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양무덕선사 어록(汾陽無德禪師語錄)
불교에 대해 잘 모르는 내가 이해하기에 이 책은 너무 어려운 것 같다. 조금밖에 읽지 않았는데도 그런 느낌이 든다. 책은 중국 송나라 시대 고승인 분양무덕선사의 어록을 해석하고 번역한 것으로 어렵게 느껴지는데는 어떤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문담(禪門答)이라 그렇겠지 하고 생각도 해 보지만 딱히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한두 마디라도 이해되는 부분도 있겠지 하면서 읽어 볼 생각을 한다.
분양무덕선사는 산시성 타이위안(山西省 大原)에서 947년 유씨(俞氏)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치장하기보다 지혜를 늘이는데 마음을 쏟았고, 혼자 글을 익혀 서적을 독파했다. 14살 때 부모를 잃고 혼자가 되자 세상일이 싫어져 출가하였으나 한곳에 머물지 않고 천하를 유력(遊歷)하였다. 그가 참문(參問-질문)하려고 찾아다닌 선지식이 71명이 된다고 하니 그의 강렬한 구도 열정을 짐작할 수 있겠다.
분양선사는 1024년 입적했는데 어록은 1014년부터 1020년 사이 선사의 생전에 양억(974∼1020)이라는 스님에 의해 간행되고 1101년부터 1103년 사이에 중간되었으며, 1310년에 다시 중간되어 전한다고 한다.
번역된 책 상권에는 ‘중간 분양화상어록소(重刊 汾陽和尙語錄疏), 분양무덕선사어록서(汾陽無德禪師語錄序),분양무덕선사어록(汾陽無德禪師語錄)’이런 내용으로 되어 있고 2권에는 분양무덕선사 어록‘송고대별(頌古大別)’로, 3권은 ‘분양무덕선사 어록 가송(歌頌)’이 실려 있다. 상권‘어록소’에는 어록의 종류와 어록이 만들어진 과정, ‘어록서’에는 어록에 대한 스님들의 찬술 서문과 선사의 거침없는 사자후(師子吼)가 실려 있으며 중권에는 ‘송고백칙(頌古百則)’‘힐문백칙(詰問百則)’,‘대별(大別)’로 구분되어 있고, 하권은 분양선사가 노래한 ‘가송’98편과 속보(續補) 9편이 실려 있다.
분양선사는 엄청나게 도도했던 모양으로 ‘어록서’에 이런 말이 있다. “군목(群牧-군수) 유창언이 스님에게 가서 예를 갖추어 알현하고 아란야(閑静處의 한역-정사 또는 사원)에 모시고자 여덟번이나 청하였으나 모두 허락하지 않았다. 순화 4년(993) 서하의 스님들과 속인 천여 명이 마음을 합쳐 간단하게 편지를 써서 계총(契聰 - 수산 성념의 법을 이은 스님)을 보내어 백마산에 가서 스님을 군(郡)으로 모시니 드디어 머물러 쉬었다.”
책의 핵심이기도 하고 또 읽고 이해해야 할 것은 어록에 담긴 내용일 것인데, 상권에만 70여개 어록이 해설을 곁들여 실려 있는데 일부의 제목들을 옮겨 본다. ‘맑은 한 줄기를 얻어야’‘검을 잡은 손’‘밝음이 어둠을 상대하면서’‘종이 울리고 까치가 우니’‘본래 해탈되어 있다’‘번뇌를 끊음과 끊지 않음’‘아침에는 참(參)이고 저녁에는 청익하니’‘소리 듣고 빛을 보니’‘피곤하면 쉬어라’‘참 벗은 청함을 기다리지 않는다.’‘몽둥이 한 방에 한 줄기 흉터’...
“부처님의 가르침에 법을 말하는 이는 설함도 없고 가르침도 없으며, 법을 듣는 이는 들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어야 한다.(유마경)라고 하셨는데 도대체 스님께서는 지금 어떤 법을 설하십니까?”
어떤 대중이 당돌하게도 이렇게 물었던 모양이다.
이에 분양선사가 말했다.
“방망이를 얻어맞고 나야만 이름을 말하게 되지.”
