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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주군의 장흥면에 있는 높은 산의 이름으로 옛부터 노고산 정상에 송장을 묻으면 비가 온다고 한다. 이곳 노고산이 명당이라고 소문이 나 사람들이 시체를 몰래 묻는데 가물 때는 마을사람들이 몰래 묻은 시체를 찾으러 삽이며 곡괭이를 들고 산으로 올라 갔 다고 한다. 본래, 노고산과 관악산이 남내산이라 한다. 노고산과 관악산이 태초에 하늘 위에서부터 땅으로 같이 내려 왔는데 원래 노고산에 있어야 할 자리가 지금의 관악산인데 관악산이 먼저 자리를 잡아 노고산이 노했다하여 노고산이라 부르는 산 노고산이다. |
노고산 정상석이 있는 헬기장에 서 본다. 정상이 군부대 위로 올려다 보이며 동남쪽으로 펼쳐진 긴 병풍의 북한산의 삼각산이라
부르기도 하는 인수봉, 백운대와 만경대와 노적봉,원효봉과 동장대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하늘을 가른다. 그뿐이랴, 상장봉도 한
눈에 보이는 산줄기,
바람을 피해 잠시 북한산 병풍 앞에 커피 한 잔 마시고 이제 겨울을 맞은 저 북한산의 골골마다 눈 내리고 얼음 언 풍경에도 수 많
은 손님들로 붐비고 있을 산객들을 상상해 본다.
자리를 털고 어서 가 보자,
이정목은 '교하리와 삼하리'의 갈림길을 표기하고 '노고산 정상과 금바위저수지'의 갈림길을 차례로 지난다. 금바위저수지의 방향
키에 마추어 가게 된다.
북한산의 풍경에 눈이 종일 그리 가고
헬기장 x337.7봉에 선다. 헬기장에서도 북한산의 풍경은 거의 같고 금바위저수지로 향하는 발걸음을 재촉한다. 철탑을 지나고
금바위저수지와 심막골과 노고산정상의 이정목을 지난다.
군부대사격훈련장이 발 아래 있어 도비탄에 대한 피해가 있을 수 있으니 총격소리가 있을 시 즉시 피하라는 부대장의 경고문이 안
내판과 삼각형 비닐코팅지가 길따라 철망에 붙어 있다.
군부대 사격장이 보이는 철망따라 수시로 붙은 군 경고문을 따르니 이런 군시설물 등등이 친숙해 지는가 보다. 철조망을 뒤로 하
고 철탑을 지나 지도에 없는 지적삼각점에 발을 밟는다.
[중고개]다
중고개는 고양시 덕양구 지축동과 오금동 사이에 위치한 고개 이름이며, 고개 아래의 삼막골 주민들과 지축동 마을 주민들이 이용하였으며, 중고개란 이름은 이곳을 통해 스님(중)들이 많이 왕래하였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고개에는 예전 성황당 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돌무지가 남아 있으며 북쪽으로는 노고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옥녀봉이 있다. |
중고개에는 삼송역으로 가는 이정목이 있어 교통이 편리하다. 중고개의 안내판에 쓰인 옥녀봉을 보며
광주 일대구정의 표지기가 눈에 띄어 보지 못한 것이기에 문뜩 동밖에님이 생각났다. 문자를 넣었더니 맞다고 한다.
먼 거리에서 이동해 산행하는 거리를 보면 성큼성큼 걸을 동밖에님이 틀림없겠지
벙커가 있고 고양누리길이란 긴 표지기가 길을 잇고 군부대철조망이 [옥녀봉]이다. 산정이라 먼저 다녀간 분들의 표지기가 나무
가지마다 붙고
[옥녀봉]
북한산과 삼송역의 이정목이 수시로 붙는 군부대철조망을 따라 간다. 도로가 보이는 산비탈로 내려서니 349번 지방도로였다. 도
로 횡단보도 건너
산길은 고양한북누리길이기도 하며 싸리나무쉼터와 오동나무쉼터를 지나 여석정에 이르는 길은 산책로여서 어두워 졌음에도 편히
걸어 내려올 수 있었다. 종일 함께 발걸음을 마추었던 부대 철조망을 버리고 내려서니 숯돌고개의 안내판이 있는 포장도로이다.
환히 비추는 도시의 불빛따라 도심으로 내려서 숯돌고개의 이동통로 아래로 가 본다. 파주로 가는 교통판이 붙고 이동통로로 돼
다음구간을 걱정없이 내려선 그 고개에서 시작하면 되겠다란 생각에 삼송역에서 스틱을 접고 전철에 오른다.
