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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우로부터 수상자 김익하 소설가, 최인희문학상운영위원장 김진자 시인,동해시 심규언 시장.
▲김익하 소설가 제20회최인희문학상 시상식 전경1. 코로나19로 참석이눤 30명으로 제한
김익하 작가 제20회최인희문학상 시상식
때:2020,10,23,17:00
곳: 동해시청 2층 회의실
주최:최인희문학상운영위원회·동해문인협회
수상작 : 「탱자나무집 현자」 단편소설 수록
제20회최인희문학상 수상자 김익하 작가의 수상식이 10월 23일 17시 동해시청 2층 회의실에서 최인희문학상 운영위원회 김진자 위원장에 의해 김익하 작가의 단편소설 ‘탱자나무집 현자’를 수상작으로 선정되어 수상식을 거행했다.삼척 출신 김 작가는 1980년 「현대문학」으로 등단 이후 꾸준히 소설을 집필해 오며 삼척지역 문학지에도 작품을 선보여 왔다. 김 작가의 대표 작품집인 한국예술위원회 선정 <2017년 문학나눔 도서>에 선정된 그의 장편소설 『소설 이승휴』 가 있다.
김 작가의 특장은 시적에 가까운, 조밀한 묘사의 힘과 탄탄한 구성력은 물론 주제를 천착하는 깊은 눈이다. 「탱자나집 현자」는 강원도 삼척지방을 무대로 한 작품인데, 어머니의 부고를 받은 현자 씨의 회상형식으로 전개한 이야기이다. 작가는 혈육을 향한 인간의 내밀한 감정과 존재론적 욕망을 긴장된 문장을 통하여 심도 있게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 문예월간지에 장편소설 『토렴』을 집필 했다.
▲시상자 김진자 최인희문학상운영위원장의 수상자 김익하 소설가에 시상식
▲수상자 김익하 소설가,수상소감
▲김진자 최인희문학상운영위원장 인사말,이여서 심규언 동해시장 축사가 있었다.
▲김익하 소설가 제20회최인희문학상 시상식 전경2
▲김익하 소설가 제20회최인희문학상 시상식 전경3
▲최인희문학상 최인희 시인의 따님 재미 수필가 최지은 수필가,심규언 동해시장, 수상자 김익하 작가
▲김익하 최인희문학상 축하,김진자 위원장, 최지은 수필가,수장자 김익하 소설가, 심규언 동해시장
▲최인희문학상 최인희 시인의 따님 재미 수필가 최지은 님
▲삼척 문우들 김익하 최인희문학상 축하,서성옥 작가,김진자 위원장,조관선 작가,심규언 시장,,수장자 김익하작가, 정연휘 시인,김영채 시인, 정순란 시인.
▲동해문인들 김익하 최인희문학상 축하,
▲최인희문학상 수상자 김익하 작가와 삼척문협 회장 정순란 시인
[단편소설]
탱자나무집 현자
김익하
동짓달 스무하룻날 어머니가 일흔여덟으로 세상에서 떠났다.
지병이 없었던지라 자연사였다. 이웃에서도 하루 뒤에야 알았노라 했던 터, 고고성 내지르며 존재를 알린 목숨을 말없이 지운 셈이다. 그런 정황에서 내게 어머니 죽음을 알린 건 휴대전화기다. 그날 휴대전화기는 가는 신호를 끊임없이 잡아먹으면서 끝내 응답은 뱉어내지 않았다. 대꾸가 없는 물음처럼 세상에 허망한 일이 어디 또 있을까, 입속으로 그런 말이 되돌아 씹혔다. 혹여 해서 비상연락망으로 번호가 남아 있는 이장에게 부탁했더니 비로소 어머니 죽음이 전파로 전해왔다. 이장은 마치 제 책임이라는 듯 앞뒤 말이 뒤섞인 화급한 목소리였다. 본인도 놀라 흥분해서 당황하고 있음이 목소리로도 넉넉히 짐작되었다. 난 손끝에 걸리는 일들을 대충 치우고 서둘러 남촌마을로 떠나야 했다.
어머니와 통화를 할 때마다 휴대전화기에서는 언제나 어머니 목소리 사이로 고향인 남촌마을 소리가 새어 나왔다. 가는귀먹은 어머니 청각 탓에 휴대전화기 음량을 최대로 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봄 개구리 울음소리, 여름 매미울음과 오동잎에 소나기 떨어지는 소리, 겨울나무에 감기는 바람 소리. 사계절 개 짖는 소리. 그런 배경음이 이른 저녁 무렵이거나 늦저녁 어머니 목소리에 섞여 들리면 마치 나는 고향 집 방문을 열고 그곳 마루에 나선 듯 현실에서 벗어나 유년기로 돌아가 있었다.
“엄마, 나한테 거짓말하면 내가 가만 안 있어.”
“야가 뭔 소리 하냐. 자다가 받아서 목소리만 그렇지, 난 아무 데도 아픈 곳은 없다.”
“그럼, 지금 어딜 가 있어서 전활 안 받았어?”
“현자냐? 잠깐 눈 좀 붙였는데 시각이 하마 그리 됐냐?”
“왜 전활 안 받았어? 엄마가 전활 안 받으면 내가 아무 일도 못 한다는 걸 잘 알잖아?”
“응, 엊저녁에도, 오늘 아침에도 전활 했다구? 잠이 안 와서 일어나 풋콩 한 줌 까놓고 잤다. 그러다가 아침에는 깜박 개잠 들어 못 받았고……. 에미도 명심하고 있으니 너무 뭐라 마라.”
“지금 누가 엄말 부르잖아?”
“응 아랫집 윤택이 어멈이 내일 번개시장에 가잔 소리다. 지금 내 귀에도 잘 들린다.”
