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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산도와 추봉도를 가다
-이순신장군의 얼이 서려있는 섬
너무 유명하고 잘 알려진 섬이다 보니 오히려 방문이 늦었다.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이 비유가 될까? 통영에서 지척인 섬, 미륵산에 올라 발 아래 밟히듯 내려다보고 몇번이나 감회에 젖었던 그 섬 한산도를 이제야 찾았다.
남해의 섬들은 수도권에서는 꽤 멀다. 서울에서 차로 약 5시간 반 정도 걸려 통영에 도착, 여객선터미널 앞 시장골목에서 통영 토속음식인 장어탕을 먹은 후 파라다이스호에 몸을 실었다. 이번 여행 역시 섬여행 전문카페인 '섬으로'(대표 이승희) 동호인들과 함께 했다. 이번 여행에서는 특히 통영 토박이이면서 기자생활로 잔뼈가 굵은 '통영인뉴스' 김상현 대표가 현지에서 일정 내내 안내를 해줘 여행의 깊이를 한층 더했다. 김상현 기자는 통영 섬들의 독특한 부엌과 그 생활문화사를 이야기로 담아 낸 '통영 섬 부엌 단디 탐사기'라는 책을 펴내 유명해진 분이기도 하다.
통영은 언제 가봐도 아름답다. 도시 자체도 아름다울 뿐 아니라 앞바다에 한산도, 비진도, 욕지도, 연화도, 매물도, 소매물도, 사량도 등 크고작은 수많은 섬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어 천혜의 비경을 자랑한다. 통영을 흔히 '동양의 나폴리'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필자가 오래전에 가본 이태리의 나폴리는 결코 통영 만큼 아름답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통영을 소개하는 어느 월간잡지의 여행기고글에서 필자는 거꾸로 나폴리를 '이태리의 통영'이라고 하는 게 좋겠다는 농담섞인 역설(?)을 편 적도 있다. 미륵산 정상에 올라 통영 시내와 주변 섬들을 내려다보면 필자의 말을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통영은 유명한 문화예술인들도 많이 배출했다. 유치환 시인, 윤이상 작곡가, 김춘수 시인, 박경리 소설가, 전혁림 화가 등이 통영 출신이거나 통영과 깊은 인연이 있는 예술인들이다.
여객선을 타면 뒤로 미륵산이 올려다 보이고 화도, 상죽도, 하죽도, 해갑도 등 작은 섬 사이를 지나 20여 분 만에 한산만 깊숙이 자리한 제승당선착장에 이른다.
문어포 언덕에는 한산대첩기념비가 보이고 선착장 못미쳐 거북등대가 방문객들을 맞아준다. 이순신 장군의 전적 섬임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죽도는 대섬이라고도 부르며 우리 수군이 화살 대를 얻기 위해 시루대를 재배하던 곳으로 지금도 이 섬에는 대나무가 자라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입증하고 있다. 해갑도는 대섬과 마주한 섬으로 이순신 장군이 한산대첩에서 승리한 후 최초로 올라 갑옷을 벗고 땀을 씻은 섬이라고 한다. 섬의 모양이 게의 등처럼 생겼다고 해서 이 고장 사람들은 게딱까리섬이라고도 부른다.
선착장에 내려 배에 싣고 들어온 차로 먼저 숙소가 위치한 진두(津頭)로 향한다. 진두는 한산도 남동쪽 끝, 추봉도 바로 앞에 있는 포구마을로 면사무소가 있는 곳이다. 한산도가 조그만 섬인줄 알았는데 예상 외로 크고 아기자기하다. 한산면은 64개 섬(유인도 11, 무인도 53)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행정구역은 8개리, 32개 마을, 전체인구는 1,263세대, 2,364명(2012.12월말 현재)에 이른다. 흩어진 섬과 섬, 바닷가에 우뚝우뚝 병풍처럼 둘러선 산들, 맑고 푸른 바다 위에 크고 작은 배들이 떠다니는 모습이 참으로 한가롭다. 동백나무를 비롯한 울창한 숲, 바다와 산, 하늘이 어우러져 빚어놓은 풍경은 실로 장관을 이룬다.
진두 가는 길은 해안도로로 대고포-소고포-장곡마을 등을 거친다. 좌측 바다에 좌도가 보이고 유자도, 장재도 등 조그만 무인도들도 눈에 들어온다. 한산만 수로가 섬 내륙 깊숙히 뻗어 있어 마치 호수 모양이다. 앞뒤좌우로 산능선이 감싸고 있어 바닷물 역시 잔잔하기 그지없다. 이곳은 아무리 강한 태풍이 몰아쳐도 거의 피해를 받지않을 것 같다. 한산대첩으로 유명해진 섬이라 어쩐지 삭막하고 거칠 것 같다는 선입관과는 전혀 다르게 평화롭고 꽤 아름답기도 하다.
