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서북부에 위치한 산청군(山淸郡)은 전형적인 산골 농촌지역이다. 고산준봉(高山峻峯)과 청정계곡을 거느린 ‘어머니의 산’으로 불리는 지리산(智異山)의 천왕봉(1915m)이 행정구역상 산청군에 속해 있다. 산청군은 1000여 종의 토종 약초가 자생(自生)하는 청정지역이자 약초 재배의 최적지이다.
한방약초 마을로 유명한 이곳에 오는 9월 큰 잔치가 열린다. ‘2013 산청 세계전통의약엑스포(이하 산청엑스포)’가 그것이다. ‘2013년’ 올해는 공중(公衆) 보건의학서로는 세계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등재된 《동의보감(東醫寶鑑)》 발간 400주년이자, ‘유네스코 기념의 해’이다. 이를 위해 보건복지부와 경상남도 그리고 산청군이 공동으로 오는 9월 6일부터 10월 20일까지 45일 동안 산청에서 세계전통의약엑스포를 개최한다.
산청엑스포는 《동의보감》이 2009년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계기로 ‘한의약의 세계화’ 차원에서 시작됐다. 후속조치로 2010년 보건복지부가 엑스포 개최지를 공모했고 충북 제천, 전북 익산, 전남 순천·장흥, 경북 영천, 경남 산청 중에서 산청군이 개최권을 거머쥐었다. 지리산이라는 천혜의 자연환경과 한방인프라가 이미 갖춰져 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산청은 名醫로 유명한 곳
지난 7월 초, 엑스포 준비가 한창인 경남 산청을 찾았다. 서울 남부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3시간 만에 산청터미널에 도착했다. 엑스포 현장까지는 셔틀버스를 이용했다(15분 소요). 17·18대(代) 국회의원을 지낸 최구식(崔球植) 산청엑스포 조직위(委) 집행위원장에게서 행사 전반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최 위원장의 본적이 이곳 산청이다.
최구식 위원장은 “산청은 오래전부터 명의(名醫)로 유명한 곳”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이곳은 조선시대 최고의 명의인 류의태 선생과 허준 선생이 활동했던 곳입니다. 조선 후기 사람인 초삼·초객 형제도 중국에까지 명의로 이름을 날렸지요. 산청은 삼우당 문익점 선생, 성철 스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 유학자 남명 조식(曺植) 선생이 학문을 세우고 제자들을 양성했던 곳이기도 해요.”
최 위원장은 “신비의 산, 지리산은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에도 등장한다”며 <시황제본기(始皇帝本紀)>에 나오는 불로초 얘기를 꺼냈다.
“진시황과 불로초는 유명하고 흥미진진한 이야기입니다. 그 현장이 바로 지리산입니다. 기원전 221년, 당시 38세이던 진시황이 천하를 통일한 후 불로초 원정대를 구성해 제1진을 보낸 곳이 바로 지리산입니다. 원정대가 돌아오지 않자 제2진을 보낸 곳이 한라산이었죠. 서귀포라는 지명은 원정대가 서쪽으로 돌아간 포구라는 의미에서 나왔다고 해요. 서불이라는 사람이 불로초를 구하고자 했던 진시황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해중(海中)에 세 신산(神山)이 있습니다. 그 이름은 봉래(蓬萊), 방장(方丈), 영주(瀛洲)인데 이곳에 선인(仙人)이 살고 있습니다. 청하옵건대 동남녀(童男女)와 함께 그곳에서 그것을 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기서 해중이란 우리나라를 말하고 봉래는 금강산, 방장은 지리산, 영주는 한라산을 일컫습니다. 지리산의 가치가 불로초를 간절히 원했던 진시황에게까지 알려진 거죠. 얼마나 대단한 이야기입니까.”
최구식 위원장은 “영산(靈山)인 지리산의 기(氣)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고 했다.
“지리산에서도 가장 기가 강한 곳이 우리 엑스포 현장입니다. 세계적인 기의 대가(大家)가 여기에 와보고 감탄했습니다. 여러 곳을 다녔는데 여기만큼 기가 좋고 강한 곳이 없다고 합디다. 엑스포가 열리는 이곳에는 거대한 기바위가 있는데 보기만 해도 신비합니다.”
