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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 기념
일제침략기 한국문학사 재조명
김동수(백제예술대 명예교수)
Ⅰ. 머리말
일제의 침략과 더불어 시작된 한국의 현대문학은 조선총독부에 의해 우리 문학이 관리·통제되면서 바른 궤도 진입에 실패한 채 오늘에 이르렀다. “식민주의에 대한 냉철한 비판의식과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한 작품의 공식적인 유통은 검열에 의하여 원천적으로 봉쇄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국의 모더니즘도 3. 1운동 직후의 상징주의도 위험한 역사적 현장 접근을 피했으며, 프로문학의 뒤를 이은 순수문학도 가난한 농촌이 ‘아름다운 메밀밭’과 ‘술 익은 마을마다’로 미화되면서 헐벗고 굶주리는 민중에 대하여 눈감고 입을 다물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광복 후에도 점령국에 의해 우리의 문학이 주체성을 살리지 못한 채 반공법이라는 이름 아래 여전히 창작과 표현의 자율성이 제한을 받게 되었다.
이처럼 일제의 식민사관과 반공 이데올로기 통치논리에 의해 우리 문학이 순치 되어 가면서 민족의 염원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탈민족적 성향으로 굴절되어 가고 있었다. 이에 필자는 이러한 일련의 과정에서 간과되었던 일제침략기 망명문학(亡命文學)과 지하문학(地下文學) 그리고 광복 후 반공법으로 인한 규제 문학 등 민족 시가의 한 흐름을 민족 주체사관의 입장에서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하지만 한국 현대시 100년사 속에서 민족이라는 이념에 기준을 두고 이를 통시적으로 성찰하기란 무리일 수밖에 없다. 때문에 본고에서는 관련 자료들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보다는 민족적 격랑기를 중심으로 그 자료들을 발굴하고 이를 개괄적으로 정리·소개하면서 기존의 문학사에 대한 문제 제기와 재인식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II. 일제침략기 한국문학
일제침략기 한국의 국내문학은 조선총독부의 언론탄압 정책 아래에서 공간된 간행물이라는 점에서 반일감정이나 민족의식이 사전에 봉쇄된 ‘식민지 종속문학’으로 관리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검열에 의해 통제되고 압수된 일부 지하문학과 해외망명문학들은 당시 우리 민족의 참상과 소망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있어 진정한 민족문학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에 일제 침략기 한국문학의 흐름을 국내 관리문학과 검열에 압수된 항일 지하문학(地下文學)그리고 해외 망명문학(亡命文學)으로 나누어 그 차이와 특성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국내 식민지 문학
최남선의 「경부철도 노래」와 우리나라 최초의 신체시「海에게서 少年에게」는 일제의 침략 현실을 외면, 그들의 식민정책에 동조함으로써 민족의 의지와 멀어져 있었다. 러일전쟁 후 일제가 대륙 침략과 한반도를 식민지화하면서 침략통로로 가설한 경부철도가 마치 우리에게 새 세상을 열어주는 양 ‘우렁차게 딴 세상 절로 일워’가고 있다고 환영하고 있는가 하면, 「海에서 少年에게」는 ‘요것이 무어야 요게 무어야’하면서 힘찬 파도, 곧 해양세력으로 모든 것을 ‘때리고 부수고 무너버리자.’고 한다. ‘이러한 자세는 우리의 전통 질서와 가치관에 대한 부정, 그리고 새로운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지게 되면서 때마침 한반도를 강점하고 있는 일제의 내습에 대한 지지 논리로 이어질 뿐, 민족의 활로를 위해 그 어떤 구체적이고도 긍정적인 대안을 제시해 주지 못한 채 식민지 현실에 동조하고 있다’.
1920년대에 등장한 창조, 폐허, 장미촌, 백조 등의 허무적 감상성과 은둔 정서도 사회의식과는 먼 폐쇄적 자아의 산물에 다름 아니었으며, 1930년대 순수시 계열의 시문학파, 서구문예방법론 도입한 모더니즘도 탈사회적 개인적 서정의 세계였으며, 1940년대에 들어 춘원, 모윤숙, 서정주 등은 친일에 동조,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책무를 외면하고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 전쟁에 동조하고 있었다.