진두마을 보리수펜션이라는 곳에 짐을 풀고 첫날은 먼저 추봉도 트레킹 길에 나서기로 한다. 진두마을도 주변 경관이 아름답다. 바로 앞 바다에 추봉도, 용초도, 죽도 등이 지척이고 추봉도 봉암해수욕장이 포구 앞을 가로막고 있어 아늑하기도 하다. 마을 뒷쪽에는 한산도에서 가장 높은 산인 망산(293m)이 위치하고 있어 등산하기에도 편리하다. 진두(津頭, 陳頭)라는 지명은 임진왜란 당시 우리 수군이 진을 치고 경비초소를 두어 통제영과의 연락보급과 담당구역의 해상경비 임무를 수행하던 곳이라 붙여진 이름이다. 또한 예로부터 한산본도와 추봉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연결하는 나루터의 구실을 해 왔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추봉도는 한산도와 추봉교로 이어져 있다. 추봉교는 길이 400m, 폭 13.3m로 2007년 7월에 개통된 다리이다. 봉암, 추원, 예곡, 곡룡포마을이 있으며, 역사적으로는 추봉포로수용소가 있던 섬으로 유명하다. 6.25전쟁 당시 악질포로 만여 명을 분리 수용했던 곳으로, 추원,예곡마을에 유엔사령부가 설치되어 게양대, 창고, 헬기장 돌담 등 포로수용소의 잔해가 지금도 곳곳에 남아 있다.
추봉도에 가면 트레킹코스도 참 좋다. 진두에서 예봉마을까지 자동차로 이동 후 예봉마을-망상 정상-예봉마을-한산사-봉암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코스의 경우 약 2시간-2시간 반, 추봉도 전구간을 도는 코스인 진두-추원마을-예곡마을-망산 정상-예곡마을-한산사-봉암-진두 코스의 경우에는 약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짧은 코스를 예를 들면, 예봉마을 비탈길을 조금 오르면 한산초등학교 추봉분교터가 보이고 계곡 완만한 해안도로를 오르면 좌측 산쪽으로 망산안내판을 만난다. 안내판 있는 곳에서 약 20여 분 정도 숲길을 오르면 망상 정상(256m)에 이른다. 정상에 서면 사방이 일망무제로 펼쳐지면서 주변 바다와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장관이다. 북서쪽으로는 추봉도 예곡마을, 추원마을이 발 아래 내려다보이고, 한산도, 그 뒤로 통영 미륵산까지 눈에 들어온다. 동쪽은 거제도가 거대한 자태로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고 남쪽으로는 발 아래 추봉도 곡룡포마을,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장사도, 대덕도 및 소덕도, 가왕도, 어유도, 매물도 및 소매물도, 멀리는 홍도,좌사리도,국도 등이 시야에 잡힌다. 맑은 날에는 이곳에서 대마도도 보인다고 한다. 남서쪽으로는 죽도, 용초도, 비진도 등이 선명하게 반짝인다.
장사도는 10만여 그루의 수백년생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구실잣밤나무, 천연기념물 팔색조와 풍란, 석란 등으로 유명하며, 폐교가 된 학교와 섬 집을 예전모습으로 복원하고 20여 개의 코스별 주제정원을 가꿔 테마섬으로 개발된 곳이다. 대덕도 및 소덕도는 통영에서 약 16km 떨어져 있는 섬으로 1975년까지는 유인도였으나 차츰 인구가 감소하면서 무인도가 된 섬이다. 자연경관이 아름다워 장사도, 가왕도 등과 함께 한려해상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두 섬의 모양이 닭처럼 생겼다고 해서 토박이지명은 '닭섬'이다. 가왕도는 섬의 형태가 가오리를 닮아 가오리섬이라고도 하며 동쪽과 서쪽 해안에 해식애가 발달된 섬이다.
남서쪽으로 보이는 죽도는 옛날부터 대나무가 많아 붙여진 이름으로, 임진왜란 당시 왜적을 물리칠 때 병장기의 재료로 대나무가 사용될 만큼 대규모 군락을 이루었으나 현재는 마을 당산에서만 볼 수 있다. 섬 안에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있어 실패한 기업인들의 교육 장소로도 유명하다.
용초도는 용과 호랑이가 서로 노려보는 모습같다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이 섬 역시 한국전쟁 당시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곳이다. 1952년 5월부터 1955년 3월까지 3년동안 8천여 명의 포로들이 수용돼 있었다고 한다. 추봉도와 용초도 포로수용소 자리 주민들은 당시 다른 곳으로 소개되었다가 휴전협정 후 수용소가 폐쇄됨에 따라 재입주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망산 정상에서 한참동안 경관을 즐긴 후 하산을 시작한다. 예곡마을에 내려와 마을골목길을 돌아본다. 예곡마을은 원래는 임진왜란 전부터 인근 거제도의 경상우수영 산하 관기(官妓)마을이어서 여기곡(女妓谷) 또는 여곡(女谷)으로 불리웠는데 1925년에 현재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마을 입구에는 한국전쟁 당시 이 마을이 포로수용소였음을 안내하는 안내판도 세워져 있다. 마을 앞 밭길을 따라 비탈길을 오르면 마을이 훤히 내려다보이는 밭가운데 시멘트담 잔재가 남아있는 게 보인다.이곳은 유엔군 포로수용소 지휘통제소가 있던 곳이다.