며칠 후,
근거리임에 토막시간을 내어 갈 수 있는데까지 가 보리라, 숯돌고개의 안내판이 있는 포장도로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도로에
서 펜스로 이어지는 길로 이어져 간다. 연두색철책 안 다랭이 밭 길과 민가로 이어지는 산길에는 '의주길'이란 긴 표지기가 붙고
벙커를 지나 산책로같이 느껴지는 길이다.
서울과 고양시를 잇는 1번국도의 이동통로여서 편히 건널 수 있었다. 북한산의 모습이 여전히 조망되고 밤나무가 많은 산길을
내려서니 독립문부대 앞 표지석이 안내한다.
부대 왼쪽 길을 따라 윗말마을로 내려 가 고양중교 뒷길을 따라 육화사가 보이는 너른 언덕에 올라 육화사 연등을 따라 길을 잇고
육화사 안내판의 임도로 잠시 내려 왔다가 다시 산으로 든다. 군부대 철조망의 마루금이 보이는 고양누리길이란 팻말이 나무에
붙고 산책로 같다.
[명나라 이여송과 숯돌고개 이야기]의 해설판에는
조선조 임진왜란 당시인 1953년 1월, 이곳 삼송동과 오금동이 경계를 이루고 있는 숯돌고개에서는 큰 전투가 벌어졌다. 조선을 돕기 위해 출정한 명나라 대군과 일본군이 벽제관의 첫 전투를 벌이게 된다. 명나라 총사령관은 이여송 장군, 그는 벽제관 전투 를 승리하고 서울에서 편안하게 식사를 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장릉천 방향에 주둔하고 있던 일본군의 매복에 걸려 숯돌고개에 서 선봉대가 큰 피해를 보았고 자신이 직접 지휘한 본대도 패하여 개성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후퇴하면서 이여송이 훗날 복수를 다짐하고 이 고개의 큰 바위에서 칼을 갈았다고 하여 고개이름이 숯돌고개, 礪石嶺이 되었 다고 한다. 개성으로 후퇴했던 명나라군은 권율 장군의 행주대첩 후 일본군이 서울에서 물러나자 전투없이 이곳 숯돌고개을 넘 고 본다. |
이 의미있는 치열한 전투의 칼을 갈았던 바위는 어데있을까 하는 생각에 슬픈 마음도 잠시, 부대장의 경고문이 있는 농협대학으로
가는 길, 군부대철조망과 고양누리길의 팻말을 따라 간다. 벙커도 있다.
'행주누리길'로 가는 이정목을 지나 고냥서삼릉누리길이 안내판을 따라 x83.7의 지적삼각점을 지나 돌탑 옆 거북바위가 있는 산릉
에 발을 멈춘다.
[거북바위]이곳의 거북바위 이야기를 옮겨보면
북한산에서 서삼릉으로 이어지는 한북정맥이 서삼릉길에 누워있는 거북바위이다. 화강암계의 바위로 일부는 자연적인 현상에 따라 땅에 묻혀 있다. 거북은 서쪽에 몸이 있고 동쪽으로는 머리를 들어 오른쪽을 보고 있는 모습이나 오래전 북한산에서 창릉천을 따라 내려 왔다가 들어가지 못한 거북이라 알려져 있으며 다리가 땅위로 드러나면 창릉천 개울이 마른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
지적삼각점을 지나 '서삼릉 2.05km,삼송역 1.7km'의 이정목은 서삼릉의 이정목과 철망을 따라 길을 잇고 연두색 철책문을 지나
철조망과 함께 왔던 마루금은 '본 토지는 대학교 교육용 재산이므로 산불발생, 시설물 훼손, 도난사고 등을 예방하고자 무단출입을
금하며, 위반시 고발조치 할 것임을 경고합니다'란 농협대학교총장의 경고판이 설치된 곳에서 농협대학교 안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을 버리고 대학교 철조망의 우회길로 가게 된다.
1차선도로를 따라 농협대학교 정문으로 이어지는 2차선 도로이며 농협대학교 안으로 이어졌던 마루금은 왼쪽으로 이어지는 서울,
한양 컨트리 클럽의 골프장으로 연결된다.
고양서삼릉누리길을 따라 너른마당과 고양누리길의 팻말이 붙은 도로 서삼릉입구 도로 삼거리를 지난다. 한양 컨트리 클럽의
철망이 쳐진 안의 마루금을 쳐다보지만 가름되지는 않는다.
