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재도 마구산, 장바위산 산행
하늘에 있는 섬, 구름 위를 걷다
목포에서 쾌속선으로 5시간이나 걸려야 갈 수 있는 섬, 우리국토 최서남단 섬인 가거도를 거쳐 뱃길 마지막으로 갈 수 있는 섬 만재도. 이생진 시인이 그의 시집에서 ‘하늘에 있는 섬’이라고 썼던 그 섬에는 마구산, 물생산, 장바위산 등 세 개의 산이 있다.
신안군 만재도 여행 이틀째. 일출을 보기 위해 아침 일찍 짝지해변으로 나가본다. 섬은 벌써 깨어 있다. 마을사람들이 몽돌해안에 나와 뭔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 붉은 해가 바다를 물들인다.
가까이에서 보니 그물 위해 파래를 널고 있는 모습이다. 서서히 새날이 밝아온다. 펼쳐놓은 파래가 아침햇빛을 받아 반짝반짝 빛난다.
선착장에도 그물손질하는 아저씨의 손길이 바쁘고,
새벽에 벌써 고기를 잡고 돌아온 젊은이의 모습도 보인다. 배위에는 그물에 잡힌 싱싱한 고기들이 눈에 띈다.
아침식사 후 9시경 장바위산 등산을 위해 숙소를 나선다. 산행 들머리는 짝지해변 끝 바위길이다.
마을에서는 잘 보이지않아 몰랐는데 막상 와보니 바위길이 아기자기하고 예쁘다. 마치 깊은 바위계곡을 걷는 기분이다.
제법 큰 입석바위도 보인다.
좁은 바위능선을 따라 만들어진 계단비탈길도 아름답다.
우측은 바로 해벽. 낭떠러지 아래 바다가 출렁인다. 바위틈 여기저기에는 파란 해국들이 싱그럽게 자라고 있다.
바위계단을 넘으면 초원이 나오고 이어 조그만 모래해변을 만난다. '건너짝지'라고 부르는 곳이다. 해변 옆에는 또 하나의 선착장이 보인다. 조그만 섬에 선착장이 세개나 있다니 의외다.
'건너짝지'해안에는 파도에 밀려 온 쓰레기들이 가득하다. 아름다운 섬 만재도가 쓰레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보기에 흉하다. 주민들이 적다보니 미쳐 쓰레기 치울 생각을 하지못하는 것 같다.
지저분한 해변에도 꽃은 핀다. 갯메꽃들이 모래사장에 넓은 꽃밭을 이루고 있다. 마을에서 이곳까지는 누구나 올 수 있는 산책코스이다. 등산을 하지않는 여행객들이라도 이곳까지는 꼭 한번 와보기를 권한다. 만재도 마을길 중 가장 아름다운 산책길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산(장바위산)의 본격적인 등산은 이곳 건너짝지해변에서부터다.
길이 잘 보이지않는 풀숲을 헤쳐가면서 비탈길을 오른다. 거의 모든 나무들이 죽어 있다. 왜 그런지는 몰라도 안타깝기 그지없다.
공룡등뼈같은 능선을 오른다. 큰산은 등산로가 정비되어 있었는데 이곳 앞산은 사람들이 오르지않아 길이 전혀 보이지않는다.
밀림을 새로 개척하는 기분이다. 필자 키보다 더 큰 시누대숲도 지나고 엉겅퀴밭도 지나간다. 먼저 스틱으로 풀숲을 헤치고 아무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발을 옮긴다. 뱁에 물리지않기 위해 다리에는 겨울 등반용 스팻츠를 차고 스팻츠 속에는 다시 신문지까지 둘렀다. 섬에 있는 뱀들은 대부분 독사종류이기 때문에 섬산행시에는 정말조심해야 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섬 전망이 열리기 시작한다. 물생산 방향 해안절벽이 웅장하다. 마을 뒷산인 큰산(마구산)이 여성스러운 산이라면, 이곳 앞산(장바위산)은 약간 남성스러운 산인 것 같다. 물론 가장 남성스러운 산은 바위산인 물생산이다.
드디어 장바위산 정상 도착. 천천히 오르다 보니 1시간 20분이나 걸렸다. 정상에는 마을사람들이 쌓아놓았는지 돌무덤이 표지석을 대신하고 있다.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와, 아름답다. 만재도의 전체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모습. 물생산과 마구산이 날개가 되어 펄럭이고 날개 품안에 마을이 포근히 자리잡고 있다. 어떤 이는 만재도를 도끼모양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달리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마구산은 도끼머리, 물생산은 도끼날, 그리고 장바위산은 손잡이에 해당한다. 필자가 섬에 오면 거의 습관적으로 산에 오르는 것이 바로 이 때문이다. 이곳 장바위산 정상에 올라와 봐야 만재도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제 오른 마구산 능선에서 바라본 만재도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
장바위산 정상에서 뒤를 보면 또 하나의 봉우리가 보이고 그 뒤로 국도도 보인다. 시간여유가 있으면 이 봉우리까지 가보고싶은 데 이번에는 일정상 포기하기로 하고 하산한다.
하산길에 다시 내려다 본 만재도 모습. '하늘에 있는 섬'이 아니라 '하늘을 날으는 독수리'의 모습 같다.
날머리인 짝지해안으로 원점 회귀, 여유있게 왕복 2시간 정도 걸렸다.
1시반 출발 목포행 배를 기다린다. 만재도에서의 1박2일, 너무 짧은 순간이다. 날씨가 조금 만 나쁘면 배가 들어오지못하는데 우리 일행은 운이 좋았다. 이틀 내내 날씨가 너무 좋았고 뱃길도 잔잔했다. 이생진 시인은 1997년 6월 처음 만재도에 발을 들여놓기까지 거의 10년을 파도와 줄다리기했다고 한다. 흑산도, 하태도까지 왔으면서 만재도에는 파도가 거세 들어오지못했다고 한다. 그는 시집 <하늘에 있는 섬> 서문에서 "나는 흑산도에서 하태도까지 갔으면서 만재도에 들어가지 못한 적이 있다. 바람과 파도가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그 다음 기회에도 못 갔다. 물살이 거세서 못갔다. 물이 곤두박질쳤다. 나를 싣고 오면 배를 엎어버리겠다고 위협했다. 그때도 만재도 바로 앞에서 단념했다"고 술회했다. 만재도는 그런 섬이다. 만재도는 관광하러 오는 섬이 아니다. 낚싯꾼들이 여유롭게 낚시나 하고, 이생진 시인의 말처럼 "그저 시 쓰는 사람이나 조용히 있다가 돌아갔으면 하는 섬"이다.
이생진 시인은 그의 시 <숨어살기-만재도1>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내 마음도 그렇다.
바다가 겹겹으로 싸돌고 있는 섬
그 섬이 다시
겹겹으로 나를 싸돌고 있다.
너
만재도로 오라
왜 이렇게 먼 데 있고 싶은지 모르겠다.
(글,사진/임윤식)
첫댓글 시인님 글 좀 얻어 갑니다.
저도 만재도에는 다녀왔습니다만 또 다른 시각에서 바라 본 만재도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