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학(三學) 설명을 찾아보면..
삼학 (계정혜 戒․定․慧)
계율(戒律)․선정(禪定)․지혜(智慧)의 약칭. 이를 삼학(三學)이라 이름.
① 계(戒)는 몸․입․뜻으로 범하는 나쁜 짓을 방지하는 것 불즉불리
② 정(定)은 마음이 산란(散亂)한 것을 일경(一境)에 머물게 하는 것
③ 혜(慧)는 미혹을 제거하고 진리를 증득하는 것.//
이라 하는데..
가장 기본적인 설명을 빼고 있다
3학에서 학(學)이란 배울 학이요 공부할 학이다. 그러니 3학이란.. 세가지 공부하는 것으로..
계율을 공부하고[지키고], 선정을 공부하고[닦고], 지혜를 공부하는 것.
계율은 선을 악을 멀리하고 선행을 열심히 지키는 것인데 그것이 공부라 함은..
계율을 잘 지키면 선정의 정력이 강해지고, 혜안이 열리는 좋은 결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하는 계율을 매일매일 지키는 게 쉬운 일이 아니기에 첫번째 공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선정을 공부한다[닦는다]는 것은 마음을 맑게 가라앉히는 수행[공부]으로
초기 불교에서는 9차제정으로 정리했고.. 대승불교에서는 우선 선종을 꼽을 수 있다.
지혜를 공부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없이 경의 내용을 깊이 새기는 것이으로
예를 들어
3법인인 무상, 고, 무아 그리고 열반을 바르게 새기는 것이 아닐 수 없다.
이 세 공부를 연결해 보면..
평소 계를 지키면서
선정을 하고, 선정에 들어 무상이나 무아, 열반을 깊이 새기며 그 뜻을 체득하는 것이
불자의 세가지 공부라는 것.
그런 공부의 바탕이 되는 첫번째인 계율을 공부하는 게 아닐 수 없는데..
대부분이 공부하는 것을 즐기지 않듯이.. 고려 불교는 중기를 지나며 계학이 무너지고..
조선조 불교는 계학을 유지할 기둥[종단] 없이 500 여년을 지내왔기에
그런 업의 결과 지금은 조계종, 태고종 등 종단이 있지만
계가 무너진 막장 불교가 되어 세상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3학 내용 조차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불교계의 수준.. 조금 더 보면..
보조국사 지눌은 정혜쌍수를 강조하셨다.
정이란 정학이요, 혜란 혜학이 되는데.. 우리 불교의 중심인 선종에서는
선 수행 안에 계학과 혜학이 모두 포함되어 있으니 선 수행만 열심히 하면 된다고 뻥치고 있다.
그 결과 1800 여년 불교 운운하는 대한민국 불교이건만
100 년이 될까말까한 미국 불교보다도 교학[혜학]이 얄팍한 불교가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불교를 공부하겠다고 출가한 자[승려]들이 초심을 지킬 때는 문제가 없는데..
작심3일이 끝나면 계를 지키지 않으면서 개차반으로 변하기 시작한다.
그게 현 불교계 현실이라 할 수 있지만.. 불교 미래를 볼 때 그것을 용납해서는 아니된다.
승려가 되어 화두를 제대로 깨치지 못하고 또는 교학을 설할 수 있는 법사가 되지 못해도..
계를 제대로 지키면서 10년 이상 생활하는 승려라면 스님(스승님)이라 불리며 존경받는 세상.
하여 화두를 깨쳤다고 소문이 쟁쟁하거나 경을 통달했다고 최고의 대법사로 칭송받아도..
계를 제대로 지키지 못하는 승려라면 나는 근본이 없는 중이라고 부른다.
불교 집안에서 총무원이라 불리는 곳은 절의 돈줄을 쥐고 있는 곳인데..
거기에는 승려보다 중들이 더 득실거리고 있으니 작은 문제가 아니다.
시중에 나도는 정혜쌍수 해석을 보면..
선정과 지혜는 서로 따로 닦을 것이 아니라 병행되어 닦아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정혜는 본디 계·정·혜의 3학으로서 서로 떼어놓을 수 없는 것인데, 후세에
선을 닦는 자가 선정에만 치우치고, 교를 공부하는 자는 혜학(慧學)에만 치우치는 폐단을 낳았다.
원래 교는 지식문과 이론문이고, 선은 실천문이다.
지식과 이론을 마음 닦는 방법에 대한 안내라고 보면, 선은 그것을 실천, 체험하는 방편이다. //
라고 설명하고 있으니.. 이것 역시 작은 문제가 아니다.
말하자면 지식은 지혜가 아니다.
지식을 선정에 들어 지혜로 만드는 공부가 혜학이다.
"선정에 들어 지혜로 만드는 공부"를 보조국사는 '정혜쌍수'라 한 것이구..
맛이 간 삼학소주.. 새 술병에 새 술을 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