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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백두대간이 낙동정맥을 분기하는 곳이자 오십천 유역, 한강유역, 낙동강유역의 경계가 꼭짓점을 이루는 곳으로 우리나라 에서 유일하게 삼해로 물길을 뻗는 지리적 명소입니다. 잠시 산자분수령 (산은 물길의 경계를 이룬다)이라는 전통지리관을 생 각해 보고 갈까요? 90m→ |
백두대간을 오르기 위해 삼수령에 주차되어 있는 산악회버스와 회원들이 산행준비가 한창이고 매봉산에서 내려 온 선답자 분들의
표지기가 달린 길을 쳐다만 봐야만 했다.
35번국도, [작은피재]
에서 택시 기사님과 헤어져 '강원환경'이라 쓰인 표지석 앞, 적각이란 버스승강장에서 구봉산으로 출발했다. '이 숲은 이산화탄소
를 흡수하고 건강한 지구를 지키기 위해 조성된 숲'이란 산림청의 녹색 안내판 뒤 내려 놓은 배낭을 지고 어두운 산길로 들었다.
3시 50분,
어두운 산길도 오랫만이었다. 낙동정맥의 구봉산으로 오르는 첫 이정목을 지나 숲을 헤쳐갔다. 얼마 안 가 '느티고개 6.2km'
의 팻말을 지나 구봉산에 닿았다.
[구봉산]
'산의 봉우리가 아홉이어서 구봉산이라 하며, 또는 풍수학에서 아홉 마리의 봉(鳳)이 춤을 추는 형상의 명당이 있는 산이라서
지어진 구봉산의 이름을 새겨 보았다. 구봉산 정상에서 느끼는 산의 깊이와 높이는 알 수 없고 길게 내민 타원형의 까치수염
이 무덤을 지키고 있다.
어두움 속 표지기가 손짓하는 산속의 구봉산을 내려섰다. 별들이 수을 놓은 하늘이 열렸다. 너른 길의 수레길로 내려와 산 아래
불빛도 보이고 '연수원, 산책로, 임도'의 이정목을 따라 갔다.
육각정을 돌아 부직포 깔린 너른 길의 발원지 탐방길인 '대박등 0.6km, 창신월드 1.5km' 이정목의 방향키가 알려 주는 길을 따라
가다 '육각정, 산책로(외곽코스)란 이정목을 지나 묘목밭(뽕나무밭 같다)에 닿아 밭 가를 따라 더듬적 거리며 길을 찾을 수 있었
다.
신갈나무에 걸린 낙동정맥, 대구담의 표지기가 이곳이라 알려주는 반가움은 두 배가 되었다. 산죽이 발목에 닿는 숲길을 잠시
올랐다.
대박등이었다.
[대박등]930.8m의 산정은 아직도 밤이었다. '가파른 절벽 능선 중의 꼭대기를 의미, 大朴은 대배기(꼭대기를 의미하는 경북
방언이란다. 이곳의 동쪽은 가파른 절벽이나 서쪽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어 한반도의 특징인 '동고서저'의 지형을 실감할 수 있
다고 대박등은 설명하고 있으나
정녕 어두운 산꼭대기에서 느끼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컷다.
삼각점 '태백 425'의 더듬적 거려 판독해 보고 긴의자에서 누워 밤하늘 별을 쳐다보았다. 언제 보아도 정겨웠다. 언제 보았는
지 알 수 없는 그 정겨움 아래 내가 있었다. 동트기 직전이 제일 어둠다 했는가. 모두가 어둡다.
'발원지 탐방길, 황지연못 8.0km'의 팻말을 지나 유령산 4.4km의 이정목이 유령산으로 안내했다. '창신월드 0.2km'의 이정목이
따라온 큰 길로 이어지고 '느티고개 4.3km'의 팻말도 느티고개를 알려 주는 길을 따라갔다.
동물이 남긴 발자욱을 찍어 야생동물을 알 수 있는 동물관찰 요령 안내판를 지나 산길 옆 철탑 사이로 동이 터 온다. 어두운 터널
을 빠져 나왔다란 생각이 들고..