그런 대화 속에 끼어드는 배경음은 기억까지 흔들어 날 남촌마을에다 데려다 놓기 일쑤였다. 산 높고 골 깊어 햇빛이 골목을 세세히 훑잖고 미치듯이 바삐 지나가는 곳. 알몸으로 뒹굴어도 몸에 떼가 묻는 게 아니라 시퍼렇게 풀물이 들 것 같은 산골 마을. 내 유년기에 시선 깊숙이 박힌 풍물 낱낱이 그림 동화책을 넘기듯 머릿속에서 재생되었다. 그곳 고샅에 박힌 돌과 밭 가에 껑충하게 일어선 나무, 이슬진 개울가로 꽃이 하얗게 이는 돌미나리와 밀어 박혀 철철이 꽃 머리를 치켜드는 온갖 풀들. 그리고 나긋하니 코끝으로 스미는 보릿짚 타는 냄새, 콩 타작 마당에서 튀겨 달아나는 검정콩들, 그러나 가장 뚜렷한 건 집을 빈틈없이 껴안고 있는 탱자나무울이었다.
어머니는 일생 탱자나무울 속에 갇혀 살았다. 가지에서 빳빳하게 일어선 가시 탓인지 우리 집으로 마을 아이들조차 놀러 오길 꺼렸다. 아이들은 가시 공포 때문에 넓게 뛰놀 수 있는, 마당 너른 집으로 몰려가곤 했다. 탱자나무울은 홀로 사는 여자에게 향하는 나쁜 소문이 가시에 찔려 울타리 안으로 들어오지 않길 바라는 어머니 마음을 아는 듯, 참새떼들이 매를 피하러 겨우 드나들 만큼 어긋나게 날카롭고 억센 가시가 곁가지까지 촘촘히 돋아나 있었다. 아니 두 길도 되지 않은 나무가 가시로 뭉쳐 사람 손길마저 쉽게 허락하지 않을 만큼 적의를 드러냈다. 그래도 오월에 탱자꽃이 피면 콧구멍을 환히 넓혀 놓고 싶었다. 운향과芸香科 식물답게 손색없는 향기를 뿜어내서 여자 홀로 사는 궁기를 마루 틈새까지 말끔하게 씻어내듯 했다. 그 향기는 걸레질이라도 하듯 집 안뿐 아니라 마음속까지 정결하게 씻어내 주었다. 그러나 탱자나무는 꽃으로도, 향기로도 가시를 감추지 못한 채 밖으로 날카로움을 드러내며 우리 집 옥호로 존재했다.
이웃에 얼굴빛이 희멀게서 서울사람 같다던 동구아저씨가 살았다. 그는 얼굴이 훤해 귀티가 났을 뿐만 아니라 책도 많이 읽어 아는 게 많았는데, 마을 사람들은 좋은 가문을 망친 아비 때문에 용 될 신분이 지렁이 취급받는다고 쑤군거렸다. 그 동구아저씨가 늙은 총각일 때, 어머니에게 건몸달아 흑심을 숨기잖았는데 우리 집 탱자나무울을 빗대 눙침을 즐겼다.
“오죽이나 가시가 날카로우면 예부터 귀양 간 자를 가두는 울타리로 사용했을까? 현자 엄마도 가만히 따져보면 탱자나무울에 갇혀 사니 감옥살이하는 거나 다름없는 기라.”
이웃이 언뜻 들으면 안쓰러워하는 위안 소리일 테지만, 속내를 은근슬쩍 비쳐 어머니 마음을 어떻든 움직여 보려는 짓거리였다. 어머니 반응에 앞서 마을 사람들이 속셈을 이미 알아차렸다 싶으면 무안해진 표정으로 능청스럽게 둘러쳤다.
“그래도 북채로는 탱자나무가 젤이지. 소리꾼이 북채가 박과 박 사이로 치고 들어가 북통이 화들짝 놀라듯 ‘퉁-’ 때려 울리는 그 경쾌한 맛에 산다고 그랬지. 아마…….”
찬찬히 따져보면 그 말 속에서도 어머니로 향한 엉큼한 비유가 숨겨져 있었다. 동구아저씨가 하찮은 사람이 아니어서 먹은 마음을 거친 행동으로 옮기잖고 입 무거운 사람을 중간에다 넣었다. 동구아저씨 부탁을 가져온 아낙이 어머니 앞에서 이런저런 이야길 풀어 놓은 뒤 짐짓 의향까지 떠보려 입을 열었다.
“현자 하나뿐이니 단출한 몸이잖소. 서로 짝 잃은 처지가 아니오? 그러니 피차 결심하기 쉽지 않겠소. 어떠우? 대답을 저쪽에다 건네주는 게…….”
젖먹이인 날 감싸 둘러업고 탱자나무울을 벗어나 동구아저씨에게 재혼하라는 꼬드김이었다. 그녀 권유에 어머니는 열무의 누런 잎을 손끝으로 툭툭 쳐내던 손길을 갑자기 멈추고, 그녀 입을 한참 쳐다보다가 눈빛조차 흔들리잖고 책에서 글자를 솎아내어 읽듯 또박또박 내뱉었다.
“애당초 그런 맘 갖지 마시라고 내 말을 똑똑히 전하시오. 내 마음 문은 이제 밖에서 열 수 없네요. 안에서 열어야 하는데 내가 그만 열쇨 잊어버렸네요. 그러니 그리 애쓸 필요가 없다고 말 좀 꼭 전해주시오. 아마 그만한 풍채면 장터거리에 나가면 한둘은 있을 거니 게서 짝을 맘대로 고르라고 일러요.”
어머니 그 말이 동구아저씨 속마음뿐 아니라 중매한답시고 나섰던 아낙 발걸음마저 끊게 했다. 동구아저씨는 어머니 마음을 얻기는커녕 탱자나무울 너머로 넘보다 끝내는 가시에 찔린 모양새가 되어 먹은 맘까지 버리고 시선마저 딴 데로 돌려 삼 년이 지나서야 총각 신세를 면하고 어찌어찌하다 두 아이의 아비가 되었다.
