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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진산(鎭山) 북한산(北漢山.836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5월 27일 인시(寅時)에 일어나 간단히 조반을 들고는 이것 저것 챙겨서 출발지(반고개)에 도착하니, 노장(서부장.82)님께서 먼저 도착해 계신다. 두 달여 만에 뵙는지라 포옹으로 인사를 나누고 정시(6시)에 버스를 타고 달리니 승차인원이 46명(남:23, 여:23)이라 보기드문 성비(性比)의 균형이다.
차는 신나게 달려서 아포(牙浦)에서 ‘중부내륙고속국도’로 접어들어 선산휴게소에서 모든 회원님들이 조식(朝食)을 마치고 서둘러 서울을 향해 달립니다. 여주를 거쳐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주차장에 당도하니 시계는 10시 40여 분에 이른다.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렬로 줄지어 오르니, 선두와 후미가 어찌나 길던지 도시 끝간데를 모르겠습니다. 산행 초입(初入)길은 넓고도 평평하여서 걷기에 더없이 편안하고 등산로 좌우에는 잘 정돈됀 식당상가와 등산용품들을 파는 상점들이 즐비하다.
맞은편 북한산(백운대)정상 부근에는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원효봉 등이 회백색의 암봉(巖峰)으로 신령(神靈)스런 영기(靈氣)를 뿜어내며 5월의 창공(蒼空)에 우뚝하도다! 30여 분을 걸어서 대서문(大西門)에 도착하여 몇몇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선채로 잠시 올려다보니, 석성(石城)위의 누각(樓閣)은 정면3칸, 측면2칸의 겹처마 우진각지붕 양식이며, 제법 고색어린 멋을 풍기며 날렵하게 지어져 있다.
안내문에 ‘大西門’은 북한산성의 정문으로 성문 16곳 중에 가장 낮은 지점에 위치하고 1712년(숙종38)에 숙종이 북한산성에 행차하였을 때 이 문으로 행차하였다고 하며, 현 건물은 1958년에 복원한 것이라 한다.
다시 10여 분을 더 걸어서 북한동(北漢洞) 부근에 이르니, 국립공원 정비사업으로 말미암아 ‘옛 마을(서문안 마을 : 금강산장, 만석장, 제일산장 등)’은 2006년 3월에 이주하고 그 자리에 조그마한 ‘마을역사관’을 지어 놓았다.
연하여 경사진 언덕 좌우(左右)에는 용암사, 무량사, 아미타사, 국녕사, 상운사, 대동사, 중흥사 등 많은 ‘호국사찰’들이 진좌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부터는 우측으로 “북한산성계곡”으로 이어져서 백운대(4.1Km)로 오르는 길과 좌측으로 백운대(2.6Km) 정상으로 가는 갈림 길이라 최회장님을 비롯한 이경숙님, 정정희님, 김해진님, 최정애님 등은 우측으로 가고, 필자를 비롯한 조병하산대장님, 황재덕님, 금발례님, 박명옥님, 이원우님, 윤갑용님, 김두열님 등 대부분의 남산님들은 최단거리 코스를 선택해서 오름니다.
새마을교를 지나 바로 왼쪽 길 옆에는 수령 350년 됀 “북한동향나무” 한 그루가 시향목(市香木)으로 지정(1982년10월15일)되어 있다. 이 향나무는 신령스러워서 상처를 내기라도 하면 큰 탈이 난다고 한다.
그 옆으로는 ‘보리사’의 도량으로 넓은 마당 한 켠에는 야외 법회를 볼 수 있는 청마루가 조성되어 있으며, 아울러 오고가는 탐방객들의 쉼터가 되고 있어 생활속에서 지친 중생들에게 부처님의 자비(慈悲)와 가피(加被)가 넘쳐납니다 그려!
맞은편 언덕위에 보리사의 대웅전(大雄殿)이 정면3칸, 측면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양식으로 지어져 있는데, 본래는 경기도 고양군에서 이승만 초대 대통령을 맞기 위해 지었다는 “등운각(登雲閣 : 현 보리사)”이었다 고 한다.
가파르고 험준한 등산로를 10여 분을 숨차게 오르니, 왼편 계곡에는 “개연폭포”가 미끈 미끈한 암반위로 흰 속살을 드러내고 흐드러지게 흐른다. 백운계곡에는 워낙 암반이 험준하여서 물이 귀한 편인데 며칠 전에 내린 소낙비로 인하여 그래도 수량(水量)이 제법 많은 편이다.
