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담는 항아리/김문억
피아노를 배우러 다니는 딸내미에게 피아노를 사 주었지만 피아노 소리는 별로 잘 들려오지 않았다. 그러다가 딸내미는 시집을 가고 혼자 남은 피아노가 거실에 있다가 아들 둘을 키우는 문단 후배에게로 갔다 이사를 한 뒤에도 커다랗고 시커먼 전축 한 세트가 불구자가 되어 조용히 구석을 차지하고 있었다. 저 물건을 왜 끌고 다녔을까 문득 생각이 미치면서 고물장수를 불러 얼른 내 주고 말았다. 그 참에 추억이랍시고 두고 있던 행사장 영상 비디오를 비롯하여 녹음테이프 까지 모두 내 주고 나니 개운한 기분이 들었다. 지난 흔적에 매달려 있다는 내가 끈적거리고 안됐다는 마음이 간 것은 그 때부터였다. 그런 과거사를 되돌려 본다는 일이 무슨 유익한 일이 있겠는가 생각을 해 보면서 부질없는 짓이란 생각이었다. 생각이 그에 미치면서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나의 주변을 지워 나갔다. 왠지 쓸모없는 부스러기들이 펄럭거린다는 느낌이었다. 그런 과거사의 흔적은 지금의 나에게 아무 영향을 미치지 못하거니와 가능하면 긍정하면서 단순하게 살고 싶다. 그런 것들은 내가 현역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증명하고 있지만 성격적으로 뒤돌아보기를 즐기지 못 한다. 현재의 내가 있기까지의 과거라고 하는 자신의 역사를 지우고 싶은 것이 아니고 그런 것들은 모두 알뜰한 기억 속에 저장 해 두고 싶을 뿐이다. 지난 일을 갖고 물증으로 증명하고 내 세우는 것이 무슨 즐거움이 되겠는가 기억은 한정 없이 넉넉한 거대한 항아리라고 생각한다. 무엇이고 담아두고 즐길 수 있는 그릇이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해야 하는 기억 장치로는 내가 글을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함축하고 의미를 담은 시문학은 나의 기억장치 중에서도 가장 소중하고 멋스러운 역사요 일기장이다. 사진을 찍어두고 상패를 걸어놓고 바라보는 일 보다는 더욱 선명한 흔적이기 때문이다. 사진은 당시의 바깥 모양만 보는 것이지만 시나 일기는 속속들이 속내까지 다 저장하고 있는 셈이 된다. 그렇게 비우는 것을 뒤늦게나마 알게 되면서 전에 하지 못한 주변 정리를 열심히 하고 있다. 얼마 되지 못하는 집 정리를 하면서 미리 써 보는 유언장도 작품으로 올려 보았다. 냄새 진동하는 신발장에서 절반의 신발들이 밖으로 나가게 되고 밑창이 떨어지도록 밀어 넣기만 하던 옷장이 헐렁해졌다. 입을 기회가 없어진 신사복이며 생활 잡동사니는 물론 심지어 인터넷에 광고를 해서 갖고 있던 책을 모두 기증한 뒤에 책장은 재활용으로 나가고 지금 내 방에는 몇 권의 내 시집과 컴퓨터 한 대만 동그마니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과거사를 깡그리 지우는 기피가 아니고 지난 일은 더 아름답게 기억의 맑은 항아리 속에 저장 시키고자 한다. 오늘의 현재만 바라보아도 너무 벅차도록 행복한 것들이 눈에 들고 있다. 눈 뜨면 시시로 변화무쌍한 오늘의 날씨와 부엌에서 아침밥을 짓는 마누라님의 달가닥 거리는 그릇 부딪치는 소리와 컴퓨터를 열면 나 보다 먼저 찾아와서 기다리고 있는 습작생들의 한 수 시조가 과거사 이상으로 소중하다. 퇴근을 하는 젊은이들이 회룡역 개찰구를 나가는 모습하며 체육관에서 늘 만나는 이웃 집 사람들과 걷기 운동을 하는 구부정한 노인들까지 모두 내 생활의 행복한 조건들이다. 과거는 그렇게 지나가고 내일은 어쩌면 야속한 희망에 그칠 수도 있다 다만 건강하게 살아있는 오늘이 행복할 뿐이어서 어벙하게 앞산만 바라보고 있는 때도 싫지가 않다. 떨어지는 낙엽들이 기억의 항아리 속으로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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