나이 스물다섯에 시집온 어머니는 육 년 뒤 홀로 되었으나 아버지 모습에 매달려 나머지 삶을 살아왔다. 그런 어머니에게 재혼하란 권유는 모욕을 느낄 만큼 가혹한 말이었을 테다. 어머니는 오래전부터 내 귀에다 못 박아온 소리가 있었다.
“저게 사내자식이라면…….”
어떨 땐 중얼거림으로, 또 어느 땐 노골적인 말투로 끝나잖고 눈빛만 아니라 속마음에도 그런 간절함이 묻어 있었다. 내가 아닐 거라 우겨도 이런저런 근거를 붙이며 그도 아버질 빼닮았다고까지 했다. 내가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말도 부담스러웠는데, 사내기를 원했으니 들을 때마다 나는 귀를 틀어막으며 울기까지 했다. 눈매, 콧방울, 귓바퀴까지 아빌 그대로 빼닮았다고 할머니까지 덩달아 거들고 나섰다. 곱상한 선을 가진 어머닐 두고 뭐든 큼직큼직한 선을 한 아버질 닮았다니 난 그때마다 내 밋밋한 아랫도리를 내려다보며 속을 부글부글 끓였다. 더군다나 나는 아버지 모습을 한 부분도 기억해내지 못하는 딸인데 그 말은 곧 가시로 변해 가슴을 따끔따끔 찔렀다.
그래서 거울 앞에 서야만 비로소 내 얼굴을 보며 아버지를 어림짐작이나마 그려 볼 수 있었다. 죽은 아버지를 누렇게 빛바랜 사진에서만 이웃집 아저씨 보듯 스쳐보기만 했으니 선연하게 떠올릴 수가 없었다. 다만 움직이는 생물체가 아니라 사진 속 피사체로만 보았을 뿐이었다. 군복을 입은 사내 세 명의 사진인데 ‘영원히 잊지 말자 우리의 깊은 우정!!’ 누렇게 변색한 바탕에 흰 글자가 그렇게 박힌 사진 속, 가운데 키 큰 사람이 네 아버지라 어머니가 손가락 끝으로 가리켰다. 그때마다 어머니 오른쪽 집게손가락 끝이 가늘게 떨렸다. 아무리 눈을 씻고 자세히 부분부분 뜯어 보아도 내 눈에는 분명 낯선 남자라 나와는 연관이 닿지 않을 사람으로만 보였다. 더구나 군모를 써서 얼굴 윤곽을 삼 분의 일쯤 가려서 판별을 더욱 어렵게 했다.
할머니가 종종 땋은 뒤 검은 고무줄로 챙챙 끝맺은 머리는 조여 아프지만, 아무리 뛰놀아도 쉽게 풀어지진 않았다. 할머니는 모든 일에 일솜씨가 맵짜고 야무졌다. 그 할미 손끝은 늘 똑소리가 난다고 이웃 할머니들이 제 손끝 버성김을 부끄러워했다. 그렇게 야문 솜씨를 가진 할머니도 어머니 말에 지체하잖고 동조하고 나서기 일쑤였다.
“맞다. 어미 그 말은 영락없이 맞다. 사내자식으로 태어났다면 천상 제 아비다.”
할머니는 하늘에다 띄웠던 눈길을 멀리 아버지 묘가 있는 들머리로 보냈다. 이곳 안개는 들머리 너머 숲에서 살다가 동풍이 불며 어디론가 숨었다. 안개가 숲을 삼켜 나무둥치와 굵은 가지만 보일 뿐, 잎은 숫제 보이잖았다. 비가 오거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안개는 걷힐 낌새조차 보이잖고 암탉이 알을 품듯 숲을 품고 있었다. 강한 햇볕도 안개를 녹여내지 못한 채 반사되어 튀겨나갔다. 바람만이 안개를 움직였다. 가끔 숲 속에서 전해지는 새소리가 오늘따라 더욱 뚜렷하게 들리는 그런 날이다.
“할머니 나 아무리 생각해 봐도 아버지 안 닮았는데?”
“이것아. 닮지 않았다니? 뭔 소리냐? 아비가 설설 길 때 네가 보잖아서 그렇지 고맘때 너와 흡사했다.”
곁에 있던 어머니는 할머니 말이 끝나자마자 표정이 환해지며 맞장구까지 쳤다.
“전 그이를 어릴 때 보지 않아서 모르지만, 그랬어요? 그이가 현자 길 때와 같았어요?”
“아암, 지금도 생각나 아비도 그런 동작을 했지.”
“또 다른 것은요?”
“으음 그리고 그 뭐냐? 그렇지. 식사 끝은 언제나 밥을 국이나 물에다 말아 먹었다. 그래, 그래 맞아. 신을 접어 신는 짓도 닮았어. 저것 봐 지금도 왼손으로 글씰 쓰잖아.”
물론 뒷말은 나에게 한 말이었다. 할머니는 아버지 버릇을 들춰내기에 굿 마당에 들어선 무당처럼 신명 나 있어 입가에 거품까지 허옇게 끼었다. 할머니는 그럴수록 점점 흥을 돋우려는 듯 말을 받아가며 넉넉하게 보태기까지 했다.
“그것뿐만 아니다. 걸음걸이도 어벌쩡했다. 그래 너도 사내처럼 터벅터벅 걸잖아. 현자야, 네 눈으로 봐도 그렇잖으냐? 그럴 땐 영락없이 제 아비다.”
할머니와 어머니 공세에 나는 굳이 부정하려고 바락바락 달려들기도 했다.
“그럼 아버지가 식사 때 어떻게 했어? 밥상에 앉으시면 밥을 먼저 떴어? 반찬을 먼저 집었어?”
“아마 너처럼 밥을 먼저 떴을 거다.”
“그런 대답이 어딨어. 그건 확실히 모르지 할머니?”
“보나 안보나 너를 보면 빤하지 않겠나.”