가까이서 사진촬영을 할 수 있을까 하여 살펴보니 ‘출입금지(出入禁止:入出禁止)’라 적혀있다. 다시 얼마를 더 올라 시원스레 흐르는 개울가에서 잠시 쉬면서 선후미(先後尾)의 회원님들에게 기념촬영도 해드리고 가져온 간식들도 나눠드시니, 인정도 넘쳐나고 기쁨도 배가 됩니다 그려!
얼마를 휴식한 뒤 오르다 쉬다를 반복하면서 대동사(大東寺) 입구에 이르니, 일주문(一柱門)이 개선문(凱旋門)처럼 세워져 있어 일반적인 사찰(일주문)의 고정관념(固定觀念)을 뛰어넘고 있어 파격적(破格的)이다.
여러 회원님들이 도착하는 대로 기념촬영을 해드리고 자세히 살펴보니, 윗 쪽 들보에는 “북한산 영취봉 대동사(北漢山 靈鷲峯 大東寺)”라 새겨져 있고, 왼쪽 기둥에는 “자정기의 시제불교(自淨其意 是諸佛敎)(자기의 마음을 깨끗이 하는 것, 이 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라)” 오른쪽 기둥에는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라)”고 적혀 있다.
세속에 물든 탐진치(貪嗔痴)를 버리고 모든 선행을 하라! 삼척동자(三尺童子)도 아는 일이건만 팔십 노인도 행하기 어려운 지고!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드니... 모든 것이 한 마음에 있는 것이로다!
백운대(정상) 전방 400여 미터 부근에서는 철계단에 폐타이어를 잘게 썰어서 깔아놓아 사계절 등산에 안전을 고려하였으니... 당국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오를수록 시야는 넓어져서 ‘약수암’ 부근에 이르니 장엄한 인수봉(仁壽峰)에 암벽등반가들이 대롱 대롱 매달려 한껏 젊음을 뽐내고 있습니다.
1995년과 2001년도에 왔을 때 보다는 등산로가 잘 정비되어 있으며, 다만 정상 주변의 산들에 수목(樹木)이 많이도 울창해 졌음을 느낌니다. 그럭저럭 위문(백운봉암문)에 도착하니 반대편(도선사 부근)에서 오른 등산객들과 합류가 되어서 왁자지껄 장터를 방불케 합니다.
안내문에 “백운봉암문(위문)”은 북한산성의 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며 1711년(숙종37)에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暗門) 중 하나이며, 일제강점기부터 위문(衛門)으로 불려왔다 한다.
연하여 북한산성(北漢山城:사적162호)은 백제가 수도를 ‘하남위례성’으로 정했을 때 도성을 지키던 북방의 성이며, 백제 개로왕 5년(132)에 세워진 곳으로 11세기 초 거란의 침입이 있을 때 고려 현종이 태조(왕건)의 관을 이 곳으로 옮겨 오기도 했다고 한다. 이 후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치른 뒤 조선 숙종 때 둘레 7620보(3716m)의 석성(石城)으로 완성된다.
또 성내 북한동 169번지에는 행궁지(行宮址)가 있고, 중흥사를 중심으로 승영사찰이 13개, 성문이 총 16개, 주봉인 백운봉에서 장방형을 이루면서 염초봉, 원효봉, 의상봉, 증취봉, 다월봉, 문수봉, 일출봉, 용암봉 등으로 이어져서 총 둘레가 약 16Km라 하며 근세에 성루와 성벽을 복원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위문을 지나 정상(백운대)으로 가는 길은 경사가 심하고 험준한 외길이라 정상까지 철주(鐵柱)를 박아서 튼튼한 와이어(wire) 줄로 연결해 놓았으며, 오르고 내리는 사람들이 안간힘을 다해 진행한다.
오르는 중간 중간에 주위의 아름다운 풍광들을 디카에 담으면서 정상에 도착하니, “통일서원비”가 세워져(1975.8.15 한국산악회 세움) 있는데,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조국강산 겨레도 나라도 하나 이기에 피와 사랑으로 한 덩이 되어 우리 손으로 통일을 이루오리다.”라고 새겨져 있다. (이은상 글, 김중현 씀)
그 뒤로는 “3.1운동 암각문(三一運動 岩刻文:고양시 향토유적 제32호)”이 세워져 있고, “이 암각문은 3.1운동의 역사적 사실을 새긴 기록문이다. 경천애인(敬天愛人)이란 글자와 함께 獨立宣言文은 己未年 2월 10일 최남선(崔南善)이 작성하였으며, 3월1일 탑동공원(塔洞公園)에서 자신이 독립선언 만세를 도창(導唱)했다.”고 씌여있다. 연하여 이 암각문은 1886년 해주(海州)에서 출생한 독립운동가 정재용이 3.1운동 이 후에 새긴 것으로 추정한다.
