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 사람을, 한 사람을
실존철학자요 무교회주의의 선구자인 키르케고르는 약관의 나이에 당대의 거물인 헤겔과 마르크스를 향해, 사람을 도매금으로 넘기지 말라고 질타했다.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그 옛날 아테네 거리에서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을 붙잡고, 사람이라면 먼저 ‘너 자신을 알라’고 가르쳤다. 더욱이 키르케고르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는 아흔아홉 마리의 양을 버려두고 길 잃은 한 마리를 찾아 헤매었다. 그가, 형제에게 성내고 욕하는 자는 지옥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했을 때(마태 5: 22), 그것은 하나님의 창조에 의한 인간 가치의 절대성의 인식이었다.
그런데 근래 외국인들의 한국 평을 보면, 대체로 한국인은 모든 기대를 국민의 자각보다 정치에 걸고 있다고 한다. 또 한국 사람은 정치에 대한 관심 이상의 동정심을 민족 상호간에 쏟지 않는다고 한다. 이는 단적으로 말해, 우리의 관심과 노력이 사람 자체보다 정치에 집중되고, 민족의 화해와 협조보다는 시기와 파쟁과 이기심에 열중하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툭하면 ‘이 정치에 이 살림’이라고 한탄 또 개탄한다. 그리고 고작 정치적 의분을 터뜨리는 것이 우리 생활의 만성적 고질이 되었다. 그러나 노할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나는 이 민족에 이 정치, 이 국민에 이 정치라고 감히 말한다. 사람이란 짐승과 달리 자유의지의 존재로서, 이를 키우고 가꾸지 않는 한 악마로 전락하는 것이 저의 본질이다. 정치인이 인간개조를 말하고, 지도자가 국민을 씨알이라고 추켜올릴 때, 이야말로 인간에 대한 무지요, 국민에 대한 아첨밖에 될 수 없다. 우리 정치가 자신들은, 그래, 자신을 인격적으로 개조라도 했단 말인가? 어림없는 소리다. 그리고 고무신짝에 제 권리를 팔아먹는 국민이 무슨 씨알이란 말인가?
이웃 일본에서 수년 전 야나이하라(矢內原) 선생이 도쿄대학 총장직을 물러났을 때, 그의 현실 참여를 기대했던 신문기자들의 질문에 대해, 그는 일본 국민을 한 사람이라도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에 진력하겠다고 말하고, 결국 학생문제연구소를 일으켜 청년들의 정신 지도와 인사상담에 종사했다고 한다. 나는 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애국적 행위라고 생각한다. 일제하에서의 김성수(金性洙)나 남강(南岡)의 교육은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의 정치선동이고 정치공작이었지, 진정한 민족성격과 정신의 개조를 위한 것은 아니었다. 하물며 인간 자체의 인격 형성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그들의 교육은 인간교육이 아니고, 국민을 정치의 이용물로 삼는 식의 소위 정치적 교육이었다.
우리의 이 천박한 민족경영 가운데서 나는 하나의 예외를 김교신 선생에게서 본다. 단적인 예로, 일본 경찰이 선생의 교육과 신앙을 가리켜 민족의 3백년 후를 목표로 하는, 민족주의나 공산주의 이상 가는 가장 악질적인 것이라고 박해한 것으로도 이를 알 수 있다. 일본인들이 최악질이라고 생각한 것이야말로 실로 선생이 3백년을 걸고 계획한, 종교에 의한 민족의 개조였던 것이다. 선생은 한때 한 사람 상대의 성서강의를 북한산록 선생 서재에서 수년간 계속한 일도 있었다. 오늘날 기독교까지 제 2의 3.1운동을 운위하며 정치적 현실참여를 외칠 때, 나는 민족의 백년대계를 위해 일생 한 사람 상대의 교육에 열중하신 선생께 한없는 경모(敬慕)를 느낀다.
<성서연구> 제125호 (1964년 9월)
첫댓글 김교신 선생님께 수년간 성서 강의를 들은 사람이 장기려 박사님이시라는 것을 들엇는데 장기려 박사님 곁에서 10여년간 무교회 성서 집회에 참석한자로서 장기려 박사님은 남다른 독립신앙인임을 발견할수 있었다.자세한 내용은 "성산 장기려 박사 사업회"의 홈페이지를 보면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알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