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중기도 (2019-6월 28일 입재)
[아함경]
부처님께서 라자가하 성 밖 중림정사에 계실 때였다.
그 무렵 박칼리라 라는 비구가 죽림정사 근처 숲속에 살고 있었다.
그를 간호하던 비구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마지막으로 소원이 있습니다.
부처님을 한 번만 뵙고 예배하고 싶은데 이 몸으로는 도저히 갈 수가 없습니다.
나를 부처님께 알려 주십시오. 하였다.
이런 사실을 들은 부처님은 듣고 몸소 숲속의 작은 집으로 왔다.
이때 병든 박갈리라는 자리에서 일어나려고 애썼다.
이때 부처님은 일어나지 않아도 된다 하시었다.
아닙니다.
제가 바란 것은 부처님을 뵙고 예배 올리고 한 번 바라보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이때 부처님은 내 말을 잘 들르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였다.
법을 보는 사람은 나를 볼 것이요,
나를 보는 사람은 법을 보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나를 보려거든 법을 보아라.
향적여래 설법여래
유마경에 향적여래께서 설법하시었다.
육근이 청정하면 설법여래가 되어 입에서 향기가 나고 말에서 향기가 나며
몸에서 향기가 나느니라.
입이 청정하면 말하는 것마다 진실하여 입에서 향기가 나는 보살이 되고
귀가 청정하면 듣는데 깨끗하므로 바로 들음에 청정하여
부처님 설법을 바로 듣는 지혜가 납니다.
눈과 귀 입과 코와 몸과 뜻 모두가 청정해지면 바로 보살의 경지에 이르게 됩니다.
설법 열정의 존자 가나제바존자
용수 보살이 하루는 남인도를 여행하던 중 애꾸눈 가나제바가 오는 것을 보았다.
용수는 길옆 나무아래에 앉았다.
용수가 제자들에게 바루에 맑은 청수 한 그릇 떠오라 하였다.
그리고 가나제바 앞에 놓으니 가나제바가 바늘 한 개를 바루에 빠뜨렸다.
용수가 말하였다.
선정의 물이 맑고 맑은 것은 나의 법에 대한 견해요,
그대가 바늘 한 개를 빠뜨린 것은 그대가 그 밑바닥까지 모두 살피겠다는 뜻일 것이다.
그러한가?
가나제바가 일어나서 세 번 절하였다.
가나제바는 한쪽눈을 멀어 애구라는 뜻으로 ‘가나’이고 ‘제바’는 하늘이라는 뜻이다.
하늘이란 천인이라는 뜻이다.
이홍의 신심! 상투에 부처님을 모시다.
조선시대에 전라도 전주에 진사를 통과한 李鴻 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글을 잘 쓰고 글도 잘 지었다고 한다.
이 사람은 하루는 금산사에 놀러 갔는데
거기에 부처님 진신 사리를 탑을 친견하고 사리에 대하여 알게 되었다.
신라시대 자장율사가 중국 에 가서 모셔온 사리를 황룡사. 통도사. 금산사 세 곳에
모신 것을 임진 난 때 이 사리는 일본인들이 훔쳐 갈 것을 염려하여 일부를 꺼내서
평안북도 묘향산 보현사와 달성의 유가사에 진신 사리를 나누어 모셨다고 한다.
이홍은 금산사를 참배하고 한 스님을 만나서 불법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거기서 출가하여 스님이 되고자 하였으나 그가 외아들이라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는 가끔 금산사에 참배를 갔는데 하루는 금산사 사리탑에서 서기광명이
나는 것이 아닌가. 놀래서 그 자리에서 절을 하고는 오직 불법만이 이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 하고 수행하는 법을 스님에게 묻고는 그대로 하기로 하였다.
그는 금산사 주지 스님이 주시는 호신불을 받아 부처님 집을 만들어 상투에 늘
넣고 살았다. 이 진사가 이후에 과거에 급제하여 사헌부에 근무를 하게 되는데
언제 나 늘 상투 속에는 부처님을 모시고 살았다.
이홍이라는 사헌부 대사의 얼굴에서는 광채가 나는 것이 아닌가?
