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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창군 청룡산(314m) & 천마봉(284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4월24일 온 세상은 연녹(軟綠)으로 물들어 향기롭기 그지없다. 계절의 변화와 원거리 관계로 출발시간을 20여 분 땅겨서 칠곡IC를 최종출발하니(7:10) 차내에 빈자리가 많이도 보인다.(35명)
오늘따라 잔치다, 체육행사다, 또 찻시간을 놓쳤다 하여 출발후에 여러명이 안부와 연락을 해 오시니~ 사전 홍보(弘報)가 충분히 요구됩니다. 차는 미끄러지듯 달려 ‘논공휴게소’에서 회원님들이 조식(朝食)을 하실동안 잠시 주위를 둘러보니, 그새 넓은부지(敷地)를 확보하여 말끔히 정돈되어있다.
차는 신나게 달려 ‘남원휴게소’에서 잠시 쉬고는 줄곧 내달아 담양, 고창IC를 거쳐 아산면을 지나 해리면 하연리 수락마을에 도착하니 시계는 거의 11시가 다 되어간다. 출발깃점이 생소하여 마을 어른께 여쭈니 자세히 친절하게 가르쳐주신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A,B조로 나뉘어서 마을길을 지나 들논길을 오르니, 밭에는 농부들이 고추심기에 바쁘시다. 행여나 싶어 한번 더 등산로를 여쭈며 선두로 오르니 마을 어귀에서 “고속도로나 같어!”하면서 친절하게 안내해 주시던 노장님의 말씀이 귀에 쟁쟁~ 마음을 안도케 해 주십니다.
20여 분을 올라 청룡산이 가까워지니 “고속도로나 마찬가지여!”하시던 등산로가 옛 나뭇짐길에 불과하며, 그 길 마져도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서 엉킨 숲들을 헤치고 오르기가 쉽지 않슴니다 그려!
우리가 길을 잘못들었는가? 약간은 긴장이 되는데~ 곧 능선길에 접어드니 그야말로 고속도로다! 모두들 미로(迷路)의 수풀속을 빠져나온 안도감에 이야! 하면서 탄성을 지른다. 도착하는 순서대로 잠시 쉬면서 가져온 과일들을 나누어 드시니, 깔깔하던 입안에 침이돌고 새로 기운이 솟슴니다.
개념도(槪念圖)를 보니 ‘쥐바위봉’과 ‘청룡산’의 중간쯤 되겠다는 생각이 들며 10여 분을 걸어 오르니 능선길은 경사가 완만하여 걷기에 한결 수월하고, 좌우로 해리면(海里面)과 부안면(富安面) 일대의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청룡산 정상에는 정상표석은 없고 조그만한 동판에 '청룡산(314m)'이라 새겨서 바위에 명찰을 달아 놓았다. 회원님들이 도착하시는대로 차례 차례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주위를 조망하니... 멀고 가까운 곳에 “배맨바위”와 “천마봉”이 우뚝하게 솟아있고 그 뒤로는 크고 작은 산줄기들이 끝없이 이어진다.
이곳 청룡산은 “호남정맥”의 내장산(임암산) 부근에서 서남으로 흘러나온 “영산기맥(靈山氣脈)”을 따라 방장산, 문수산을 거쳐 구황산에서 다시 북서쪽으로 왕제산, 한제산을 거쳐 ‘청룡산(靑龍山.314m)’에 이르고 그 잔여지맥은 낙조대, 국사봉(개이빨산), 선운산(수리봉), 경수산(444.3m)에서 서해바다(줄포만)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경수지맥”이라 한다.
온 산천(山川)은 연녹(軟綠)으로 물들어 향기가 넘쳐나고, 등산로 주위로는 “노간주나무가” 지천으로 널려있다. 노간주나무는 ‘쇠(牛)코뚜레’용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또 시골에 보리타작할 때 ‘도리깨’로도 사용되며, 지팡이를 만들어 사용하면 가볍고 단단해서 안성맞춤이라! 게다가 온 몸에는 고슴도치처럼 바늘잎이 돋아있어 다른 잡목(넝쿨식물)들이 감아오르지도 못하여 깨끗하고 향기 또한 빼어나다!
능선길을 따라 몇 걸음을 나아가니 “청룡산 장수거북바위”가 있는데 아무리 보아도 거북이로 보이지는 않으며, 거대한 바위 옆에는 “청룡산 장수거북바위 氣 받고 가세요!”라는 팻말이 달려있어 호기(好氣)를 놓칠세라! 몇 몇 회원님들은 氣를 받는다고 바위에 착 달라붙어 있다.
