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최한나
꽃들의 눈을 감기고
수많은 단추 구멍을 채워주던
오종종 저 감나무 꼭지들,
일제히 파업에 돌입하는 시간이다
마지막까지 매달린 홍시를 쏙 빠뜨리고
꼭지는 찬 서리 맞으며 말라간다
무쇠의 날도 피곤할 때가 있어
저 스스로 자루를 쑥 빼버리던 낫,
자루들의 농성이
헛간에서 겨울을 건너곤 했었던 것처럼
김장 끝난 마당 수도꼭지가 단식 중이다
이제 물줄기가 사라진 겨울 동안
뿌리 없이 지내야 한다
어느 빙하기를 돌다가 부풀리고 있을 물줄기,
어쩌다가 똑똑
빙하기의 소식이 들려올 뿐이다
우측에서 불어오는 칼날바람이 현수막을 찢는다
가지마다 꼭지가 돌아버린 농성들은
왼편으로 온몸을 던진다
폭설이 덮어버리는 파업 속에서도
꼭지들은 새봄을 꿈꾼다
하지만 주름만 남은 어머니의 젖꼭지처럼
완벽한 파업 아니 폐업도 있다는 것,
어떤 악천후에도 멈춤을 모르는
저 파업의 풍차가
또 다른 젖꼭지들을 태어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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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월간 《시와표현》 등단. 시집 『밥이 그립다』 『꽃은 떨어질 때 웃는다』
카페 게시글
…─ 최한나 시
파업 (순천작가회의 2022)
최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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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1.12 2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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