할머니와 어머니는 번갈아 가며 내 물음에 맞장구까지 치며 신명 나서 대답했다. 이젠 어머니는 나에게서 아버지 모습을 찾으려는 듯 내 무의미한 행동에도 깊은 관심까지 가지는 처지로 변해가고 있었다. 나는 나에게서 아버지 닮은 부분을 찾아내려고 때로는 꼼꼼하게, 또는 멍하게, 아니면 억지라도 끌어다 붙이려고 애쓰는 어머니 눈길이 부담스러웠다. 어머니는 내가 아버지를 닮았다 하면 얼굴에 생기가 돌았다. 마치 조용한 부엌에서 달아오른 프라이팬에 기름이 떨어지면 튀는 소리와 함께 고소함이 번져 주방 분위기가 소란하고 환해지듯, 어머니는 혼자 속으로 끄응끄응 앓던 것을 풀어낸 표정에다 희미한 웃음까지 얼굴에다 담았다.
“너 얼굴에서 표정을 거둬내면 아버지 모습이 보인다. 특히 잠잘 때가 그렇다.”
어떨 땐 닮은 논쟁하다가 어머니는 갑자기 말을 끊을 때가 있었다. 나도 그때면 말을 삼가고 어머니를 찬찬히 살핀다. 어머니는 내가 동의하잖은 일로 분명 슬퍼하고 있었다. 슬픔을 이겨내려고 무릎 위에 손을 올려 치마 아래 살을 자근자근 누르기도 했다. 그것이 내 눈에는 속으로 흐르는 눈물을 꼭꼭 찔러 막으려는 행위로만 비춰 보였다.
그때면 난 고집은 스스로 무너뜨리며 어머니 얼굴에서 슬픔을 지워내려고 광대 짓을 연출해야 했다. 나는 앞머리를 바짝 끌어올려 할머니 말마따나 백 평이나 되는 훤한 이마를 어머니 눈앞으로 바투 들이밀며 애교를 떨어야 했다.
“엄마, 이 이마도 아빨 닮았어? 정말 그래 보여?”
어머니는 내 이마를 찬찬히 뜯어보면서 그제야 밝은 표정으로 고개를 천연덕스럽게 끄덕였다. 난 그것에서 멈추잖고 한 발짝 더 나아가 또 달리 연출해야 했다. 이번에는 어머니 앞에다 발을 내밀어 발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입을 열었다.
“이것도 아빨 닮은 거야? 맞지, 응 맞지. 그렇지 엄마아-.”
맑아지는 어머니의 눈에는 어느새 웃음이 담겼고 그것이 입가로 내려와 피식 터졌다.
“그래 이것아. 아버지도 발가락 마디가 그렇게 등이 굽었다.”
“너 아비가 저기에 실려 가는 거다.”
할머니가 내게 눈앞에 벌어진 정황을 낮은 목소리로 알려줬다. 그때 나는 어린 여섯 살이었고 아버지란 말이 처음 귓속으로 들어왔다. 눈앞은 빨랫줄에 널린 옥양목 천에 눈이 시리듯 그저 하얬다.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것만 희지 않을 뿐 주변이 온통 흰 눈으로 덮였다. 눈 내린 텃밭에서 꽃상여가 꾸며졌다. 울음이 크게 일고 꽃상여가 울음을 밀어내며 움직였다. 머리에 흰 무명 수건을 쓴 상여꾼 발걸음에 어깨가 출렁였다. 그 어깨 흐름에 짐처럼 얹혀 상여는 텃밭에서 천천히 떠나가고 있었다. 나는 할머니 등에 업혀 아버지 상여를 그렇게 샛눈으로 바라보았다. 동짓달이라 날씨는 추워 웅크린 몸 안까지 한기가 파고들었다. 가마솥 곁으로 오가는 아낙들이 저들끼리 장작 타는 연기에 두 눈을 찌푸리며 쑤군거렸다.
“눈이 오면 추위가 눅어진다고 했는데, 피죽도 못 얻어먹은 시어미 심술같이 지랄스럽게 차기만 하네.”
“날씨가 좋아야 죽은 사람이 욕먹잖재.”
나는 ‘꼼짝 마라’며 손끝으로 줴지르는 할머니 말에 그녀 등에 업혀 얼굴 왼쪽을 붙인 채 덮어씌운 어머니 적삼 틈 사이로 얕은 개울을 건너가는 상여와 해로소리를 보고 들었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할머니의 억센 양쪽 손가락이 내 가냘픈 허벅지를 사정없이 끌어다가 할머니 허리께에다 밀어붙였다.
“우리 강아지, 졸리면 칭얼거리지 말고 할미 등에 머릴 박고 콕 자라.”
할머니는 허리 아래로 흘러내리는 나를 쥐가 나는 팔로 부지런히 추스르며 얼렀다. 할머니 코맹맹이 쉰 목소리에는 아직 훌쩍거림이 가시지 않은 채 꽉 막혀 더러 킁킁거렸다. 언제나 따뜻했던 할머니 등이 그날은 더 깊이 파고 들어가고 싶을 만큼 써늘한 채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난 그 딱딱한 등에다 코를 문지르며 칭얼거렸다. 아버지 상여를 삼킨 골짜기는 북풍을 따라가며 살얼음이 얼어가는지 풀어진 노을로 반짝거렸다.
칠월이면 마당 가에서 봉선화가 일곱 가지 색깔로 다투며 피어났다. 무리 가운데 유달리 붉은색 꽃이 많아 그것이 질 때는 흡사 핏방울이 뚝뚝 떨어지듯 처연하기까지 했다. 애써 가꾸지도 않은데 씨방이 터져 씨가 사방으로 흩어져서 겨우내 숨어 있다가 이듬해면 그 자리에서 움터 자라 또 흐드러지게 꽃을 피웠다 지워내며 세월을 건너뛰었다.