서삼릉버섯농장과 원릉역이란 이정목을 지나며 원당천따라 비닐하우스 촌으로 들어 철탑이 있는 도로로 나온다. '남양유업'의
통행제한 안내판을 지나 전선주에 붙은 고양시삼릉누리길의 방향키가 가르키는 도로를 따르다 잠시 산으로 들었다 '인동 張'의 가
족묘를 지나 공사 중인 개활지로 내려 선다.
파 헷쳐 놓은 너른 개활지에 깨알같이 남아 있는 참나무 자생수목 이식장의 마루금을 보며 서울 ↔ 문산간 고속도로 2공구 현장
과 남양유업 건물의 도로를 따라 100번국도의 서울외곽순환고속국도의 지하통로를 지나야 한다.
중앙분리대가 있는 4차선도로를 우회하여 건너야 하며
장독대가 도열된 길과 밭을 지나 서울교외선 철로를 건너 주유소가 보이는 2차선도로로 올라선다. 부대쪽으로 횡단보도의 신호
받아 건너 제3630부대'의 도로를 따르게 되고 부대안 철조망 문에 출입금지란 팻말이 붙어 있는 길,
배다리누리길이란 이정목을 지나
[고봉누리길]의 안내판이 있는 군부대철조망을 따른다.
군부대를 지나 구직포가 깔린 군부대 철조망으로 이어지는
고봉누리길의 고려왕릉이 있는 군부대 길로 철조망에 표지기가 붙고 군부대 안에 고려왕릉이 있는가 보다. 군철조망을 버리고
비포장도로 따라 2차선도로의 엉흥고개에닿는다.
[엉흥고개]를 건너
현달산의 터널을 뚫고 있는 서울 ↔ 문산간 고속도로 3공구 현장을 보며 사진의 왼쪽 공장단지를 지나 산으로 들면 길이 좋아
진다. 밤나무 가지에 표지기가 붙고 '견달산천 발원지 가는 길'이란 팻말이 붙고 소나무숲과 운동기구를 지나 이정목은 견
달산 정상의 표기를 통신시설물이 보이고 벙커 위 현달산 정상에 오른다.
현달산(견달산,번달산 △138.7)
견달산, 위치: 고양시 일산동구 식사동 산 1-3번지 및 문봉동 해발높이:132m 견달산은 고양시 식사동의 주산(主山)이 되는 유명한 산으로 북한산(삼각산)에서 이어져온 한북정맥에 속한다. 서북쪽의 고봉 산과 북측의 독산(禿山), 남쪽의 영글이산과 함께 인근주민들에게 널리 알려진 산이다. 견달산은 현달산, 번달산 등으로도 불리는데 고양시에서 공식적으로 견달산으로 정하였다. 견달산이란 이름은 조선 영조 31 년(1655년) 고양군지 구이동면(九耳洞面)기록에 자세히 표기되어 있다. '명나라 태조의 세수대야 물에 신비스러운 기운(서기, 瑞氣)이 비추자 신하를 보내 그 기운을 찾게 하였다. 신하가 기운을 따라 도달한 곳이 이곳 견달산이었다. 산 정상에 신비스러 운 샘이 하나 있고 그 옆에 한그루의 감나무가 있었는데 쟁반만한 감이 열려 있었다. 명나라 신하가 귀국하여 명나라 태조에게 감을 비치니 산의 이름이 견달산이라 하였다'는 내용이다. 고양시 주요하천인 도촌천과 장진천이 나누어지는 분수령으로 옛부터 이어져 오고 있는 견달산의 무한한 정기를 통해 인근 주민 들이 행복을 간절히 바라며 후대에 그 뜻을 전 하고자 이 안내판을 세운다. 식사동 주민자치 센타 주민참여예산 시행사업 |
현달산 삼각점 3개 중 하나 '서울 407, 1994 재설'
참나무 잎 떨어져 발목이 채이는 가파른 길을 내려
수로를 밟고 가며 사진에 보이는 저 안테나가 있는 고봉산과 바로 앞 골프연습장의 도로를 따르게 되는 마루금을 사진에 담아
문봉동재 사거리에 이른다.
