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 너무나 정치적인!
철학자 니체의 말에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유명한 말이 있다. 나는 요즘 우리 현실이야말로 ‘너무나 정치적’임을 슬퍼한다. 하긴 요즘뿐이 아니다. 해방 후 20년이 고스란히 그랬다. 미군정 시대나 이승만 정권 시대나, 민주당 시대, 군사정권 시대가 이점에서는 모두 같았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 36년 동안도, 조선시대에도 그랬다. 일제 시대 도쿄에서 우리 유학생들끼리 모여 앉으면, 대체로 이야기는 총독정치가 물러가기까지는 공부도 다 쓸데없다는 식이었다.
지난번 케네디가 죽었을 때 미국에서 온 친구 소식에, 이상할 정도로 아무런 동요 없고 온 국민이 자기 일에 충실한 것을 보고, 이것이야말로 미국이 미국 된 이유인 것을 알았다고 했다. 내가 수년 전 패전 후의 일본을 여행하고 느낀 소감도 역시 조용한 순종의 민족이구나 하는 것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영국에서는 사전출판(辭典出版) 등 정신적인 일이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다고 한다.
오늘날 미국의 역사와 현실은 결코 우리가 생각하는 의미의 소위 ‘정치’의 소산은 아니다. 건국 자체가 청교도의 신앙과 양심과 근면으로 이루어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슈바이처 박사는 오늘날 유럽 사회는 천년 역사를 헤아리는 유럽 여러 대학들이 일구어낸 소산이라고 했다. 사실 종교개혁만 해도 기독교가 대학을 통해 소화되고 꽃을 피운 것이었다.
이렇게 볼 때 나는 우리 역사 전체의, 특히 근대사의 정치적 불행과 혼란은, 결국 우리의 지나친 정치지상주의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본다. 국가나 정치는 행정 수완만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것으로, 이의 이념이 되는 사상과 철학이 있어야 하며, 근대 산업 또한 고도의 과학 지식과 기술을 필수 조건으로 하고 있으므로, 국민의 양심과 정신이 썩어가지고는 도저히 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사람의 도덕과 심성에 관계되는 산 종교가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근래 우리의 정치적 격돌 상황은 정권 타파에 그 목표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 때문에 더욱 심각성을 띄는 듯하다. 그러나 나는 투표 이외의 방법으로 이루어지는 비정상적 정권 교체는 한두 번으로 족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쿠데타는 두 번 다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4년을 더 못 참겠는가? 그러면 36년은 어떻게 참았는가? 이점 나는 5.16은 물론, 정신혁명이 못되는 4.19조차도 반갑지 않게 생각한다.
진정 정치에 관심 있는 자는 차후의 이상적 정권 교체를 위해 국민을 정신적으로 계몽할 것이다. 지금 와서 부정선거 운운하며 항의하는 자들은 마땅히 선거 자체를 즉각 보이콧 했어야만 했다. 감히 말하거니와 나는 우리 국민에게 지금 당장 이상적인 선거나 이상정치를 할 자격이 있다고는 보지 않는다. 그러므로 정치운동이 아니라 정신적 계몽운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일제 말기 도쿄에서 몇 번이고 이중교(二重橋)에 폭탄을 던지려고 하다가 결국 신앙 양심 때문에 못하고 말았다. 하물며 지금 내 나라에서 이런 사태를 용납할 수는 없다.
<성서연구> 제121호 (1964년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