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과 운동 (1)
대략적인 얘기
2018년 10월, 툴 수업에서 하는 운동을 이렇게 분류했다. 분류를 시작한 것은 수업 중 학생들 스스로 운동을 선택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였다.
색상으로 분류한 이유는 다다음 편 칼럼에 등장한다.
물론, 교정 운동을 하거나 기초 진도를 나가는 초보자들은 예외다.
현대인에게 좋은 내용이다. 평균적인 현대인을 말한다. 실제로는 우리를 찾아오는 사람들과 우리가 찾아가는 사람들로 한정되는데, 이 분들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
더 구체적으로 (특히, 1998년 이후) 현 시대의 평균적인 한국 (주로 도시) 사람들이다. 일하거나 공부하고 운동하는 보통 사람들.
운동 감각은 성별하고 전혀 상관이 없다. 나이와도 상관 없다. 그러나 나이는 다른 의미에서 중요한 요소다. 나이에 따라 회복력이 다르고 특히 신경의 유연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로 체력이나 심신의 궁핍을 절감한 사람들이 우리를 찾아온다.
왜냐하면 심신의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이토록 경쟁적인 사회에서 따로 운동 시간을 내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경고음이 수차례 울렸고 결국 문제가 발생했지만, 여전히 운동하러 올 수 없는 처지의 사람들이 압도다수다.
운동 감각이 좋든 나쁘든 평소 수면과 휴식이 부족하고 노동 강도가 높은 상황에서는 운동 시간에는 이미 체력과 정신력이 거의 남아있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 모습을 너무 많이 봐왔다. 전적으로 사회의 잘못이지 개인의 잘못이 아니다. 사회라는 단어가 막연하다면, 사회의 운영자들 때문이라고 하자.
히포크라테스적인 의학의 핵심은 우리 몸이 환경과 끊임없는 상호작용 안에 있는 상호 연관된 요소들의 체계라는 점이다.
개인들과 가족들의 육체적 정신적 건강에 미치는 사회 환경의 영향은 어마어마하다.
젊은 프리드리히 엥겔스는 1844년 ⟪영국 노동계급의 상황⟫에서 산업 자본주의의 새로운 세계가 남성과 여성 노동자의 삶을 어떻게 뒤죽박죽으로 만들었는지 생생히 묘사했다.
상상 가능한 모든 폐해들이 가난하지만 평범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마치 돌덩이 비(raining stones)가 내리듯이 쏟아졌다.
우리의 일자리들이 충분히 안정되고,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할 말은 하고 살고 지금보다 훨씬 더 자존감을 지킬 수 있다면,
그리고 개인의 크고 작은 불행이나 곤경에 대해 국가가 충분히 예방하고 지원한다면,
미래 세대의 양육과 성장의 몫이 개인들과 가족들에게 터무니없이 떠맡겨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훨씬 더 건강할 것이다. 물론, 차별과 불평등도 훨씬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현재는 분명한 정반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세계적으로 그렇게 30, 40년이 흘렀고, 한국에서 적어도 20년이 넘었다.
물론, 신자유주의 시대 이전에도 불평등했다. 그러나 갈수록 극심해지고 있다.
개인의 불행은 사회의 불평등과 더욱더 관계된다. 환경이 어려울수록 나쁜 상황에 처할 확률이 높아진다.
⟨Sky 캐슬⟩ 14화에서 이수임은 ⟪우리는 어떻게 괴물이 되어 가는가╶ 신자유주의적 인격의 탄생⟫을 읽었다.
그보다 먼저 ⟨응답하라⟩ 시리즈는 1997년에서 시작했다. 1998년은 IMF로 본격 신자유주의 시대의 개막이니, 향수 어린 테마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이 생존에 대해 걱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 불안 속에서 건강하기 어렵다.
많은 연구들이 불황과 그에 따른 삶의 불안정이 자살, 자살 생각, 우울증, 중독, 학대 등의 수치에 큰 영향을 준다는 점을 보여준다.
