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술대회 참석 소감.
대구 두(頭) 신경과 원장. 한병인.
지난 6월에 열린 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회에 참석하였다. 개업의사로서 외국에서 열리는 국제학회에 갈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서울에서 이 학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참석하고자 결심하고, 올해 초부터 의원 홈페이지에 학회 휴진 공고를 하고, 포스터라도 하나 내기 위해, 계명의대와 경북의대의 교수님들의 도움으로 2개의 초록을 제출하였는데, 모두 구연으로 채택되어 연자로 참석하게 되었다. 그 초록 제목은 Simplified vestibular rehabilitation therapy program for primary care clinics 와 Neuropsychiatric differences between dizziness and vertigo 로, 비교적 인기가 없는 주제들이지만, 필자가 수 년 전부터 관심을 가져온 분야였다. 필자가 어지럼증 분야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과거에 오희종 신경과 의원에서 부원장으로 근무한 경험과, 그 때 오원장님의 자료로 논문을 쓰면서 김지수 선생님의 지도를 받은 것이 계기이다. 한편, 초록을 만드는 데는 경북의대의 박성파, 이호원, 고판우, 김성희 교수님, 그리고 계명의대의 이형, 김현아 교수님의 도움 덕분인데, 특히, 김현아 교수님의 도움이 컸다.
대한평형의학회 춘계학회가 서울아산병원에서 6월 5일, 일요일, 오전에 끝나고, 연이어 오후에 같은 장소에서 바라니 학회가 시작되었는데, 그 중에서 필자는 vestibular rehabilitation course 에 참석하였다. 여러 나라에서 온 전정재활 치료사들이 각자의 애로사항과 발전방향을 토론하는 자리였는데, 미국 외에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대부분의 나라에서, 치료에 대한 비용을 제대로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전정재활치료가 발전하지 않는다는 의견이 많았다.
6월 6일, 월요일 부터 장소는 서울 그랜드인터컨티넨탈 호텔로, 삼성역에 위치하여 교통이 편리하고, 고층빌딩과 화려한 거리가 주위에 있어서, 외국인에게 한국의 가장 멋있는 모습을 보여주기에 최고의 장소였다. 김지수 교수님께서 학술위원장을 맡으셔서 그런지, 행사준비나 진행이 아주 순조로워서, 주최측에서 치밀하게 준비를 잘 한 듯이 느껴졌다. 그래서 바라니학회 역사상 가장 많은 740여명이 등록하였다고 들었다. 행사는 여러 개의 방에서 동시에 이루어졌는데, 아침 일찍 큰 강의실에서 유명 연자들의 40분 강의로 시작되어, 20분 내지 10분짜리의 수많은 강의들이 있었으므로, 관심 있는 강의를 찾아 들으려면 바쁘게 돌아다녀야 했다. 필자가 들은 강의 중에는 우리나라에서는 관심이 적은 Mal de Debarquement syndrome 과 우주여행과 관련된 평형문제에 대한 것들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우주선과 비행사는 러시아 소속이지만, 발표자들은 러시아인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아마 학회 참석자 중에도 러시아인은 없는 것 같았다. 한편, 시드니의 Halmagy 선생님의 팀에서는 VEMP 의 창시자답게 VEMP 를 응용한 새로운 검사들을 선보였고, 안경에 카메라를 탑재하여, 피검자의 안진을 하루 종일 기록하는 장비도 선보였다. 런던의 Bronstein 선생님 팀에서는 어지럼증을 인지하는 방법을 선보였는데, 원리는 피험자가 어지럼을 느낄 때 스위치를 누르는 간단한 것이었지만, 이것을 생각해 냈다는 것이 놀라왔다. 필자는 영어로 발표연습을 하느라, 학회기간 내내 편히 지내지 못했고, 2개 발표 모두 질문자가 1명씩 뿐이었던 것으로 보아, 대중들에게 관심을 끌지는 못한 것 같았다.