창신월드 0.2km의 이정목에서 창신월드 0.1km의 이정목을 지나 표지기가 나풀대는 산으로 든다.
유령산으로 가면서 '유령산 정상 2.4km'의 팻말이 붙고 날이 밝았다. 이제서야 길가에 펼친 아침상을 차려 먹고 숨을 골랐다.
무성하게 자란 묘 2기에서 본 채석장이 눈앞에 닿고 빨간콘테이너 앞에서 개가 짖는다. 내 발자욱따라 합장하듯 산에 울리고
[서미촌재]가 여기인가 보다.
임도 맞은편 '전망대 1.1km, 태백시위생사업소, 작은피재 4,6km'의 이정목을 지나 채석장의 사면을 따라 가는 길이 숲에 가려 헤치
며 올랐다.
짖는 개는 짖기를 멈추고 유령산 정상과 느티고개 1,7km의 팻말을 지나자 나무가지 사이의 해가 뜬다. 가야할 산에도 환히 비치
니 전망대의 조망에 기대가 커지고 있었다.
[전망대]에 올랐다.
조망이 트였다.
걸어온 산들의 길과 가야할 산을 더듬적 거려 보았다.
바로 앞 산릉 너머 하늘아래 빼곡내민 매봉산이 제일 먼저 반겼다. 이곳에 서니 풍력발전기가 지금도 돌아가는지 묻고 싶었다.
덕항산이 햇빛을 받지만 아직도 흐릿한 어두움속을 나오지 못했는가 보다.
철탑을 지나
길은 내 키만큼인 싸리나무를 헤치며 오르니 유령산의 정상에 닿았다. 이름만 들면 귀신이 있을 것 같은 산이름, 아마 밤 중이었
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령산, (우보산)]
정상석이 있고 조망은 시원치 않다.
[삼각점]
느릅나무가 많았다고 느릅령산이라고도 부른단다.
잣나무 사이로 햇살이 드는 산길을 내려갔다. 낙동정맥의 석개재의 방향키가 있는 이정목과 유령산유래문과 산신당이 있다.
느릅령(느티고개)이었다.
[유령산영당 과 유래문]이 있는 느릅령으로 내려선다.
느릅령은 먼 옛날 영동과 영서를 잇는 고개로,
유령제(楡嶺祭)가 열리는 황연동 우보산의 느릅령은 신라시대 때부터 태백산으로 천제를 지내려 가기 위하거나 상인들이 영서와 영동을 잇는 길로 늘 이곳을 이용했었다. 또한 우리 말로 '느릅령', '느릅재'라고 하는 '유령(楡嶺)'은 신라시대부터 삼척지방에서 정선지방과 경상도 안동지방으로 가는 중요한 교통의 요지이었기 때문에 항상 길손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
고개를 건너 통리역 하산길 1.7km의 이정목을 지나 산으로 올라 일월비비추가 쑤욱 고개를 내밀어 꽃을 피우고 숲속 대장노릇을
했다.
[기암]을 지나 낙동정맥길에는 여전히 낙동정맥이라 쓰인 표지기가 붙고 바위지대에 걸린 해가 바위결 따라 부채살처럼 퍼져갔다.
가지 못하게 쳐놓은 길목 밧줄에 줄줄이 붙은 표지기들을 지나 통리역으로 가는 팻말도 길을 잇고 '통리역 하산길 1.0km'
의 이정목에서 왼쪽길을 따라 내려서면
해발 807m의[느릅령]이라 쓰인 안내판이 느릅령을 설명한다. 황지지방에서 도계지방으로 큰 고래로, 유령산에서 보았던 느릅령
의 안내판과 똑 같았다.
통리역 하산길에는 콘크리트길을 걷다 흙길를 지나 마루금을 버리고 통리역으로 하산하게 된다.
