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조에 대한 단상 / 추창호
우리 고유의 정형시인 시조에 대해 생각이 많아진다. 왜 시조는 변방처럼 느껴지는가? 왜 시조집 중에서 베스트셀러가 없는가? 문예지와 사이버 공간을 통해 많은 작품이 발표되고 있지만, 문학의 위기란 말이 심심찮게 거론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등등의 생각이 그렇다.
이것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독자들에게 쉽게 읽혀지면서도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 부족한 탓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든다. 시조의 정형에 앉힌 내용이 일반 독자들에게 공감을 줄 수 없다면 그건 아무래도 우리 시조 시인의 잘못이다. 절차탁마를 거친 좋은 작품이 앞으로 발표될 작품의 대다수를 차지한다면 이러한 문제점이 해소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최근 ‘잠들지 못한 밤에 시를 읽습니다 -유자효’라는 책을 읽다가 수록된 몇 편의 시조를 읽었다. 시조의 진일보한 위상을 발견한 것 같아 좋았다. 이처럼 좋은 시조가 독자들에게 회자 될 수 있도록 널리 알리는 일이 필요하다. 요즘 발간되는 많은 시조 문예지들이 그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이유에서든지 참으로 바람직한 일이다. 여기에서 특기할 일은 시조 시인들의 배경이나 연을 따지지 않고 언제라도 좋은 작품이 발표될 수 있는 열린 지면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작품을 보며 선택하는 객관적인 잣대나 공정한 눈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시조를 전문적으로 평가하는 시조 평론가가 더욱 많이 나왔으면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좋은 작품은 어느 지면에서나 발표될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었으면 한다.
시조 문학상이 많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다. 칭찬과 격려의 순간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발표되는 수상자들의 글에서 좋은 작품을 쓰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드러난다. 그러나 그 시대의 최고의 작품이냐는 문제는 읽는 이의 몫이다. 어쨌든 발표된 작품을 꼼꼼히 읽고, 많은 이의 공감을 줄 수 있는 작품, 시대를 건너뛸 수 있는 작품이 선정되었으면 한다. 상이 상으로서의 제 몫을 다할 수 있도록 파이팅!을 외쳐본다.
한 해 출간되는 시조집이 많다. 그 시조집을 전국의 시조 시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에게 배부하는 일은 녹녹하지 않다. 그만큼 일이 많다. 그 수고에 비해 시조집을 보내고 난 후 허전한 마음이 드는 것은 읽는 분들의 입장이 아닌 읽혀지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인지 모른다. 거의 자비 출판으로 시조집을 내는 것이 어떤 대가를 바라보는 것은 아니지만, 그 시조집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시조집을 보내온 분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요즘 발표되는 시의 경향 중의 하나가 산문적이고, 길이가 길며, 난해하다는 점이다. 이런 시와 변별할 수 있는 시조가 존경받고 우리 민족의 문학으로서 세계에 우뚝 서기를 기원한다. 그러기 위해 좋은 시조를 많이 창작하여야 하고, 그 시조가 독자들에게 회자 될 수 있도록 널리 알려져야 할 것이다. 시조 문학상 또한 많은 이가 공감을 할 수 있는 그 시대 최고의 작품이 선정되어야 할 것이며, 한 권의 시조집에 최소한 예의를 표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 나래시조시인협회에서 주관하는 ‘문경새재 여름 시인학교’에 다녀왔는데, 독자와 시조를 연결하는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감동적이었다. 전국적으로 이런 행사가 많이 생겼으면 한다. 시조, 그 앞날에 무궁한 영광과 번영이 있기를!
- 나래시조 2022년 가을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