“이러시다면 인천(人天)의 대중이 모두 은혜의 힘을 입을 것입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허물이 무겁지 않을걸.”
또 어떤 스님이 물었다.
“무엇이 도인(道人)의 몸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발을 들어 티끌과 먼지를 건너간다.”
“어떻게 해야 티끌과 먼지를 건너지 않겠습니까?”
“나무의 그루터기를 지키는 사람으로 잘 못 알지 마라.”
스님이 말씀하셨다.
“예전의 것만을 집착하면 도리어 옳지 않습니다. 오래 서 있었군요. 차들 마시지요.”
아무리 읽어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루터기를 지키는 사람으로 잘 못 알지 마라’는 말은 ‘토끼를 기다리는 사람’을 말하는 것으로 고지식하게 구습과 경험적 지식, 전례만 고집해 융통성과 지혜가 없는 사람, 쓸데없이 마음을 쓰는 사람을 말한 것으로 『한비자』에 나온다. 『한비자』에 고사의 예를 들어 “밭을 가는 농부가 있었다. 밭 가운데 그루터기가 있었는데 토끼가 뛰어가다가 그루터기에 부딪쳐 목이 부러져 죽었다. 그때부터 농부는 쟁기를 놓고 그루터기를 지키고 앉아 또 토끼를 얻어볼까 하고 기다렸으나 토끼를 다시는 얻을 수 없었다. 그 일로 인해 농부는 웃음거리가 되었으며 이를 빗대어 선왕의 정책을 가져와서 현재의 백성을 다스리려는 왕은 모두가 그루터기나 지키는 무리”라고 비꼬았던 것이다. 『한비자』「오두(五蠹)」편
분양스님이 말씀하셨다.
“아침이 오고 저녁이 가더니 어느덧 겨울이 깊어졌습니다. 지금 여기서 형제 여러분 서로 논의하되 심원한 곳은 곧장 향하여 나아가고, 베풀어 구제할 곳은 실천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각자 50세에 이르렀어도 아직 본분사(本分事-반드시 해내야 하는 중요한 일)를 분명히 깨닫지 못했다면, 다섯 생이든 열 생이든 헛되어 보내지 말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래 서 있을 필요 없습니다. 안녕.”
살아오면서 나는 나의 본분을 다했는가를 생각해 보니 50은커녕 70을 넘기면서도 그것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에 자괴감이 든다.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이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든다.’고 한 여자 대통령처럼 말이다. 지금부터라도 나의 길이 있고, 그 길을 걸을 힘이 남았다면 그 길을 따라 정진(精進)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어떤 학인이 스님께 여쭈었다.
“넓어신 법계에 가득하고, 좁으면 바늘조차 용납지 않는다*는데 어떤 것이 좁으면 바늘조차 용납지 않는 것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용이 푸른 바다에서 뛰어오르나 장애가 없고
학이 푸른 하늘에서 나오지만 허공을 가로막지 않는다.”
“이러시다면 가로막힘이 없는 것이로군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어서 삼배 하여라.”
스님이 크게 수긍했다는 말 같다.
※달마대사혈맥론(達磨大師血脈論)에 나오는 게송이다. ‘마음의 마음의 마음은 찾기 어렵네 / 넓을 때는 법계에 두루하지만 / 좁을 땐 바늘조차 용납하지 않아 / 나는 본래 마음 찾았지 부처 찾진 않았으니 / 삼계가 공하여 물(物)이 없음을 분명히 안다네 / 만일 부처를 찾으려 한다면 다만 마음을 찾을 것이니 / 그게 이 마음이라는 이 마음이 부처라네 / 나는 본래 마음을 찾았으나 마음은 스스로 지니는 것이라 / 마음을 찾아도 마음을 기다려 알 수는 없다네.’
분양선사 당시 송나라 시대에도 황제가 정치를 잘해야 나라가 제대로 다스려지고, 불가에서는 법왕(法王)의 가르침을 부처의 가르침이라 생각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려했던 모양이다. 이에 어떤 사람이 사람의 왕과 법왕의 일은 어떤 것이냐고 물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도는 있으나 기(機-깨달음의 실마리)는 없다.”