[통리역]은 폐역이다. 태백시 통동에 위치해 있으며 영동선이다. 낙동정맥의 마루금은 통리역으로 내려서면 굳게 닫힌 통리역
뒤로 보이지는 않고
장성을 오가는 버스가 잠시 머무는 동안 2대를 보았으니 자주 있는 것 같았다. 우체국을 지나 연화파출소에 들러 식수를 보충하고
커피한 잔 얻어 먹고 통동을 떠날 수 있었다.
아침 8시,
레일코스트터도 멈춘 듯,
철로를 건너.
태백과 도계를 잇는 38번도로 2차선도로의 횡단보도를 건너 태현사의 표지석이 보이는38번도로와 나란히 보이는 도로를 따라간다.
즉, 통리역 뒤 산에서 떨어진 마루금은 철로를 지나 위 사진에 보이는 38번도로와 1차선도로와 밭 중앙으로 해서 산길로 드는 것을 알
수 있게 된다.
[통리재]
밭으로 들 수가 없어 '삼척시'라 쓰인 교통판 직전 낙동정맥 등산로 안내도가 있는 백병산 오름길의 이정목이 서 있어 그곳에서 오
른쪽 밭과 태현사가 보이는 산릉을 따라 올랐다.
잣나무숲과 벌목지대를 지나 낙동정맥의 표지기와 '백병산 정상 4.2km, 통리재 하산길 0.4km'의 이정목을 만나면서 올라야 할 길도
트였다.
'백병산 정상 4km'와 '고비덕재(헬기장) 2.9km'의 팻말이 수시로 붙고 싸리나무가 내 키만큼인 길을 헤치며 갔다. 여름 산행에 물
씬 풍기는 땅위가 초원같다.
잣나무숲도 그렇고 오름짓의 정상은
백병산 정상 2.9km이라 쓰인 x1,094.2봉에 설 수 있었다.
참나무와 산죽길을 지나 [면안등재]에 닿고
낙엽송의 끝도 하늘에 닿는다. x1,160.2봉을 지나
벌목지대의 산기슭이 조망되고 고덕비재(헬기장) 0.4km의 이정목을 지나 고덕비재에 닿는다. [고덕비재]의 헬기장에는
수풀이 우거져 헬기장을 덮고
[고덕비재]는
원통골에서 구사리 안쪽 백산들로 가는 재이다. 재 꼭대기가 편편한데 이곳에 고비 나물이 많이 자생한다 해서 고비덕재 라고도 하고, 옛날 지금의 황지 사람들이 동해안에서 나는 소금을 비롯해 각종 해산물을 교환하기 위해 넘나들던 주요교통 요지 이기도 하 다. |
산죽으로 뒤덮힌 땅과 참나무 그늘이 만드는 산행길, 백병산으로 향해 갔다. 쉼터가 있는 낙동정맥삼거리라 쓰인 이정목에 백병
산 0.4km와 면산방면,
[낙동정맥 삼거리, 백병산 삼거리]에서 백병산으로 향했다.
바위지대를 지나 삼거리에서 400m를 오른 곧 백병산 정상, 낙동정맥 중 제일높은 산 1,259.3m의 높이에 섰다.
[백병산]
나무가 막아 조망은 막혔고 낙동정맥 백병산에 대한 설명이 자세하게 적혀 있다. 백산이라고도 부르고 백산의 산꼭대기의 바위
가 흰 빛깔을 띈다는 데서 백산이라 한단다. 산 꼭대기가 바위절벽으로 되어 있고 그 모습은 흡사 바위 병풍을 둘러 놓은 듯하다
고 했으나 정상에서는 느낄 수는 없는 산정이었다.
[삼각점]장성 310
정상에는 '병풍, 촛대바위 0.5km'의 이정목과 면산에서 부터 백병산까지의 등산로가 그려져 있는 안내도가 세워져 있다. 되돌
아온 길을 내려간다. 백병산을 내려가게 되며 면산방면의 이정목이 방향키를 알려주는 삼거리에서 내려놓은 배낭을 진다.
백병산 삼거리를 지나
산죽길의 노송들과 참나무들을 구경하며 통나무의자가 가끔 쉼터를 만들어 주는 산릉을 걷게 된다. 큰재였다. 소금가마니를
지고 넘느랴 힘들어 큰재라 불렀단다.
