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키팅 선생과 양구(楊口)
글-德田 이응철(수필가)
52일째 장마가 진다고 난리다. 지루한 장마속에 팔월도 중순으로 치닫는다.
푸른하늘이 보이며 쨍쨍 햇살이 파고들던 어제 오전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변죽을 떨더니 다시 강한 소나기가 햇살을 가로 막으니 진정 아이들 말처럼 하늘은 변덕장이다. 오늘은 명작 죽은 시인의 사회란 영화 한편이 지리한 장마속에서 발견한 금맥이 틀림없다.
1859년 미국 명문 웰튼아카데미 새학기 개강식으로 문을 연다.
전통과 명예와 규율,최고의 4대 원칙을 내세우는 보수적인 남학교에 파격적인 수업방식을 전개하며 획일적이거나 전통적인 틀을 벗어나 신선한 충격을 주는 국어선생님이 등장한다. 존 키팅-.
현재를 즐겨라-. 너의 인생을 특별하게 만들어라-. 참으로 열정적인 수업을 하는 존 키팅 선생님이야말로 구태의 틀을 아웃시킨 주인공이시다.
영화 후반부에 학생 닐이 자살하면서 문책을 받고 그옇코 학교를 떠나는 주인공 키팅 선생님-.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교단에 선다. 높은 곳에서 보면 세상이 달라보인다는 수업을 재현하면서 두려움없이 강한 독창성을 몸으로 제자들께 보여준 선생님-.진정 교육의 목표는 지식이 아니고 행동이 아닌가!
반세기 교육자로 몸바친 지나간 세월을 곰곰히 돌아보며 키팅선생에 대한 연민의 정을 진하게 느낀다. 동병상련이련가!
나의 가르침은 어떤가? 남과 차별성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초등학교 교사 십여년을 몸담다가 어떤 허영심인가 꿈을 위해 지방대학에 편입해 중등 자격증을 거머쥐고, 중, 고등학교 교사로 내 뜻을 펼친 40여년의 생을 돌아본다. 다시 본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가 너무 가슴에 와 닿는다. 아니 감상하면서 내내 감히 캡틴 키팅선생이란 일체감, 정의감에 취해보며 양구고에서 수업 한장면을 보름달처럼 띄워본다.
방과 후 고 3수업이다. 보충수업 시간이다. 모두 피곤이 뚝뚝 떨어진다. 정치.경제시간이다. 고 3은 주로 과제물 프린터로 대입 기출문제를 몇번씩 풀어보면서 보충설명을 하곤 한다.
수공업- 공장제 수공업-공장제 기계공업-기계공업으로 발전하는 산업혁명 과정을 가르치던 사회시간은 절반이 잠에 취해 있다.
갑자기 나는 선언했다. 기계가 발명되면서 대량생산을 하여 풍족했지만 노동자는 기계 때문에 실업자가 되었다고 기계를 때려부수자고 공장으로 몰려가 기계를 파괴했다. 대학 단골시험 문제다. 이것을 무슨 운동이라고 하는지 아는 사람? 하며 분위기를 띄웠다.
- 아는 사람은 내 차 열쇠를 주겠다! 뜻하지 않는 폭탄선언을 하자 갑자기 교실은 초긴장이다.
정말이요? 정말이요? 잠자던 놈들고 초롱초롱하다. 나는 말없이 주머니에서 차키를 교단위에 성큼 올려놓았다.
와--정적이 감돈다. 선생님의 너무 진지한 표정을 훔쳐보면서 설왕설레하며 시간은 흘렀다.
10분쯤, 20분쯤 흘렀을까, 갑자기 교실 한 켠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설마 누가 맞추겠는가!
물론 핸드폰도 없던 시절이다.
그 때였다. 창가 학생이 손을 번쩍 든다. 설마?
모든 학생들이 그 학생을 주시하면서 엄청난 상품이 걸린 이 순간을 지켜보고 있었다.
-러다이츠 운동(Luddite Movement)이요!!
-정답!
-와! 와글와글!!
애들은 작은 고기떼가 일제히 방향을 선회하듯 고개를 돌려 교단에 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아뿔싸!! 그래! 칭찬과 동시에 나는 약속대로 열쇠꾸러미를 던졌다.
-정말 주시는 건가요? 우리 엄마가 차가 없는데 잘 되었다.ㅎㅎ
문제를 맞춘 학생은 시장(市場)으로 난 큰길 가에서 찬찬찬 노래방을 하는 집 아들이었다.
-그럼, 진짜 주고말고.ㅎ 잘 맞추었어, 공장파괴운동이지, 축하해-. 이 틈에 나는 파괴원인까지
진지하게 설명하고 나는 그냥 교실을 나온다.
교무실로 왔다. 키를 받고 너무 좋아서 몇번을 확인하며 어쩔줄을 모르던 순진한 녀석이 지금도 생각난다. 차 키는 어떻게 되었을까? 한시간 후에 녀석은 교무실을 찾았다. 녀석은 두손으로 열쇠꾸러미를 겸손히 내놓는다.
-어머님께서 잘했다고 돌려드리래요.
녀석 어머님은 어머니회장이라 그 후 장안에 화제가 되어 내 귀를 즐겁게 해 주었다.
지금 그 학생은 Y대학을 나와 해외 유학을 한다는 풍문이다.
어느 곳에서 산업혁명 이야기만 나오면 그녀석과 반아이들은 고 3때 사회수업이 떠오를 것이고 키팅 캡틴만은 못되더라고 이선생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인생 후반이 여기저기 가르친 제자들이 시도 때도 없이 소식을 전한다. 풍년작이다.
선생은 제자를 가르치고, 제자는 다시 은사님에게 영광을 돌리지 않는가! 주룩주룩 장대비가 쏟아진다. 얼마나 빗소리가 그리웠지만 이제는 아니다. 자살이 무겁게 하지만, 영원한 캡틴 로빈 월리엄스를 기억하며 양구에서의 존키팅 선생으로 기억된 자신을 돌아보았다.(끝)
첫댓글 양구. - 1991년도에 31번 국도 확장 공사현장 소장으로 있을 때가 생각 나는 군요.
양구종합고등학교 교장선생님이 춘천중학교 때 실업 선생님이 셨던 최ㅇㅇ(성함이 잘 기억되지
않음)선생님이 교장선생님이 였고, 고성에서 1991년 세계잼버리대회가 열려 조경공사 소장이였던
홍철호(춘고동창)군이 양구종합고등학교에 와서 실습용이던 화초를 구입해 간 기억이 납니다.
군수님, 교장선생님외 관계자 분들과 점심식사 한 것이 어제 같은데 30여년이 흘러갔네요.
세월을 잡을 수 없어 안타갑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