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문학의 축복"이라는 찬사를 받는 노작가 박완서 씨를 아십니까? 40세에 늦깎이로 문단에 데뷔하신 이래 좋은 작품을 많이 쓰셨는데, 저는 그중에서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이라는 단편소설이 참 감명 깊더군요. 63세에 발표하셔서 이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작품입니다.
- 저자
- 박완서 지음
- 출판사
- 문학동네 | 2006-08-25 출간
- 카테고리
- 소설
- 책소개
- 박완서의 단편소설 전집 제5권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개정...
그런 좋은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또 있었다고 합니다. 그분이 4녀1남을 두었는데, 딸들도 사랑하긴 했지만 외아들을 너무나 끔찍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잘생기고, 건강하고, 착하고, 똑똑하기까지 한 나무랄 데 없는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명문대 의대에 다니고 있었으니 또 얼마나 대견했겠습니까?
그런데 암으로 남편을 잃은 지 석 달 만에 사고로 아들을 잃었습니다. 26살 한창 나이에 아들이 명을 달리한 것입니다. 그 분이 쓰신 '한 말씀만 하소서' 라는 수기를 보면 아들을 잃고 나서 겪은 방황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 저자
- 박완서 지음
- 출판사
- 세계사 | 2004-12-24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작가 박완서가 아들의 죽음을 겪으면서 기록한 일기 한 말씀 하소...
왜 내가 아들을 잃게 되었는지, 왜 하필 나인지 '한마디만 해 달라'고 통곡하는 내용입니다. 남편을 잃었을 때는 그렇게
슬프지 않았는데, 아들을 잃고 나니까 아무리 해도 마음이 달래지지가 않더랍니다. 딸들을 보면 '너희들이 대신 죽지, 하필이면 걔가 죽니?' 하는 마음까지 들었던 모양입니다. 너무 원통하고 아무리 누가 위로를 해줘도 소용이 없어서, 수녀원에도 들어갔다가
외국에도 갔다가 하면서 몇 년을 방황했다고 합니다 .
그러면서 한 가지 깨달은 게 있는데, 그 내용이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 나옵니다. 소설을 보면 친구가 어딜 가자고 해서 따라나서는데 버스를 몇 번 갈아타고 산동네로 갑니다. 허름한 판잣집에 도착하는데, 그곳에 여고 동창생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의 식물인간이 된 아들을 끼고 있습니다. 아들이 멀뚱멀뚱 누워서 지내는데 악취가 코를 찌르고 도저히 봐줄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그 어머니는 아들을 너무나 애지중지하면서 이리 뒤집었다 저리 뒤집었다 합니다. 자꾸 뒤집어 줘야 욕창이 안 생기니까요. 머리도 빗겨주고, 밥도 먹여주고, 대소변도 다 받아줍니다.
그러면서 "이 녀석이 왜 살아서 나를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는가? 내가 이놈 때문에 꼼짝도 못하고 하루 종일 지쳐 있다'고 투정을 합니다. '빨리 죽어버려라!'하고 악담을 하기도 하고요. 입으로는 욕을 하지만 마음은 사실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소설 속 주인공이 그 장면을 보면서 깨닫습니다. 아들이 살아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렇게 기쁜 일이구나! 자기는 그런 아들도 없기 때문에 ...... 저렇게 사람 구실을 못해도 좋으니 살아만 있다면.....
사랑이란 그런 것입니다. 불구가 되었든 뭐가 어찌 되었든 살아 있다는 것, 생명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있고
감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랑입니다. 그 이상 상대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입니다. 살아 있으면 되는 것이니까요.
그러니 누군가를 사랑하신다면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너무 고맙다'는 마음을 가져보시면 어떨까 합니다. 지금 같이 있지 않다면
'서울 하늘 아래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을 갖고 그 분이 서울이 있지 않다면 '지금 이 시대에 지구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숨 쉬는 것만으로도 고맙다'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사랑입니다.
