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평구전집>십자가
사도 바울의 기독교는 철저히 십자가교였다. 그는 “나에게는 우리들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 것도 자랑할 것이 없다”고 했다(갈라디아 6:14). 그의 전도는 오직 이 십자가의 제시였다. 같은 갈라디아서에서 그는 갈라디아 사람들 앞에 분명히 십자가에 달린 예수 그리스도를 제시했음을 말하고 있다(3:1). 여기서 제시란 말은 요즘의 플래카드와 같은 말이다. 모패트 주해에서 던컨은 이 대목을 주해하면서 예수의 십자가는 인류 역사상 최대의 플래카드라고 했다.
그렇다. 이 십자가야말로 전 인류에게 제시된 최대의 플래카드였다. 그러면 이 최대의 플래카드를 제시한 자는 대체 누구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자신일 수는 없다. 전도자 바울일 수는 더더욱 없다. 그렇다, 그것은 하나님 자신이었다. 그가 역사상 최대의 플래카드로서 예수의 십자가를 전 인류에게 제시한 것이다. 전 인류의 절대적 필요물로서 말이다. 그러므로 바울의 십자가 전도는 엄밀히 하나님이 제시한 십자가를 사람들 앞에서 가리키는 것에 불과했다.
역사의 전환점에는 언제나 십자가가 선다고 한다. 이때의 전환점은 위기에서의 구출인 동시에 새로운 진보의 계기를 말한다. 그러면 십자가란 무엇인가? 이는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한 예수 자신의 말씀으로 분명해진다(마태 16:24). 그것은 곧 자기 부정이다. 여기서 ‘버린다’는 단어는 베드로가 후일 예수를 ‘부인했다’는 것과 같은 단어이다. 여기서 우리는 십자가란 예수 자신의 자기 부인임은 물론, 한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 자신이 자기의 아들을 죽이는 자기 부정이었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이 자기 아들을 십자가에 달아 전 인류 앞에 플래카드로 삼은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기 부정은 무엇인가? 그것은 곧 하나님의 사랑이다. 요한은 이를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죽지 않고 영생을 얻으리라”고 했다. 예수의 십자가에 의한 인류사의 전환점, 그것은 곧 인류의 불신과 죄악과 죽음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도입함으로써 인류의 역사에 신생을 가져온 것이었다. 하나님은 생명의 본체요, 영존자(永存者)요, 완전자이시다. 하나님의 자기 부정의 사랑은 인류에게 자신의 최고의 본질인 영생을 주신 것이다.
기독자의 신생은 하나님의 이 영적․도덕적 생명의 부여에 의한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자기 부정인 십자가에 순종한 예수 그리스도는 또한 우리에게도 십자가, 즉 자기 부정을 명했다. 우리는 이를 거역하거나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기독자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자기 부정으로 인해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의 사랑과 그의 의를 소유하게 된 것이니까. 그러므로 우리의 십자가란 우리가 소유한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과 의를 세상에 희생적으로 발산하는 것이며 나누는 것이며 전달하는 것이다. (성서연구 1964년 9월 제125호)
첫댓글 십자가 = 자기부정 =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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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의 자기 부정의 사랑은 인류에게 자신의 최고의 본질인 영생을 주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