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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창세기35장23~36장8절
제목 : 이삭의 죽음과 장례
오래전 하란으로 도망갈 때 벧엘에서 기도한 대로(28:21), 야곱은 무사히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왔고, 이삭은 180세에 야곱과 에서가 지켜보는 가운데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경은 이삭의 죽음을 사이에 두고 야곱과 에서의 족보를 소개합니다.
한편 에서와 야곱은 헤브론에서 거류하던 이삭 을 장사 지냅니다.
1. 야곱의 아들들(23~26절)
1) 레아의 아들들(23절)
“[23] 레아의 아들들은 야곱의 장자 르우벤과 그 다음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이요”
야곱 12아들의 소개에서는
(1) 모계에 따라 분류되어 있고
(2) 서자보다 적자가 먼저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는 일반적 계보 서술에 따른 형태로서 특별히 상징되는 의미는 없습니다.
레아의 아들들 - 라헬로 인해 많은 서러움을 당했지만(16:4-6;21:8-14),
계 보상에는 제일 먼저 등장함으로써 엄연한 위계(位階) 질서롤 보여 줍니다.
레아의 아들은 모두 6명이며,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스불론입니다.
2) 라헬의 아들들입니다(24절)
“[24] 라헬의 아들들은 요셉과 베냐민이며”
라헬의 아들들 - 자식들의 출생 순서에 의한 것이 아닌 야곱 부인으로서의 서열에 따른 것입니다.
라헬의 아들은 2명이며,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3) 여종들의 아들들입니다(25,26절)
“[25]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은 단과 납달리요[26]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은 갓과 아셀이니 이들은 야곱의 아들들이요 밧단아람에서 그에게 낳은 자더라”
(1) 라헬의 여종 빌하의 아들들 : 단과 납달리입니다.
(2) 레아의 여종 실바의 아들들 : 갓과 아셀입니다.
비록 두 여인은 종 출신이지만 그녀들에게서 낳은 아들들은 본처의 아들들과 동등한 권리와 약속의 후손으로서의 영예를 누렸습니다.
이것은 신분과 인종이라는 인간의 기존 질서와 인식을 초월하여 당신의 벡성을 자의적으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야곱은 대부분의 자녀를 도피 생활 때 이방 땅, 밧단아람에서 얻었습니다.
그 자녀들은 이방에 머물던 야곱에게 하나님의 언약을 확신시켜주며 귀향에의 의지를 계속 유지케 하는 근거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열 두 아들 중 베냐민만큼은 가나안에서 태어났음이 분명합니다(16-18절).
한편 '태어났다'란 뜻의 율라드는 수동태 단수 동사로서 야곱의 열두 아들들이 단수로 취급되었음을 나타내 주는데 이는 장차 12지파로 이루어질 단일 왕국 이스라엘을 강력히 암시합니다(49:3-27).
2. 이삭의 죽음과 장례(27~29절)
1) 야곱이 아버지 이삭에게로 거주지를 옮겼습니다(27절)
“[27]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이 거류하던 헤브론이더라”
아버지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 야곱은 하란에서 돌아온 이후 부친과 몇번 접촉한 듯합니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인생의 황혼기를 맞은 그의 부친을 돌보며 남은 생을 곁에서 지켜보고자 원해서 아예 거주지를 옮겼던 것 같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거류하던 헤브론 - 야곱이 당도한 헤브론은 오래 전부터 그의 조상들의 발자취가 어려있는 곳(13:18;23:2;25:7-11),
야곱은 남다른 감회에 젖었을 것입니다.
2) 이삭의 나이가 180세가 되었습니다(28절)
“[28] 이삭의 나이가 백팔십 세라”
이삭이 야곱을 만날 당시의 나이를 산출해 보면
(1) 요셉이 17세에 애굽으로 팔려 갔고
(2) 30세에 바로 앞에 섰으며(41:46)
(3) 그후 7년간의 풍년과(41:47) 2년의 흉년(45:6)이 지났을 때 요셉의 나이는 39세였고 야곱은130세였습니다(47:9).
그렇다면 39세에서 17세를 제하면 22년이므로 현재 야곱의 나이는108세가 되며 여기에 야곱 출생시 이삭의 나이 60세를 더하면 현 이삭의 나이는 168세로 나옵니다.
