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스님의 놀라운 밀고 이야기에 대한 성찰
요즘은 세월호 참사로 너나 할 것 없이 마음이 무겁게 흐르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민족대표 33인 중에 한 분인 용성스님의 밀고에 대한 놀라운 이야기를 접했습니다. 용성스님의 문중인 법륜스님이 한 이야기를 조현기자님이 휴심정에 글로 올렸습니다.
기사 타이틀은 (3.1운동 때 33인들의 신발과 옷 감추고 신고케 한 용성스님) 이고, 글의 제목은 (법륜스님이 이야기하는 용성스님)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근대사의 스님들 중에서 용성스님의 캐랙터에 매력을 느끼고 좋아합니다. 그러나 글의 내용을 보았을 때 당황스럽고 무엇인가 마음이 매우 석연치 않습니다.
먼저 실린 글에서 문구를 그대로 인용하겠습니다.
(3·1운동 당시 종교인 대표 33인이 애초 작정한 탑골공원에 가지도 못하고, 인근 태화관에서 독립선언서만 낭독하고 헤어져버리면, 독립운동이 전국민적으로 불이 붙지 않기 때문에 태화관 기생들을 시켜 33인의 두루마기와 신발을 감추어 돌아가지 못하게 한 뒤, 제자 동헌스님을 시켜 “내가 바로 태화관 주인”이라고 총독부에 신고전화를 하게 해, 자신을 비롯한 33인을 모두 잡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이 내용의 역사적 사실 여부는 제가 다룰 내용이 아닙니다.
어떤 분이 연구를 하여 확인해 주시기를 희망합니다.
저는 이 내용이 전하는 용성스님의 행동을 합리적으로 납득을 할 수가 없고 내내 아쉬움이 맴돕니다.
그 점에 대하여 몇 가지 측면에서 말씀을 올립니다.
첫째
용성스님의 뜻이 어떤 것이었던 간에 33인 중 단 한 명이라도 모르게 하고 단행했다면 문제가 심각합니다.
민족 지도자들이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에 벗어놓은 두루마기와 신발이 없어져서 어리둥절하며 찾다가 들이닥친 총독부 경찰들에게 어수선하고 엉거주춤하게 잡혀가는 모습을 그려보십시오.
민족의 지도자들이 감추어진 옷과 신발을 찾고 있다가 엉거주춤하게 전원이 체포되게 한 행동이 이해가 됩니까?
태화관 기생들에게 민족 대표자들의 두루마기와 신발을 감추게 해서 못 나가게 하고 체포될 때까지 시간을 끌다니요?
마음에 분기와 슬픔이 입니다. 한숨이 나옵니다.
정말 격에 맞지 않습니다.
아무리 여러 번 곰곰이 생각해봐도 배워서는 안될 독선적 행동인 것 같습니다.
도저히 고귀한 뜻을 품은 동지들에 대한 신뢰와 예의가 있다고 생각할 수 없는 행동입니다.
액면 그대로 보자면 동지들 모르게 제자를 시켜서 밀고를 한 배신의 형태인 것입니다.
그것을 선사의 깊은 현기이고 큰 행동이라고 말한다면 그 것은 괴이한 변설일 것입니다.
만약 그 당시 함께 참여한 무명의 젊은이가 있어서 독립선언의 불을 크게 지피기 위하여 33인 몰래 밀고를 하여 모두 잡혀가게 했다고 가정해봅시다.
역사는 그 행동을 어떻게 기록하고 어떻게 판단할까요?
유명, 무명 이름에 편견없이 공정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평등심입니다.
둘째
목적의 정당성 못지않게 수단과 진행과정의 정당성이 중요합니다.
목적의 달성을 위해서 사용하는 수단과 진행과정이 정당한 것인가를 깊게 고려하여야 합니다.
목적 달성을 위한 방책과 수단에 대하여 투명하게 밝힌 후 의견수렴을 거치지 않고 모인 대중들 몰래 대중 공동의 일을 처리하였습니다.
이것은 근본적으로 자신의 견해에 대한 우월감으로 인한 행동입니다. 우열, 나이, 신분에 관계없이 진심으로 동지들의 뜻을 평등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식견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대단한 분별과 오만입니다.
설사 그 당시 상황에서 현명한 의견일지라도 반드시 모인 동지들 모두 함께 하는 공론과 의견수렴 절차를 거쳤어야 합니다.
