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의 중세도시 요크(York)를 가다
가장 영국다운 도시, 영국역사의 보물창고
필자는 직장 관계로 4년간 영국에 산 적이 있다. 또 그 후에도 업무 출장이나 사적인 일로 영국을 종종 다녀오곤 한다. 그 때의 인연으로 아들이 아직도 계속 영국에 살고 있어 마치 제2의 모국같은 느낌을 주는 나라이다.
어느 작가가 영국을 <바꾸지않아도 행복한 나라>라고 표현한 적이 있는데 필자도 그 표현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전통과 문화를 가장 중히 여기는 나라, 도덕과 관용이 생활 속에서 실천되는 나라가 영국이다.
아들도 볼 겸 영국을 두달 정도 다녀오면서 이번엔 어디를 주로 돌아볼까 생각해 봤다. 영국 살 때는 4년동안 영국, 스코틀랜드 및 아일랜드 등의 유명한 관광지나 지방도시, 골프장 등을 대부분 돌아봤는데 20년이 넘은 지금, 오랜만에 다시 가보고싶은 곳은 어디일까? 문화예술적으로는 당연히 오페라나 뮤지컬, 박물관 및 미술관 등을 꼼꼼히 들여다보고 싶고, 테임즈강과 공원 그리고 도시와 강변을 따라 이어진 트레킹 코스를 실컷 걸어보고싶기도 했다. 그런데 도시는 어디가 가장 기억에 남는가? 필자는 먼저 영국중북부에 위치한 요크(York)와 호수지방 레이크 디스트릭트(Lake District), 셰익스피어 생가가 위치한 스트래트퍼드 어폰 에이번(Stratford upon Avon) 및 영국의 가장 아름다운 전원마을 코츠월즈(Cotswolds) 등이 떠올랐다.
한 때 해가 지지않는 나라 영국은 지구 곳곳 신천지를 발견, 식민지로 개발하면서 대영제국의 영화를 누리기도 했다. 이제 빅토리아여왕 시대의 영광은 많이 줄어들었지만 아직도 영국여왕 엘리자베스 2세는 영국을 포함한 16개국과 기타 국외 영토와 보호령의 여왕이다.
이런 연유로 영연방국가들을 가보면 도시나 지방 여기저기에 영국의 지명이나 용어가 눈에 띤다. 예를 들어 호주에 가면, 수도인 캔버라 중심가의 '시티 힐'을 도는 원형도로 이름이 'London Circuit'이며, 상가 건물이 'The London'이라고 붙여진 건물이름도 볼 수 있다. 시드니 중심부의 공원인 'Hyde Park'도 마찬가지이다. 하이드 파크는 영국 런던 시내에 있는 대공원 이름을 그대로 따 왔다. 또, 미국의 가장 큰 도시 New York도 그 도시명의 유래는 영국에서 비롯된다. 신대륙 미국으로 건너간 영국인들은 새로운 도시를 만들면서 영국의 전통적인 도시 York 이름을 따서 ‘새로운 요크’라는 의미의 '뉴욕(New York)’이라 이름붙였다. 얼마나 고국의 아름다운 도시 요크를 못잊었으면 New York라 이름붙였을까? 이들 모두는 모국과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주민들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져 있는 이름들이다.
요크는 영국 중북부에 위치한 도시이다. 런던 킹스크로스역에서 열차로 1시간 50분 정도 걸린다. 요크는 일반적으로 중세도시라고 부르고 있지만 실제로는 그 헐씬 이전인 서기 71년에 로마인에 의해 만들어진 도시이다. 로마군의 본부가 세워졌고, 로마황제의 궁전도 있었던 도시이다. 후에 바이킹에게 점령되었지만, 노르만 정복 후에 급속히 발전하여 런던에 이어 제2의 도시, 종교의 북쪽 중심지가 되었다. 지금의 거리는 중세 분위기를 짙게 풍기고 있지만 성벽이나 성문을 비롯한 교회의 유적 등 로마시대와 바이킹 시대를 느끼게 하는 것도 산재해 있는 역사의 보물창고이다.
요크역에서 내리면 먼저 고색창연한 역 청사가 방문객들을 압도한다. 요크는 남쪽 런던과 북쪽 스코틀랜드를 이어주는 중간 기착지로서, 국립철도박물관도 유명하다. 1938년 7월에 세계에서 처음으로 시속 200km를 넘는 증기기관차 말라도(Mallard)호 비롯해 기관차 103량과 200량 가까이의 객차가 전시되어 있다. 빅토리아여왕을 태웠던 객차도 전시되어 있으며, 철도에 관한 설비나 기계, 도서 및 사진 등도 갖춰져 있다.