제가 아는 어느 남자 분은 어머니 산소에 자주 가십니다. 한번은 산소에 다녀오시더니 "아무래도 산소에 물이 고인 것 같습니다. 이장을 해야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제가 "이장할 것 없이 이참에 화장을 하시면 어떻겠습니까?"라고 제안했더니 "그러면 제가 찾아갈 데가 없지 않습니까"라고 대답하시더군요. 자기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산소에 모시다가, 나중에 자기가 죽을 때쯤 되면 화장하겠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가 폐결핵을 앓으셔서 어렸을 때 어머니 젖을 먹어보지 못했답니다. 병이 옮을까봐 어머니 곁에 갈 수도 없었고요. 어머니가 아들을 안아주지도 못한 것이지요.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항상 있는 겁니다. 젖도 한번 못 물어보고, 안겨보지도 못했기 때문에.... 그래서 화장을 못 시키겠다고 하더군요.
살아 계셔주기만 해도 너무나 감사한 일이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너무 늦게 알아지더군요. 살아 계셔주기만 해도 감사한데, 그걸 알지 못하고 사소한 일로 힘들게 합니다. 큰 것을 한번 잃어보면 작은 일은 사소하다는 것을 알게 되는데, 잃어보지 못하면 작은 일이 너무 크게 보이는 것이지요.
어렵게 어렵게 이혼한 친구가 있었습니다. 주위에서 누가 돈을 얼마 잃었다는 얘기를 하니까 "나는 그런 건 다 시시해 보여!'라고 말하더군요. 한번 쇠망치로 두들겨 맞아보니까 작은 일은 일 같지도 않더랍니다. 그런 일쯤은 시시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귀함을 모르면 잃게 합니다. 지구라는 학교에 입학한 우리는 반드시 그런 공부를 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에 너무 집착하면 사랑을 잃게 하고, 돈에 대해 너무 집착하면 돈을 잃게 합니다. 사실 욕심이라는 것이 돈보다는 다른 것에 대한 욕심이 더 무섭습니다. 지나치게 애정을 갈구하는 욕심, 이름 석 자를 대단하게 여기는 욕심....
잃게 했는데도 깨닫지 못하면 결국은 다 잃게 합니다. 아예 없어져 버리는 것이지요. 그러니까 가볍게 다가올 때 공부의 주제를 알아채어 취하시면 순탄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모르고, 그래도 또 모르고 ......, 이러면 인생길이 험해지는 것이지요.
만약 그분이 안 계시다면 어떻하겠습니까? 그 때는 왜 살아 계시는 것만으로 감사하지 못했을까? 왜 사소한 것 때문에 그렇게 힘들게 했을까, 이렇게 후회하실 겁니다.
인간에게 사랑이 정말 필요 없는 것인지요?
필요하다
헌데 왜 전에 사랑이 필요 없다 하시었습니까?
네가 말하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
인간적인 사랑이 필요 없다 하였느니라.
그러면 다른 사랑도 있사옵니까?
있다. 우주의 사랑이 있다.
우주의 사랑은 그 자체가 어떤 맛이나 향이 있는 것이 아니며
존재하는 것만으로 만물에 희망을 주는 것이다.
사랑은 꼭 이성 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며
남녀 간의 사랑은 불과 10%도 미치지 못하므로
사랑의 전부인 것처럼 정의되기도 하는 성은
전체 사랑의 작은 부분을 포함한다
사랑의 향기가 멀리 가는 것은
인간적인 것을 우주적인 것으로 승화시켰을 때이다.
우주적인 것으로의 승화는 조건이 없을 때 이루어진다.
이 조건으로 인하여 상대에 대한 불신과 원망과 미움이
싹트게 되는 것은 인간이 아직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조건에서 벗어나는 길은 놓아버리는 것이다.
조건은 욕심의 다른 표현이다.
인간이 사랑을 할 수 있도록 창조된 것은 그 사랑을 정신적으로
승화시켜 우주의 사랑에 동일한 형태로 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인간은 이 사랑으로 포장된 마魔의 수중에서 의미파악도 못한 채
지배되어 온 경우가 허다해왔다.
- '선계에 가고 싶다' 에서
- 저자
- 문화영 지음
- 출판사
- 수선재 | 2008-05-26 출간
- 카테고리
- 시/에세이
- 책소개
- 인생에 대한 근원적 의문을 풀어주는 '인생 지침서' 삶이 잘 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