최 위원장은 기바위와 관련된 몇 가지 일화(逸話)를 소개했다. 경남도청의 한 공무원이 늦게 결혼했는데 5년 넘게 아이가 생기지 않아 고민하던 차에 엑스포 조직위에 파견된 후 기바위의 기를 받아 아기를 가졌다는 얘기, 이참씨가 기바위에서 기를 받고 난 후 청와대로부터 한국관광공사 사장에 발탁됐다는 것 등 승진·합격 사례가 많다고 한다. 입소문을 타면서 기바위는 이미 많은 사람이 찾는 명소가 됐다고 한다.
세계 최초의 공중보건의학서 《東醫寶鑑》
中國 30여 차례 간행, 일본은 醫學 모델로 여겨
《동의보감》은 1613년 선조의 명을 받은 허준이 우리 민족의 전통의학과 동아시아 의학을 집대성해 발간한 의서(醫書)이다. 최초의 의서도 아니고, 기존에 없던 완전히 새로운 내용으로 의서를 만든 것도 아님에도 불구하고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인정한 이유는 무엇일까. 의서 자체로만 본다면 중국의 《황제내경》 등이 훨씬 앞선다.
중국의 여러 의서와 비교해 《동의보감》은 우리 민족 특유의 독창성이 들어 있다. 분류체계의 창의성, 수양을 우선으로 한 점, 약재명칭·용법을 널리 보급해 자신의 몸을 돌볼 수 있게 한 것 등을 들 수 있다. 《동의보감》은 25권 25책 속에 2000여 증상, 1400종 약물, 4000여 가지 처방을 일목요연하게 담고 있다. 내경편(內景篇, 내과), 외형편(外形篇, 외과·안과·이비인후과·피부과·비뇨기과), 잡병편(雜病篇, 병리학·진단학·대증치료·구급법·전염병과·부인과·소아과), 탕액편(湯液篇, 임상·약물학), 침구편(針灸篇, 경혈 부위와 침구 요법) 등으로 구성돼 있다. 항목을 배정한 순서 또한 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질환을 우선으로 했다.
《동의보감》은 질병과 처방은 물론 몸과 생명을 전면에 내세워 백성들이 주변에 있는 약재를 잘 알고 씀으로써 자신의 몸을 직접 관리할 수 있게 했다. 아울러 의서로서 실용적이면서도 죽음, 운명, 우주 등 고매한 삶의 가치와 철학까지 담고 있다.
《동의보감》의 또 다른 독창성은 ‘동의’라는 표현을 썼다는 사실이다. ‘동의’라는 명칭에는 민족적 자존심이 담겨 있다. 중국이 천하의 중심이던 시기, ‘동의’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중국 북의·남의에 견줄 만한 의술로 일가를 이루겠다는 안목과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동의보감》은 당시 조선에서만 통용되던 의서가 아니었다. 중국에서 30여 차례 간행될 정도로 베스트셀러였고, 일본에서도 의학의 모델로 존중받았다고 한다.
“기존 엑스포와 다르다”
한옥으로 된 힐링센터.
최구식 위원장은 “산청엑스포는 기존의 엑스포와는 차원이 다르다”고 기자에게 여러 차례 강조했다.
“막대한 예산을 들여 행사를 치렀던 기존 엑스포는 행사 후 시설물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해 ‘돈 먹는 하마’가 되고 있습니다. 산청은 전혀 달라요. 천혜의 자연환경과 더불어 오래전에 구축한 한방인프라를 통해 약초행사를 매년 열어왔지요. 이 시설물을 엑스포에 그대로 사용합니다. 산청엑스포는 기존의 한방휴양관광지를 리모델링해 국제행사를 열 뿐입니다. 지속성에서 기존 엑스포와 차별화돼요.”
최 위원장에 따르면, 산청은 2005년 전국 최초로 산청군 일원에 한방약초산업 특구를 지정해 1500억원을 투입, 약초연구소와 한의학박물관을 건립하면서 미래신성장동력산업 육성의 기틀을 다져왔다고 한다.
산청엑스포의 주(主) 무대는 동의보감촌이다. 161만㎡에 달하는 이곳은 1999년 문화관광부로부터 국내 최초로 한방휴양관광지로 지정받았다. 지리산 자락인 왕산과 필봉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는 2007년 5월 이미 한의학박물관이 들어섰다. 2010년에는 전통 한의학을 주제로 한 한방테마파크도 조성됐다. 개장 이래 연평균 관람객 수는 20만명에 달한다. 관람객들은 동의보감촌에 마련된 기체험장, 한의학박물관, 허준 순례길을 보기 위해 찾는다고 한다.