이 학회에서 외국의 참가자들을 많이 만났다. 필자의 "어지럼과 이명 그림으로 보다"책의 중국판을 출판하신 중국의 총리쿤 선생님과는 미리 만나기로 약속했으므로, 학회기간 내내 주로 이 분과 동행하였다. 필자의 중국판 책이 중국내 베스트셀러 2위로 뽑혔다면서, 표창장의 복사본을 필자에게 주었다. 필자는 휴가차 외국여행갈 때 그 곳의 의사들을 방문하곤 했었는데, 그 중에 이 학회에 오신 분들이 많았다. 2011년에 런던 여행때 방문했던 London Imperial College의 시뭉갈(Simungal) 박사는 머리숱이 상당히 적어져서 금방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 때 그는 전화로 "I will collect you."라고 필자에게 말했었는데, 데리러 가겠다는 뜻인 줄 짐작은 했었지만, 필자에게는 마치 물건을 모은다는 느낌으로 와 닿았기에 잊혀지지 않았다. 또한, 2015년 가을에 다른 일로 대구에 와서, 잠시 필자의 의원을 방문했던 피츠버그 대학병원의 Susan Whitney 박사는 큰 몸집에 대비되는 상냥한 미소 그대로였다. 한편, 2015년 여름에 필자가 시드니 대학을 방문했을 때, 1시간이나 자신의 007 본부 같은 연구실을 필자에게 보여줬던 MacDougall 박사는 새 여자친구를 동반하고 학회에 참석하였고, 그 때부터 만들던 aVOR ‘APP’을 이번 학회에 발표하였는데, 그 앱의 한글판 명령어 제작을 필자가 도왔다고, 필자의 이름을 제품에 넣었다고 했다. 무엇보다 감격적인 만남은, 10년 전에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Matera 를 방문했을 때, 3일간의 호텔비를 제공하고, 3일 동안 자신의 자동차로 부인과 함께 우리가족을 태우고 관광을 시켜 주신 Asprella 박사 내외와의 만남이었다. 10년 동안 Asprella 박사는 머리숱이 줄어들고 배가 나오고, 부인도 몸집이 불어서, 모두 중년을 졸업한 느낌을 풍겼다. Asprella 박사는 자신의 고향인 Matera 에 다음 바라니학회를 유치하기 위해 로비 중이었는데, Matera 는 로마시대 초기에 기독교인들이 숨어살던 돌 동굴들이 있고, 멜 깁슨이 만든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촬영지라는 것 외에는 매력이 없어서인지, 임원투표에서 스웨덴에 뺏기고 말았다.
학회 마지막 날 전의 저녁식사는 Gala dinner 파티였는데, 리틀엔젤스의 여러 가지 민속춤이 공연되었다. 각양각색의 한복, 부채, 장구, 북, 그리고 갖은 느낌의 음악과 리듬이, 과연 한국의 춤과 음악이 이렇게도 예쁘고 재미있었나라고 생각될 정도로 훌륭했다. 학회 마지막 날은 오전에 프로그램이 끝났고, Asprella 박사의 출국 비행기가 자정에 출발하기 때문에, 남는시간 동안 서울 관광을 시켜드리기로 했다. 하루 전에 우연히 타게 된 택시 기사와 20만원에 대절하기로 약속을 해 놓았던 터라, 택시 기사의 권유대로 경복궁과 인사동을 구경하고, Asprella 박사의 부인인 Patrizia 가 한복을 사고 싶다 하여 동대문 시장을 들렀다. Patrizia 는 한복을 입은 사람만 보면 예쁘다면서 사진을 찍었다. 그날은 가는 곳마다 한복 입은 여자들이 많았는데, 곳곳에 한복 대여점이 있어서, 외국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사람들도 한복을 대여해 입는 것 같았다. 그 중에서 Patrizia가 환호를 지르면서 열광한 것은, 인사동 거리를 걸어가는 스님이었다. 성자와 같은 그 모습이 그녀에게는 정말 놀랍고 신기한 모양이었던지 Mon Senior 라고 하면서 열심히 스님의 사진을 찍었다. 한복은 마음에 드는 것이 없어 사지 못했으나, 인사동과 동대문시장에서 선물을 가득 사서 인천 공항으로 가서 저녁을 대접하고, 공항전철로 서울역으로 와서, KTX로 대구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였다. 며칠 후 Asprella 박사와 찍은 사진을 살펴보다가, Asprella 박사의 티셔츠가 10년 전에 이탈리아에서 같이 찍은 사진 것과 똑같다는 것을 발견했다. "10년이나 같은 티셔츠를 입다니, 검소한가 보다"라고 생각하면서, 이메일로 과거와 현재의 사진을 보내니, It is funny and I really had a laugh seeing them, but I can assure it is not just the same t-shirt. (너무 재미있어서 웃지 않을 수 없네요. 확실한 건, 지금의 T셔츠는 10년전의 T 셔츠가 아니라는 겁니다) 라는 답이 왔다.
이번 제29차 바라니 어지럼증 국제학회는, 준비하신 분들의 노력과 참가자들의 열심으로, 필자가 참석했던 어떤 학회보다 훌륭하고 감동적인 행사였다.
사진 1: Gala dinner 파티. 참석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사진촬영을 하였다
사진 2: 2016년에 찍은 Asprella 박사와 필자의 사진. Asprella 박사의 T 셔츠가 10년전의 것과 똑같다.
사진 3: 2006년에 찍은 사진.
-사진은 나중에 올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