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9~20] '발해 1300호' 26주기 추모제
그리고,
발해1300호 26주기 추모제 준비의 변;辯
1.
집안의 막내라 허락에 까다로움이 없지는 않았으나
작년부터 집안의 제사를 가져와 지내고 있습니다.
절에다 모신다 하기에
지내지 않는다면 모를까 지내는 거면 저희가 하겠다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좀 나은 사람이다, 이런 말을 하고 싶은 걸까요?
제사를 지내느니 마느니, 옳으니 그르니,
다 각자 생각대로 할 일이겠습니다.
그게 의미 있으면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형편 되면 하고 아니면 못하는 것 아닐는지.
명절 가족모임이 의미 없으면 대안가족 그런 변화도 얼마든지 환영할 일입니다.
그저 관습에 끌려 우리 현재의 삶이 고단하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2.
첫 기제를 지내며 뭉클하였습니다.
시어머니 한 분을 빼고는 얼굴도 모르는 네 어르신들입니다.
그런데 뭔가 귀한 인연이 맺어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그를 기리는 일에
아, 깊고 깊은 사람의 일이구나 하는 감동이 일었습니다.
예전에 잘 몰랐던 마음들입니다.
젯밥과 함께 차도 달여 올리고, 꽃도 띄워 올리고...
제사가 즐거운 이벤트가 된 거지요.
그것에는 그저 주어진 일이 아니라 선택했다는 점에서,
또 ‘자유학교 물꼬’라는 큰살림을 하며 일이 손에 익어
상을 차리는 일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기도 했을 겝니다.
3.
‘뗏목 발해 1300호’는 제게 의미가 있습니다.
장철수 대장은 이문동에서 몇 해 나눈 우정이 있기도 하며,
몇 개월 임진왜란 400주년 기념행사를 같이 준비하던 뜨거운 시간도 있었습니다.
거의 잊혀졌던 그가(그리고 그들이) 뗏목탐사대 좌초로 다시 불려왔고,
그 해는 탐사대원들을 떠나보내고 저희 집 아이가 태어난 해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의미가 남달랐듯 또 누군가에게 그럴 테지요.
그들이 온전히 온 삶으로 옳은 행적만을 살았다거나 그렇게 생각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때 한 그들의 행위가 뜻 깊었고, 훌륭했다 여깁니다.
그걸 기리고자 합니다.
그들이 떠난 세월 내내 제 가슴에 그들을 새기지만은 않았을 겝니다.
그렇지만 결코 잊히지도 않은 당신들이었습니다.
4.
집안 어른도 30년 제사 지냈으면 할 만큼 했다던가요.
30주기까지는 제를 지내고 싶습니다.
그리고는 훌훌 떠나 보내드리고픈 산 자의 소망이 있습니다.
5.
먼 걸음이실 터이니 밥과 잠자리를 준비하겠습니다.
1월 19일 저녁밥과 20일 아침, 그리고 제상과 낮밥을 나누겠습니다.
오신다면 기쁨이겠지요.
멀리서도 마음 나눠주신다면 고인들 또한 더없는 기쁨이시리라 헤아려봅니다.
다들 계신 곳에서 아름다움 시절이시기 바랍니다.
부디 청안하시길.
- 옥영경 절
첫댓글 의미있는 자리 함께하여야 함에도 다른 사정으로 시간이 허락하지 않아 죄송합니다.
훌륭한 마음에 응원과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소식 고맙습니다.
일 편히 보시구요,
좋은 날 뵙기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