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다도해, 추자도(중)
돈대산 및 상추자 올레길을 걷다
추자도에서의 제2일째. 오늘은 온종일 올레길을 돌 예정이다.
추자도 올레길은 제주올레 18-1코스로 총길이 17.7km, 6-8시간 소요된다. 관광안내 팜플렛 상 추천코스는 상추자도와 하추자도를 완전종주하는 코스로, 추자항 출발-면사무소-최영장군 사당(0.4km)-봉골레산입구(1.1km)-봉골레산정상(1.5km)-추자공소(성당)-순효각 입구(2.5km)-박씨처사각(2.7km)-나발론절벽정상(3.1km)-등대전망대(3.3km)-추자교(4.2km)-추자교삼거리(4.4km)-묵리고갯마루(5.1km)-묵리마을(6.2km)-신양2리(6.8km)-신양항(7.7km)-모진이해수욕장(8.4km)-황경헌의묘(9.3km)-신대해안길(9.8km)-신대전망대(10.2km)-예초리기정길(10.7km)-예초리포구(11.1km)-엄바위장승(11.6km)-돈대산입구(12.0km)-돈대산정상(12.8km)-묵리교차로(14.0km)-담수장(14.6km)-추자교앞(15.4km)-영흥쉼터(16.2km)-추자항(17.7km) 원점 회귀코스이다. 그러나 숙소 위치나 시간여유에 따라 상,하추자도를 별개로 도는 것도 무방하다.
필자 일행은 숙소가 하추자도 신양항에 위치하고 있어 아침 일찍 일출도 볼 겸 돈대산 정상을 오른 후 상추자도로 건너가 상추자도 코스를 모두 돈 후 다시 하추자로 돌아와 모진이해안-황경헌의묘-신대산전망대-예초리포구로 도는 코스를 택하기로 했다.
둘째날 아침 5시. 우리 일행은 숙소를 나서 돈대산 산행길에 올랐다. 예초리로 넘어가는 언덕길을 10분 쯤 오르면 고갯마루 좌측으로 돈대산으로 가는 길이 보인다. 이곳으로부터 완만한 능선을 30분 정도 오르면 돈대산 정상이다. 등산이라기 보다는 동네 뒷산 산책 수준이다. 5시 반 쯤 정상에 거의 도착할 무렵 해가 떠오르기 시작한다. 섬에서는 원래 바다 수평선 위로 오르는 일출이 제격인데 돈대산에서는 신대산 방향이 동쪽이라 일출방향의 바다는 보이지않는다. 안내지도를 보면 황경헌의 묘 앞 쉼터가 일출포인트로 나와 있다. 추자10경 중 제1경인 ‘우두일출(牛頭日出)’이 쇠머리섬 위로 떠오르는 일출광경이다. 아쉽지만 아침 일찍 돈대산 정상에 오른 것으로 만족한다.
돈대산 정상에 서면 사방이 한 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신대산, 남쪽은 수덕도(사자섬), 청도(푸랭이), 동남쪽으로는 신양항 등이 내려다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수덕도와 청도 사이로 한라산까지 보인다던데 오늘은 안개가 자욱하여 시야가 미치지못한다. 서쪽으로는 발 아래 묵리마을과 섬생이섬이 내려다보이고, 서북쪽으로는 상추자도의 윤곽이 실루엣으로 잡힌다.
돈대산 정상에는 해발 164m라고 표시된 표지석과 주변섬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돈대정’이라고 쓰여진 정자도 세워져 있다.
안개 걷히기를 기다렸는데 오히려 더 짙어진다. 정상에서 맑은 아침공기를 실컷 마신 후 하산하기로 한다. 내려가는 코스는 중간 삼거리에서 우측 신양항 쪽으로 내려간다. 마을 가까이에 이르면 좌측으로 묘소를 만난다. 묘소 주변에는 꽃양귀비가 이슬을 머금고 아름답게 피어 있다. 추자도 곳곳에는 유난히 꽃양귀비가 많다. 이 꽃은 아름답기도 할 뿐 아니라 색이 화려하여 보는 이로 하여금 마음을 설레게 하는 마력이 있다. 아침부터 양귀비의 요염한 자태에 취한다. 미녀들을 양귀비에 비유하는 이유를 알 만 하다.
