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이렇게 읽읍시다 4◈
“신명기 28장의 축복과 저주에 대한 이해”
언약에 대한 순종 여부에 따른 축복과 저주의 말씀이 기록된 신명기 28장을 보면 전체 68개의 절 중에서 14개의 절에서만 축복에 대해서 말하고 나머지 54개의 절에서는 불순종에 대한 두려울 정도의 엄중한 저주 목록들이 열거되고 있습니다. 이처럼 여기서 부정적 관점, 즉 저주에 대한 언급이 훨씬 더 강조된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여기에 대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불순종할 때 받게 될 징벌과 저주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게 함으로써 순종을 촉구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그렇게 한 것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두렵고 무서운 진노의 하나님으로 묘사해서 ‘겁을 주고자’ 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대하여 대단히 잘못된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결코 ‘겁을 줘서’ 복종케 하는 ‘깡패와 같은’(김용옥씨가 그런 표현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계시하고 있지 않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구약의 하나님을 진노의 하나님으로, 신약의 하나님을 사랑이 많은 자비의 하나님으로 이분법적으로 구분합니다만, 그것 역시 신구약성경의 일관된 흐름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출 34:6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모세에게 그 이름을 반포하셨듯이 “여호와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 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으로서, 이것은 만고에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묘사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여호와의 성품은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가시화되는 것입니다(요 1:17에 나오는 ‘은혜와 진리’는 출 34:6의 ‘인자와 진실’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신명기 28장에서는 그토록 무서운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가 더 많이 강조되고 있는가? 그것은 시내 산 언약, 즉 옛 언약의 한계를 보여주면서 장차 와야 할 새 언약을 예비하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내 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으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노라고 큰 소리로 서약을 하며 확언을 했습니다(출 19:8; 신 26:17). 그러나 그들은 얼마 가지 않아 그 언약을 어기고 맙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특별히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민족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비록 그들의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지만 그들 안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본성은 변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달리 말해서 그들에게는 아직도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신 29:4).
그런데 모세는 사실상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의 근본적인 결함에 대해서 알고 있었습니다(출32:9; 33:3, 5; 34:9; 신9:6, 13 ;31:27). 그래서 신 28장에서부터 30장까지 이어지는 모세의 설교를 들어보면 모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반역을 하고 그래서, 끝내는 언약에서 선언된 저주들을 다 받게 될 것을 거의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신명기에서 모세는 단순히 율법의 전달자가 아니라, 선지자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신 18:15, 18).
모세 이후에 나타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모세의 설교와 거의 같은 맥락을 취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선지자들의 기능은 율법의 감시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율법을 잘 지키는지, 못 지키는지를 감찰하고 만약 지키지 못할 때에는 단호히 경고하고 책망을 하며, 언약 불이행 시 주어질 징벌을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선지자들의 전체 메시지 구조를 보면 항상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책망과 징벌의 선언이 나온 후에, ‘그 후에’, ‘그 날에’, ‘끝날에’, ‘종말에’ 등등 미래의 어떤 시점을 가리키면서 하나님께서 범죄하여 징벌을 받아 거의 파멸되게 된 상태의 이스라엘을 다시 고토(약속의 땅)로 돌아오게 하시고 이전에 누리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영광스러운 축복을 주실 것을 예언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곧 종말에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초림)으로 말미암아 이 땅에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한 구원을 누리게 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종말적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워지는 새 언약 안에서 가능한 것임을 또 선지자들은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 새 언약은 근본적으로 백성들의 마음을 개혁시키는 언약으로서(렘 31:31-33, 겔 36:26),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짐으로써 참으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갖게 하고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는 백성이 되게 하는 언약입니다. 이 언약을 이루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그 피로써 사람들의 양심을 깨끗케 하시며(히 9:14, 10:22), 또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근거하여 새 언약의 영으로 오시는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김으로써 실현되게 되는 것입니다(고후 3:3).
모세의 설교 속에서도 바로 이러한 새 언약에 대한 전망과 소망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것이 신명기 29-30장에 나오는 모압 언약입니다. 이 새로운(추가된) 언약에서 모세는 옛 언약에 속한 육적인 이스라엘은 궁극적으로 하나님께 불순종하고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지만, 은혜와 진리의 하나님께서는 종국적으로 이스라엘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심으로써 그들이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며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라고 예언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육신의 죄성이라는 한계 때문에 범죄할 수밖에 없으며 율법의 저주를 피할 수 없는 인간들에게 최종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약속인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신명기 28장에 나온 그 두렵고 떨리는 저주의 선언들은 육적인 이스라엘들, 더 나아가서는 타락한 인간들은 그런 율법적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임을 증거하는 한편, 장차 나타나야 할 새 언약으로 말미암은 하나님의 은혜를 대망하게 하기 위한 몽학선생과 같은 것임을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갈 3:24).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