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내 귀를 열어 주의 말씀을 듣게 하소서 (마13:3-18) 2018. 01. 22
오늘 분주함을 내려놓고 우리 모두 한 번 생각해 볼까요? ‘나에게 말씀을 들을 귀가 있는지...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도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신6:4) 계시록의 일곱교회가 한결같이 들은 말씀이 있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2:7) 기독교는 말씀고 믿음의 종교입니다 롬10:17에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믿음이 나고 그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으며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좋은 땅에 뿌리웠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배와 육십배와 백배의 결실을 하는자니라” (악4:20) 사도바울은 “내가 받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고전15:3)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딤후2:2)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빌4:9)
1. 살아 역사하시는 말씀의 능력 (창1:1, 히4:12)
하나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겨야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천지와 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지금도 살아있고 우리 가운데 역사하는 능력의 말씀입니다 (히4:12) 우리의 영혼이 말씀을 들으면 살아나게 됩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사55:3) 또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합니다 (딤후3:16)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 율법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느니라” (잠29:18) 복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할 때 들어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귀를 열어주셔야 합니다 “그들의 귀를 열어 교훈을 듣게 하시며~” (욥36:10) 그러므로 말씀을 듣느냐 듣지 않느냐에 따라서 신앙의 성패가 갈라집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던 엘리 제사장때에도 사무엘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지만, 엘리 제사장에게는 들리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갈때에도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주님의 음성을 정확하게 들었지만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들었을 뿐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기도처를 찾는 도중에 루디아를 만났을 때도 루디아의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한 것도 다 주께서 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음성을 듣기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말하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삼상15:22절에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였습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마음의 고요 속에서 귀를 기울이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사35:5) 예배 시간에 에바다의 축복이 임하길 바랍니다.
2. 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9절)
귀가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말씀을 보는 눈과 듣는 귀를 가진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11절) 여기서 허락되었다는 말씀은 은혜를 받았다는 것을 말합니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넉넉하게 되되 없는 자는 그 있는 것도 빼앗기리라” (12절) 이것이 천국의 법칙입니다. 그런데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은 누구일까요? 이사야가 활동하던 시대에 마음이 완악한 백성들에게 사6:9-10절이 선포되었는데 이 말씀을 예수님께서 그대로 인용하여 제자들에게 언급합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14-15절) 마음이 완악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또한 마음이 분주한 사람, 교만한 사람은 말씀을 들을 귀가 없습니다.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5:24) 이처럼 듣는 자와 듣지 못하는 자는 엄청난 차이가 납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설교를 하였을 때 백성들이 듣고 마음에 찔림을 받아 회개가 일어났습니다. “그 말을 받은 사람들은 세례를 받으매 이날에 신도의 수가 삼천이나 더하더라” (행2:41) 이와 반대로 스데반이 공회 앞에서 복음을 증거하는 설교를 하였을 때는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스데반을 향하여 도리어 이를 갈았고 돌로 스데반을 쳐서 죽게 만들었습니다. 이처럼 말씀을 마음에 어떻게 받느냐에 따라서 극과 극을 달립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깨닫지 못하는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신29:4) 그러므로 말씀을 받을 때에는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받아야 합니다. 마음의 상태가 길 가, 돌 밭, 가시떨기밭 같으면 말씀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또 말씀을 받을 때에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할까요?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히11:8) 양의 우리 비유에서도 예수님께서는 목자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부르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아는 고로 따르며 타인은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10:3-5)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귀에 들린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요. “그러나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16절) 양식이 없어서 기근인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풍성해도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그 시대는 영적 기근의 시대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고 깨달아지는 은혜를 베풀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아침마다 깨우치시되 나의 귀를 깨우치사 학자들 같이 알아듣게 하시도다” (사50:4)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의 갈 길을 밝히 인도하십니다. 성령인도는 말씀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말씀이 기준이 되어 서라하면 서고 가라하면 가는 것입니다. 엠마오로 내려가는 두 제자의 눈을 열어주신 것처럼 이전에 보지 못하던 말씀이 보여지고 깨달아지는 은혜가 충만하길 기도합니다.
3. 우리의 신앙핵심 (계1:3)
신앙의 핵심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것입니다. 잘 들으면 하나님의 계획이 보여지고 하나님과 방향이 맞아들어갑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와 그 가운데에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는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1:3) 시편 1장에도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있는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렸습니다. 이처럼, 말씀과 복이 연결되어져 있습니다.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우리는 혼돈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정보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2천개 이상의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가 쏟아지고 있는데 정작 마실 물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는 어디에 귀를 기울이여야 합니까?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에게 동일하게 하신 말씀입니다. 세상에 수많은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복음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계3:20) 우리의 신앙생활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든지 말씀하고 계시고 또, 말씀을 듣는 자를 찾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는 말씀을 듣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누가복음에 마르다와 마리아 이야기가 나옵니다. 마리아는 주의 말씀을 듣는 데 집중하고 마르다는 음식을 준비한다고 마음이 분주합니다. 이에 대한 마르다의 불만을 들은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마르다를 책망합니다.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눅10:42)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무엇이 우선입니까? 말씀을 듣는 것이 우선입니다. 삶이 바쁘고, 마음이 분주하여 말씀을 놓치는 실수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야 응답도 받고 복도 받고 헌신도 하고 전도도 하게 됩니다. 말씀을 듣지 못하면 우리의 영혼이 병들게 됩니다. 언제든지 “주님 말씀하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 또한 중요합니다. 친척과 가족까지 모두 다 모아놓은 고넬로가 하나님의 말씀 듣는 것을 얼마나 사모하였으면 베드로를 영접할 때 그의 발 앞에 엎드리어 절까지 하였겠습니까. 그 결과 성령이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왔습니다. 즉 오순절 성령 세례를 이방인도 받게 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으며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이 축복이 교회와 가정에 일어나기를 기도합니다.
결론
신32:1 “하늘이여 귀를 기울이라, 내가 말하리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야 신앙생활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분명한데 왜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내 생각이 내 자아가 너무 강하기 때문입니다. 내 안에 나의 경험이나 판단이나 철학이나 신념, 이상, 비전.... 내 계획, 그릇된 고정관념, 비판적인 사고, 완고함, 고집.... 이런 것들로 채워져 있으면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지 않습니다. 사사기 시대의 상황을 삿21:25절에 보면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했다는 겁니다. 분명한 것은 자신의 자아가 강할수록 내 신념이 강할수록 주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오늘은 주일입니다 하루 종일 하나님의 음성을 잘 듣기 위해서 모든 것을 스톱하고 세상의 소리를 차단하고 하나님께만 귀를 기울이고 기도로 몰입하는 것입니다. 세상 소음에 귀를 열지 말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조용히 귀를 열어야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구하고, 찾고, 두드리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어합니다. 세미한 음성 가운데 네게 하시는 말씀을 생생히 들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