‘배맨바위’는 다가 갈수록 우람하고 장엄하여 신비롭게 느껴지며 거대한 거북이가 하늘을 향해 머리를 쳐들고 있는 형상이다. 조물(造物)의 작품이 너무나도 빼어나서 대자연(大自然)은 있는 그대로가 예술품이다!
여러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 바위 뒷쪽으로 돌아서 천마봉(天馬峰)으로 나아가니 경사가 가파르고 험한 돌들이 많아서 걷기에도 조심스럽다. 가는 중간 중간 사진촬영도 해가면서 진행하는데, 한 곳에는 “통시바위”가 있어 이원우님은 용변보는 포즈를 취하신다.
요즘 어린이들이야 생소하겠지만, 우리세대(50~70)는 어릴적에 모두가 경험한일이 아니던가! 병풍바위를 지나 그럭저럭 천마봉에 도착하니 오고가는 등산객들이 넘쳐나고 모두들 삼삼오오 모여 앉아서 점심을 드신다.
선두는 어디메쯤 가셨는지 연락이 닫지않고 오늘도 디카맨 김해진님과 황까페지기님은 사진찍기에 열중해서 아직도 미도착이라! 얼마나 염려가 됐던지 선두로 가시던 벽송대장님이 후미 회원님들의 안전을 확인차 되돌아 오셨다.
천마봉(284m) 정상에서 이원우님과 번갈아 기념촬영을 마치고 사방을 둘러보니, 도솔산(兜率山), 선운산(仙雲山) 일대의 풍광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암은 거대한 바위군락의 틈새에 옹기종기 까만색의 지붕만 보인다.
후미의 회원님들이 도착하시는대로 천마봉 주위의 적당한 곳에서 필자를 비롯하여 이원우님, 김점순님, 금발례님 등 6~7명이 자리깔고 앉으니 선착한 등산객들이 자리를 양보해 주신다.
몇 번이나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맛나게 점심을 든 후 ‘천마봉’을 구경하려고 이리저리 벼랑끝으로 나가보지만 제대로 볼 수 없도다! 옛말에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서는 코끼리가 보이지 않는다!”드니... 과시(果是) 허언(虛言)이 아님니다 그려!
얼마를 기다려서 후미의 회원님들과 다시 합류하여 ‘동불암 마애불’이 있는 곳으로 하산하는 중간쯤의 바위에 올라서니, 칠송대(七松臺) 위의 “도솔천내원궁”이 거대한 암반위에 마치 제비집처럼 지어져 있고, 그 아래로 거칠은 암벽에 “마애불(磨崖佛)”이 새겨져 있으며, 동으로는 태산같은 “천마봉”이 입을 벌리고 일갈(一喝)을 하고 있다.
거북이(배맨바위)는 어찌하여 태산을 오르고
천마(天馬)는 무슨일로 땅에서 咆哮(포효)하는가
아~ 여기가 도솔천(兜率天)의 극락(極樂)이로다!
뒤늦게 도착하신 김두열님과 그 일행들은 소나무 그늘 아래서 오늘도 “마법의 섹소폰”을 울리며 한판 신나게 놉니다. 골짜기를 따라 10여분을 올라 용문굴(龍門窟)에 도착하니 거대한 석문(石門)이 길다랗게 다리처럼 생겨있으며, 주위는 크고작은 동굴(洞窟)들이 여러개 있다.
일설에 검단선사가 백제 위덕왕 24년(577)에 선운사(仙雲寺)를 창건할 당시에 연못자리를 메우던 중 미처 달아나지 못한 용(龍)이 이 굴을 뚫고 달아났다 하여 “용문굴”이라 한다고 한다.
대자연이 빚어놓은 천연동굴(天然洞窟)로서 여러 사람이 기거할 수 있는 공간이며, 식수 또한 풍부하니 절을 창건하기 전에 야외법회나 또는 수행장소로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울러 주위는 온통 암반으로 싸여있어 기운도 성성(盛盛)하거니와 골기(骨氣) 또한 빼어나도다!
간단한 사진촬영을 마치고 “동불암 마애불(보물1200호)”에 도착하니 예나 지금이나 참배객이 줄을 잇는다. 울퉁불퉁한 암벽(巖壁)에 거대한 마애불이 새겨져 있는데 눈은 양끝이 올라가 있고 입 또한 굳게 다물고 있어 상당히 위압적이다.
안내문에 높이가 17m에 달하며 고려 초기에 지방 호족들이 발원하여 조성한 것으로 보며, 명치부분에 석회로 메운 네모진 흔적이 보이는데 원래는 ‘복장감실’에 비기(秘記)가 들어있었다고 한다.