그렇게 지천으로 피어나도 어머니가 그랬지만, 그 이야기를 들은 나도 손톱에 봉선화 꽃물을 들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참을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플 때, 방에서 비척비척 걸어와 그곳에다 각혈했다고 했다. 해마다 붉은 봉선화 꽃잎이 질 때면 어머니는 각혈하던 아버지 모습이 떠오른다면서 그곳에다 시선을 놓고 눈시울을 붉혔다.
“엄마, 그건 참으로 나쁜 추억이잖아.”
“좋고 나쁜 추억으로 나누기보다 소중한 기억을 더듬는 것이지.”
“아닌데, 아버지를 생각해서 붉은 봉선화꽃만 보면 난 기분이 나빠. 그런데 엄만 지금 아무렇지도 않아?”
“아버진 아버지고 꽃은 꽃일 뿐이다.”
“아예 이참에 내년에 붉은 꽃이 씨가 마르게 붉은 걸 모두 뽑아 없앨까?”
“아니다. 그러지 마라. 그것이 이 집에서 탱자나무울과 같이 나를 잡고 있는 끈이다.”
어머니는 붉은 봉선화꽃이 피어나면 각혈하던 아버지를 기억하다간 꽃이 질 때면 그것으로 각혈 자국을 닦아내듯 하는 속마음과 달리 겉으로는 무심히 한 해 한 해를 줄넘기에 갇힌 아이처럼 훌쩍훌쩍 넘겨 보냈다.
어머니는 아버지 손길이 스친 유품을 아무렇게나 버리잖았다. 그것들의 하나하나 모여서 아버지 형상을 이루듯 한 조각이라도 훼손하면 어머니는 아버지 모습을 온전히 그려낼 수 없는 여자로만 보였다. 간혹 어머니는 편지를 꺼내 누렇게 변색한 종이에 박힌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어머니에게 보낸 아버지 편지글이었다. 어머니는 읽으면서 흐려지는 안경알을 부지런히 닦아내곤 했는데, 그 끝은 으레 고개를 들어 서향을 바라보는 모양새로 끝을 맺었다. 그때면 안경알에서 노을도 같이 지는데, 안경 너머 젖어든 눈시울 때문에 더는 글자가 보이잖아서 읽기를 멈추었던 탓이다.
내 나인 서두르지 않아도 오십을 성큼 넘어 섰고, 아버지 유전자를 받아선지 피부를 개먹은 나이 탓으로 곱상한 어머니가 놀랄 만큼 내 겉늙음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어머니는 거침없이 늙음을 따라오는 내 얼굴에다 그윽한 눈길을 주기 시작한 때도 이때부터였다. 그리고 아버지를 닮았다는 손을 쓰다듬고 기다랗고 등 굽은 발가락을 만졌다. 그러면서 내 얼굴을 바라보며 잠꼬대나 하듯 중얼거렸다.
“너 아버지와 일찍 헤어져 나이 든 얼굴을 보지 않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는데 네가 나이 드니 얼핏 늙어가는 너 아버지 얼굴도 저렇겠구나, 그런 짐작하곤 하지.”
“엄마, 미안해요.”
“미안하다니?”
“사내자식으로 태어났으면 훨씬 뚜렷할 건데, 여자라서…….”
“그러기는 해도 수술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잖나.”
“그럼 엄만 수술하길 바랐어?”
“웃자고 한 소린데 신경 쓰지 마라, 그냥 한번 농담해봤다.”
그러나 어머니 말끝은 서리로 시든 푸성귀처럼 시서늘했다.
“어릴 땐 그 말 의미를 몰랐는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아요. 엄마 미안해요.”
내가 사내자식으로 태어나지 않아 어머니에게 나이 들어가는 아버지 모습을 보여줄 수 없는 게 진심으로 미안했다. 사내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 모습을 완벽하지 않더라도 엇비슷하게 보여주었더라면 어머니가 오래도록 쌓아오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조금이나 들어주었을 것인데 참으로 안타깝고 야속하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아니 딸로서 해야 할 짓을 못해내고 있다는 자책감까지 들었다. 누구를 기다린다는 건 자신 자리를 버린다는 처지인데, 그런 어머니 마음가짐이 내 마음을 궁색하게 만들었다. 그랬다. 낮은 산은 큰 그림자를 품을 수 없고 얕은 골짜기는 큰물을 안을 수 없다는 말이 고막에 종소리처럼 울렸다. 내 좁은 소견머리가 야속했기 때문이다. 마땅히 딸은 어머니에게 가렵고 무른 곳을 찾아 헤매는 손톱이 되어야 했다. 난, 내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여자로서 한 남자로 향하는 집착에 마치 살두에서 떠난 각궁이 가슴에 와 박히듯 깊은 통증을 느낄 때가 더러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서른한 살 홀어미가 길러내는 내게 관심이 많았다. 그런 눈길은 바라보기가 안쓰럽다는 동정에서 비롯되었다. 삼 대가 내리 여자뿐이니 가족구성이 마치 오른짝 신발만 들어찬 신발장 같았다. 물론 빨래 건조대에서 남자용 옷가지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됐다. 그런 처지라 마을 아낙들은 멀찍이 걸음마를 해도 달려들어 말을 시켰으며 굳이 데려가 뭔가를 챙겨 먹이려고 부지런 떨었다. 속상해할까 봐 ‘남 자식이지만, 순해서 탐난다’고 에둘러 말했다. 그런 관심은 시집가 마을을 떠났어도 이어졌다.
“탱자나무집 현자는 잘사는 둥 도통 모르겠다. 한번 봤으면…….”
“예, 우리 현자 잘살고 있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들 하지 마시오.”
“걔도 하마 쉰을 넘겼지, 아마…….“
“쉰이 뭔가. 올해 쉰여덟이나 됐는데…….”
“하이고, 언제 그렇게 많이 먹었나? 이젠 그럭저럭 같이 늙어가네. 아부지 없이 그렇게 서럽게 크더니만 이제 잘산다니 내 일처럼 반갑고말고. 이젠 한시름 놓고 휘이휘이 휘저으며 관광이나 다닐 나이에 딱 좋다.”