역 밖으로 나가면 바로 성벽이 보인다. 여행전문 가이드 북인 ‘Just Go’에 의하면, 최초로 이 도시에 성벽을 쌓은 것은 로마인이지만, 현존하는 성벽의 대부분은 1327년에서 1377년에 걸쳐 노르만 인에 의해서 쌓아진 것이라 한다. 전 길이가 약 5km이며, 도시를 내려다보면서 걸을 수 있다. 성문을 닫기 위해서 사용했던 가로대를 ‘Bar'라고 부른 것에서 유래하여 성문을 Bar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4개의 주요 문 중에서 가장 성문이 높은 것은 ’몽크 바‘이다.
성벽을 따라 조금 걸으면 우즈강(River Ouse)을 만나고 바커타워(Barker Tower)라고 부르는 멋진 강변타워도 눈에 들어온다. 바커타워는 원래 14세기에 감시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강 건너 렌달타워(Lendal Tower)와 철쇠사슬로 연결하여 보트들이 요금을 내지않고 시내로 들어가는 것을 통제하기 위해 사용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건너 뮤지엄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중앙로를 따라가면 바로 정면으로 장엄한 ‘성당(The Minster)'을 만난다. ‘요크 대성당(York Minster)’이라고도 불리워지는 이 성당은 1220년부터 약 250년의 세월에 걸쳐 1472년에 완성된 영국 최대의 고딕건축이다. 대성당에 들어서서 우선 눈을 앗아가는 것이 동쪽 벽에 있는 스테인드글라스. 높이가 약 23m, 폭이 약 9m나 된다. 서쪽 별관은 끝부분이 하트 형으로 거기에 ‘요크셔의 하트’라고 불리는 스테인드글라스가 끼워져 있다. 가장 오래된 것은 북쪽 회랑 중앙에 있는 1155년의 것이다. 장미전쟁의 종결을 기념해서 끼워넣은 원형 로즈 창도 유명하다. 가이드북 ‘Just Go’에 의하면, 스테인드글라스는 중세의 것으로는 세계 최대라고 한다. 우측의 옆 화랑을 내려가면, Undercroft라고 부르는 지하로 연결된다. 수십년 전 복구공사 때 로마시대의 유물이 발견되어 전시실로 만들었다.
요크 대성당을 둘러본 후 시내 골목길로 들어선다. 도시 전체가 대부분 중세식 건물들이라 지나가는 곳 마다 방문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먼저 요크에서 가장 오래된 여인숙인 Ye Olde Starre Inne을 찾아가 본다. St. Hellen's Square 거리의 좁은 골목 안에 위치한 이 여인숙은 1644년에 설립된 여인숙. 하얀 벽과 검은 색 문이 특이하다. 벽에는 여인숙의 연혁이 기록되어 있다. 창문과 벽 곳곳에 꽃바구니들이 걸려 있어 오래된 건물의 우중충함을 보완해 준다.
St. Hellen's Square 거리를 걷다보면 1434년에 건축된 건물도 만나고, 요크셔 푸딩 전문점도 보인다. 1434년 건축물은 3층 구조로 회색기둥에 힌색 벽으로 된 영국 전통주택 구조이다. 현재는 Mulberry Hall이라고 하는 본 차이나와 크리스탈 전문점이 들어서 있다. 요크셔 푸딩식당을 보니 반갑다. 오늘 점심메뉴는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을 본고장인 이곳 요크에서 맛보기로 다짐한다.
St. Hellen's Square거리를 나오면 요크시장의 관저인 맨션 하우스가 있는 광장에 이른다. 광장 옆에는 Bettys라는 이름의 찻집이 유명하다. 1919년에 설립된 이 찻집은 요크셔 티를 비롯한 다양한 차와 비스켓 등을 판다. 유명세답게 애프터눈 티를 즐기려는 대기자들 줄이 너무 길다. 한참동안 줄 서 있다가 너무 오래 걸려 결국 포기하고 만다.
다음 코스는 Finkle St.에 위치한 Roman Bathhouse. 로마시대 목욕탕이었던 이곳은 지금은 팝(Pub)과 레스토랑으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 안에는 로만 바쓰 뮤지엄도 있다.