마루금은 군부대 철조망의 2차선 도로 따라 인선ent 공장과 방아고개 아래 신성콘크리트가 보이는 원각사 안내판에서 우회하
여 낮은 구릉의 산으로 들어 원각사 도로와 진밭마을로 내려선다. 군부대가 차지한 마루금을 진밭마을로 돌아
군부대 정문의 도로를 잠시 따르고 곧 표지기가 달린 군부대철조망과 함께 산으로 들어 초소를 지나 성동고개의 포장도로의
절개지로 내려선다.
성동고개
고봉산 만경사의 안내판을 따라 고봉산 오르는 도로를 따라 간다. 이미 어두움이 찾아 와 사진기의 밧데리도 나간지 오래 돼
만경사 가기 전 산으로 들것을 포기하고 만경사를 지나
[이무기 바위]가 있는 고봉산 입구에 닿고 고양누리길의 이야기를 가득담은 안내판과 종합안내판의 고봉산과 안고습지공원,추만
정지운 선생 묘지, 장희빈 가족 묘역 등의 사진과 설명이 돼 있다.
고봉산(△208.6)의 도로따라 오르게 되지만 군부대에게 내어 준 산의 정상을 밟을 수 없어 포기하고 영천사 쪽으로 내려 서 영천사
에서 보이는 산 아래의 아파트단지는 중산마을이며 뒤편으로는 원 일산, 일산신도시.송포 들판과 대화마을, 자유로, 한강으로 이어
지고
시야가 좋은 날이면 강화 마니산도 조망이 가능하여 고봉산의 지리적 중요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고 고봉누리길의 안내판을 세워
놓았다.
시야는 온통 어두워 랜턴없이는 걸을 수 없어 핸드펀을 켜고 사진를 번갈아 가며 찍고 이정목을 찍어 '황룡사 입구 1.01km, 영천사
0.35km, 견달산 누리길(진반)'의 이정목을 마지막으로 찍고 철조망과 만나고 또 만나 중산테마공원의 안내판이 있는 고봉초등 앞
도로로 내려섰다.
중산아파트 앞 도로가 버스정류장 종점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전철로 환승하여 귀가한다. 그야말로 산도 평야도
'비산비야'를 종일 밟고 온 생각밖에 없음에 ..
며칠 후,
고봉초등학교 앞 경유하는 버스를 타고 와 98번 4차선 도로의 사거리에서 횡단보도를 신호 받아 황룡산입구 0.08km의 고양고봉누
리길 이정목을 따라 종합안내도와 금정굴의 안내판이 있는 산속으로 오름짓을 한다.
금정굴 은,
부족한 전쟁비율을 수탈하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는 고양 덕이리 한산마을 뒷산인 황룡산자락 끝까지 금광을 개발했다. 당시 금구뎅이로 불리던 금정굴은 한국전쟁 국군 수복 후인 1950년 10월 6일 부터 25일까지 고양경찰서에 의해 200여 명의 주민들이 학살당하는 참극의 현장이 되었다. 1995년 9월 반 백년 동안 숨죽이며 살아왔던 유족들이 부모 형제의 유골이나마 찾고자 용기를 내어 발굴을 시작했다. 암흑 속 에 있던 153구의 유굴을 비롯하여 희생자들의 손목을 묶었던 통신선, 심장을 뚫었던 총탄, 죽음을 예감하지 못하고 지녀 온 비 녀, 빗, 곰방대 등 1천여 점의 유품이 빛을 보게 되었다. 2007년에 와서야 대한민국은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인정했으며, 2012 년 사법부 역시 국가의 불법행위에 의한 배상책임을 받아 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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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의 상흔이 남은 아픈 역사의 현장으로 부터 산행을 시작한다. 금정굴, 진의와 정의의 발걸음이란 안내판이 있고 아직
도 남아있는 발굴터의 잔상 들이 너른 터에 모여있다. '평화의 셈터에서 편히 잠드소서'란 비석도 있고 현장 보존을 위한 서명
운동의 현수막도 걸려 있어 아직도 그 현장은 진행 중인가 보다.
골프연습장이 보이는 길따라 운동기구와 떡갈나무 이름표를 단 산책로를 간다. 군부대 철조망이 있는 황룡산입구 0.81km, 금정
굴 0.79km의 이정목인 황룡산 갈림길인 x106.2 봉에 올라선다.
황룡산 갈림길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 황룡산으로 가 보자, 어느 산보다 슬픔의 현장에 서 있는 나는 산이 아니었다면 이른 비극의 현장을 알 수
있었을까 하는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군부대 사격장으로 피해를 입을 수 있으니 책임을 질 수 없다는 부대장님의 경고문을 지나 고양누리길의 표지기가 붙고 태극기
가 휘날리는 황룡산 이정목은 250m의 방향키를 따르고 공사중인 건설현장이 보이고 운정택지개발 지구의 아파트가 꽉찬 모습이
보인다.