“하마, 그래 살면야 좋고말고 하지…….”
어머니가 마을회관에 나가며 상노인들 물음에 대거리하기 바빴다. 그러나 어머니에게는 그런 딸자식에 대한 안부가 늘 고마웠다. 그런 연유로 어머니는 마을회관에 나갈 때면 딸에 관한 근황을 잘 챙겨나가야 했다. 맛있는 주전부리보다 현자 소식을 더 반가워하는 상노인들 관심을 해소해주는 게 제 몫이라 여겼다. 난 그 까닭이 궁금했다. 내 물음에 어머니는 귀찮은 대꾸나 하듯 짧게 끊었다.
“네가 외롭게 컸으니 모두 궁금하지.”
마을 아낙들은 나를 보채지 않는 애니 필시 순하게 자랄 거라 앞날을 내다봤다. 그러다 내가 열대여섯 살쯤 되었을 땐 성정 이 고요해서 참한 여자가 될 거라 마을 아낙네마다 믿음을 가졌다. 여러 말을 하는 데도 아버질 너무 일찍 여의었다는 말은 결국 끼워 넣잖았다. 그러나 내 처지는 좋은 총각을 만나 팔자가 펴리라는 기대감에서부터 벗어나기 시작했다. 만난 사내가 짝이라 여겼는데 찰흙처럼 철썩 달라붙지 않은 반쪽이었다.
“걔는 분명 현명한 아내가 될 거다.”
“현자는 그래도 책임감 있는 엄마가 될 거다.”
“어려 고생 다 했으니 너그러운 여자로 늙어갈 거다.”
짝이 어긋나서 마을 아낙들의 그런 바람 자리에 이르지 못했다. 나 자신도 낯선 남자 하나가 내 인생을 구부리고 휘어 놓을 줄 몰랐다. 마치 물길이 바다로 향해 흐르다가 절벽을 만나 흐름의 방향이 틀어지듯 세상살이가 이리저리 굴곡졌다. 흔한 소리로 굽은 나무 나이테 무늬가 더 아름답다고 하지만, 어머니나 나나 굴곡진 삶으로 마음이나 외양이 아름다움에서 동떨어져 있었다. 오히려 둘 다 젊음이 몸에서 서둘러 빠져 달아나고 거친 고집만 남아 있다. 이웃과 부딪치면 순한 말을 찾아 쓰기보다 격한 감정이 섞인 험악한 말만 골라 내질렀다. 그래야만 속이 풀릴 성싶었다. 그런 처지인데 유난히 오나가나 기분 나쁘고 성마른 것들만 눈에 띄기만 했다.
사십 안팎에 남편을 잃은 건 모녀 운명이 서로 닮았다. 남편이 사십 둘에 죽었으니 아버지 나이 때와 십 년 남짓 차이가 났을 뿐이다. 남편은 건설기술자로 회사를 차려 전국 건설현장으로 떠돌았다. 전화 한 통으로 수백 리 길을 득달같이 떠나고, 한번 떠났다면 석 달이고 일 년이고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를 만큼 객지에 머물렀다. 더러 몸은 집에 하룻밤을 머물러도 걸려 오는 전화로 정신은 객지에 나가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 묻어온 객지 바람으로 몸에서 타인 냄새가 났다. 현장에서 걸려 오는 전화는 시각과 이쪽 사정을 가리지 않았다. 이쪽 응답보다 말소리가 크고 빠를 땐, 상황이 급박하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떠도는 새 둥지는 따뜻해질 날이 없고 흐르는 물은 연뿌리를 키울 수 없다는 말이 귀에 착 감겼다. 남편 말이 아니더라도 집을 찾는 일은 정신없이 돌아가는 현장에서 잠깐 숨돌리려고 휴식하러 왔다는 말이 맞았다. 그러니 그 몸은 소금에 절인 파잎같이 흐느적거렸다. 아니 맹금류에 쫓겨 덤불에 처박힌 들새와 같았다.
그런 사람이 집에만 들면 불만부터 토로했다.
“사람이 어찌 그리 뻣뻣해? 오랜만에 집에 온 사람에게 조금 나긋나긋하면 안 돼?”
행위 짓거리가 살갑잖고 무뚝뚝하다는 투정이었다. 바램은 그랬다. 날다 지친 새니 안식을 바라 찾아든 보금자리에서 따뜻하게 보듬어 달라고 했다.
“사내처럼 생겨서 툭하면 성정을 드러내고……. 이제 그 얼굴이 보기 지겹다 지겨워.”
남편은 내 외모와 성정을 싸잡아 못마땅해 했다. 난 아버질 닮은 내 외모를 뻔히 알고 있으므로 부정하며 우길 자신이 없었다. 어머니에게서 환대받았던 용모가 어쩌다 필생을 같이 걸어가야 할 남편에게서 냉대를 받다니 나는 굴욕마저 느꼈다. 아버지를 닮았다는 말에 부담감을 느낀 적은 있으나, 난 내 모습을 애써 부정하진 않았다.
나는 어릴 때부터 ‘아버지 사랑합니다’ 라고 쓸 때 두 낱말을 내처 쓰지 못했다. 아버지를 쓰고 난 뒤 한참 울먹이는 감정을 다스린 뒤라야 비로소 ‘사랑합니다’를 이어 쓸 수 있었다. 언제나 그 두 낱말 사이에는 보이잖은 강이 흐르기 때문이다. 그건 눈물로만 채워진 채 마음 구석구석을 휘저어 그리움을 일으켜 세우며 흐르는 강이다. 내가 죽음에 이르거나 의식을 잃었을 때만 말라 흐르지 않을 강이기도 하다. 아버지를 빼닮았다는 말을 싫어하면서도 나는 낯설지만 내가 닮았다는 아버지가 그리웠고 또 보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 아버지를 먼눈으로 바라보면서 숨어서 숨죽여 운 적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내 마음속으로 흐르는 강물 소리를 듣지 못한 채 눈감았다. 현장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고 달려가다가 당한 사고였다. 현장 사고 수습을 하러 가던 사람이 목적지에 닿기에 앞서 먼저 교통사고로 제 목숨을 잃었다. 남편을 닮거나 나를 닮아야 할 아이도 둘 사이에 생산하지 못한 채였다. 단 한 번도 자신감에 차 선뜻 나서지 못하고 그때그때 정황에 휩쓸려 제정신 놓고 허둥지둥 산다고 살아온 칠 년의 결혼생활은 그런 비참한 꼴로 마감했다. 아버지를 닮았다 해서 어머니는 나만 보면 눈물을 글썽거렸는데 남편은 그 닮음을 트집 잡아 싫다면서 짜증까지 내다가 저승으로 갔다. 버림받았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 없었다.
