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성의 규범에 더 단단히 매달릴수록, 우리가 떠맡을 과제는 더 적어진다."
책을 읽다가 잠시 머물은 글입니다. 성과를 요구하는 사회에서 그리고 도전보다는 실패에 대한 예감이 더 무겁게 여겨지는 사회에서 효율성은 자신을 숨길 수 있는 효과적인 마술입니다. 우리 사회 아니 우리 교회는 사랑과 봉사의 가치를 전하면서도, 사랑과 봉사를 통해서 이뤄져야 하는 성장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과 봉사를 위해 갖춰야 하는 지식과 이에 따른 성공은 자랑하지만, 지식만큼의 무지와 성공만큼의 실패에 가치를 두지 않습니다.
더 적게 일하고 더 많이 얻고 싶습니다. 아니 적당히 일하고, 되는 것만 하고 싶습니다. 되는 것은 이미 공동체에서 이뤄지는 일들이고, 검증된 일들이어서, 실패 확률은 적습니다. 또한 쉬지 않고 일했으니 비난받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찾지 않습니다. 우리 시대에 필요한 일들이 무엇인지 묻지 않습니다. 사람은 적당하게 비난받지 않을 정도까지의 악을 행하면서, 스스로 자신이 선하다는 것을 증명하고자 합니다. '이만 하면 됐지"라며 악한 사람으로 손가락질 받지 않을 정도의 행위를 통해 스스로의 선을 주장하는 사람들. 그런데 왠지 그들과의 만남이 지겨워집니다.
공동체가 추구해야 하는 선의 확장에 기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수행하는 일의 의도를 성찰하고, 다른 이들에게 과시하지 않아야 하고, 그들에게 온전히 기여하겠다는 마음을 잊지 않는 것이 필요합니다.
효율성을 주장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 가슴이 답답해집니다.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할 일 사이의 간극이 너무 커지기 때문입니다.
동물원을 탈출한 퓨마에 대한 기억을 합니다. 하느님으로부터 받은 본성과 다르게 취급받았던 생명, 인간의 눈요기를 통한 잠시의 쾌락을 위해 저당잡힌 삶을 살았던 퓨마가 철창의 문턱을 넘었습니다. 잠시의 시간, 그가 누렸을 자유를 느껴봅니다. 그 자유의 대가가 죽음이라는 궁극의 실패라 할 지라도 본성이 억압당한 채 우리 안에서 죽어야 하는 것보다는 좋았을 것 같습니다.
안전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아야 한다고 유혹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정된 실패를 맞이해야 한다고 위협합니다. 자유와 예속 사이의 선택! 선택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지혜를 청하는 오늘입니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에서의 실패는 존재 자체를 흔들어 버립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