요크시내 중심가는 거리가 가까워 차가 필요없다. 걸어서 몇분 간격으로 주요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로만 바쓰 옆골목으로 조금 가면 New Gate Market을 만난다. Jubbergate에 위치하고 있다. 야채 및 꽃, 의류, 가방, 악세서리, 기념품 등 매우 다양한 물품들을 판다.
벌써 점심식사시간이다. New Gate Market 광장 앞에 있는 로스트 비프 전문점이 특히 눈에 들어온다. Gert & Henry's라는 이 식당은 Black and White House 형태의 수백년 된 영국 전통건물일 뿐 아니라 메뉴도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 전문레스토랑이다. 메뉴판을 보니 전통 로스트 비프, 요크셔 푸딩, 찐 감자와 당근 등 야채 포함 9.95파운드. 원화 환산 약 17,000원 수준이다.
실내 분위기도 고색창연하고 고급스럽다. 이 레스토랑에서 로스트 비프와 요크셔 푸딩 등 가장 전통적인 영국식 식사를 하고 요크셔 티까지 마신다.
식사 후 바로 옆 골목인 Shambles로 들어선다. 가이드북 ‘Just Go’에 의하면, 샴블즈는 1086년에 정복왕 윌리엄이 행했던 토지대장에 기재되었던 곳으로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거리라 한다. 건물은 위층으로 갈수록 튀어나와 있는데 이것은 이 거리가 푸주간 거리였기 때문이다. 햇빛을 가려 고기를 오랫동안 보관하려 했던 옛 선인들의 지혜이다.
Shambles거리에서 나와 Piccadilly거리에 들어서면 Merchant Adventurers' Hall이 보이고 인근에 Jorvic Viking Centre도 만난다. 머천트 홀은 1357년에 설립, 667년이나 된 건물로 상인들의 모임과 비즈니스 장소였다. 그리고 요빅 바이킹센터는 바이킹이 요크의 거리를 석권했던 시대를 시각, 청각, 후각으로 자유롭게 체험할 수 있는 놀이동산이다. 전시실에는 발굴품이나 발굴현장 사진도 볼 수 있다.
머천트 홀에서 작은 수로를 따라가면 요크의 또 다른 명소 Clifford's Tower를 만난다. 이 성은 11세기 노르만 인이 세운 성의 중심이 되는 성이다. 가이드북 ‘Just Go’에 의하면, 십자군 원정이 계속되던 1190년, 반유대인 폭동이 거리에서 촉발하여 150명에 달하는 유대인들이 이곳으로 피난해 왔다. 학살과 기근을 우려한 유대인은 건물을 불지르고 집단 자결했다고 전해진다. 현재 요크의 랜드마크 중 하나로 탑 위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훌륭하다.
클리포드 타워 옆에는 캐슬 뮤지엄이 자리하고 있다. 본래는 여성과 성직자를 수감하기 위해 형무소로서 18세기에 건설되었던 건물인데 1938년에 민속박물관으로 바뀌었다. 19세기부터 20세기 초의 거리를 재현하였고, 당시 최신 기술품이나 일상용품 등도 전시하고 있다.
요크에서의 하루 일정을 대강 마치고 차를 마시기 위해 Bettys에 다시 가본다. 여전히 차 한잔 마시기 위해 줄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1919년에 설립된 찻집이라고 해서 차맛이 특별한가? 일정이 바쁜 당일치기 여행객으로서는 기다릴 여유가 없어 포기하고 대신 Blake St.에 있는 York Cocoa House로 들어선다. 이 집은 초콜렛 메뉴로 특히 유명한 곳이다. 메뉴판을 보니 초콜렛으로 만든 메뉴가 정말 다양하기 이를 데 없다. 요크는 초콜렛 시티로서도 유명하며, 그 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초코렛 투어 프로그램도 만들어져 있다.
달콤한 초콜렛과 요크셔 티로 요크에서의 하루여행을 마감하고 런던으로 돌아갈 열차를 기다린다. 열차는 오후 4시 반 출발. 필자는 하루종일 중세시대에 살다가 곧 현대 열차에 몸을 실게 될 것이다. 요크는 바쁜 여행객들이 하루에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이기는 하지만 제대로 중세도시를 음미하고 그 진면모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2-3일은 머무르는 것이 좋다. 그리고 또 그리 멀지않은 거리에 있는 Lake District까지 돌아볼 수 있다면 금상첨화가 될 것이다.(글,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