따라서 이삭은 이때로부터 12년을 더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기간을 생략함으로써,
성경이 자꾸 서두르는 듯 한 인상을 주는 이유는
(1) 성경은 구속사에 중요하게 여겨지는 사건과 인물을 중심으로 내용이 기술되어 있는 관계로 많은 생략법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며
(2) 본장의 궁극적인 촛점이 모든 사람에게 참 생명을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신 메시야의 탄생의 장을 향해 치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이삭은 그의 아들 앞에서 죽어 장사하였습니다(29절)
“[29] 이삭이 나이가 많고 늙어 기운이 다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그의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니 - 아브라함의 임종을 묘사할 때와 같습니다<25:7, 8 주석>.
에서와 야곱이 - 이삭의 죽음이 임박하자, 야곱은 형 에서에게 통지하여 아비 이삭의 장례에 참석하도록 했습니다.
당시 에서는 급히 마므레로 올 수 있을 정도로 멀지 않은 세겜에 살고 있었습니다(32:3).
그를 장사하였더라 - 가족 묘역인 막벨라 굴에 안장되었습니다(49:31).
이곳에는 아브라함과사라, 리브가와 레아가 함께 묻혔고 훗날 야곱의 시신도 이곳에 안치되었습니다(23:17-20;50:13).
한편 히브리인들은 매장(埋葬)이나 화장(火葬)보다는 인조 또는 자연 동굴에 시체를 안치하는 것이 관습이었습니다.
이때 대부분한 동굴을 가족 묘소로 지정해두고 가족 중 누가 죽어갈 때마다 그곳에 보관하여 자연적으로 부패 소멸토록 했었습니다.
이는 죽음은 영원한 멸절이 아니라 다만 새로운 형태의 세계(스올)로 들어가는 것이라 믿었던 그들의 내세관을 잘 반영해 줍니다.
3. 에서의 아들들(1~5절)
1) 에서 족보입니다(1절)
“[1] 에서 곧 에돔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즉 에돔의 계보(系譜)입니다(5:1;민 3:1).
언약적 관점에서 이삭의 죽음에 이어 곧바로 야곱의 전기(傳記)로 들어가야 하지만 먼저 에서의 생애와 그 후예가 간단히 서술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에서를 축복한 하나님의 예언이(25:23)성취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이자
(2) 신정사에 있어서 언약의 백성 이스라엘과의 밀접한 관계 때문이며
(3) 또한 언약의 땅 가나안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택자와 불택자의 역사를 대조하기 위해서입니다.
2) 에서의 부인들입니다(2,3절)
“[2] 에서가 가나안 여인 중 헷 족속 엘론의 딸 아다와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를 자기 아내로 맞이하고[3] 또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을 맞이하였더니”
에서는 세 아내를 취하였으나 26:34과 28:9과 비교해 보면 그들의 이름과 혈통이 다소간 차이가 난다는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헷 족속 에론의 딸 아다,
(2) 히위 족속 시브온의 딸인 아나의 딸 오홀리바마,
(3) 이스마엘의 딸 느바욧의 누이 바스맛입니다.
3) 여인들에게서 난 아들들(4~5절)
“[4] 아다는 엘리바스를 에서에게 낳았고 바스맛은 르우엘을 낳았고[5] 오홀리바마는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를 낳았으니 이들은 에서의 아들들이요 가나안 땅에서 그에게 태어난 자들이더라”
(1) 아다 : 엘리바스
엘리바스 - '하나님의 힘'이란 뜻으로 욥의 세 친구 가운데 한 사람도 이 이름을 갖고 있었습니다(욥 2:11; 4:1).
(2) 바스맛 : 르우엘
르우엘- '친구'를 뜻하는 '레에'와 '하나님'인 '엘'이 합쳐진 말로
'하나님의 친구'란 뜻입니다. 모세 장인의 이름과 같습니다(출 2:18).
(3) 오홀리바마 : 여우스와 얄람과 고라
고라- '대머리'란 뜻이 있으며 모세와 아론에 대항하여 반역을 주도하였던 고핫의 손자 이름이기도 합니다(민 16:1-3).
이러한 현상은 이스라엘인들이 부모 또는 친구의 이름을 후손에게 붙여 주곤 하던데서 연유된 것입니다.
4. 에서의 이주(6~8절)
1) 에서가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갑니다(6절)
“[6] 에서가 자기 아내들과 자기 자녀들과 자기 집의 모든 사람과 자기의 가축과 자기의 모든 짐승과 자기가 가나안 땅에서 모은 모든 재물을 이끌고 그의 동생 야곱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갔으니”
야곱을 떠나 타처로 갔으니 - 여기서 '타처'란 이방 세계를 뜻하기보다 막연한 '어떤 곳'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 문장은 안정된 삶의 터전이었던 가나안 본토로부터 멀리 떨어진 세일 땅으로 떠난 것을 뜻 합니다 (8절).
