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정운관(鄭云瓘) 포은 정몽주선생의 부. 일성부원군(日城府院君) 부(父)는 증밀직부사 유(裕), 조부(祖父)는 증개성윤 인수(仁壽), 증조부(曾祖父)는 판도판서 림(林), 고조부(高祖父)는 진현관제학 종흥(宗興)이다. 선생은 향시 과거에 합격한 뒤 성균복응제생의 벼슬에 올랐으며 뒤에 아들인 포은 정몽주가 귀하게 되어 신덕수의성근익조공신에 벽상삼한삼중대광으로 수문하시중 판병조사상호군영경령전사 일성부원군에 증직되었으며, 부인 이씨는 변한국대부인(卞韓國大夫人)에 봉해졌다. 슬하에 네명의 자손을 두셨는데 장남이 포은 정몽주, 둘째가 정과(鄭過)로 벼슬이 예조판서이며, 셋째가 정후(鄭厚), 넷째가 정도(鄭蹈)로 벼슬이 사재령판서로 1392년 임신 4월에 둘째인 정과(鄭過)와 함께 이성계의 반정세력에 의해 포은께서 선죽교에서 순절시 함께 화를 당하셨다. 선생은 고려 공민왕 4년(1355,을미) 1월에 돌아가셨는데 이때 포은이 19세 되던 해였다. 포은은 이때 영천 도일동에 장사를 지내고 묘소에서 3년동안이나 여묘살이를 하였다. 선생의 묘소는 임란병화로 허물어졌다가 중세들어 이 고을 군수인 한덕(外派孫)이 알고 표석을 만들어 세웠으며 후에 10세 종손인 현감 정운한(鄭雲翰)과 9세손 정익이 다시 비석을 세웠다. <연일(延日,迎日,烏川)정씨(鄭氏) 지주사공파(知奏事公派)사이트에서 인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