불교집안의 용어를 빌리자면 ‘대중 공사의 광명정대함’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요즘 자신이 설정한 목적을 위해서 수단을 가리지 않고 상대방을 도외시한 채 밀어 붙이는 독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잘 지켜 보고 있습니다.
결코 본 받을 수 없는 일입니다.
셋째
일을 진행함에 있어서 동원되는 사람의 입장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특히 위험하거나 비난 받을 가능성이 있는 경우는 더욱 그러합니다.
그 당시 용성스님의 생각에 따라서 33인을 총독부에 고발한 제자는 자신이 행동한 결과에 대하여 어떤 심정들을 겪어 나갔을까요?
어떤 뜻으로든 동지를 적에게 밀고하는 형태의 행위가 필요하다면 그것은 용성스님 자신이 직접 했어야 합니다.
제자가 자기가 하겠다고 나서도 결코 제자에게 시킬 일이 아닙니다. 제자에 대한 도리가 아닙니다. 언뜻 사소해 보이지만 가볍게 보지 않아야 할 일입니다.
‘스승병’에 걸리면 자칫 제자를 대하는 것을 가볍게 생각하는 습성이 생깁니다.
또한,태화관 주인으로 가장하여 제자가 전화를 하였다면
태화관 주인입장에서는 얼마나 애꿎은 일이었겠습니까?
훗날 사건의 전말이 명백히 밝혀졌을 때까지 얼마나 많은 오해와 수모를 감수해야 했겠습니까?
여러 사람의 입장을 평등심에 입각하여 두루 살피지 못함입니다.
석가모니 성인은 최하층 민중부터 왕들까지 진심으로 모든 이를 평등하게 여기고 처신하신 분입니다.
넷째
선종의 선사들끼리는 도심의 깊이를 견주어 보는 법거량이란 것을 합니다. 그 때 합리를 넘어서는 선문답, 상식을 벗어나는 파격 및 기행을 보이는 이야기들을 흔히 듣고 동경하고 배웁니다.
선사들의 전래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흥미롭고 신선함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파격과 기행은 많은 문제와 논란을 수반하기도 합니다.
실제로는 괴각이요 막된 행동이 미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깨우친 이의 자유로움을 명분 삼아서 스스로에게 떠오르는 생각을 실행함에 있어서 사회적인 정당성을 신중하고 객관적으로 고려하지 않는 경우가 보입니다.
격외, 파격의 매너리즘이라고 할까요?
선사의 상식을 넘는 파격으로 꽉 막힌 상황을 돌파 하고자 함이라고 볼 수는 없을까라고 반문도 하여 보았습니다.
그러나3.1운동 독립선언문 공표 모임은 산속에서 선사들끼리 도모한 모임이 아닙니다. 그렇게 어려운 시절에 여러 방면의 중요한 인물들이 모여서 도모한 중대한 민족적 거사였습니다.
그 점을 고려하면, 다양하게 모인 훌륭한 지도자들 모르게 행동한 용성스님의 밀고는 정말로 신중치 못한 파격이요 상대를 도외시한 독단 같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용성스님이 어떻게 했으면 모든 이가 그것을 감탄하고 모범을 삼으려고 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했으면 시대를 뛰어넘어 역사 속에서 사람들의 높은 귀감이 되었을까요?
만약에 용성스님이 태화관에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한 후에 33인 대중을 향하여 이렇게 제안하고 행동했으면 어땠을까요?
[여러분, 우리는 오늘 원래의 계획대로 탑골공원에서 당당하게 독립선언문을 선포하지 못하고 여기 태화관에서 궁색하게 낭독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민족의 이러한 현실이 견딜 수 없이 쓰라립니다.
그래서 저는 이 자리에서 단정하고 엄숙히 앉아서 당당하게 총독부에 연락하여 독립을 선언하고 일본 순경이 체포하러 오면 무저항으로 체포되어서 감옥으로 가겠습니다. 그 방법을 통하여 독립의 뜻과 의지를 전 백성에게 뚜렷하게 전달하고 독립운동의 불을 지피려고 합니다. 언뜻 방법이 상식을 벗어난 듯 보이지만 오히려 가장 효과적으로 여겨집니다.
벗어놓은 의관을 다시 단정히 차려 입읍시다. 그리고 저와 뜻을 같이하는 분들은 우리 조선의 기개 있는 선비의 모습으로 조용히 좌정합시다.