아침식사 후 상추자도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린다. 추자도에서는 매시간 마다 공영버스가 상․하추자도를 돈다. 요금은 800원. 버스는 신양2리와 묵리해안, 추자교를 거쳐 추자항으로 간다. 추자면사무소 앞에서 하차, 본격적인 올레길 트레킹에 들어간다.
면사무소 옆에는 올레길 코스와 함께 최영장군 사당 이정표가 붙어 있다. 면사무소에서 골목길을 따라 200m쯤 가면 최영장군 사당이다. 고려 공민왕 23년(1374) 탐라(현 제주도)에서 원의 목호(牧胡) 석질리(石迭里) 등이 난을 일으키자 정부에서는 최영 장군으로 하여금 이를 진압하도록 하였다. 장군은 원정 도중 심한 풍랑으로 이곳 점산곶(點山串)에서 바람이 잔잔해지기를 기다리는 동안 섬주민들에게 어망편법(漁網編法)을 가르쳐 생활의 변혁을 가져오게 하였다. 그 뒤 이곳 주민들은 장군의 위덕을 잊지못하여 사당을 짓고 매년 봄가을에 봉향하고 있다고 한다.
최영장군 사당 뒤 소나무숲 해안으로 올라서면 시야가 완전히 트이면서 추자도 앞 섬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추자도가 제주의 다도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추자군도에는 상추자, 하추자, 추포, 횡간도 등 4개의 유인도와 38개의 무인도 등 총 42개의 섬들이 모여 있다. 염섬, 추포도, 횡간도 등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오고 우측으로는 이름도 특이한 검은가리섬도 보인다. 날씨가 좋으면 횡간도 뒤로 보길도, 약간 우측으로 완도, 좌측으로 진도까지 보인다고 한다.
섬 조망을 즐기면서 해안길을 걷다보면 좌측으로 추자항이 내려다보이고 우측 바다에는 수령섬, 악생이여 등이 점점 가까이 시야에 잡힌다. 해안산책길이 정말 아름답다. 가슴이 시원하게 열리는 기분이다. 섬 트레킹의 매력이 바로 이 맛이다.
최영장군 사당에서 20분쯤 해안길을 따라가면 봉글레산 갈림길을 만나고 다시 10분 정도 더 가면 다무래미라고 부르는 조그만 바위섬 앞에 이른다. 다무래미는 썰물 때는 걸어서 건너갈 수도 있으며, 경관도 아름답지만 낚시터로서도 더할 나위없이 좋은 곳이기도 하다. 다무래미 뒤로는 직구도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직구도는 섬 뒤로 떨어지는 낙조경관이 아름다워 추자10경 중 하나로 알려져 있는 섬이다.
다무래미 섬의 경관을 즐긴 후 대서리 후포어장 쪽으로 내려간다. 후포어장은 어항 모양으로 움푹 패인 어장인데 이곳에서는 맨손, 호미 낫 등을 사용, 옛방식 그대로 고기를 잡는 소위 ‘갯바당잡이’체험을 할 수 있다. 추자도에는 이곳 이외에도 영흥리, 묵리, 예초리, 모진이체험어장 등 총 5개의 갯바당잡이 체험어장이 있다. 반달 모양의 후포어장을 돌면 추자올레길의 하일라이트인 나바론절벽에 이른다.
수백개의 목제계단을 따라 용등봉이라고 부르는 나발론절벽 전망터로 올라가면 남서해안 쪽으로 거대한 해벽이 시야에 들어온다.
1960년대 초 그레고리 펙과 안소니 퀸이 출연했던 영화 ‘나발론 요새’에서 이름을 따 온 것이라 한다. 아뭇튼 이름이 외래어라서 어색하긴 하지만 영화 제목 때문에 더욱 와 보고싶은 곳이기도 하다. 추자도 등대 쪽으로 병풍을 치 듯 깎아지른 절벽은 규모도 웅장하거니와 경관 역시 아름다워 탄성이 절로 나온다.