“도대체 사람 왕의 일은 어떤 것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황제의 교화는 아름답게 노래하지.”
“법왕의 일은 어떤 것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사사로움 없이 인연이 있으면 인도하지.”
그리고 스님이 말씀하셨다.
“말을 많이 지껄이는 것보다는 말을 적게 함이 알기가 쉽습니다. 모두 노래 한 곡을 들어보십시오.”
“현명한 왕이 다스리고 교화하니 건곤에 두루 미치어,
경덕년에 친히 펴서 부처님 등불 밝혔네.
불일* 이 길이 빛나 부처님의 눈 열었으니,
바라건대, 이 좋은 것으로 우리 임금 복되시기를.”
*佛日 : 부처의 지혜 광명이 태양과 같음을 비유
한 스님이 분양선사에게 여쭈었다.
“관세음보살의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 가운데 어떤 것이 바른 눈입니까?”
스님이 말씀하셨다.
“눈 멀었군.”
“그러시다면 한 개의 주장자로 두 사람을 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조그만 마을 안에서 파가(巴歌-파촉지방의 민가,속가)를 부르는구나.”
“그러시다면 큰스님께서는 그 속에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스님이 말씀하셨다.
“너의 간곡함이 고맙구나.”
또 여쭈었다.
“문수보살이 유마거사를 훌륭하다고 찬탄하였다.”*는데 이 뜻이 무엇입니까?”
*문수사리보살이 유마힐에게 물었다. ‘우리는 각자 말을 끝냈습니다. 당신도 마땅히 말해 주십시오. 어떤 것이 보살의 불이법문입니까?’ 그때 유마힐은 묵연하여 말이 없었다. 이에 문수보살이 찬탄하여 말씀하셨다. ‘훌륭하여라 훌륭하여라! 언어문자가 없구나. 이야말로 진정한 불이법문이다.(유마경)
스님이 말씀하셨다.
“명언(名言)*을 멈춰라.”
*이름과 말, 객관적 형상을 가리키거나 전달하는데 사용되는 기호적인 언어 문자와 언어적 행위 전체를 말함.
“그러시다면 이 말이 딱 맞겠군요.”
스님이 말씀하셨다.
“또 몽땅 떨렸군.*”
* 완전히 발가벗김, 집착을 남김없이 모두 털어버림
이 책을 읽기에 앞서 모름지기 사람이라면 더 많이 더 깊이 생각하고 살아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읽고 넘기기에는 아쉬움과 뒤가 켕기는 착각에 빠져 자꾸 뒤돌아보게 한다. 그래서 마음을 가다듬고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오늘이 지나면 내일이 올 것인지, 아닐 것인지 염려 속에서 내일을 기다린다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일인지도 생각하게 한다.
중권의 ‘대별(大別)’중에서 몇 개 경구들과 하권의 ‘가송(歌頌)’중, 한두 가지 노래를 옮기면서 이만 줄일까 한다. 하지만 틈틈이 읽고 음미하리라는 생각은 해 본다. 20201071030
중권에 이런 경구(警句)가 있다.
“바람은 형상이 없는데 무엇 때문에 수륜이 위를 받치고 있느냐?”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힘이 부족하지 않습니다.”
“물(物)은 근육과 뼈도 없는데, 무슨 까닭으로 대지를 받치고 있느냐?” 역시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부드럽고 약함이 억세고 강함을 이깁니다.”
이 말들은 분양선사가 묻고, 스스로 답했다는 말인 것 같다.
이런 물음도 있다.
“번뇌가 끝 없지만 맹세코 끊겠다니, 무엇으로 끊는다는 걸까?”
대신하여 말씀하셨다.
“있긴 합니까?”
“위 없는 보리를 맹세코 이루겠다니 어떻게 이룬다는 걸까?”
“천자는 물을 베지 않습니다.”
“스님들은 부처님의 제자인데, 무엇 때문에 스님들에게 먼저 공양하고 부처님께 뒤에 공양하라고 말할까?”
“제일 끝이 가장 처음입니다.”
“도(道)는 형상이 없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실행에 있어 힘이 있어야 할까?”
“믿을 따름입니다.”
