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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가 찾아오다] 임창렬 부총리의 긴급 회견이 있기 얼마 전, 정훈씨는 겨울 시즌 장사를 대비하여 더블 코트가 잘 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미리 여유 있게 준비를 해뒀다. 그런데 그해 겨울은 거짓말처럼 아이들이 아무도 그의 가게에 오지 않았다. 길거리에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겼다. 이듬해 봄까지 국제 시장 주변에는 그야말로 적막이 흘렀다. 전에는 가게에 서서 거리를 보면 온통 새까맣게 사람들의 머리만 보였는데 이제는 사람 구경하는 것조차 힘들어졌다. 국제 시장 넘어 깡통 시장에도, BnC 골목에도, 묵자 골목에도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장사가 계속 잘될 줄 알았다. 장사를 공치는 날이 많아지자 사람들의 발길이 끊긴 가게에 나와 허송세월을 보내느니 뭐라도 해야겠단 마음을 먹은 정훈씨는 가게를 닫아두고 친구를 따라 재생 잉크 카트리지 영업 일을 시작했다. 장사를 하며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해 봤었기 때문에 영업 일을 잘 해낼 것이라 생각했다. 오랜만에 장롱에서 정장을 꺼내 입고 구두도 광을 냈다. 영업 일은 생각과는 달리 자신과 잘 맞지 않았다. 나를 찾아온 손님을 상대하는 장사와 내가 고객을 찾아가서 하는 영업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당연히 영업이 잘 안됐다. 다시 노점으로 돌아왔지만 아르바이트비도 나오지 않는 현실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새로운 무언가를 모색해야 했다. 정훈씨는 갑자기 찾아 온 IMF 사태로 심각한 타격을 입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발상을 전환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여태껏 딱히 점포를 구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자신의 노점이 워낙에 장사가 잘되니까 굳이 점포를 가질 필요성을 못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IMF 위기와 함께 국제 시장의 부동산 시장은 완전히 붕괴가 되어 있었다. 수천만 원씩의 권리금을 주고 점포를 얻었던 상인들이 그 권리금을 몽땅 날리고 하나둘씩 떠나갔다. 건물주들은 상인들이 빠져나가자 점포를 놀리기보다는 세를 큰 폭으로 낮췄다. 그러한 상황을 정훈씨는 역전의 발판으로 삼았다. 점포를 얻는 데 있어 사실 보증금은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았지만 비싼 권리금과 다달이 나가는 월세가 상당히 큰 부담으로 작용했었는데, 낮은 월세와 권리금이 제로 상태에 가까운 부동산 빙하기가 오히려 그에게는 기회가 되어 찾아온 것이었다. 1998년 가을 그는 노점을 완전히 정리했다. 그러고는 노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작지만 번듯한 점포를 얻었다. 결혼 상대로 점찍어둔 미선씨가 노상에서 쭈그리고 앉아 배달시킨 밥을 먹는 모습을 보며 못마땅해 한 것도 노점을 정리한 또 다른 이유였다. 구도심 상권이 무너지면서 서면 상권 말고도 경성대학교 앞 상권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었다. 평소 장사하며 알고 지내던 사람이 신생 상권인 경성대 앞에서 같이 가게를 차리자며 제안을 해왔다. 얼마간의 고민 끝에 자신의 점포를 차린 여세를 몰아 정훈씨는 남은 돈을 탈탈 털어 경성대 앞 주차장 하나에 세를 얻었다. 노점을 했던 경험을 살려 주차장 위에 가건물을 세우고 지인들과 함께 몇 날 며칠을 새며 손수 점포를 만들었다. 하지만 국제 시장에 있는 가게를 오래 비워 둘 수가 없었다. 경성대 앞 가게에 갈 때면 함께 노점을 하던 형님에게 가게를 맡기고 가곤 했는데 둘 사이를 오가며 장사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자신은 국제 시장 가게에 전념하고 경성대 가게는 동업자를 믿고 그에게 맡겼다. 얼마 후 동업자는 정훈씨 몰래 가게를 다른 사람에게 넘기고 도망을 갔다. 국제 시장에서 가져간 옷들도 몽땅 팔아넘기고 떠났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만들었던 가게였다. 나중에 가게가 있던 자리는 경성대 상권 최고 요지가 되어 큰 건물이 들어섰다. 정훈씨는 지금도 그 근처를 지날 때면 도망간 동업자를 떠올리며 주먹을 불끈 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