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체스코파와 베니딕트파, 황제파와 교황파의 대결 속에서
「하느님께서는 동물이라는 동물은 다 아담 앞에 데려다 놓으시고는, 그가 어떤 이름을 붙이는가를 보고 계셨습니다. 그때 아담이 뭐라고 불렀든 그로부터는 그게 그 동물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최초의 인간인 아담에게 아담식(式) 언어로 그 성질에 제대로 맞게 이름을 붙이는 능력이 있었는지 없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아담은 그 동물의 성질에 맞추어 이름을 상상함으로써 일종의 지상적(至上的) 권리를 행사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우리가 잘 알듯이, 사람들은 개념을 지칭하기 위해 각기 다른 명칭을 붙이지만 사실상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이해하는 것은 그 개념뿐이지 이름은 다르게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nomen(이름)이라는 말은 nomos(법)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nomina(이름)는 많은 사람들의 placitum(약정)에 따라 부여된 것이니 말입니다….」
좌중은 물을 끼얹은 듯했다. 사부님의 엄청난 박학의 시위에 모두가 넋을 잃은 것 같았다. 사부님은 결론으로 내달았다.
「…따라서, 이 땅의 사물에 대한, 그리고 도시와 왕국과 재산에 관한 법은, 성직에 몸담고 있는 교역자들의 특권인 하느님 말씀을 지키고 해석하는 일과는 무관합니다. 이교도들에게는 하느님 말씀을 해석하는 것과 유사한 직권을 가진 이가 없으니 이 아니 딱한 일입니까?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교도들에게는 정부, 왕, 황제, 혹은 이교 군주나 제후를 통해 법을 제정하고 이를 집행하려는 뜻이 없다고 하면 안 됩니다. 로마의 많은 황제(가령 트라야누스 같은)들이 지혜로 속사(俗事)를 다스렸다는 사실을 부정해서도 안 됩니다. 그렇다면 이런 이교도와 무지 몽매한 불신자들에게 이러한 법을 제정하게 하고, 정치 공동체를 이루어 살게 하는 능력은 대체 누가 주었더라는 말입니까? 존재할 리 없는 거짓 신들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러한 능력은 만군의 하느님이시며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시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부여하신 것입니다. 이야말로 로마 교황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기독교국 백성의 신성하고, 아름답고, 놀라운 신비를 용인하지 않는 자들에게까지 정치적 판단과 능력을 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밝히 드러내는 증거가 아니겠습니까?」
[장미의 이름] 움베르토 에코, 이윤기 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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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은 명칭에 대한 약정주의(노모스주의)를 바탕으로 속세의 권력과 신적 속성에 속한 권리를 설명하고 있다. 만약 아담이 이름을 짓는 행위가, 자연이 가진 속성 그대로가 명칭이 된다는 것으로 알고 자연의 속성을 이름으로 보고 단순히 읊은 것에 불과하다면 이름짓기는 자연주의(퓌시스주의) 관점이 옳다고 보아야 하지만 하나님이 주신 이성의 힘으로 모든 동물에게 적당한 이름을 약정할 수 있도록 아담에게 능력을 부여했다면 명칭의 약정주의 관점이 맞다.
명칭의 자연주의와 약정주의에 관해서는 플라톤이 쓴 '크라튈로스' 논쟁에서 가져 온 헤르모게네스의 관점을 윌리엄이 사용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여기서 소크라테스, 크라튈로스, 헤르모게네스 세 인물이 등장한다. 크라튈로스는 명칭의 자연주의 입장에서 헤르모게네스는 명칭의 약정주의 입장에서 논쟁하고 있다. 소크라테스는 형식상 대화(토론)의 진행자로 등장하지만 처음에는 크라튈로스의 편을 들다가 나중에는 헤르모게네스의 편을 든다. 플라톤이 쓴 '크라튈로스'를 참조하시라.
권력에 관해서도 약정주의 논리로 생각할 수 있다. 세속의 정치권력이 가진 재산, 법질서, 사회법 등도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약정적 권리라고 본다면 교회가 교황권을 이용해서 마음대로 그들의 세속권한에 간여하고 판단하고 재판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지 못한다. 같은 논리로 보면 요즘 종교인 과세 문제에서도 세속권이 가진 법적 행위나 정치행위에 교회가 지나치게 간여하려고 한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주는 것이 옳다. 교회도 세속에서 얻어지는 금품에서 헌금한다면 종교 과세에 대해 교회가 너무 민감하게 저항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물론 기독교적 관점에서 크게 보아 만유는 하나님이 지으신 하나님의 유산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기독교인이 대통령이 돼야만 정의가 선다고 생각한다든지 불교인이 대통령이 돼야만 정토국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지 천주교인이 돼야만 하느님의 사랑을 속세에 펼 수 있다고 생각한다든지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면 한국사회는 끔찍한 사회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은 열두 사도가 가이사(카이사르)를 대신해서 정치권력을 가지고 이스라엘을 지배하기를 원치 않으셨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마찬가지로 목사가 대통령이나 검찰총장이나 국회의장이 되어 이 땅을 지배하기를 주님께서 원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