산청엑스포의 주 행사장이 될 동의보감촌은 공정률 90%를 넘어섰다. 이곳에는 엑스포 주제관, 동의보감관, 세계관, 힐링타운, 기체험장, 산업관, 약선음식관, 약초생태관 등 8개 전시관이 새롭게 들어선다.
최구식 위원장은 산청엑스포의 경제적 파급효과에 대해 “대외정책연구원의 발표에 따르면 생산유발효과가 2995억원, 부가가치 창출은 1325억원, 고용유발 효과는 4135명에 달한다”고 했다.
산청엑스포는 《동의보감》 발간 400주년을 기념해 마련된 행사인 만큼 역사적, 상징적 의미가 있다. 최 위원장의 말이다.
“《동의보감》은 허준 선생이 광해군 6년에 발간했습니다. 동양의약서로는 최장,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어요. 중국에서는 30여 차례 간행됐고, 일본에서도 의학(醫學)의 표준으로 삼았다고 해요.
이 책은 가난한 백성들이 주변에 흔한 식물과 약초로 미리 병을 예방할 수 있도록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지요. 처방보다는 몸과 생명에 대한 경외심과 예방의학에 초점을 맞췄지요. 이런 좋은 자산을 갖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전통의약시장에서 우리의 점유율은 3%밖에 안 돼요. 이번 엑스포는 우리나라 전통의약을 세계에 알리고 아울러 대체의학, 예방의학 시장을 선점하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최구식 위원장을 비롯한 엑스포 조직위원회 사람들은 산청엑스포를 ‘지리산 힐링 엑스포’라 부른다. 일상에 지친 현대인들에게 지리산의 대자연과 전통 한의약을 통해 치유와 휴식을 제공하는 행사라는 의미에서다.
산청엑스포는 전시, 체험프로, 국제회의, 이벤트 등으로 진행된다. 이 중 국제회의를 제외한 모든 행사가 관람객의 힐링과 체험, 오감만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한다.
일문일답으로 알아보는 ‘지리산 힐링 축제’
Q. 산청엑스포의 주제는? “미래의 더 큰 가치, 전통의약 그리고 ‘지리산 힐링 여행’이다. 세계전통의약의 현황과 가치를 오감만족형으로 보여주며, 관람객들이 힐링하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Q. 무엇으로 힐링하나. “산청엑스포 개최지는 지리산 자락이어서 다른 축제장과 달리 자연환경이 좋아 걷는 것 자체로 힐링이 된다. 동의보감 순례길 걷기, 기체험, 무료 한방진료 등 프로그램 모두 힐링 성격을 지닌다.”
Q. 주요 전시 콘텐츠는? “8개 전시관이 있는데 엑스포 주제관에서는 4D 첨단영상을, 한의약 힐링파크에서는 전통의약을, 동의보감관에서는 《동의보감》의 모든 것을 보고 느낄 수 있다. 특히 세계관에서는 16개국 전통의약, 5300년 전 미라인 ‘아이스맨’ 특별전이 열린다. 한의사의 무료 진맥 시술을 체험할 혜민서, 몸에 약이 되는 음식을 접할 약선문화관도 관람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을 것이다.”
Q. 주요 이벤트로는 어떤 게 있나. “공식행사·상설공연·이벤트·체험 학습행사 등이 있다. 지리산을 찾아온 불로초 원정대의 이야기를 구현한 주제공연, 해외 및 국내 전통공연, ‘산청 힐링 맨발 콘서트’와 기체험 프로그램은 엑스포의 주제를 잘 보여줄 것이다.”
Q. 전시관 외 즐길 시설은. “한방약초체험 테마공원, 허준 순례길, 동의폭포광장, 풍차, 사슴목장 등도 즐길 거리다.”
Q. 찾아가는 길은. “승용차로 서울에서 3시간, 광주 2시간, 부산·대전·전북·전주 1시간 반 거리이다. 총 8600대를 주차할 주차장도 마련돼 있다. 주차장에서 엑스포 현장까지 셔틀버스 30대가 운행된다.”
Q. 숙박시설은. “산청은 시골이다. 힐링 개념에 부합하는 장소다. 도시처럼 화려한 숙박시설은 없지만 관람객이 불편하지 않도록 지리산 지역 펜션마을 등 특화자원을 최대한 활용한다. 공식 호텔 10군데를 지정했고, 진주·거창·함양·사천·창원 등 도내 숙박시설 현황을 홈페이지에 알린다. 산청 관내에서는 5000여 명, 인근까지 확장하면 3만명 이상 수용 가능하다.”