전설에 선운사 마애불 배꼽에는 신기한 비결이 들어있어 그것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조선)이 망하는데, 거기에 손을 대는 사람은 벼락을 맞아 죽는다는 것이다. 인하여 1820년에 전라감사 이서구(李書九)가 뚜껑을 열어보니 책이 들어 있었는데, 갑자기 벼락이 치는 바람에 “이서구가 열어본다.”라는 대목만 얼른 보고 도로 넣었다고 한다.
그 뒤 1892년 8월에 동학도의 손화중 접에서 그 비결을 꺼내보자는 말이 나와서 동학도들은 대나무 사다리를 만들어서 올라가 꺼내 가져갔다고 하며, 이 일로 동학군 수백명이 무장현감에게 잡혀들어가서 주모자 3명은 참수를 당하고 나머지는 매를 맞고 풀려났다고 한다.
이것은 사실로서 동학도 오지영이 쓴〔동학사〕에 자세히 기록되어 있으며, 이 사건은 썩어빠진 세상이 망하고 새 세상이 오기를 갈망하던 당시 민초(民草)들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다시 우측으로 나한전(羅漢殿)을 돌아 가파른 돌계단을 오르면 “도솔천내원궁(兜率天內院宮)”이 나오는데,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양식이다. 내원궁은 골기(骨氣)가 단단한 암반위에 세워져 있으며, 여기서 바라보는 동방(東方)의 천마암(天馬巖)은 가히 일품이다.
대지는 연초록으로 물들어 생기가 넘쳐나고
天馬는 중생계를 향해서 一聲을 토하는데
오고 가는 인연을 초월하여 如如하라 시네
법당에 들어 간단히 참배를 하고 “지장보살좌상(보물제280호)”을 살펴보니, 이마에는 띠를 두르고 왼손에는 금강륜을 들었으며 온화하면서도 야무진 얼굴에 단정하다. 자료에 고려 후기의 작품으로 간주한다.
뒤뜰에 산신각(山神閣)을 돌아 도솔암자로 나려오니 남산님들은 거의 보이지 않고 오색연등(五色蓮燈)은 하늘을 덮어있다. 도솔암은 많은 불사(佛事)가 있어 고색어린 멋은 없으며, 주산은 웅장하고 청룡(靑龍)은 허(虛)하나 백호(白虎)는 지근한 거리에서 우람하고도 미려(美麗)하여 안산(案山)의 역할까지도 겸하고 있어 참으로 명당이다.
10여 분을 걸어 내리니 진흥굴과 그 옆에는 “장사송(長沙松:천연기념물제354호)”이 예나 지금이나 여여(如如)합니다. 굴 내부에는 몇 개의 촛불이 켜져있고 본래 천연동굴에 약간의 인작(人作)이 가해진 듯 하며, 자료에 불심이 돈독했던 신라 진흥왕(540~576)이 왕위를 버리고 도솔왕비와 중애공주를 데리고 이 곳에 와서 기도를 하였는데, 꿈에 바위가 갈라지며 그 속에서 미륵보살이 나와 인도하였다고 한다.
인하여 진흥굴(眞興窟) 또는 열석굴(裂石窟)이라 부르기도 하며, 바로 옆의 장사송(진흥송)은 마치 송이버섯 모양으로 참으로 아름답다. 이 나무는 반송(盤松)으로 수령(樹齡)이 약 600년 정도로 추정하고 있으며, 높이 23m, 둘레 3.07m 의 삼지송(三枝松)으로 부채살 모양이다. 이곳의 옛 지명인 장사현(長沙縣)에서 유래한 것이다.
너털 너털 대자연의 향기에 취해 얼마를 걸었는가? 선운사와 도솔암자의 10리 계곡에는 많은 공사를 하여 고즈넉하고 이끼어린 옛 정취가 많이도 사라졌으며, 중간쯤 “순덕이보살(돌부처)”도 바뀌어져서 순박한 멋이 없어졌슴니다.
그래도 흐르는 물은 여여(如如)하여서~ 만물의 모습이 투영되고, 길 옆의 ‘애기단풍나무’들은 연녹으로 물들어 가을을 기다리고 있으며, 성급한 놈들은 벌써 반 단풍은 들어서 붉으스럼 합니다.
기이한 돌탑과 연리지(連理枝) 연리목(連理木) 등을 디카에 담으면서 선운사(禪雲寺)에 도착하니, 천왕문(天王門)이라는 현판아래 “禪雲寺”라는 편액이 고색창연하다. 글씨는 거암(居巖) 김봉관(金奉官)이 쓰고, 청강(淸岡) 박제곤(朴濟坤)이 기증하였다.