이처럼 국내 시문학이 대부분 식민지 관리문학으로 굴절되어 가고 있었지만 그런 와중에도 피폐한 민족적 현실을 타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니 당시 <백조파>의 병약한 감상주의에 반기를 들고 일어선 김기진의 <신경향파> 운동이 그것이었다. 이들의 행동은 격정적 저항을 꿈꾸면서 1925년 KAPF를 결성하고 ‘力의 예술’을 부르짖었지만, 이들의 저항은 그 대상이 일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를 앞세우는 ‘계급주의 문학’라는 점에서, 설사 그것이 일제의 식민체제에서 벗어나는데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그것을 민족적 저항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2. 항일 지하문학
이에 비해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심훈의 「그날이 오면」, 이원수의 「헌 모자」, 권구현의 「새로운 날」, 이육사의 「절정」 등 반일 민족 시가들은 대부분 언론 검열에 의하여 규제되었던 지하문학들로서 일제의 가혹한 침략 속에서도 식민지 현실을 직시하여 민족정기를 드높인 항일 민족문학이다.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중략-/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이상화,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에서, 1926,6 『개벽』
* 『개벽』은 두 달 후 항일적 저항성이 문제되어 강제 폐간 됨(1926.8).
학교 마루구석에 쓸쓸한 모자
보름이 지나도록 걸린 헌 모자
그 남자 수남이는 아빠 따라서
울며불며 북간도로 집 떠났다오
-이원수, 「헌 모자」에서, 1930, 2, 20 조선일보
* 독립을 종용하거나 排日的 도발성을 띤 시가로 분류되어 압수됨
들으라, 가슴을 뛰게 하는 이 고함 소리를,
새로운 날의 산고(産苦)를 외치는 막바지는 다가 왔구나. /- 중략-/
오라 오라 용감한 길잡이여 나오라
떨어지려는 해를 잡아 동녘에 되 던지라/-중략-/
용감한 무리여 새 날을 맞이하러 오라.
-권구현,, 「새로운 날」에서, 1930, 3, 2
* 동아일보에 게재될 예정이었으나 검열에 걸려 압수됨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며는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 날이
이 목숨이 끊치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르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드리 받아 울리오리다.
두 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이 남으오리까
-심훈,「그날이 오면」에서, 1930.3.1
* 출판금지로- 1949년에 출판됨.
이들의 현실 인식은, 민족적 현실을 외면하고 왜곡한 소위 육당과 춘원류의 식민지 종속문학들과는 달랐다. 빼앗긴 조국, 침략과 수탈로 피폐해진 우리 농촌과 북간도로의 유랑, 새날에 대한 염원과 몸부림, 그날을 위한 순국의 투지 등 폭력적 현실에 짓눌려 사는 민족의 참상에 대한 고발이 있는가 하면, 광복을 갈망하는 민족적 염원들이 뜨겁게 용솟음치고 있다.
3. 해외 망명문학
1904년에 체결한 한일의정서로 우리의 자율권이 침해당하자 각처에서 의병들이 속출했다. 가중된 일제의 탄압과 수탈로 국내에서 더 이상 저항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일부 애국지사들은 국권회복을 위해 국외로 망명했으며, 이 중에는 상당수의 문인 혹은 문인급 인사들이 있었다. 이들은 만주와 연해주 그리고 미주 등지로 망명하여 그곳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면서 교포 신문과 잡지들을 발간하고 거기에 많은 애국 시가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상해 임시 정부에서 발간한 <독립신문>과 샌프란시스코의 <공립신보>, 블라디보스톡의 <대동공보>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거기에 실려 있는 시가들은 항일 애국 문학으로서 망국의 현실을 괴로워하면서 일제의 침략상 고발과 국권회복을 염원하고 있었다. 민족적 현실을 외면·호도한 국내 식민지 종속문학들과 비교해 볼 때, 쫓고 쫓기는 적과의 투쟁과정에서 생산된 특수성으로 인해 작품성이 다소 거칠다 하더라도, 당시 우리 민족의 염원과 진실이 무엇이었나를 규찰해 볼 수 있는 민족문학의 자료들이다.