에서는 일찍부터 이삭을 떠나 세일에서 생활 했었습니다 (32:3;33:16).
그런데 이제 다시 야곱과 완전히 분리하여 세일로 떠나갔으니 이로써 언약의 주요내용 가운데 하나인 가나안 땅(12:7)에 대한 주권은 별다른 저항을 일으키지 않고 야곱의 후손에게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2) 에서가 떠난 이유입니다(7절)
“[7] 두 사람의 소유가 풍부하여 함께 거주할 수 없음이러라 그들이 거주하는 땅이 그들의 가축으로 말미암아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그들의 거주하는 땅(에레츠 메구레헴) - '땅'을 뜻하는 '에레츠'와 '잠시 머무르다'란 뜻의 '구르'가 합쳐진 말로 '그들의 체류하는 땅'이란 뜻입니다.
이는 야곱과 에서가 아브라함과 이삭처럼(출 6:4) 어디까지나 가나안 땅에 대하여 체류 자였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이 말은 인간이 지상에서 영구히 생존할 수 없고 단지 그곳을 거쳐가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그들을 용납할 수 없었더라 - 단지 체류자인 야곱과 에서가 원주민과의 충돌을 피 하면서 원주민의 영향력이 못 미치는 목초지를 찾아 엄청나게 불어난 자신의 가축들을 방목하기에는 무리였을 것입니다.
3) 에서가 세일 산에 거주합니다(8절)
“[8] 이에 에서 곧 에돔이 세일 산에 거주하니라”
에서가 야곱과 갈리게 된 표면적 이유는 소유의 풍부로 인한 목초지의 부족 때문이었지만, 근본적인 동기는 이삭을 통해 이미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었습니다(27:39,40).
즉 이미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야곱에게는 가나안 땅(28:13)을,
에서에게는 세일산지를 기업으로 주시려고 작정하셨었습니다(신 2:5;수24:4; 32:3).
여기서 '거하니라' (야솨브)는 '앉다', '눕다', '살다' 등의 뜻으로 오랫동안 정착함을 가리킵니다.
말씀가이드
믿음의 세대를 통해 하나님의 약속은 계승되고 성취된다.
마므레 석약볕에 이삭이 진다.
아버지의 땅에 서 있는 야곱의 어께가 무겁다.
죽음의 삶의 또 다른 형태이듯, 삶은 야곱에게 치열한 자기 죽음이었다.
이삭은 비틀거리던 야곱이 우직한 아들로 설 때까지 생을 지탱하고 죽음을 버텨냈다.
이제 야곱이 약속을 이어가야 한다.
아버지가 재회하다- 야곱은 오랜 고향 헤브론으로 걸음을 재촉했다.
이삭은 가족 무덤이 있는 마므레 근처에서 지내며 고요히 삶을 정리하고 있던 것으로 보인다.
리브가도 먼저 떠나보내고 홀로 하나님만을 독대하며 말이다.
이젠 형처럼 분장하고 목소리를 변조해 아버지 앞에 설 필요도 없어졌다.
아버지를 떠나보내다-이삭은 180세의 나이로 조상들 곁으로 돌아갔다.
자신의 죽음을 예고했던 이삭은 야곱이 떠난 후로도 80년을 살아낸 건지도 모른다.
야곱이 형과 화해할 때까지, 어엿한 언약의 후계자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 때까지 말이다.
아버지 뒤를 잇다- 형과 함께 이삭을 막벨라 굴에 안장하던 날, 야곱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언약을 이어가기로 다짐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두 형제에게 자손의 축복을 주셨고, 가축과 짐승, 재물에 부족함이 없었다.
에서는 넓은 곳을 찾아 세일로 떠났지만, 야곱은 힘겹게 이른 가나안에 머문다.
한 세대가 끝나고 다음 제대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어가려면 기다림이 필요하다.
말씀을 제대로 깨달을 때까지, 나그네 삶에 종지부를 찍을 때까지, 속이는 자에서 이스라엘이 될 때까지 말이다.
나와 자녀를 통한 하나님의 약속을 어떻게 이어가는가.
묵상 Point
1) 신비한 하나님의 통치
야곱의 자녀가 열두 명이 되었다.
한편으로는 이것이 남편의 사랑을 얻으려는 두 아내 간의 인간적인 경쟁심의 결과이긴 하지만, 그 배후에는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주신 언약의 계승자로 야곱을 선택하시고 그에게 자손의 번성을 약속하신 하나님이 계셨다.
