겨왔다. 그러고는 새끼 고양이 네 마리를 밭 언덕에 묻어주었다. 엄마 자궁을 나오자마자 뒤돌아서 이승의 문을 열고 나가는 어린 생명들. 본능을 우선시한 무책임함이 귀한 생명을 지켜내지 못하였다. 낭만은 무슨 얼어 죽을 낭만 고양이란 말인가.
요즘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뉴스가 있다. 아기를 낳아 목 졸라 죽여 냉동고에 보관했다는, 모성이 실종된 사건이다. 더욱 한 명도 아닌 세 명이었고, 이사 갈 때마다 가지고 다녔다고 밝혀져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사랑의 본능에는 충실하면서 결과에 대한 책임은 질 줄 모르는 그 사건은 어린 길 고양의 행동과 다르지 않았다. 그 사건으로 인해 정부에서는 산부인과에서 낳기는 하였지만, 출생신고가 안된 아기들의 행적을 찾아다닌다고 하였다.
심심찮게 티브이에 나오는 신생아 살인사건과 아이의 학대 사건을 보면 남편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하였다. 유난히 아이 사랑이 많은 남편은 두 아이 때도 유난을 떨었었다. 그리고 딸이 결혼하여 손자를 낳았는데 손자 사랑은 자식하고 또 달랐다. 서울 가서 손자를 한 번 보고 온 남편은 손자한테 푹 빠지고 말았다. 효도폰을 사용하는 남편은 보이스톡을 할 수가 없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내 휴대전화로 보이스톡을 해달라고 졸라댔다. 그런 남편을 보고 멀미 나지 않냐고 물었다. 남편은 봐도 봐도 자꾸만 보고 싶다고 답하였다. 그러고는 어떻게 이렇게 예쁜 아이들을 학대하고 죽이는지 이해되지 않는다고 하였다. 그들이 처한 상황은 잘 모르겠지만, 그래도 인간의 존엄성을 훼손하는 일은 절대 누구도 해서는 안 되는 거였다. 새끼를 낳고 그 새끼를 죽음으로 내몰았던 불량모성을 가진 길고양이를 대상자 집에 갈 때마다 마주쳤다. 두꺼운 낯짝을 하고서 먹이를 주면 잘도 먹어 치웠다. 그러고는 또 얼마 되지 않아 대상자 마당에서 수컷 길고양이와 사랑을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끌끌 혀를 차게 되었다. 그 후 길고양이 배가 풍선처럼 눈에 띄게 부풀어 오르고 있다. 이번에는 실패의 첫 경험을 바탕으로 새끼를 잘 길러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저번처럼 사랑은 OK이고 책임은 NO일까. 그러고 보면 사람의 세계나 동물의 세계나 모성은 본능이 아니었다. 사랑에 책임을 지느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서문순
현재 공주 가교리에서 농부로 살고있음. 시낭송가. 2023년 충남문화재단, 공주문화재단 <올해의 문학인>으로 선정 수필집 <토란잎>(20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