[국내문학] [망명 문학]
이인직의 「血의 淚」1906 전씨 애국가(샌프란시스코) 1908
최남선의 「海에게서 少年에게」1908 불평가 (블라디보스톡) 1909
이광수의 『무정』1917 조국 생각 (북간도) 1914
↓ ↓
(일제의 내습 - 동조 / 환영) (일제의 내습 - 침략으로 규정)
↓ ↓
(문명개화 / 친일문학) (주권 회복 / 구국문학)
국내문학이 일제의 내습에 동조ㆍ환영하고 있을 때, 아래의 망명문학들은 일제의 한반도 진출을 침략으로 규정하고 주권 회복을 위한 구국문학(救國文學)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건곤감리 태극기를 지구상에 높이날려
만세만세 만만세로 대한독립 어서하세
-전명운, 「뎐씨 애국가」,1908, 4, 1, 샌프란시스코, 『共立新報』
나라 없는 우리민족 슬픈 한이 과잉하야
자유독립 도모하나 애닯도다 대한국이
지구상에 친구 없어/ -중략-/
오호통재 망국인아 두 눈썹을 부릅뜨고
- 「불평가」, 1909, 11, 7. 블라디보스톡, 『大東共報』
이 곳은 우리나라 아니건만 무엇을 바라고 이에 왔는가
자손에 거름될 이내 독립군 설 땅이 없지만 희망이 있네
국명을 잃어버린 우리 민족 하해에 티끌같이 떠다니네 /-중략-/
- 「조국 생각」, 『광성중학교 음악 교재 』, 1914, 북간도
「뎐씨 애국가」는 샌프란시스코에서 친일파이면서 한국 정부 고문인 스티븐슨(美)이 일본의 한반도 진출을 찬양하고 이는 ‘한국인들이 원하는 바’라는 요지의 글을 각 신문에 게재하자 유학차 이곳에 와 있던 전명운이 이에 격분하여 그를 저격한 후 지은 창가체 시가이다. 「불평가」는 연해주로 망명한 애국지사들이 발간한 교포신문의 하나인 『大東共報』에 실린 시로서, 국권 회복과 광복에 대한 다짐, 그런가 하면 북간도에서 발간된 『광성중학교 음악 교재』에 실린 「조국 생각」은 나라 잃은 백성의 설움과 일제에 대한 적개심을 분명히 드러내면서 광복의지를 다지고 있었다.
III. 광복 후 이념 대립
1. 친일파의 등장과 사라진 문인들-
일제의 뒤를 이어 한반도에 진출한 미국을 등에 업고 귀국한 이승만은 취약한 국내 정치 기반 확보를 위해 친일파를 끌어들이면서 ‘반공’이란 구호 아래 삼천만이 너나없이 한데 뭉치자고 종용했다. 이로써 광복과 더불어 모처럼 민족정기를 바로 세워보겠다던 민족의 꿈은 사라지고 그때까지 숨죽이고 있던 친일세력 문인들에게 면죄부를 주게 됨으로써 그들이 역사의 주역으로 다시 등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친일 잡자는 놈은 다 공산당’으로 몰리게 되어 민족정기는 다시 빛을 잃게 되었다.
이 때 전국 문인(150여명~160명, -6.25 직후) 중 약 80%에 해당된 문인들이 정치적 이념이나 미군청의 탄압에 의해 자진 월북과 납북(120명)으로 우리의 문학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반공문학’이 우리 문학사의 전면에 등장하여 문단의 주류를 이루면서 ’80년대 말까지 우리 문학은 20%에 해당된 남한의 문학에만 의존하는 문학사의 불구성을 면치 못하게 되었다.
2. 6.25에 대한 두 시각-
‘점령군으로 한반도에 진출한 미국은 이 땅에서 좌우익 싸움을 붙였고, 조국을 남과 북으로 갈라놓으면서 형제 증오를 반공으로 강화했는가 하면, 독재자를 밀어주며 민족 세력을 억압하면서, 허울 좋은 가식적 민주주의를 내세워 그들을 은인국․우방국가로 행세를 하였다. 이러한 과정에서 6.25가 일어났다.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청마의 「보병과 더불어」, 구상의 「초토의 시」, 조지훈의 「역사 앞에서」등이 이러한 6.25 전쟁을 시의 소재로 삼았다.
하지만 각기 조금씩 다른 관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모윤숙과 구상의 사뭇 다른 두 시각의 차이는 남북 분단과 이로 인한 전쟁의 근원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우게 하는 대조적인 시로서 주목을 받고 있다.
