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외면소재지를 벗어나 용두교를 건너 부지런히 걸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9킬로미터를 걸었으니 아직 7킬로미터나 남은 셈입니다. 날씨는 뜨겁고 햇볕은 강합니다.



강은 서너 줄기 물이 합해지더니 훨씬 넓어지고 오히려 물 깊이는 다소 얕아진 듯. 물 가운데 풀이 난 모래톱도 생기는 등, 자연하천의 모습에 가까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커다란 수중보가 보이는군요. 왼쪽에 취수구(화살표)가 있어 아마도 다리 건너 동곡리의 들판에 물을 대러 갈 것 같습니다.
용두교를 건너자 왼쪽으로 굽어 처음 만나는 마을. 빈한해 보이는데, 면소재지의 번화함에 가려서 더욱 그래 보였을까요?
길이 살짝 낮아집니다. 정국장은 이 마을을 옛 장터거리라고 설명합니다. 그랬을까? 시장거리가 이렇게 한산할까?





동곡천이 강으로 흘러나가는 어귀에 서서 정국장이 몇 가지를 안내합니다.
북쪽 동곡마을이 김개남의 출신지였다고. 그의 묘도 거기 있다(화살표 안내판)고 합니다.
엊그제 드라마 <녹두꽃>에서는 「전주화약(和約, 평화협정)」에 반대하는 김개남 장군이 전봉준에게 부르르르 화를 내면서 단독행동을 할 거라며 떠나는 마지막 장면이었습니다. 「화약」에 서명한 이유를 전봉준은 “왜·청 등 외국군대가 머물러 있을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라 설명했지요.
「화약」에 동의했음에도 왜군이 부득부득 한양에 입성하자 전봉준은 자신의 결정에 커다란 흠이 있었음을 깨닫습니다…
“역사에 if는 없다”고 합니다만,
그때 녹두장군이 김개남의 말을 듣고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짧게 보아도 한일합방인지 경술국치인지는 없었을지도 모르고, 더 길게 보면 삼년 전의 「촛불혁명」에까지 이르지 않아도 되었을지 누가 알겠습니까.
몇 집 빼고는 거의 삭아가는 짤막한 시장거리였습니다.
동곡리의 원래 마을은 커다랗고, 산 옆을 따라 골짜기로도 길게 형성된 곳인데
이 하천변 마을은 마치 「데리고 온 자식」 같습니다.
일행은 들판을 가로질러 다시 강가 둑길로 올라갑니다.
나는 동곡마을을 먼발치에서라도 사진 한 컷 찍어보려고 일행과 떨어졌습니다.


(위 사진 : 동곡마을 원경.)

(위, 아래 : 동곡마을 입구 돌무지.)


좌우는 들판인데 농로는 일직선으로 끝 간 데를 모르게 뻗어있는, 그늘 한 점 없는 길을 다만 농수로 한 줄기만을 따라 걷습니다. 이 수로가 용두교 보에서 끌어온 물이겠지요. 여전히 물은 풍부하고 속도도 빠릅니다.







일행은 이미 높은 강둑길에 올라 저만큼 앞서 가고 있는데 나 혼자 들판을 걸으려니
마음도 조급하지만 모두가 걱정할 것이 제일 신경 쓰입니다. 걸음을 부지런히 놀려야겠습니다.
공동교 다리에 겨우 도착하니 먼저 온 일행이 다리를 건넌 곳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제 마을로 내려가면 '김명관 고택'.








고택은 오공리의 초입에 있는데 워낙 유명하고 큰 저택이어서 이 집을 구경하다보면 마을에 들어가 볼 생각은 쑥 들어가 버리는 것 같습니다.
이 고택을 따로 소개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