그러면 내가 직접 전화로 이 모임을 알린 후에 함께 좌정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뜻과 다른 분이 있으면 어서 피하십시오. 방책이 저와 다르더라도 저는 여러분의 견해와 선택 역시 매우 존중합니다. 이 상황에서 어느 것이 현명함인지는 누구도 쉽게 판단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민족의 독립운동을 전개하는 귀중하고 서로 믿는 동지들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빠져나가셔서 민중들을 이끄시고 독립운동을 끈질기게 전개하십시오. 감옥으로 가기로 정한 저희들이 일본 순경들을 맞아 당당하게 우리의 뜻을 주장하며 여러분들이 조금이라도 안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끌어 보겠습니다.자 시간이 별로 없어 보이니 어서 의관을 정비하고 각자의 길을 서두릅시다.]
용성스님이 만약 위와 같이 그 때 모인 33인의 동지 모두에게 그 뜻을 명백하게 제안하고 그대로 행동하였다면, 그 사실은 한 점의 걱정스러움도 없고, 어떤 논란과 의구심의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답답지경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일반의 범주를 넘어서 앞날을 길게 보는 비범하고 원활한 지혜, 무엇보다 중요한 동지들에 대한 신뢰와 정중한 예의, 의견을 정직하게 수렴하는 투명함과 공정함, 의견이 다른 상대의 선택을 존중하고 자기를 희생하여 길을 열어 주는 포용성, 무저항으로 평화롭게 체포되는 당당한 기개 그 자체일 것입니다.
전원 남기로 되었어도, 일부만 남기로 되었어도, 용성스님 혼자 남게 되었어도 아무런 문제가 없고 정말로 당당할 것입니다.
아마도 그렇게 두루마기까지 의관을 갖추어 입고 정좌의 자세로 일본 총독부 순경들을 맞이하고 체포되었다면 그들이 비록 적들일지라도 33인을, 그 중에서도 그러한 행동을 제안하고 실천한 용성스님을 탁월한 선사로서 무척 존경했겠지요.
그것이 보편적인 인지상정입니다.
참으로 시대를 뛰어넘어서 세계 역사 속에 위대한 길을 제시한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피아를 떠나서 그 고귀한 사실이 입에서 입으로 퍼져나가고 벌써 인류의 고귀한 전설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용성스님이 그리 했더라면 어찌 밀고란 단어조차 떠오르겠습니까? 그야말로 당당한 선포였을 것입니다.
만약 그 당시에 그리 했더라면 지금 우리들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많은 요소들을 갖추고 우리들에게 얼마나 귀중한 표준이 되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얼마나 한 올의 의구심도 없이 그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힘을 얻겠습니까?
이점이 내내 안타깝습니다.
일을 이루는 수단과 과정의 정당함이 참으로 중요함을 새삼 깊게 느낍니다.
위와 같이 가상해 본 것이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을 허황된 것이라고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와 같은 범부들에게는 힘이 들어도, 뛰어난 의기와 견해를 갖춘 지도자라면 능히 가능합니다. 그 당시 민족 독립선언문을 만들고 선포한 33인의 의롭고 비범한 대중들 속에서는 더욱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라 생각합니다. 특히나 범부의 마음세계를 훌쩍 넘어서는 깊은 경지를 이룸으로써 인과의 흐름에 확연히 밝고 존재들의 평등성에 대한 혜안(慧眼)이 확고하게 열린 진정한 탈격의 선사(禪師)라면 더욱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김구 선생님의 선명함과 시대를 넘는 비전, 포용의 글을 보십시오.
적의 감옥소장까지도 진심으로 존경하게 만든 안중근 의사의 당당한 태도와 논리와 견해를 보십시오.
대중들의 보편적인 인지상정, 양심의 합리와 상식에 어긋나지 않는 것이 기본입니다.
그러면서도 주어진 상황에 가장 알맞은 조화로운 방법을 찾아내고 머무는 바 없이 쾌활하게 그것을 행하는 것이 선사의 진정한 격외 혜안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불교의 진정한 중도행(中道行)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읽은 기사의 내용으로 제가 오해한 사실이 있거나,
또는 저의 견해가 모자란 점을 정확히 지적해 주시면
그 견해를 깊게 성찰하고 고맙게 배우겠습니다.
2014년 5월 25일 지월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