모윤숙은 북한군을 우리가 끝까지 물리쳐야 할 ‘원수’로 규정하고 있지만, 구상은 남북을 다 같이 한반도를 점령한 강대국들의 패권논리에 분단된 희생양으로 보고 있다. 다시 말해 조국광복이 민족보다는 일부 정치가들의 집권욕과 외세의 사주에 의해 우리 조국이 두 조각으로 분단되어 가고 있다는 시각과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다. 친일과 반공으로 이어지는 모윤숙과 달리, 조국 분단과 6.25 전쟁의 근원적 책임이 어디에 있는가에 대한 보다 거시적 관점을 보이고 있다.
산 옆 외 따른 골짜기에
혼자 누워 있는 국군을 본다. /-중략-/
원수를 밀어가며 싸웠노라
나는 더 가고 싶었노라. 저 원수의 하늘에까지
-모윤숙,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 1952
저기 모두 세기(世紀)의 白丁들,
도마 위에 오른 고기 마냥 너를 난도질하려는데
하늘은 왜 이다지도 무심만 하다더냐 /- 중략-/
조국아! 심청이 마냥 불쌍하기만 한
조국아!
- 구상, 「초토의 시 15」에서 - 휴전협상 때-, 1953
분단 극복을 위해서는 미국을 극복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우리 민족의 분단은 민족 내부의 갈등 때문이 아니라 미국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그것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단독으로 점령하고자 했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자 분할 점령을 선택했다. 광복 직후에도 우리 민족이 자체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도록 두지 않고 강력한 미군정을 실시했다. 미군정이 종료할 때에도 통일독립국가 수립을 한사코 방해하여 결국 한반도는 분단되었다. 1945년 9월 8일 미군이 한반도에 진주하면서, 이 땅에는 우리 민족에 의한 진정한 해방도, 진정한 자주독립, 통일독립도 저지된 것이다.
- 이형구, [9.8 미군주둔⓶] 남북을 분단시킨 미군의 한반도 점령
IV. 마무리
그동안 우리는 일제의 침략과 점령국들에 의해 남북으로 분단되어 민족주체와 통일보다는 좌익과 우익, 보수와 진보, 동과 서로 나뉘어 민족적 역량을 소모하면서 세계화의 격랑 속에서 혼미를 거듭하고 있다. 이처럼 무국적, 무정형의 혼조 속에서 우리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민족적 과제의 하나가 우리의 정통문학사를 복원하는 문제이다.
한반도를 이제껏 점령해온 지배자들의 통치논리에 의해 왜곡되고 굴절된 탈민족 성향의 문학사가 아니라 우리 민족의 소망과 진실이 여실하게 아로새겨진 진정한 한민족의 문학사, 그러기 위해선 일제침략기 검열에 의해 국내에서 발간된 식민지 종속문학에서 벗어나, 당시 해외로 망명했던 애국인사들이 독립투쟁 과정에서 발표했던 항일망명문학 작품들도, 그리고 일제에 의해 규제되고 일실(逸失)된 항일 지하문학들도 우리의 문학사에 수용되어야 한다.
뿐만 아니다. 광복 후 월북(납북)작가들에 대한 대대적 연구와 그간 반공법으로 묶여 있던 민중문학들도 재평가하여 굴절된 문학사를 바로 잡아야 한다. 금년이 3.1운동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만시지탄이지만 이제라도 한민족의 정통문학사가 정립(正立)되기를 바란다.
그러기 위해 그간 방치해 두었던 일제침략기 해외망명 문학작품 수집과 정리 그리고 그에 따른 한국문학사 개편작업이 하루속히 이루어지기 위해 교육교육부 산하에 ‘한국현대문학사 바로세우기 추진위원회’ 설립을 제안한다. (김동수: kitosu@hanmail.net/ 010-6541-6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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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하하하하하하하! 우리나라 수난의 문학사를
간결하면서도 가슴 벅차게 그려 내셨습니다.
이런 논문은 우리 이언 김동수 시인 같은 대문호가 아니면
결코 표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요즘 왠만하면 참으려고 헀는데 한 친일파 인사가
일제의 교육과 인프라 건설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이 이렇게 발전 할 수 있겠느냐는
막말을 해 조금 다퉜습니다.
아직도 친일의 잔재가 큰 소리를 치다니요?
가슴이 아픕니다.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졸문 놓치지 않고 살펴보아 격려해 주시니 그에 힘 입어 그저 열심히 쓰고 있을 따름입니다. 오는 2월 26일 오전 10시 국회의원 회관 제 9간담회의실에서 발표하기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