그가 바로 후광거사이다. 부처님처럼 후광의 광채가 난다는 뜻입니다.
가만히 보니 머리 상투 쪽에서 환한 빛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하여간 여간 신비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홍을 아주 귀한사람으로 여겼다.
이후에 그는 사람들 모르게 부처님을 모시고 집에도 경전을 놓고 경 공부를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불교를 전파하거나 또는 강설하거나 절 짓는 일에 관여하면
출세 길이 막히는 때가 아닌가.
그래서 그는 늘 조심스러울 수 밖에서 없다. 그가 술자리를 하던 어디를 가게
되어도 의관을 벗는 일이 없었다.
동료들이 박연폭포에 그를 빠뜨리다.
어느 여름날 사헌부 사람들이 박연폭포에 놀러가게 되었다.
박연폭포에 가서 시회를 열었다.
그리고 시회에서 장원을 뽑아서 장원 한사람을 폭포에 던지기로 하였다.
당연히 이홍이 장원을 하고 친구들은 이홍을 번쩍 들어 폭포에 던졌다.
얼마나 놀랬겠나. 홀딱 젖어 버렸으니 당연히 탕건이며 옷을 벗어야 할 판이다.
물속에서 얼마나 허우적거렸는지 탕건도 벗겨지고 상투도 풀어졌다.
이를 어쩌나 부처님을 그만 폭포에 빠뜨리고 말았다.
한참을 무엇인가를 찾으려고 하는데 부처님을 찾아도 큰일이고
못 찾아도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나와서 탄식을 하는데 동료들은 깔깔대고 야단이다. 이때 폭포 속에서 서광이 햇빛의 빛살처럼 물속에서 뻗치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놀라서 이게 웬일인가 저속에 무엇이 있는가 하고 모두 호기심이 있으나
물이 깊고 어디서부터 나오는 빛인지 몰라 허둥대도 이홍만은 여전히 놀랜 빛을
처다만 보고 있었다.
그 후 사람들이 이 폭포에 가면 폭포에서 밝은 빛이 비쳐 나온다는 소문이 났다.
한이레가 지나고 나서 이홍은 혼자 박연폭포에 가서 부처님을 폭포수 아래서
찾아왔다. 그 후 이홍은 부처님께 참회하고는 몸이 아프다는 핑계로 낙향하고
말았다고 한다.
알쓸잡 버섯이야기
한 개의 송이버섯 몸이 100km까지 간다? 부산에서 경주까지.
한쪽 발은 산골에, 다른 쪽 발은 바다에 담근 거대한 생물이 있다면
저 너머 소식을 이쪽으로 전해 줄 수도 있겠다.
그러니 때문에 모든 버섯은 황경만 맞으면 어디든 같은 버섯이 나옵니다.
대단하다 할 수 있습니다.
“버섯은 스스로 광합성 작용을 못하기 때문에 나무가 만든 당을 얻어먹는다.
그 대신에 멀리까지 뿌리를 뻗어 미네랄과 물을 얻어 와서 나무한테 나눠줍니다.
그러니까 나무와 버섯은 서로 지원하고 삽니다.
나무가 썩어야 나무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버섯이 나무를 분해해서 나무가
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줍니다.
초고속 인터넷이 설치돼 세계가 연결되는 것처럼 땅에는 버섯이라는 그물이
와이파이처럼 깔려 있다는 것이지요.
나무와 풀과 미생물들이 버섯이라는 종균의 인터넷을 통해 서로 연결돼 뭔가를 교환하고
대화하고 그런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땅속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우리들은 모르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은 하나이다. 죽음과 삶이 다르지 않음입니다.
미물도 아니고 한갓 버섯 따위가 그들의 모든 생명을 다른 생명과 접속하고 있는 것이다.
나무나 곰팡이가 아니면 어찌 버섯 균이 그리 멀리까지 갈 수 있을까.
우리들이 지내는 백중기도는 이와 같은 생명의 사실에서 배워야 합니다.
이제 우리 조상님들 아니 바로 나를 위한 재를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세존사 회주 장산스님의 법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