천왕문의 사천왕상(四天王像)은 눈을 크게 부릅뜨고 있어 잡귀는 얼씬도 못 하겠으며, 선채로 예를드리고 경내로 들어서니 근래에 세워진 석등 한기와 오색연등이 찬란하고, 그 너머로 웅장한 만세루(萬歲樓)가 맞배지붕으로 다가온다.
그 뒤로 대웅보전(大雄寶殿)은 정면5칸, 측면3칸에 다포계 구조로 맞배지붕 양식이며 조선 중기의 건물로 고색창연(古色蒼然)하다. 전체 건축이 섬세하고 장식이 검박수려(儉朴秀麗)하며 꽃살 분합문이 화려하다. 또 내부의 천장에는 우물반자를 대었으며 단청 벽화가 뛰어난 건물로 보물 제290호로 지정되어 있다.
뜰 아래는 두 그루의 배롱나무(紫薇樹)가 해묵은 연륜(年輪)을 자랑하고, 그 아래로 고졸한 5층석탑이 무언(無言)의 장광설(長廣舌)을 하고 있으며, 우측으로는 근세에 조성된 듯한 석등이 사바세계(裟婆世界)를 밝혀 주신다.
법당을 돌아드니 뒤뜰의 산자락에는 동백군락(冬柏群落)이 짙은 녹색으로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으며, 오가는 답방객들이 사진 찍기에 바쁘시다. 안내자료에 이곳 동백나무는 약30m 너비로 3천여 그루가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동백나무 자생지로는 최북단에 위치하여 천연기념물 제184호로 지정되어 있다.
동백꽃은 필 때도 탐스럽고 복스럽지만, 질 때도 송이채 후두둑~ 떨어져서 가슴을 치는 서운함을 주시니... 이 고장 ‘질마재마을’ 출신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는 일찍이 젊은시절 “선운사 동구”라는 시를 남겼으니 잠시 옮겨봅니다.
선운사 골째기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안했고
막걸릿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상기도 남었읍니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었습니다
단군기원 사천삼백칠년
선운사 동구에서
미당 서정주 지어씀
이 시비(詩碑)는 선운사 일주문 밖 공원에 있으며, 미당 선생의 ‘육필원고’를 확대하여 새겨놓은 것이라 한다. 간단한 사진촬영을 하고 영산전으로 걸어나오니 서부장님이 거대한 ‘돌수조통(石水槽桶)’ 앞에 앉아계신다. 반갑게 인사를 드리며 대웅전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주위를 둘러봅니다.
선운사(禪雲寺)는 청룡산에서 내리뻗은 줄기를 따라 천마봉, 천상봉, 개이빨산, 도솔봉(수리봉,선운산)의 거의 끝자락에 자리하고 있으며, 청룡(靑龍)은 허(虛)하여 비보숲(裨補林)을 조성하였고 백호(白虎)는 지근한 거리에서 안산(案山)의 역할까지 겸하고 있어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연하여 검단선사가 창건한 이래로 여러차례 부침(浮沈)을 거듭하다가 조선조 광해군5년(1613)에 무장현감 송석조가 원준대덕과 함께 3년 여에 걸쳐 절을 재건한 후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도량(道場)내에는 전각의 수도 많아서 관음전, 나한전, 영산전, 산령각, 삼성각, 범종각, 팔상전, 명부전, 종무소 등 셀 수 없이 많으며, 산내암자 또한 번성기 때는 89암자에 3000여 명의 스님이 기거했다고 하는데, 오늘날에는 도솔암, 참당암, 석상암, 동운암 등이 있다.
도량을 한바퀴 휘~돌아서 아쉬운 발걸음으로 “성보박물관(聖寶博物館)” 입구에 도착하니 “순덕이보살님(돌부처:도솔암 가는 길 중간에 있었슴)”이 반갑게 맞아 주신다. 박물관 내부에는 유물은 없고 오래전에 있던 “백파선사비문”도 보이지 않는다.
선걸음으로 부도밭에 도착하니 빙둘러 담장을 새로 하여서 조그마한 출입문까지 세워두었다. 유서깊은 선운사에는 오고가신 고승대덕(高僧大德)님들도 많아서 설파(雪坡), 영곡(靈谷), 백파(白坡), 영산(靈山). 환명(幻溟)스님 등 끝이 없슴니다.