거시 경제 침체의 영향은 심지어 아이들의 정신 건강까지 영향을 미친다.
한국도 신자유주의가 본격화된 98년부터 자살률이 폭증했다. 여전히 십수 년째 세계 1위다.
유럽에서 자살률이 가장 낮았던 그리스는 2008년 금융 위기부터 긴축 정책들이 시작되면서 자살률이 60퍼센트 이상 증가했다. 우울증도 두 배로 늘었다.
대체로 1건의 자살은 거의 10건의 자살 시도, 100에서 1000건 사이의 우울증 발생과 연관된다.
우리에게 마음의 평화와 삶을 즐기는 여유가 허락되지 않고, 대신 생존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 수북이 쌓인다면 흔히 더 자극적인 상태를 좇게 된다.
알코올, 성적 자극, 게임, 식욕 등에 지나치게 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건 상품화돼 우리에게 끝없이 소비를 종용하고 있기도 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겪는 거의 모든 건강 문제는 정신적이든 육체적이든 거의 모두 사회와 연결돼 있다.
현실의 조건들이 개인들에게 가하는 영향력은 예상보다 크다.
건강과 관련해 유독 많이 강조되는 것이 음식과 운동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전체 목록 중에서 한두 가지 항목일 뿐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강조되는 이유는 네가 능력 있다면 좋은 걸 돈 주고 사라는 뜻이다.
좋은 음식과 운동을 구매하라는 처방이다. 그에 비해 충분한 잠은 덜 강조된다.
음식은 대다수가 열흘 이상 굶을 수 있지만, 잠은 하루나 이틀을 안자고 버틸 수가 없는 데도 말이다.
잠은 정신적 육체적 안정과 매우 밀접하다. 잠을 제대로 자지 못하면 정신적 불안정을 겪는다. 섭식의 균형도 거의 깨진다. 운동은커녕, 운동 감각이 훼손된다.
한국 사회 전체가 심각한 수면 부족 상태다. 그런데도 훨씬 덜 강조된다. 왜냐하면 훨씬 더 사회 구조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 수준의 학습 시간과 노동 시간, 노동 강도가 줄어야지만 개인들의 수면 시간이 충분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손쉽게 개인의 노력과 능력 문제로 돌리고 탓할 수 있는 음식과 운동 얘기가 훨씬 더 많은 것이다.
그러나 건강을 위한 전체 목록은 훨씬 더 사회적이다.
흔히 개인의 노력으로도 세상이 크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스토리가 훨씬 더 많이 회자된다. 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그런 일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보여주는 것이다.
희귀하니까 주목 받는 것이다.
많고 많은 사람들이 한데 나서면 훨씬 더 크고 광범위한 변화를 만든다.
예를 들어, 1987년의 6,7,8,9월의 대중 시위와 파업은 단지 직선제 즉 6.29 선언을 얻은 게 아니다.
중국집 배달 노동자의 임금까지 인상됐다.
세계적인 신자유주의 기조에 따른 불평등 심화 정책들을 늦추는 대신 오히려 전국민건강보험제도가 도입됐다.
문화와 교육 영역에서의 변화들은 물론이다. 악명높은 한국의 자살률이 1987~90년 가장 낮았다.
이런 이야기들이 역사 그 자체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들은 항상 더 찾아보고 들춰봐야 비로소 잘 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진실을 확신할수록 이 사회의 운영자와 소유자 들이 피곤해지기 때문이다.
이 글에서 나는 내 직업과 관련된 특별한 경험담을 여러분과 공유하고 있지만, 현실의 씁쓸함을 말하지 않고서는 공정하게 이야기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세상이 변하면, 우리 개개인 몇몇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이 건강하게 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핵심으로 돌아가 정리하면,
“여러분 개인의 잘못이나 실패가 아닙니다. ”
“기왕 운동할 수 있다면, 이렇게 해봅시다. 이건 정말로 괜찮은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