가다 멋진 나무를 보고 서고 통나무의자가 있는 산릉을 넘어 '육백지맥 분기봉'에 설 수 있었다.
[육백지맥 분기점]을 넘어 지맥은 북진하며 정맥은 남진하게 된다. 산죽길으로 이어지는 산길을 걸어 오르고 철탑을 지나 산죽길
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x1,104.3봉을 사면으로 올라서니 소나무만 있고 잡목은 모두 땅에 누워있는 풍경이 펼쳐졌다. '여기가 일출전망대 설치장소, 휴
양림 가는 길 1시간 45분 소요'의 팻말도 있다.
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의 경계를 간다.
[소나무숲]
휴양림 삼거리에는 '여기가 덕거리봉입니다, 휴양림 가는길과 동점 석포가는 길' 고비덕재와 면산'의 이정목과 등산로가 적힌 안내도
가 있는 곳,
동쪽은 가파른 절벽, 서쪽은 완만한 구릉을 이루는 '동고서저'의 지형을 실감할 수 있는 산릉을 걷게 된다. 참나무들의 서풍으로
동쪽으로 기울고 낙엽송들이 울울창창 하늘을 덮는다.
[토산령]해발 950m로
이곳은 신리재로 이어지는 도로가 나기 전에 삼척시 풍곡리 주민들이 태백시 철암으로 넘나들던 주요 산길이었다. 유난히 토끼
들이 많았다고 해서 지어진 토산령을 지나
백병산 정상을 걸어온 산길은 6.7km, 가야할 면산(두리봉)은 3km의 이정목을 지나 오르는 길도 만만치 않았다. 수없는 무명
봉우리를 넘고 아직도 넘어야 할 길이 많은데 덥긴 덥다.
[구랄산]이다.
1,071.6m의 낙동정맥 구랄산이란 정상석이 있고 '구랄산은 굴알산(堀謁)을 편하게 발음하다 '구랄산'이 되었다고 한다.
[삼각점]
가지고 있는 5만의 지형도에 보면 △1,071.6봉이다.
참나무 숲의 녹음짙은 폭염속에서 마음까지 힐링되는 7월의 향내음,푸르른 산릉은 무성했다.
나무들이 바람따라 기울고
몇 봉우리를 넘고 넘어야 할 면산, 편히 내어 줄리 없다. 가다 쉬고 가다 쉬고, 주저앉고 보면 이마에서 흐르는 땀방울
수건을 짜며 지도에서 오르는 마루금의 산길보다 몇 배 더 오르막이 힘들었다. 주저앉아 있노라면 어데서 언제 왔는지
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고 다리에 스멀스멀 기어가는 거미 때문에 잠시 머무는 것도 곤욕이 되었다.
[동자꽃]
구랄산을 내려온 안부, 매상골 고개에서 면산까지 300고지의 산을 넘을 몇 봉우리를 넘어야 할까. 무명봉의 연속이다. 그
중 반기는 동자꽃이 활짝 웃어준다.
드디어 면산,1,245.9m의 산정에 섰다.
[면산]강원도 태백시와 삼척시 및 경상북도 봉화군 사이에 있는 산. 높이는 1,245미터.
삼척시 상사미리에서 이곳을 바라보면 멀리 보인다 하여 먼산이라 하다가 이후 말이 변해 “면산”이라는 “설(設)”이 있고, 또한 옛날 난리때 이산으로 피신하여 화를 “면(免)”했다고 해서 “면산”이라는 설도 있다. 면산의 주봉인 이곳은 두리봉이며 생긴 모양이 두루뭉술하게 생겨서 붙여졌다. |
삼방산(△1,175.4m)의 갈림길인 강원도와 경상북도의 경계를 가는 길에는 휴양림 삼거리 4.8km의 삼방산 삼거리의 이정목이 서 있
는 길을 버리고
정맥은 동남진하게 된다. 삼각점을 찾으려 미역줄나무와 산죽에 가려 있을 것 같아 포기하고 삼방산 삼거리의 이정목에서 되돌
아 나왔다.