Q. 입장권 예매 등 기타 의문점 문의할 곳은. “홈페이지(www.tramedi-expo.or.kr)를 통하면 상세히 답해준다. 조만간 콜센터도 운영한다. 055-970-8600.”
‘지리산 힐링 엑스포’
영산(靈山)으로 알려진 지리산은 좋은 기(氣)가 흐른다고 한다. 좋은 기를 받기 위해 기바위(귀감석)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
최 위원장은 엑스포 행사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이번 엑스포 행사장의 전시관은 총 8개입니다. 주제관, 동의보감관, 세계관, 약선음식관, 산업관, 힐링타운, 기체험장, 약초생태관 등입니다. 이 중에서 주제관은 이번 엑스포의 랜드마크 역할을 합니다. 1층에는 첨단 영상관과 가변형 전시실, 수장고 등이 있고, 2층에는 한의약 힐링파크와 카페테리아 등이 들어섭니다. 특히 첨단 영상관은 주제 영상과 함께 어린이들을 위한 4D 영상관으로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엑스포에서는 일본 캄포의학, 중국 중의학, 몽골 몽의학, 이슬람 유나니 의학, 인도 아유르베다 의학 등 해외 전통의학도 함께 소개된다고 한다. 동의보감촌에 위치한 세계관에서는 16개국의 전통의술을 직접 체험할 수 있다. 그 밖에 무료 혜민서도 운영된다.
산청엑스포 조직위는 예상 관람객을 170만명으로 보고 있다. 목표달성을 위해 조직위는 각종 국내외 행사에 참가해 사전 붐 조성을 꾀하고 있다. 최 위원장은 “해외 관람객은 중국, 일본 등 7만여 명으로 추산하는데 재외기관, 전문대행사와 연계해 해외 홍보마케팅을 강화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 전통의약 관련 단체 및 외신기자, 유학생을 연계한 초청프로그램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최구식 위원장은 엑스포 행사장 외에 산청 주변 지역에 볼거리가 많다고 소개했다.
“엑스포 현장 바로 옆에 구형왕릉이 있습니다. 구형왕은 가야국 최후의 왕인데 김유신의 증조부입니다. 532년 신라에 편입될 무렵 ‘나라를 잃은 자가 어떻게 포근하게 흙에 묻히겠나, 내 무덤은 돌로 쌓으라’고 유언했대요. 왕릉 중에서 유일하게 돌로 된 무덤입니다. 산청에는 국내 최고의 매화로 치는 삼매(三梅)도 있습니다. 덕산 산천재에 가면 남명 선생께서 직접 심은 450년 된 남명매가 있고, 남사 예담촌에는 원정공 하집 선생의 670년 된 원정매, 입석 단속사지에 가면 통정공 강회백 선생이 심은 640년 된 정당매가 있어요. 매화나무에서 어떻게 그렇게 아름다운 매화가 만개하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엑스포 개최일이 다가오면서 최구식 위원장은 업무 협의차 서울과 산청을 수시로 오간다. 그는 엑스포가 끝난 이후까지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세계적인 힐링 타운이 지리산에 있다는 것을 알리는 계기가 될 겁니다. 제주도 올레길도 좋지만 그보다 접근성이 뛰어나고 천혜의 지리산 기운을 받을 수 있는 곳이 바로 산청입니다. 이번 행사는 일회성 행사가 아닌 ‘건강 엑스포’의 새 역사를 쓰는 축제가 될 겁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선대(先代) 어른들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고 자랐습니다. ‘지금은 지리산 문이 닫혀 있다. 장차 지리산 문이 열리게 될 때 우리나라 국운이 대(大)융성하여 세계 일등국이 될 것이다.’ 사실 저는 이 말에 의문을 갖고 있었어요. ‘지리산은 언제든지 등산할 수 있는데 언제, 어떻게 문이 열린다는 것인가’하고 생각했던 거죠. 그런데 이번 엑스포를 준비하면서 ‘아, 엑스포를 통해 어른들께서 말씀하신 대로 지리산 문이 열리는구나’하고 확신하게 됐습니다. 느낌이 아주 좋아요.”⊙
첫댓글 잘 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