“태어나서 늙기까지 무엇으로 옷 입고 밥 먹나?”
“나귀는 너른 땅의 풀을 뜯어 먹습니다.”
“산이 비록 높다지만 어째서 사람의 마음에 비하질 못할까?”
“법을 아는이가 두려워서입니다.”
다음은 하권의 가송에 있는 노래다.
《분양경(汾陽境)》- 분양의 경치
자하산 봉우리는 높고 험준하고
서하의 물은 깊고도 깊으니
산 오르고 물 건너는 객이여,
걸음걸음 참마음을 보시오.
《학문(學問》- 물어서 배움
종전에는 물어서 배워 몇이나 알았을까?
진흙에서 자갈 주워 보배를 가려내기가 힘들다.
오직 숨어 살며 뜻이 고아한 이만이
걸림 없이 아무렇게나 세월을 보낸다네. ⵈⵈ
여기까지 읽었더라도 무엇을 말한 건지 이해가 어려울지 모르겠다. 나도 그렇다.
이 책 출간을 소개한 법보신문 기사를 보도록 하자.
▢ 분양무덕선사어록’ / 영곡 스님 역주 / 민족사
분양 스님이 하루는 대중에게 “간밤 꿈에 돌아가신 부모님이 나와서 술과 고기, 그리고 종이돈을 찾았다. 그러니 속가의 풍속대로 제사를 지내겠다”고 했다. 그리고는 술, 고기를 올리고 종이돈을 불살라 제사를 마친 뒤 음식을 나눠주자 모두 마다했다. 분양 스님이 혼자 음식과 술을 마시자, 대중들은 그를 스승으로 삼을 수 없다며 떠나고 자명 등 예닐곱만 남았다.
분양 스님은 다음날 법상에 올라 “수많은 잡귀신 떼를 한 상의 술·고기와 두 뭉치의 종이돈으로 모조리 쫓아 보냈다. ‘법화경’에 이르기를 ‘이 대중 속에는 가지와 잎이 없고 오로지 진짜 열매만 남아 있다.’고 하였다”고 이르고는, 그대로 법좌에서 내려왔다.
분양무덕선사(947∼1024)는 중국 송대 초기 선승이다. 임제의 법맥을 이었고, 제자로는 자명초원이 있다. 자명초원에게서 황룡혜남의 황룡파와 양기방회의 양기파가 탄생해 송대 선의 중심세력을 형성했다. 결국 분양무덕선사의 법을 이은 인물들에 의해 중국 선종의 5가 7종이 형성된 것이다.
분양무덕선사는 중국 송대 임제종 선맥을 이은 대종장으로, 공안에 대하여 게송을 붙인 송고(頌古) 형식의 선 문헌을 저술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그가 지은 ‘송고대별(頌古代別)’ 300칙은 설두중현의 ‘설두송고’보다 50년가량 앞선다. 그래서 분양의 ‘송고대별’ 300칙은 중국 송고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진다.
이 책 ‘분양무덕선사어록’은 분양무덕선사의 가르침을 우리말로 완전하게 번역한 첫 번째 책이다. 전3권으로 구성된 책의 상권은 상당법문과 소참법문을 내용으로 하고 있다. 중권은 ‘송고대별’ 300칙이 수록되어 있으며, 특히 공안을 주제에 따라 18종류로 구분해 그 이름이 알려진 ‘분양십팔문’의 세세한 내용을 살필 수 있다. 마지막 하권은 선사가 직접 지은 게송과 가송들이 수록되어 있다.
책을 역주한 영곡 스님은 “옛적에 분양(汾陽)의 서하(西河)에는 동서고금을 통틀어 가장 포악했던 사자 한 마리가 있었다. 그는 분양무덕선사다. 황금 갈기를 가진 이 사자는 문턱에 웅크리고 앉아서 찾아오는 사람마다 모조리 죽였다. 그 사자를 잡고자 한다면 그 사자가 남긴 어록을 읽어봐야 한다. 그가 남긴 정보에서 물음과 답을 낱낱이 뜯어 살펴보아야만 할 것”이라며 수행자와 선 공부에 관심 있는 대중들의 일독을 권했다. 값 전3권 8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2019.5.27.자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