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초자연적인 인생관/ 로이드 존스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히13:6)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라”(고후4:17-18)
이것이 성경의 인생관이다. 현세와 이 세상의 것을 바라보고 바라는 사람들은 실망할 것이다.
결국은 하나님과 복음을 비난할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인생과 세계관이 거짓되고 성경의 가르침에 일치되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면,
초자연적 인생관은 도피주의의 한 표현에 불과하고
현재의 상황과 문제를 등한시한다고 말하며 반박할 것이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아브라함과 야곱과 모세와 다윗 등
수많은 성도들이 인생의 문제를 회피한 도피주의자로 간주될 수 있는가?
사도들, 특히 바울이 초자연적 인생관을 고수함으로써
인생의 문제와 책임을 회피했다고 말할 수 있는가?
이후에 다른 어느 누구보다 이 인생관을 몸소 실천한 청교도들에게
이 비난을 퍼부을 수 있는가?
초자연적인 인생관을 고수한 그리스도인들이
세속적인 관점을 기초로 삼아 계획을 세우고 실천하기를 거부했다고 해서,
그것이 그들이 인생과 세상일에 무관심했다는 뜻은 아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삶을 이 세상으로만 제한하여
오직 현세만을 위해 사는 것을 인생에서 겪는 가장 큰 덫이라고 생각했다.
그들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던”
것(고전2:9)에 대한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바로 이 비전의 궁극적인 성취를 위해 인생을 살았다.
이것이 그리스도인들의 관심을 끄는 일이다. 그들은 이것으로 말미암아 인생을 산다.
그러나 이런 태도를 가졌다고 해서 이 세상에 무관심한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이 세상을 가능한 한 더 좋은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에 대해
매우 비관적인 태도를 가지고있다는 것을 가리킨다.
우리는 우리의 육체에 대해 관심을 쏟는 만큼 영혼에 대해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가?
수시로 일어나는 전쟁에 대해 고민하는 것처럼 치열한 영적 전쟁에 대해서도 고민하는가?
국가 내의 다양한 관계와 국제 관계가 깨졌을 때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졌을 때에도 근심하는가?
만일 우리의 인생관이 신약성경의 인생관이 아니라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쓰라린 실망을 겪을 뿐만 아니라
신약성경의 가르침이 주는 위로와 안위도 전혀 받지 못할 것이다.
마틴 로이드 존스,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 pp 84-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