풍우(風雨)에 닳아서 새겨진 글씨가 희미하게 보여 제대로 판독(判讀)하기가 쉽지 않으며, 그 옆으로는 “北漢山 白雲臺 836m"라는 글씨가 굵직하게 새겨져 있고, 안전철책 옆에는 ‘대한민국 태극기’가 바람에 나부끼고 있습니다.
힘겹게 오른 기념으로 윤갑용 총무님께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는 필자도 한 컷 찍습니다. 서둘러 내려와서 바로 아래 백운대의 너럭바위에서 여러 회원님들과 함께 점심을 맛나게 드심니다.
식후 잠시 쉬면서 천하(天下)를 조망(眺望)하는데... 북한산은 백두대간의 식개산 부근에서 서남으로 뻗어 내린 한북정맥(漢北正脈)을 따라 벽력암산, 대성산, 광덕산, 국사봉, 불국산을 지나 의정부의 한강봉 부근에서 다시 남쪽으로 사패산, 도봉산, 상장봉을 지나 이 곳 북한산에 이르고 그 잔여지맥은 다시 남장대, 인왕산, 남산을 거쳐 큰매봉에서 한강에 그 맥을 떨구고 있으니 이름하여 “도봉지맥”이라 한다.
또한 북한산은 서울의 진산(鎭山)으로 백운봉을 중심으로 인수봉, 만경대가 삼각을 이루어서 일명 “삼각산(三角山)”이라 부르기도 하고, 이 외에도 삼봉산(三峰山), 화산(華山), 부아악(負兒岳)이라 불리워 진다.
아울러 북한산은 북의 백두산, 남의 지리산, 동의 금강산, 서의 묘향산과 더불어 우리나라 오악(五嶽)에 속하며, 국토의 중앙에 위치하여 조선(朝鮮) 창업 이래로 도읍터로서 600여 년이 넘는 장구한 세월의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는곳이다.
멀고 가까운 곳의 아름다운 산봉우리들을 보고 있노라니 반공중(半空中)에 우뚝 솟아 두리둥실 떠 가는 기분이다! 옛 선인들께서 “白雲臺”라 이름 지은 이유를 알 듯 모를 듯... 떠가는 흰 구름속에 나의 혼백을 실어 천상에 전하노라!
여러 회원님들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는 오래 오래 머무르고 싶은 아쉬움을 뒤로한 채 하산길에 접어들어 지근한 거리에 ‘인수봉(仁壽峰. 人首峰)’을 다시보니... 연꽃이 살포시 피려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반 쯤 까놓은 옥수수요, 또 눈을 지그시 깜고 보면 꼭 거시기를 닮아서 신령스런 기운이 천지에 가득합니다 그려!
오를 때에 비하면 그래도 하산길은 수월해서 휴식없이 한 걸음에 보리암까지 내려와 청마루 벤취에서 잠시 쉬다가 북한동역사관을 조금 지나서 우측 계곡을 따라 옛 길로 하산하니, 흐르는 개울물 소리가 대자연의 천년(千年) 교향악(交響樂)이요! 우거진 수풀은 천혜(天惠)의 대자연 병풍(屛風)이로다!
유구(悠久)한 역사속에 천년의 세월은 수유(須臾)던가
한생의 연분이 백년이면, 만남의 인연은 그 얼마이던가
산천도 초목도 모두가 인연법이라 하던데...
우리 연분이 다 하는 그 날까지 자연사랑, 인간사랑 하세나
단기 4351년(서기 2018년) 5월 27일
서울의 진산(鎭山) 북한산(北漢山. 836m)을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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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고문님 장대한 산행기 쓰시느라 노고가
많아습니다.
북한산의 유래와 역사공부 잘하고갑니다ㆍ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감사합니다.~^^
벽송회장님께서 다녀 가셨군요.
당일 진행에 수고 많으셨으며,
늘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 감사 드림니다.
아울러 보잘 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하오며,
항상 강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