설파스님(1707~1791)은 화엄학의 대가였으며 그는 많은 제자들을 두었는데, 그 중 백파스님(1767~1852)은 선운사 근방에서 태어나 18세 때 선운사에 들어가 〔孟子맹자〕를 배우다가 스님의 제자가 되었다.
백파(白坡)스님은 훗날 평안북도 초산(楚山)에 있는 용문암(龍門庵)에 들어가 5년 여를 정진한 끝에 크게 깨달음을 얻고 백양산 운문암과 선운사에서 크게 선풍(禪風)을 날렸으며, 추사(秋史) 김정희와도 교분이 두터웠고, 해남 두륜산 일지암에 초의선사(草衣禪師)와도 교류를 하였다고 한다.
부도밭 중간쯤에 “大機大用 白坡禪師 碑文”이 다시 옮겨 세워져 있으며, 글씨는 완당학사(阮堂學士) 김정희(金正喜)가 썼다. 스님의 생전모습을 잘 보여주시는 몇 구절만 간단히 옮겨 봅니다.
서시설두백암제문도(書示雪竇白巖諸門徒), 과로 기부(果老 記付), 빈무탁추(貧無卓錐), 기압수미(氣壓須彌), 사친여사불(事親如事佛), 가풍최진실(家風最眞實), 궐명혜긍선(厥名兮亘璇), 불가설전전(不可說轉轉)
阮堂學士 金正喜 撰竝書
崇禎紀元後四戊午 五月 日立
설두, 백암 등 문도들에게 이것을 써주면서 과로(果老:추사의 별호. 즉 과천에 사는 노인)는 다음과 같이 부기하노라.
(가난하기는 송곳 꽂을 자리도 없었으나, 기상은 수미산을 덮을 만하도다. 어버이 섬기기를 부처님 모시듯 하였으니, 그 가풍은 정말로 진실하도다. 속세의 이름은 긍선이나, 그 나머지야 말해 무엇하리오.) 완당학사 김정희가 찬하고 또 쓰다.(선운사 자료 참조)
모든 것은 있을자리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문화재는 역사의 향기를 품고 있어 제 자리를 떠나서는 현실감과 잘 연결이 되지 않으니 당연한 것이라! 선각자(先覺者)님들의 올바른 판단이 미련한 이 후학들을 기쁘게 해 주십니다. 선채로 예를 올리고 숲속을 걸어나와 일주문을 나서니~ 사하촌(寺下村)의 모습이 아름답슴니다 그려!
사월의 봄 향기는 참으로 좋아서
일년 내내 오늘만 같았으면
삶은 유한 한데 향기는 영원하구나
단기 4349년(서기 2016년) 4월 24일
전북 고창군 청룡산(314m) & 천마봉(284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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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남산님들! 그간 강녕하신지요?
4월24일, 당일 산행에 동참하신 모든분들(35명)에게 감사드리며,
아울러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총무님, 김미소총무님,
능선운영위원장님, 윤상복부대장님, 박태두대장님 등 많은분들의 수고에 감사 감사 드림니다.
이제 춘(春)4월도 하루가 남았군요! 보람되게 보내시고 모든님들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산행후기 긴장문 쓰시느라 많은 수고하셨습니다.
아울러 산행장문에 도움을 주신 디카멘 김해진 선배님, 황고문님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선운산의 지리적 배경하며 내 력을 소상히 적어 주셨군요,
후일 남산의 산행역사에 많은 도움이 될것 같습니다.
고고문님 가정에 항상 만복이 깃드시고 가족모두 건강하셨으면 좋겠습니다.
벽송님이 다녀 가셨군요!
당일 진행에 수고 많으셨으며,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드림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선운사에 많은 역사가 담겨 있는줄 모르고...
늦게 알게 해 주어서 감사 함니다.
잘 보고 갑니다
황까페지기님 덕분에 많은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어 감사드리며,
졸문의 글을 늘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 주셔서 고맙슴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고고문님 그동안잘지내셨는지요?
개인적으로 좀많이 바쁜탓에 카페 들릴시간이없었네요.
장문의 후기를 쓰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선운산은 정말좋은곳인줄 익히 알고있었지만 고문님의 후기를 읽고보니 더 진하게 감동을느낍니다.선운사를 둘러싸고 있는 동백꽃 군락지는 너무예쁘네요.
수고하셨습니다.5월산행때 뵙겠습니나.
건강하세요^^^.
해바라기님이 다녀 가셨군요.
한동안 안부가 궁금했었는데...
역시 바쁘셨군요!
졸문의 후기를 늘 읽어주시고 댓글까지 달아 주시니 감사 감사합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남산의 꽃별 역할을 여여하게 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