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은 꽃 사진에 담기
몇 번 글을 남겼지만 숙지원은 아내의 소망과 기원이 담긴 공간이다.
봄꽃이 지면 마른 꽃대를 낫으로 쳐내고 빈자리에 계절에 맞는 꽃을 심고 다시 그 꽃이 지면 내년을 기약하며 알뿌리를 모으는 아내의 땀과 정성으로 이룬 공간이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비비추는 잔디길 가장자리에 경계 구분이 되도록 하고, 가지 분화가 잘되고 노란 꽃이 환한 멜란포디움으로 대문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길을 밝히도록 한 것은 아내의 뜻이었다.
색이 곱고 화려한 꽃, 키가 크고 봉오리가 큰 꽃, 작지만 귀여운 꽃들이 계절에 따라 조화를 이루어 편안함을 느낌을 주는 배치 또한 아내의 솜씨다.
(멜란포디움)
(달리아)
아내의 기원을 담은 가을 숙지원을 둘러본다.
꽃범의 꼬리는 천일홍에게 자리를 내주고 있다.
오전에만 피던 채송화도 가을이 오는 것을 아는지 슬금슬금 몸을 사린다.
다채롭고 화려했던 백일홍도 빛을 잃어간다.
세 번 피면 쌀밥을 먹는다고 했던 배롱나무 꽃들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아내의 어린날 친구 달리아는 새벽 찬이슬에 고개 숙이고 있다.
분꽃은 아직도 우리에게 할 말이 남았다는 듯 저녁이 되면 입을 연다.
하얀 별 꽃의 [너도 샤프란]은 맨 낯의 웃음이 싱그럽다.
상사화라는 서러운 이름으로 불리는 꽃 무릇은 또 잎이 진 자리에 화사한 붉은 꽃대를 밀어 올린다.
잦은 비에 어렵게 살아남은 금관화도 반갑다.
그리고 금관화와 멜란포디움 그늘에 숨어 피는 짙은 보랏빛 [토레니아]는 새로운 발견이다.
(너도샤프란)
(분꽃)
(토레니아)
금년 여름은 기온이 낮고 비가 잦은 이상 기후 현상을 보였다.
콩은 익을 무렵에 썩어버렸고 참깨는 알이 들지 않았다.
태양초를 만들겠다고 벼르던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날씨였다.
농작물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꽃들에게도 수난의 계절이었다.
짧은 태양 빛은 꽃의 색을 찾을 수 없게 했고, 집중호우는 꽃밭의 꽃들이 제대로 설 수 없게 만들었다.
그런데 모진 세월을 이긴 꽃들이 9월 볕에 제 모습을 보인 것이다.
(금관화)
(꽃무릇)
나무와 꽃이 자라는 정원도 사람이 품은 이상의 현실화를 꿈꾸는 소망의 산물이다.
대문 밖 험악한 소식에 분노하고 막무가내를 만난 듯 답답할 때면 그런 숙지원의 꽃들을 만난다.
듣고도 금세 이름을 잊은 꽃의 곁에 앉는다.
몸을 붙이고 자세를 바꿔가며 꽃의 표정을 기다린다.
그러다가 잠시 숨을 멈추어 사진기에 담는다.
하지만 꽃의 혼은커녕 색과 모양조차 제대로 잡기가 쉬운 일이던가.
기교 없이 담은 꽃의 사진은 늘 미안한 노릇이다.
그래도 서툰 무당 장구 탓하듯 사진기를 탓하며 꽃에게 생색을 낸다.
네 형체가 사라진 후에도 어딘가에 남은 네 모습을 보며 네 이름을 불러주는 사람이 있다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겠느냐고.
(배롱나무꽃)
사실 꽃의 한 순간을 담는 일은 꽃을 위한 마음이 아니다.
모질고 비정한 시대에 대한 나의 분노를 눅이는 일이다.
꽃의 시간을 보며 아름다운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기원을 담아 나의 세월을 기록하는 일이다.
한 계절이면 사라질 숙명적인 존재가 어디 꽃뿐이랴!
잠시 이승에서의 짧은 만남에 앵글을 맞춘다.
2014.9.5.
첫댓글 아름다운 정원, 숙지원엔 선생님 부부의 정성이 가득합니다.
한가위 달빛이 이 땅을 고루고루 비치어, 상처받은 맘을 어루만져 주면 좋겠습니다.
아름다워요~~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