고봉누리길의 탄현동, 숯 고개의 이야기가 있는 운동기구 시설을 지나 부대 철조망을 따라 가면 소나무 한그루가 기울어 있는
황룡산이다.
[황룡산 △134.5]
즉 황룡산도 군부대에게 내어 준 정상이다. 황룡산의 갈림길인 x1062봉으로 내려 와 무덤이 군데군데 있고 잘못 내려 갈 수 있는
표지기가 붙고 진행방향은 군부대 철조망을 따라야 맞는다.
철조망에 붙은 일산서구청장의 안내문이 있는 운동기구에서 서진하여 고도를 낮추며 내려 가게 되는 곳의 마루금임을 알게 된다.
'고양시는 개인의 재산권 보장하라' '등등 현수막이 이곳 저곳에 붙고 숲향기전시장으로 내려서 호곡중학교와 예담교회를 가르는
도로를 따라 큰마을 아파트 쪽으로 직진한다.
eㅡ마트 앞 사거리
도담유치원과 큰마을 아파트 안으로 들어 탄현큰마을공원으로 가 철계단으로 올라 탄현큰마을교를 지나 일산가구단지 사거리를
건넌다.
일산가구단지 앞 4차선 도로를 따라 파주(운정)가는 도로따라 교통안내판은 한산초등학교와 덕이고등학교를 가르키고 하이
파크시티단지 버스정류장을 지나게 되는 오른쪽 마루금은 낮은구릉의 평지와 같다.
하이파크시티 2.3단지 버스정류장과 덕이중학교 앞을 지나 I-Park앞 삼거리에서
샘물공원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따라 I-Park 뒤 포장도로로 나와 더테라스 주택가 앞을 지나 kisun의공장건물 길로 들어
훈장골식당이 있는 동패동마을회관을 지나 지하차도의 358번 지방도로 6차선 도로로 나와야 한다.
사실 마루금이 오른쪽인지 왼쪽인지 모르겠고 ..
금촌으로 가는 도로 따라 아파트 도심속의 새암공원의 손톱만큼 남아 있는 마루금을 보면서 운정가구타운이 우회전 하게 되는
육교 앞 사거리에서차 한잔 먹고 쉬어 갈 요량으로 롯데리아에서 잠시 머무른다.
맞은편 경기인력개발원 내 재활용센타를 나오면 마루금은 운정배수지 위 자작나무가 있는 손톱만큼 남아 있는 마루금으로 오를
수 있다.
△57.1
낮은구릉의 삼각점봉에 사각쉼터와 운동기구가 있고 혹 자작나무 숲에 숨었을까 숨박꼭질만 하고 삼각점을 포기하고 운정건강공
원을 나와 삼부르네상스 아파트 앞 정문 안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을 보면서 삼부르네상스를 지나
월드메르디앙 아파트와 두산위브 아파트를 해솔마을로 가는 교통표지판을 따라 가다 육교 앞 사거리에 이른다.
육교 위 가재울공원을 지나 아파트가 보이는 2차선도로 삼거리로 나와 교하 고인돌 산책로인 공원 갈림 이정목이 안내하는 산길
로 들어 산내마을 아파트가 보이는 길을 빠져 운동기구를 나와 들꽃어린이집 앞 임도가 있는 마루금으로 표지기가 붙은 임도 옆
마루금으로 들게 된다.
교하고인돌 산책로의 성재안길로 방향을 바꾸어 잠시 임도에 닿아 산으로 들며 너른 길을 따르다 보면 교하고인돌 산책로의
'산내마을8단지. 당하동'의 이정목이 있는 생태육교를 건너야 한다.
56번 도로, 4차선도로의 생태육교
연등 몇 개가 길을 열고 고인돌 산림공원 산책로는 파평윤시 교하종중의 사유지로 준수사항을 지키라는 알림판이 붙은 산길을 걸
어가게 된다.
교하고인돌 산책로를 따라 편한 정맥길은 평지와 거의 같다.
성재암이 산기슭 자리잡고 파평윤시 정정공파 묘역 안내판을 지나 교하중교 의 도로 지척에
다율리, 당하리 지석묘 1호인 고인돌이 있는 곳이다. 다율리, 당하리 지석묘 1호는 받침돌은 보이지 않으나 원래상태인 듯 하고
양호하다. 서쪽으로 10도 기울어져 있다고 표기되어 있는 표기석을 보며 가늠해 본다.
