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듯한 이별
장순금(시인)
박상천 시집『그녀를 그리다』
나무발전소
자꾸 저전력 모드로 들어가는 날이 많아지고서야
그가 나의 전원이었음을 깨닫는다.
그의 웃음만이 아니라
도란거리는 일상의 말소리나
술 적게 마시라는 잔소리까지도
나를 충전시키는 전원이었음을,
내가 그곳에 선을 대고 있었음을,
그 전원이 끊긴 후,
빨간색의 저전력 모드 경고가 들어오고야
그와의 일상이 바로 전원이었음을 깨닫는다.
—「전원」전문
늘 곁에 있지만 늘 없는 사람, 삶의 곳곳에 남아 있는 흔적이 떠나간
이에 대한 그리움으로 박상천 시인의 시집『그녀를 그리다』가 상재되었
다
표지는 아내가 좋아하던 능소화 큰 잎사귀가 주황색 바탕에 단아하게
그려져 있다.
인생에 가장 큰 상실감은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한다. 불현듯 세상을
뜬 아내를 그리워한 마음이 어찌 시집 한 권으로 다 말할 수 있겠냐마는
떠난 지 10년이 되는 즈음에 일상 속 곳곳에 남아 있는 그녀와, 그간 낯
선 곳에 버려진 듯한 상실감과 절망으로부터 다소는 빠져나와졌다는,
또는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간의 시를 묶어냄으로써 가능한 한, 슬
픈 시는 마무리 짓고자 함이다. 시집 한 권에 담긴 시들은 모두 아내와
함께 한 삶, 30년 가까운 세월에 서로 둥글어져 속 깊은 친구가 되기까
지의 인내와 이해가 함께 술잔 나누는 진솔한 부부로, 그리고 느닷없는
사별 후, 엉뚱한 어둠 속에 버려진 절망과 고통에 관한 기록들이다.
박상천 시인은 1980년에 등단하였으니 시력 40년이 훌쩍 넘은 중견
시인이시다. 한국시협상을 1988년에 수상하였으며 한일대역시집과, 다
섯 번째 시집『그녀를 그리다』를 금번에 발간하였다. 등단 42년 동안 시
집 5권을 냈으니 과작이 아닐 수 없다. 오래 몸담은 한양대학교에서 부
총장을 지냈으며 국문학과와 문화콘텐츠학과를 끝으로 정년을 하였다.
“그의 웃음만이 아니라/ 도란거리는 일상의 말소리나/ 술 적게 마시라
는 잔소리까지도/ 나를 충전시키는 전원이었음을”
가족은 믿는 공기와도 같아 늘 그 자리 거기 있으려니 하여 없을 때를
상상하지 못한다. 습관처럼 반복하는 말은 모두 애정어린 당부이고 염
려인데 들을 때는 귓등으로 흘려버리니, 그 염려해줄 사람의 자리가 비
어있다.
“자꾸 저전력 모드로 들어가는 날이 많아지고서야/ 그가 나의 전원이
었음을 깨닫는다”//“ 그 전원이 끊긴 후,/ 빨간색의 저전력 모드 경고가
들어오고야/ 그와의 일상이 바로 전원이었음을 깨닫는다”
평소에 늘 켜져 있던 그 전원은, 창가로 올라온 찔레꽃이고 주말농장
에서 쑥갓 씨를 뿌리고 인생 여행을 끝까지 함께 할 거라 믿은 친구이고
담금 과일주를 함께 마시던 평범한 일상이었다. 늦은 밤 터벅거리며 돌
아오는 발자국 소리에도 남편의 귀가를 알아채고 삐걱거리는 연골 관절
사이에 숨어있는 윤활유 같은 아내였다,
시인은 아내 부재의 고통을 시로 쓰는 동안은 괴롭기보다는 오히려 마
음을 안정시키는 위로가 되었다고 하니 아마도 아내의 영혼이 시 속으
로 달려와 준 것만 같다.
우리는 영원히 살 것같이 날마다 바쁘게 산다. 어느 날 예고 없이 들
이닥친 벽력에 당면하고 보면 내 인생에 이런 장면이 예정되어 있었던
가, 하는 신의 존재에 대한 본질적 의심과 절망과 당혹감의 불가항력에
부딪힌다.
이별한 지 어언 10년이 되니 세월이 약이란 말이 조금은 위로가 되는
건지,
“그저 살다 보면 살아진다”//“ 밥을 먹다가도/ 갑자기 울컥하며 목이
메어/ 한참을 멍하니 있는 때도 많았지만 살다 보니 살아졌다”//“ 그 시
간들도 그렇게 지나가고/ 살다 보니 살아졌다”「( 살다 보면 살아진다」)
참으로 절대자의 궤도 안에서 살아 있는 동안은 살아 있음의 편일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지나 상처도 조금씩 아물어지고 묘소에 가는 횟수도
줄게 되고 삶 속의 흔적도 조금씩 지워지는 것 같다.
시인의 인생 마지막 기도는 언젠가는 이별할 딸과는‘고마웠다’는 말
도 건네는 따뜻한 이별을 하는 것이 소망이라니 시인은 이미 멀고도 낯
선 세계를 다녀온 듯 초연해 보인다. 다음 시집은 극복과 초월을 통한
상처가 시의 제단에서 생명이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들로 꽃 피우리라
믿는다.
『그녀를 그리다』책장을 덮으며 햇살 비치는 고요 아침, 시인은 은총
의 나날, 기도 속에서 시를 응원하는 그리운 이를 만나리라.
인생에 가장 큰 상실감은 배우자와의 사별이라고 한다. 불현듯 세상을
뜬 아내를 그리워한 마음이 어찌 시집 한 권으로 다 말할 수 있겠냐마는
떠난 지 10년이 되는 즈음에 일상 속 곳곳에 남아 있는 그녀와, 그간 낯
선 곳에 버려진 듯한 상실감과 절망으로부터 다소는 빠져나와졌다는,
또는 나와야겠다는 생각으로 그간의 시를 묶어냄으로써 가능한 한, 슬
픈 시는 마무리 짓고자 함이다. 시집 한 권에 담긴 시들은 모두 아내와
함께 한 삶, 30년 가까운 세월에 서로 둥글어져 속 깊은 친구가 되기까
지의 인내와 이해가 함께 술잔 나누는 진솔한 부부로, 그리고 느닷없는
사별 후, 엉뚱한 어둠 속에 버려진 절망과 고통에 관한 기록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