종잡을 데없는 사람들의 이전투구롤 가득 찬 이 세상이 악인들의 손에서 뜻 없이 흘러가는 듯하지만, 하나님의 통치는 여전하며 그분의 계획은 당신의 지혜를 따라 성취되어가고 있다.
2) 화해를 가져온 죽음
약속의 후손 이삭은 아브라함이 땅 약속을 믿음으로 밭을 샀던 곳 마므레에서 두 아들과 함께 지내다가 평안히 최후를 맞고 막벨라 굴에 묻힌다.
영적 분별력이 둔한 이삭 때문에 서로 갈등한 두 아들이 함께 아비의 장례에 참여했다는 언급은, 하나님이 친히 그 갈등을 해소하시고 이삭을 신실한 언약의 중계자로 만들어주신 후 그를 부르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3) 복을 저버린 에서
야곱은 히위 족속과 통혼함으로 경제적으로 부강해질 수 있는 기회가 있었지만 거절하였다.
하지만 에서는 가나안 여인들과 결혼하여 자녀를 낳았다.
그는 실질적으로 야곱에게 장자권을 빼앗겼을 뿐 아니라, 선택된 가족의 일원으로서 약속의 후손을 낳아야 한다는 의식도 없었다.
풍성한 목초지를 찾아 약속의 땅과 약속의 사람 아브라함을 떠나 동쪽 소돔으로 이동한 롯처럼, 에서도 야곱을 떠나 동쪽으로 이동하여 에돔 곧 세일 산에 정착한다.
형다운 아량과 관대함이긴 하지만, 동시에 약속의 땅을 버림으로써 스스로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에게 주신 하나님의 복을 저버린 것이다.
세상 문화와 전혀 차별 없는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자녀로 불리고 싶은 이중적인 모습이 내게는 없는지 돌아보자.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전체 에서와 야곱에게 주신 후손의 약속을 이루어가십니다.
지금까지 야곱은 에서와 복중에서부터 다투고, 장자권을 두고도 경쟁했으며, 그의 아내인 라헬과 레아도 서로 시기하고 경쟁했습니다.
잠잠히 복 주시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모두 제 힘으로 쟁취하려 했기에 약속을 성취하는 과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약속을 무효로 돌리지 않으시고 그 모든 과정을 통해 약속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선물로 주실 복을 잠잠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순적한 삶이 있습니다.
내려놓지 못한 나의 욕심이 나의 삶을 고통스럽게 하지 않는지 돌아봅시다.
내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27-29절 이삭이 헤브론에서 죽어 열조에게 돌아갑니다.
그는 아브라함이 매입한 마므레의 막벨라 굴 근처에서 살다 그곳에서 죽어 매장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약속의 땅을 넘나들며 여행한 것과 달리 그는 평생 약속의 땅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배필을 얻기 위한 여정에도 참여하지 않고 그 땅에 머물렀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려는 길도 하나님이 막으셨습니다.
아브라함과 야곱이 역동적인 삶을 산 것과 달리 그는 비교적 순탄한 삶을 살았습니다.
아마도 그의 성향을 고려하신 하나님의 배려였을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마다 하나님이 정하시고 허락하신 삶의 모습이 다릅니다.
나에게도 가장 적절한 삶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29절 평생 다투며 갈등했던 에서와 야곱이 함께 이삭의 장례를 치릅니다.
생전에 가정을 화합으로 이끌지 못했던 이삭이지만, 죽음을 앞두고 형제가 화합하는 모습을 누립니다.
야곱의 가정을 돌보신 하나님의 지속적인 손길이 망가진 가정을 고치고 회복하신 것입니다.
36:1-8 에서는 야곱과 화해했지만, 그와 함께 거주하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을 떠난 롯처럼(13장(통합 장), 그도 야곱과 함께 약속을 상속하는 편보다 풍성한 목초지에서 자신의 일가를 이루는 편을 택합니다.
에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며 이삭의 맏아들이지만,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약속의 땅을 떠남으로 약속의 복에서 멀어졌습니다.
약속을 따르는 삶과 세상에 속한 삶을 동시에 누릴 수 없습니다.
나는 어떤 삶을 택하였습니까?
[기도]
공동체-저희 연약함 때문에 가정과 공동체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도록 늘 돌보시며 함께하소서.
열방-남아프리카공화국에 외국인을 향한 혐오가 증가하면서 폭력사태가 일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사회에 외국인 혐오가 사라지고 관용과 포용의 정신이 확산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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