고인돌 2,3,4, 5 등 교하고인들 1기, 1기 다가가 본다.
교통호를 나와 도로따라 군부대 철조망으로 이어져 버스가 오가는 오도리버스정류장인 핑고개에 도착, 이곳 철책에 붙은 표지기
따라 1차선 도로를 따라 삼거리에 도착,
프랑스수입가구 앞 삼거리에서 광주 일대구정 산악회에서 오신 분들을 뵈어 동밖에님 현위치를 묻고 기다린다. 먼저 그 분들
을 보내고 동밖에님과 기쁜 조우를 한다. 처음뵙는 분들과,
공장 안 담장을 따라 축대를 넘어 표지기가 붙은 무명봉에 올라 폐초소를 지나 펜스가 쳐진 평지같은 곳 소나무 묘목나무 밭이
장명산 정상(△102)인가 보다. 먼저 다녀간 분의 표지기가 붙은 이 묘목나무가 정상이라 생각하고 붙인 것 같아 나도 저 소나무
에 사진을 담고
발 아래 채석장을 걸어
정상석이 있는 장명산에 발을 밟는다. 일대구정 산악회원님들과 함께 한북정맥의 끝 장명산 정상석 앞 한사람, 두사람, 모두 기
념사진을 남기고 완주의 축하를 한다.
장명산
이 산 주위로 전부 구절초가 자생, 주민들이 이를 많이 복용 수명이 연장되었다 하여 유래되었다는 장명산에서 서쪽으로 곡릉천의
남쪽 조금 남아 있는 마루금을 따라 가 보면 송촌리의 곡릉천에 잠기는 것을 알 수 있으리라. 북쪽 임진강에서 흐른 물과 한강의
물이 합수된다는 것도 그곳에 발을 담가 보면 알 수 있겠지,
북녁 가까운 대성산에서 시작해 백운산, 망국산, 운악산, 주엽산,축석현, 불곡산, 홍복산, 도봉산, 삼각산, 노고산, 여산, 현달산, 고
봉산, 장명산 등으로 기록돼 있는 제일 높은 망국산을 넘고 도심을 지나 100미터급 장명산까지 지나온 발자취를 되새겨 본다. 그
중 내 발자욱이 닿지 않은 여산은 어드메며, 홍복산은 챌봉 동쪽 이던가,
우리 수도 서울을 품고 있는 한강의 온전한 북쪽 울타리를 치고 있는 산줄기인 한북정맥이 한강의 북쪽 울타리를 치지 못하고 삼각
산으로 왔으므로 실제로 한강의 북쪽 울타리를 치는 한북기맥의 흐름을 따라 가 볼 저 북쪽 오두산이 손짓을 한다.
다소 가파른 곳을 내려와 산행했던 자연의 에너지를 곡릉천에 듬뿍 담았다. 양주시 챌봉 남쪽 계곡에서 발원하여 장흥면과
덕양구, 일산구, 파주시 교하읍 오도리 북쪽에서 서쪽을 향해 흘러 한강으로 드는 곡룡천! 나는 곡릉천의 남쪽 산줄기를 따라
왔으니 자네와 난 친구였네,
산악회 분들의 막걸리 한 잔 술에 얼굴이 홍당무같아 말을 이를 수 없다. 같이 하지는 못했지만 오늘 한북정맥을 맺는 그 끝은
같으리라 기분이 좋다.
그 분들의 버스를 타고 문산으로 와 헤어져 문산역에서 경의중앙선에 몸을 실었다. 10여년 전 지리산 태극종주시 밤머리재에서
우연히 스쳐 인연이 되었다는 동밖에님 오랫만에 뵌 기쁨도 한북정맥 완주에 더한 기쁨도 두 배가 되었다.
[끝]
첫댓글 요물님 한북정맥 완주 축하 드립니다..산행기가 잔잔하면서도 알찬게 꾸며져 있네요..나중에 한북정맥을 하는
후답자에게 큰 도움이 될 것 같네요...그럼, 성탄절을 맞이하여 큰 행운 가득하시고..항상 안산 즐산 하십시요..
그날 정맥 졸업을 같이 해. 좋고 만나뵙게 되어. 반가웠습니다
공유한다는 의미로 정확하지 않은 곳은. 세심히 더듬어 보려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