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에 대한 로이드 존스의 견해/ 최정권
로이드 존스는 1975년에 웨스트민스터 청교도 강연을 통해 프랑스 혁명이 영국과 영국 신학에 어떤 영향을 어떻게 주었는가를 분석한다. 프랑스 혁명의 영향으로 발전한 자유주의 신학과 에큐메니칼 운동 배후에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힌다. 1789년에 자유, 평등과 박애라는 명목 아래에 일어난 프랑스 혁명은 장 자크 루소와 프랑수아 마리 아루에 볼테르에 의해 일어난 운동이며,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의 권위를 훼손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로이드 존스는 루소와 볼테르가 계시 종교를 인정하지 않을 뿐 아니라, 자연 종교를 신봉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루소가 주장한 사회계약론은 국가의 법이 하나님의 율법에 기초해 작성되지 않고, 국민의 의지에 기초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로이드 존스는 기독교의 계시 특히 구원에 관한 계시를 거부하며, 사회 구성원들이 하나님의 통제를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루소와 볼테르의 사상에 분명한 반대 의사를 밝힌다.
그렇다면 루소와 볼테르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프랑스 혁명이 일어난 후, 신학이 변질되었음을 의미하는 자유주의 신학이란 무엇인가?
자유주의 신학이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현대 사조들을 신학에 수용함으로써 기독교를 합리주의의 이성주의 관점에서 인식하려는 신학 운동을 의미한다. 즉 전통적 신학에 반기를 든 신학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은 근대의 사회, 문화 종교 사상들을 의도적으로 적용하고 하나님의 초월성과 계시를 인정하지 않으며, 인간을 죄성보다는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로 인정하고, 인간의 이성과 주관적 체험을 성경의 권위와 교리보다 위에 두며, 사회적 자유와 윤리를 강조한다.
로이드 존스는 1904-5년에 일어난 웨일스의 부흥 운동이 끝나게 된 원인으로 웨일스 교회들이 자유주의와 세속주의 사로잡힌 결과로 보았다. 로이드 존스는 자유주의자들이 성경의 권위와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면서 교회의 부흥이 멈춰지고 무너지기 시작했다고 믿었다. 자유주의 사상이 침투하고 그것을 용인하는 듯한 태도를 보인 영국 교회는 세속화된 사조에 의해, 점차 성도의 수적 쇠퇴기를 경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런 분위기 가운데 영국 교회의 목사들은 사역할 수 없게 되는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그러므로 영국에서는 1940년대부터 교파 간의 연합을 통해 목회자의 구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에큐메니칼 운동이 일어났다. 사회 풍조 가운데 교회의 성도들은 점점 감소했고, 목회자들 역시 설 자리를 잃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생계를 위한 문제 해결과 성도의 양적 성장을 목표로 연합 운동을 펼쳤으나, 중요한 한 가지를 잃어버렸다. 바로 연합을 위해 포용적 신학론을 펼쳤다. 바로, 연합 운동을 위해 자유주의 신학자와 그를 따르는 교회를 향해 동맹을 선언한다.
그러나 로이드 존스는 영국에서 일어난 에큐메니칼 운동의 신학적 문제점을 인지하고 있었다. 또한, 그는 에큐메니칼 운동으로 영국 교회의 설교단이 모두 자유주의에 정복될 것이라 주장하며 이 운동에 반대했다. 그러나 에큐메니칼 운동을 지지하는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은 로이드 존스의 태도를 가리켜, 극단적 분리주의자이며 개혁교회를 고립시키는 범죄자라고 불렀다.
로이드 존스는 신학적 차이와 그리스도인이 누군가에 대한 정의가 불분명한 상태에서 무조건 연햡해야 한다는 에큐메니칼 운동을 반대하고 복음을 싸구려로 만드는 빌리 그래함의 전도 집회에 합류하는 것을 거부했다. 배빙턴은 그런 로이드 존스를 독립파라고 불렀다.
- 최정권, 『로이드 존스의 설교신학』, PP 91-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