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전쟁 중 한 부락의 고아원에 박격포가 쏟아졌다. 몇 사람이 죽고 몇 사람은 부상당했다. 급히 도착한 미국인 의사와 간호사들은 8살 소녀를 먼저 치료하기로 했다. 당장 수혈이 필요한 이 소녀와 혈액형이 맞는 사람은 고아 몇 명 뿐이었다. 베트남어를 모르는 의사는 그 아이들에게 필사적으로 손짓 발짓을 섞어가며 "다친 이 소녀에게 누군가 피를 나누어주지 않으면 틀림없이 죽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참 후 '헹'이라는 이름표를 단 아이 하나가 머뭇거리며 손을 들었다가 도로 내렸다. 그러다가 짐짓 확신에 찬 얼굴로 다시 손을 들었다. 간호사는 즉히 헹의 팔을 걷었다. 팔에서 피를 빼내고 있기를 얼마 후, 헹은 작은 몸을 파르르 떨며 흐느꼈다. 당황한 의사와 간호사들이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마친 베트남 간호사가 도착했다. 헹과 몇 마디 말을 나누던 그녀는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
"헹은 당신들의 말을 잘못 알아들었어요. 당신들이 이 어린 소녀를 살리기 위해서 자기 피를 전부 뽑아주겠느냐고 물은 줄 알았던 거에요. 그리고 나서 자기는 죽는 거라고 잘못 알아들었대요."
"그렇다면 왜 이 아니는 자진해서 모든 피를 뽑아주려고 했을까요?" 울음을 그친 헹은 너무나 맑은 얼굴로 이렇게 말했다.
"걘 내 친구니까요."
어느 책에서 읽은 우정에 관한 감동적인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친구란 '이기심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인성의 도우미'라고 아동 학자들은 말한다.
또한, 교육학자들에 의하면 어린 시절 긍정적 변화의 이유 중 60%는 친구 때문이라고 한다. 부모나 선생님의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백마디 말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보며 공부를 더 잘하고 싶고, 운동 잘하는 친구를 보며 운동도 더 잘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긍정적인 변화의 최고 동기부여가 바로 친구인 것이다. 그런데 과연 우리 부모들은 아이에게 얼마나 '친구와의 우정'을 강조하고 있을까?
우리의 어린 시절 가장 많은 시간과 가장 깊은 마음을 나누던 친구들이 우리 아이들에게는 과연 얼마나 존재할까? 같은 학원에 다니는 친구 밖에 사귈 수 없는 현실 속에서 그 학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게 된 후에도 계속 우정을 유지할 수 있는 경우는 기대하기 힘든 일일 것이다. 친구도 일회용품처럼 그때만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닌지 마음이 씁쓸하기 그지없다.
"친구란 두 개의 몸에 깃든 하나의 영혼이다!"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오늘 따라 더욱 가슴에 남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