아버지를 닮은 겉모습은 숙명이라 옴쭉 할 수 없었으나, 팔자만은 어머니 길을 밟지 않으려고 용기를 내어 남잘 여럿 만났다. 이쪽에서 맘에 들면 저쪽에서 가탈을 달았고, 저쪽에서 관심을 가지면 이쪽에서 정이 가지 않았다. 남녀 섞임이 짝짝이 신발을 신은 듯 내디디려는 촉수가 틀려 첫발자국조차 옮겨 놓을 수가 없었다. 남자를 만나면 만날수록 남자들이 가진 단점이 양파를 벗기는 일 같았다. 겹도 많을뿐더러 겹을 제거할 때마다 매움 때문에 눈물이 났다. 한둘을 만나 선택하고 끝났다면 평생 모르고 넘길 일이었다. 삶 중도에서 남편을 여읜 여자가 그냥 장사꾼이 아니라 몸 뒤섞으며 살 남자를 다시 선택한다는 일은 상처 난 발바닥으로 소금밭을 걷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아버지가 죽어 세월이 흘렀어도 자식 모습을 한 자락도 놓잖고 사는 할머니가 돌아가기에 앞서 여러 번 같은 꿈 이야길 했다. 모른 척 넘어가려는 어머니가 야속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아이고 어미야, 아비가 고의적삼이 젖어 춥다고 울더구나.”
“어머님도 그런 꿈을 꾸셨어요. 제 꿈엔 물에 빠진 채 허우적거렸어요.”
할머니 말이 허공으로 흩어질까 두려워하듯 어머니도 냉큼 말끝을 받았다. 그동안 모른 척한 건 아니었다. 망설여 왔을 뿐이다. 그 말을 전해 들은 마을 바깥 노인들이 제 안목이 틀림없다는 듯 앞다퉈 알은체했다.
“묫자리가 겉보기엔 돌투성이 땅에 물매가 급해 보이지만 필시 수맥이 흐를 거야. 그러니 지관한테 담뱃값이나 좀 질러 주고 한번 봐달라고 해봐.”
못 들었다면 모를까 귓속으로 들어온 말이라 마음을 흔들고 몸을 움직이게 했다. 자칫 가슴에다 못을 박고도 여한은 여한대로 쌓일 성싶었다.
“어미야 말 뒤끝이 영 찜찜하다. 안 들었으면 모를까, 내가 한번 나서 봐야겠다.”
“제 맘도 역시 그러하네요.”
“사람이 사는 짓이 걱정이 생기면 걱정을 들어내고 맘 편히 살아야지 그것을 마음속에 쌓아 두고 지낼 일만 아니다. 금전에 조금 쪼들릴 테지만, 생각할 게 뭐 있느냐? 그 일부터 해치우자 구나.”
“어머님만 좋다면 그러하세요. 돈을 안는 것보다 걱정을 안는 게 더 불편하네요.”
“겉 보는 산세와 달리 수맥이 흐르는 것 같은데, 묘를 한 번 옮기지. 멀리도 아니여. 조쯤만 옮겨도 수맥은 피하겠어.”
산세를 살피면서 패철佩鐵을 들고 주변으로 부산하게 오락가락하던 지관이 어머닐 보고 대뜸 일머리를 잡아주었다. 관혼상제 일 가운데 아녀자로서 가장 어려운 일이 상사喪事와 관련된 일이다. 그런 일은 일가붙이 사내들이 있다면 마땅히 그들의 몫인데, 아녀자 셋뿐이니 모든 일은 지관에 맡기고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경비가 얼마나 소용될는지요?”
어머니가 잔뜩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조금 떨어진 저쯤 옮길 거니 크게 벌릴 것까진 없네. 내가 자리를 잡아줄 테니 인부 서넛에 음식만 조금 준비하면 되네.”
마침 윤유월이라 말 나온 김에 묘이장 일을 벌였다. 옮길 자리에다 산제山祭를 지내고 묘혈부터 파헤쳤다. 생땅의 붉은 흙이 드러난 곳에 아버지 유골이 들어갈 묘혈이 만들어졌다. 묫자리가 그런대로 괜찮다고 지관이 눈빛을 빛냈다. 땀 멱을 감은 일꾼들은 그늘 자리에 둘러앉아 막걸리를 소갈증 환자처럼 들이키며 파묘破墓를 위해 잠시 쉼을 했다.
“윤유월이니 평년 칠월께인 셈이지, 해 길이야 한참 길다지만 어물어물하다간 금방 저물지. 이젠 어지간히 쉬었으면 파묘하지?”
유족들이 상석 앞에 놓인 제물을 치우자 지관이 나무 그늘에서 쉬고 있는 일꾼들을 향하여 소리를 내질렀다. 일꾼들이 무덤에 덮인 잡초들을 낫으로 쳐내기 시작했다.
“이 나무도 베어낼까요?”
일꾼이 무덤 옆자리에 서 있는 배롱나무를 가리키며 지관에게 물었다. 할머니가 묘목을 사다 심은 것이 거침없이 자라 무덤 옆을 화사하게 지켜내던 나무다. 홍자색 꽃이 가지를 휘어놓을 만큼 가득 피어있었다. 배롱나무의 꽃은 무더기로 핀 듯 보이지만 낱낱이 무리로 피었다가 무리로 진다. 마침 일찍 핀 무리가 서서히 꽃잎을 뿌리고 있었다.