전망터에서 가파른 바위비탈을 조심스럽게 내려가면 나발론절벽 아래에 ‘용듬벙’이라고 부르는 물웅덩이도 만난다. 바위가 바닷물을 막아 물이 고인 곳인데 모양이 제법 아담하다. 용이 바다에서 나와 잠시 쉬는 곳이라는 뜻으로 붙여진 이름인지도 모르겠다. 나발론 정상은 용듬벙에서 가파른 바위비탈을 바로 오르거나 등대 능선에서 갈 수 있는데 나발론정상에 오르면 새로운 각도에서의 나발론 절벽 경관을 즐길 수 있다.
왔던 길을 되돌아서 후포어장 끝 정자 마당으로 가면 곧바로 추자항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인다. 면사무소-최영장군 사당-봉글레산 입구-다무래미 전망터로 이어지는 해안산책로로는 여유있게 걸을 경우 이곳 후포어장 정자까지 약 1시간 가량 걸리는 데 마을길로 바로 가보니 면사무소까지 불과 10분도 안걸리는 거리이다. 추자항에서 나발론 절벽만 보고자 할 경우에는 이 길이 최단거리인 셈이다.
추포항에서 점심식사 후 불과 60m 거리에 있는 등대산공원을 올라가 본다. 공원 정상에는 등대정이라고 쓰여진 정자와 함께 높이 10m의 반공탑도 세워져 있다. 1974년 5월 이곳 출신의 월북자가 간첩으로 내려와 교전하는 과정에서 희생된 분들을 추모하기 위한 탑이다. 등대산공원에 서면 우측으로는 추자항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이고 좌측으로는 수령섬, 악생이여, 염섬, 이섬, 추포도, 횡간도, 검은가리섬 등 추자군도의 대부분의 섬들이 시야에 들어온다.
추자항을 돌아 추자등대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추자항 보건지소 뒤로 가면 순효각을 만나고 다시 마을언덕길을 200m쯤 오르면 추자처사각이라는 문화재를 볼 수 있다. 순효각은 효성이 지극했던 박명래 라는 분의 행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것이며, 추자처사각은 처사 박인택을 추모하기 위해 후손들이 세운 사당이다. 박인택은 추자도에 사는 태인박씨의 입도선조로, 조선 중기 추자도에 유배와서 불교적 생활을 하며 주민들의 병을 치료해 주고 불교 교리를 가르치면서 살았다고 한다.
추자등대는 추자처사각 바로 옆 숲길로 오른다. 올레길 방향 표지석이 세워져 있다. 7분 정도 숲길을 오르면 능선에 이르고 좌측으로 200m정도 가면 추자등대 전망대이다.
추자면 영흥리 산중턱에 위치한 이곳 전망대는 등대로서의 역할 뿐 아니라 추자군도 전체를 내려다 볼 수 있는 전망대로서도 최고이다. 전망대에 오르면 상추자도, 하추자도는 물론 남쪽으로는 한라산, 북쪽으로는 한반도 남단 다도해가 그림같이 펼쳐진다. 제주특별자치도에서는 유일하게 한라산과 다도해를 함께 관망할 수 있는 곳이다. 추자군도 42개섬들이 마치 바다 위에서 뛰노는 돌고래들같다.
등대전망대에서 바랑케길쉼터를 지나 추자대교에 이르는 능선숲길의 조망도 환상적이다. 좌우로 바다와 섬들을 내려다보면서 능선을 타면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느낌이다.
프랑스 작가이자 철학자이며 알베르 까뮈의 스승이기도 한 장 그르니에(Jean Grenier)가 그의 저서 <섬(Les Iles)>에서 쓴 글이 생각난다. 나도 지금 그런 기분이다.
“섬들을 생각할 때면 왜 숨이 막히는 듯한 느낌이 되는 것일까? 바다의 시원한 공기며 사방의 수평선으로 자유스럽게 터진 바다를 섬 말고 어디서 만날 수 있으며, 육체적 황홀을 경험하고 살 수 있는 곳이 섬 말고 또 어디 있겠는가?”
( 글,사진/임윤식) (다음 호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