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섭리와 진보
섭리 신앙이란 우주와 인생 만사에 대한 신의 지배를 믿는 신앙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순한 힘의 지배가 아니라, 신의(神意)의 최선의 지배를 믿는 것이다. 단순한 물리적 힘의 지배란 대개 사람에게 절망과 자포자기를 가져오는 숙명론이 되기 쉽다. 그것은 비도덕적 우상 신앙과 관계되기 십상이다. 그러나 기독교의 섭리 신앙이란 모든 일에서 신의 최선을 믿는 것으로, 신이 사람의 도덕적 진보와 자각과 발전을 위해 철저히 간섭한다는 것을 믿는 신앙이다.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사람의 활동에서 가장 수학적인 분야라 할 수 있는 경제활동에 주기적 공황이 따르고 있는 사실을 들어, 이를 신의 섭리에 의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그는 구체적으로 이를 신과 인간의 접촉에서 발생하는 것이라고 했다.
길게 따질 것 없이, 나는 해방 후 20년 우리의 현실을 돌아볼 때, 여기 하나님의 섭리가 개입하고 있음을 절실히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우연이라고 보아 넘기기에는 너무나도 공교로운 사건들이 계속되고 잇는 것이다. 한 표 차로 문제가 된 사사오입(四捨五入) 개헌, 선거 직전 사망한 신익희 씨와 조병옥 씨, 그리고 이번 자유 회복을 위한 선거에서 단지 10만 표 차이로 야당이 패배한 것 등이 그것이다. 나는 여기에서 특히 야당 기질을 지닌 호남지역의 향배를 주목하는 바이다.
그렇다, 나는 여기에서 하나님의 결정적인 간섭과 섭리는 믿는다. 그리고 이는 우리의 도덕적 자각과 진보를 위한 저의 간섭이다. 신문들은 이번 선거 결과에 대해서도 한결같이 야당 인사들의 도덕적 반성을 촉구했다. 즉 야당 통합의 실패 내지는 선거 운동에서의 비신사적인 인신공격 등을 들었다.
나는 깊은 의미에서 논자(論者)들이 의식무의식 중에 역사에 대한 신의 도덕적 섭리를 긍정한 것으로 해석한다. 그리고 우리 현실에 대한 하나님의 이런 간섭을 진정으로 감사한다. 이는 우리가 아직도 하나님 앞에 아주 버림받은 상태가 아는 것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나는 실로 이 하나님의 간섭 때문에 우리의 도덕적 진보와 발전에 희망을 갖는다.
요셉의 생애에서 보는 대로, 섭리 신앙이란 모든 고난을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는 믿음으로, 그것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최선에 대한 도덕적 용기와 확신을 갖게 함으로써 소위 동양적인 운명론과 본능적 행복주의를 극복하게 해준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정치적 행복 이상 도덕적인 역사의 창조를 명한다. 우리는 이 섭리 신앙에 의해 우리의 고난과 싸움의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성서연구> 제114호 (196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