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용 화백의 민화예술-‘책거리도(冊架圖)’
책거리도 또는 책가도(冊架圖)는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각종 문방구와 골동품, 화훼, 기물 등을 그린 그림이다. 18세기 후반 정조 재위 시에 궁중회화로 유행하여 19세기 이후 민화로 확산되었다. 중국 청대(淸代)의 다보각경도(多寶閣景圖) 또는 다보격경도(多寶格景圖)에서 연원을 찾을 수 있으며, 색조의 조화가 아름다워서 민화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책가도의 유래 및 일반적 내용과 특징을 살펴보면 18세기 후반, 청나라 사신으로 간 부연사(赴燕使) 일행을 통하여 다보격경도풍의 그림들이 조선에 유입된 뒤, 조선의 책가도(冊架圖)가 출현했다.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민화로써 책에 대한 사랑과 독서 분위기 조성은 우리 민족이 세계 속의 한국으로 클 수 있는 면학의 기틀 만드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음을 알 수 있다.
책가도는 책장과 서책을 중심으로 하여, 화면 전체를 채운 책장 모양의 격자 구획 안에 책갑으로 묶인 서책과 향로・필통・붓・먹・연적・도장 등의 문방구를 비롯하여 선비의 격조에 맞는 도자기・청동기・화병・분・부채 등을 주요 소재로 다루었다. 또한 선비의 여가생활과 관련된 술병・술잔・담뱃대・담배함・악기・도검・바둑판・골패・시계・안경 등도 등장했다.
정조의 책가도 장려로 양반가 마다 책가도 설치가 유행했고, 19세기 이후 민간으로 확산되면서 병풍의 크기가 작아졌고, 전통 책가도 대신 책장이 없는 형식이 더 많이 그려졌다. 작은 화면 구도상 책장 대신 소탁자나 사랑방 가구가 활용되고 서책 및 물품들이 한 덩어리로 표현되고, 서책보다는 다양한 기물과 화훼 및 과물(果物) 등에 더 비중을 둔 그림들이 등장했다.
전문 화가들의 초기 책가도 들은 책장으로 구획된 화면에 소재들이 좌우 대칭을 이루며 정확히 균형을 이루고 있으며, 원근법과 명암법을 잘 소화하면서 서가를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민간으로 확산된 책가도는 정물화처럼 자유로운 배치 구도를 취하고 색채도 화려하게 구사되었다. 상대적으로 서책보다 기물 등에 중점을 두면서 역원근법과 평면화법이 사용되었다.
박종용 화백은 전통의 특장 위에 현대 예술로 승화시킨 독창적 책가도를 선보이고 있다. 열폭 병풍용으로 창작된 박종용의 책가도는 조선시대 초기 책가도와 후기 책가도의 특장들을 절묘하게 배합하면서도 자기 예술로 승화시킨 걸작이다. 필력의 정교함과 생동감은 조선 시대 책가도나 궁중 화가도 도달하지 못한 경지에 오른 독보적 작품이다.
박종용의 책가도에서 보여 지는 책과 꽃, 각종 문방사우(文房四友)들이 절묘하게 조합된 화면들과 입체적 환상을 불러오는 평면 화법 등은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전통을 뛰어넘는 독창적이 단연 돋보인다. 더불어 색감의 화려함, 필선의 정교함, 구성의 완벽함 등은 전통적인 일반적 책가도에서 완전히 탈피하여 창의적인 자기예술로 승화시킨 결정체이다.
작가는 독창적인 책가도 창작을 위해 작품 당 십 회에서 이십 여회 밑그림을 그려 본 후 창작했으며, 상호간의 반대편 색상을 사용하여 생동감과 안정감 및 중량감이 독보이도록 노력하였다. 조선시대 대표적 민화 책가도 제작을 위해 작가는 세밀감을 극대화하고 전통 책가도와 차별화되는 독창적 작품 창작을 위해 가고의 노력을 기울여왔다.
작가의 표현처럼 박종용의 책가도는 서양화의 투시도법과 명암법, 특유의 섬세한 세부 묘사를 통하여 사진보다 더 정교할 정도로 실제와 흡사한 사실적이고 입체감이 뛰어난 작품이다. 청색, 갈색, 황색, 백색, 회백색 등의 원색의 당채 칼러가 뿜어내는 향기와 각종 서책, 주전자, 화병, 꽃, 향로, 쟁반, 붓 등 각종 기물들의 절묘한 조화들은 독창적 책가도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최근의 책가도가 현대적인 모습으로 나타남에 있어 박 화백의 노력이 일조했음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다
책가도. 10폭 병풍용)설명
치 수 : 각 30x130cm(가로x세로) (10점)
재 료 : 닥종이, 당채 컬러
제작년대 · 소장자 : 1990년대 중반 · 박종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