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발전연구원이 지난 9일 주최한 “이주여성실태와 정책적 지원 방향” 워크숍에선 ‘결혼이 성사’된 이후 이주여성들이 일방적으로 한국 문화에 길들여질 것을 강요당하는 과정도 심각한 권리침해인 것으로 보고됐다.
김성미경 인천여성의전화 부회장은 국가가 이들 여성들을 ‘농촌가정 며느리 만들기’, 출산 강요 등 부계혈통주의적인 ‘가족 채워 넣기’ 기능을 담당하게 만들고 있다며, “가족의 틀 안에 이주여성 인권문제를 집어넣다 보면 여성의 인권을 제한하게 되는 모순이 발생한다”고 꼬집었다.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 박경서 소장은 “상상적 공동체인 ‘국가’의 이익이라는 명분으로 이주민에 대한 관점이 사람이 아닌 출산력이나 노동력으로 산정되고 있다”며, “통제나 관리 대상의 정책들은 문제 해결에 근접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주 여성들에게는 정확한 정보제공과 이들을 맞는 한국 사람들의 인식 교육이 가장 시급하다”고 말했다.
언어와 국적문제 걸려 시민권 박탈
국적법과 체류자격 문제도 실질적인 억압 수단으로 지적됐다. 한국 남성과 결혼했다 해도 국적을 취득하기 전까지는 외국인 신분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에, 가정폭력을 겪어도 법적으로 대응하거나 호소조차 하기 어려운 형편인 것이다. 이혼을 하는 경우 불법체류자가 되어 기초생활수급권자에서도 제외되기 때문에 생존권을 보장 받기 어렵다.
또한 이주여성들이 피부에 와 닿는 문제로 꼽는 것이 ‘언어 소통’의 문제인데, 심지어 일부 상담지원프로그램은 ‘남편’을 바꿔서 상담하게 하는 등 무책임한 처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이주.여성인권연대 이금연 대표는 “근본적 문제는 이주여성의 사회적 지위가 남편 개인의 의지에 따라 결정되도록 하는 것”에 있다며, “가정폭력과 같은 범죄를 막기 위한 방편을 결혼 상대자 남성 개인에게 맡기는 행정편의주의가 이주여성의 종속을 부른다”고 비판했다.
이주여성들이 개별 가족 속에만 갇혀 지내지 않도록 제도적으로 다양한 공동체 채널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박경서씨는 이주여성 자신이 인권을 스스로 보호하기 위해 이주민 지원단체나 지자체, 노동부, 여성가족부, 법무부 등에 지원을 요청할 때 ‘현재 자원 활동에 의존하고 있는 통역 문제가 해결되어야 하며, 종합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도록 고려해 달라’고 주문했다.
국제결혼 중개업체 이대로 놔둘 것인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가 통계청 보고를 근거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05년 한 해 국제결혼이 4만3천121건으로 전체 결혼의 13.6%를 차지한다. 국민 8쌍 중 1건이 국제결혼이라는 통계다. 이중 한국남성과 외국여성과의 결혼이 3만1천180건으로 72%를 차지하며, 이 수는 매년 증가할 것으로 추정된다.
베트남 여성결혼이민자 136.5% 증가
여성결혼이민자는 대다수 아시아계 여성으로 절대치로는 중국 국적이 가장 많지만, 현재 ‘베트남 여성’은 2004년에 비해 136.5%나 증가한 최고의 ‘증가율’을 기록하고 있다. 2002년 이후 국내에서 국제결혼중개업체가 난립, 과다 경쟁하는 시기와 맞물리며 결혼 절차의 간소화, 기간과 비용의 감소로 한국 남성과 동남아계 여성의 이주 결혼은 급격히 증가했다. 이미 농어촌에서 다문화 가족은 한 유형으로 정착하고 있는 상황이며 이 가운데서도 베트남 여성은 53%를 차지하는 뚜렷한 증가 추세다.
중국, 베트남, 필리핀 등지에서 한국으로 결혼 또는 노동 이주를 감행한 여성들은 국제결혼 결정 과정이나 이동 과정, 그리고 한국 가족과 지역 사회에서 끝없는 인권침해를 겪고 있다. 산발적으로 은폐됐던 문제들이 최근 표면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주.여성인권연대, 한국이주여성인권센터, 한국여성의전화연합, 인천외국인노동자센터를 비롯한 관련 인권단체들이 모여 실태와 정황을 공유하는 한편, 현행법상 이민, 국제결혼, 이주노동 관련 제도의 문제점과 개선점을 논의했다.
선불금 매개로 감금 착취 행해져
지난 9일 인천발전연구원에서 개최한 “이주여성실태와 정책적 지원 방향” 워크숍에서 인천여성의전화 김성미경 부회장은 “혈통의 개방이 오염으로 인식되는 한국사회에서 외모가 비슷한 베트남 여성은 혼혈 공포를 불식한다는 생각과 ‘결혼 신청자’ 남성의 의식과 가족 등 가부장성에 걸맞는 순종성과 순정성을 갖고 있다는 그릇된 이미지”를 결혼중개업체들이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결혼중개업체는 송출국 중개업자와 호텔, 서류대행업자 등이 결합한 조직 형태로, 최대이윤을 노린 단기적인 결혼 성사를 ‘패키지 상품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미경씨에 따르면 베트남 현지에서 “신부 대기자 합숙소가 중개업체들과 연계돼 있고 이들 여성들은 결혼 성사될 때까지 선불금 때문에” 이탈할 수 없는 조건에 처한 경우들도 있다고 한다. 심지어 “베트남 현지를 관광하는 형식으로 호치민 시 등지에 있는 신부대기자 합숙소에서 불과 한 시간 내 100여 명의 여성을 선 본 뒤 선택을 하면 ‘합방’하는 것까지가 포함돼” 있는 패키지도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 합숙소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옷값, 숙식비 등의 빚을 선불금 형식으로 진 베트남 여성은 한국 남성이 귀국하여 한두 달 내 한국에서 함께 정주할지 ‘결정하는 동안’ 선택 취소로 ‘리콜이 되면’, 빚더미가 가득한 합숙소에 감금돼 나갈 수도 없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임신과 인공유산, 처녀막 재생수술 등 신체에 대한 유린도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러한 시스템 속에서 중개업자들은 ‘판매자’의 입장으로 ‘사후 관리’를 하며 리콜을 보장하는 등 결혼과정에서 이주 여성의 이탈을 막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중개로 인한 ‘인신매매’ 강력 대처 필요
토론회에선 이주나 국제결혼 자체가 문제인 것이 아니라 ‘중개인들에 개입해서 이득을 취하는 변질된 통로들’이 문제이며, 국제결혼이 범죄 영역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으려면 “베트남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중개업’을 불법화하는 방법도 배제할 수 없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중개업체들이 법망을 자유자재로 피해 활개를 치며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국회에 상정돼 유력하게 입법 검토되고 있는 ‘허가제’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 단체들의 중론이다.
나아가 ‘인신매매금지법이 마련되어 중개인에 의한 피해자를 인신매매 피해자로 지정하고 한국 사회에서 일정 기간 회복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체류자격을 허가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또한 영주권과 시민권 제도 등을 통해 이주여성들이 정체성을 포기하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도록 국적 취득에 관한 법률 개정도 검토돼야 한다고 지적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