길고 먼 면산의 정상을 올랐으니 이제 내려가야 할 길만 남은 것 같았다.
산죽길을 지나
[솔나리]를 볼 수 있는 행운의 고마움을 느끼며 면산을 되돌아 보니 생긴 모양이 두루뭉술하게 생겨서
두리봉이라고도 한다는 면산의 표현이 맞았다.
불탄 나무가 몇 그루 안간힘을 쓰고 있다. 소나무숲을 지나
덩치 큰 바위를 사면으로 돌아
낙동정맥의 표지기들이 맞는 높은 산릉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어두움이 오기 전 서둘러 산을 내려가고 싶은 마음에 발걸음
은 빨라지고 산죽길을 지나 산릉이 보일 듯 △1,009.3봉을 눈에 넣어 갔다. 가다 잠시 보였다 보이지 않는 마지막 봉우리의 정
상을 밟을 수 있었다.
[△1,009.3봉]
[삼각점]을 딛고 마지막 산봉우리 쉼 없이 올라서 삼각점봉의 정상에 선다. 오늘 이곳의 산행을 마지막으로 잠시 후면 다시 산이
아닌 밑에 세상으로 내려가야 한다.
무더운 여름날 찌는 듯한 삼복더위 산행에 길다면 긴 낙동정맥의 첫걸음을 하였다. 부지런히 내려가자.
연두색 철책에 표지가가 다닥다닥 붙고
[석개재]
'하늘이 내린 살아 숨쉬는 땅 강원도의 910번 지방도로 석개재로 어두움이 오기 전 내려설 수 있었다. 어디선가 본 듯한 매우
친숙한 처음 보는 석개재 맞은편에 덴트를 치고 시간을 보내는 분들의 소리가 들렸다. 이마에 땀이 주르르 흐른다. 스틱을
접고 손을 들어 지나가는 자동차를 세웠다.
지나가려다 선다. 여자이기에 세웠단다. 그곳이 사는 곳이기에 석포리로 가는 중이란다. 경상북도 봉화군이 맞는
교통판을 지나 자동차는 내리막을 달리고 석포역이 보이는 xx여인숙에 닿을 수 있었다. 고마운 마음의 내 표현방식은 언제
나 인사를 몇 번, 정중히 하는 것,
오늘도 난 그렇게 마음을 전하고 여인숙에 들었다.
여인숙 아주머니가 방 하나 내어 준다, 작은 방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 잠을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음날, 예매하였던 아침
8시20분 기차승차권을 오후 3시 20분으로 교환하고,
영문도 모르고 여인숙 아주머니가 부르시는 소리에 나가 제련소 아저씨들과 겸상을 하여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갑자기,이 450m
의 오지에 논 하나 없는 석포리의 먹고 사는 방법이 궁금했다.
행정구역은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석포리, 교통편은 석포역의 영동선이며 하루 2번, 태백시로 가는 버스가 2번 운행되는 것
이 고작이다.
이곳은 제련소가 있어 주로 그곳에 다니는 분들이 많단다. 산이 높고 골이 깊으며 물이 차고 깨끗하다고 하는 석포리의 느낌은
받지 못했다.
15시 20분 기차를 타고 내가 사는 둥지로 출발하였다. 낙동강을 따라 왔던 어제 하루였는데 기차도 낙동강을 따라 기적을 울
리고 있었다. 산행기의 마침표를 찍으며 느낀 건 '난, 참 곰팅이구나'했다.
[끝]
첫댓글 요물님 홀산하시는 것 보고 반가왔습니다.저와 산행 스케쥴이 비슷하시군요.저는 한북 3구간 남겨놓고 있고..낙동정맥을 시작해야 하는데 고민하던중 님의 산행기를 보게 되었습니다
낙동 함께 하고 싶은데...어떠신지요...저의 성별은 여자입니다.ㅎ
네~정맥산행을 하고 계셨군요,
제 산행시간이 일정치가 않아서요. 전화번호 남겨 주시면 전화 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