“아니 아닐세. 그도 옮겨야지. 우선 그건 그대로 두고 무덤 위 풀이나 깨끗하게 베어내게.”
일꾼이 네 사람이라 파묘는 쉽게 이루어졌다. 썩을 대로 썩은 횡대와 널 뚜껑을 들어내자 이십 년 전에 내 곁을 떠난 아버지가 머리카락을 벗어던진 채 백골로 누워 있었다. 묘혈에 있는 하얀 뼈를 보는 순간 나는 공황상태에 빠졌다. 나는 아버지 뼈를 보면서 반사적으로 나의 가슴뼈와 팔목 뼈를 만져 보았다. 어머니보다 내 입에서 먼저 울음이 터져 나왔다. 가슴에 이십 년이나 갇혀 있으면서 출구를 찾지 못하던 울음이었다. 수맥이 흐르는 곳에 묻힌 시신이 더러 미라일 수도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엉뚱하게 험하더라도 아버지 모습을 조금이나마 보았으면 했다. 그런데 살이 녹아내리고 뼈만 남은 공간에는 내가 품었던 소망은 볼 수 없었다. 나를 빼닮았다는 부분 어느 것도 그곳에 남아있지 않았다.
“다행일세. 미라가 아니어서 천만다행이야. 탈골은 잘 되었네만 역시 내 짐작이 엇비슷하게 맞았네. 유골이 황금빛이잖고 많이 검으니 수맥 영향을 받기 조금 받은 것 같네.”
지관은 처음 무덤을 돌아볼 때보다 억양이 내려 꺾여 있었다. 유족 쪽에서 아무런 대꾸가 없자 면구쩍은지 낯을 돌리며 갑자기 일꾼들을 향해 소릴 버럭 질렀다.
“뭣들 하는가? 목판을 배롱나무 밑에다 놓고 한지를 펴야지. 처음 일하는 사람처럼 그리 어벙하게 서 있는가?”
퉁 맞은 사람이 서둘러 유골을 옮길 자릴 마련했다. 지관의 성마름에 따라 아버지 유골을 배롱나무 아래 판자에 덮인 한지로 하나하나 옮겨져 뼈 인체도 형상을 이뤄가고 있었다. 그 위로 홍자색 배롱나무 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지관은 입김으로 불거나 손으로 쓸어냈다. 홍자색 꽃잎이 떨어지는 한지 위에 토막토막 놓이는 뼈로 형상화되는 아버지 인체도를 보며 그리움과 울음이 솟구쳤다. 토막으로 내뱉던 울음도 중간에서 꺾었다. 더는 성음成音조차 되지 않도록 목이 막혔다. 그러다 머리를 어머니 품에다 묻으며 불을 일으키듯 비벼댔다. 어머니 체취가 아니라 아버지 형상을 그곳에서 보고 싶었다. 서른세 살에 멈춰버린 미생의 아버지 삶이 미완 길을 걸어가고 있는 내 발걸음을 휘청거리게 했는데, 이장을 끝낸 스물여섯에서야 아버지 모습을 내 눈에서 놓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나를 잃고 아버지 길을 유랑하던 나그네처럼 어머니 주검이 기다리고 있는 남촌마을에 들어섰다. 탱자나무울 안으로 마을 사람 몇이 얼씬거리는 게 먼눈으로도 선명하니 띄었다. 나는 탱자나무울에 갇혀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보러 마을 사람들 인사를 받으며 울타리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어머니 주검은 나를 기다리지 않고 입관하는 일에 유일한 유족인 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제 딸이 왔으니 입관을 서둘러야 하네.”
나는 그런 소리를 귓등으로 들으며 가려진 천을 젖히고 어머니 얼굴을 살폈다. 어머니는 산사람이 무슨 짓을 하는지도 모르고 꿈꾸듯 태평하게 눈을 감고 있었다. 어머니의 감긴 아랫눈꺼풀에는 눈물이 말라 있었다. 남은 모르지만 내 생각에는 그랬다. 날 기다리다 흘린 눈물이 아니라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으로 맺힌 눈물이 마른 것이라고. 아마 마른 눈물 자국을 물에다 불리면 어머니 마음에서 일궈오던 그리움의 실체를 알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어머니 눈 밑 눈물 자국을 지우며 내 눈물을 어머니 주검 위에다 떨어뜨렸다. 아버지 눈물이 묻어야 할 그 자리였다. [끝]
김익하 프로필
*1944년 강원도 삼척에서 출생
*1980년 단편소설 「설해목」, 「부황의 땅」으로 『현대문학』지 추천 등단
*작품 활동
소설집 『33년 만의 해후』, 『개미지옥』
장편소설 2017년 세종도서 문학나눔 선정 『소설 이승휴』, 『토렴』
중편소설 「산에 사는 혼」, 「멀고 먼 나라」, 「종성의 물음」 외 12편
단편소설 「우기일지」, 「조운산경도」, 「탱자나무집 현자」 외 60여편
연작꽁트 「술 좀 하고 싶은 날」 외 80여편 발표
*문단활동
구로문인협회 9.10대 회장 봉사. 현 고문
한국문인협회 26.27대 지회·지부 협력위원장(현재)
한국문인협회 서울지회 이사(현재)
구로구민상 공적심사위원(2012∼2016) 역임
구로 문학의 집 소설 창작 강사(현재)
*구로문학상. 구로예술상 수상
*새도로 주소명
08110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로 170 (신정동, 현대6차아파트) 103동 1102호
첫댓글 기록을 남겨주신 정연휘 시인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바쁘신 일과를 뒤로 미루고 축하해주신 조관선 예총회장, 정순란 삼척문인회장, 서성옥 작가, 그리고 김영채 삼척문협 사무국장께 고마움을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