비탈길을 넘으면 우측으로 추원마을이 내려다보이고 곧 대봉산(238m) 산허리를 도는 좌측 해안숲길로 접어든다. 바다 위 죽도와 용초도가 점점 가까워진다. 숲길이 아늑하고 고즈넉해서 좋다. 바다와 섬을 바라보면서 걷는 맛이 그만이다.
예곡마을에서 약 30분쯤 걸으면 대봉산 중턱에 위치한 한산사를 만난다. 한산사는 1925년 6월 경 건립된 사찰이다. 조그만 절이지만 절 마당에 서면 바다위 죽도, 용초도, 장사도, 대덕도, 소덕도, 가왕도 등이 한 눈에 보여 조망이 절경이다. 추원마을에서 한산사로 이어지는 2km남짓 오솔길은 사계절 해국, 감국, 털머위 등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아름다운 길이다. 오솔길을 따라 걷다보면 꼭 바다 위를 걷는 것 같은 착각 속에 빠져든다.
한산사에서 800m 쯤 더 가면 봉암 몽돌해안에 이른다. 봉암해안은 한산도 진두마을에서 250m정도 떨어진 추봉도 봉암마을에 위치한 해안이다. 약 1km에 이르는 동암몽돌해안은 오랜 세월동안 파도와 바람 등의 자연환경에 의한 해안퇴적의 결과로 생겨난 것으로서 특히 이곳의 몽돌과 색채석은 '봉암수석'으로 불리울 정도로 유명하다.
걷다보니 어언 해가 바다 속으로 가라앉을 시간이다. 봉암해안 끝 산책로는 일몰촬영의 적소이다. 스냅사진으로 일몰광경 몇장 담아본다.
진두마을 주변은 봉암해안의 일몰, 망산에서의 일출 광경도 아름다우며 추봉교 야경 역시 유명하다. 밤이 되면 다리 위 가로등 불빛과 다리 아래 물 위에 비치는 무지개색 불빛이 한데 어우러져 황홀한 야경을 연출한다.
다음날 아침, 6시 40분경 일출을 보기 위해 한산도 망산을 오른다. 한산초중학교 운동장을 지나 좌측 산길을 타고 1km, 약 30분 쯤 숲길을 오르면 휴월정이라는 정자를 만난다. 이곳에 서면 추봉도와 거제도 쪽에서 올라오는 멋진 일출장면을 볼 수 있다. 동해안 일출은 섬이 없어 수평선에서 바로 올라오는 일출인데 반해, 이곳에서의 일출광경은 산과 바다 배경을 함께 깔고 있어 잘만 찍으면 구도면에서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 오전 7시반 쯤 드디어 해가 솟아오르기 시작한다. 한산도에서 맞는 또 다른 해오름. 어디에서 보든 일출은 대체로 비슷할 텐데도 그때마다 마음이 설레는 건 왠일일까? 일출은 곧 새로운 시작, 오늘을 맞는 또 다른 희망이기 때문일까? 비록 필자가 바라는 오메가형 일출은 아니지만 새로운 해를 맞는다는 그 자체 만으로도 기쁘고 황홀하다.
해가 뜬 후 조금 지나자 함께 올라온 통영인뉴스의 김상현 기자가 "대마도가 보인다"고 소리친다. 아, 보인다. 추봉도 넘어 멀리 홍도 좌측으로 대마도 능선이 길게 뻗어있는게 선명하게 시야에 잡힌다. 마치 홍도 바로 옆에 있는 섬처럼 가깝게 보인다. 대마도가 저렇게 우리땅 홍도 바로 옆에 누워 있는데, 일본은 우리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를 자기네 땅이라고 주장하는데 우리는 저토록 가까운 대마도를 우리땅이라고 왜 강하게 주장하지못하는가?
한산도 망산(293.5m)은 일출조망 장소로도 좋지만 등산코스로도 훌륭하다. 등산로 곳곳에 이충무공 유적지가 산재하고 있어 등산과 유적탐사를 겸할 수 있는 곳이다. 진두-휴월정-망산 정상-망산교-대촌고개-제승당 코스(또는 그 역코스)의 경우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아침식사 후 오늘은 한산도 이충무공 유적지 탐방 예정이다.먼저 의항을 거쳐 문어포로 향한다. 의항마을 앞에 아담한 호수가 보여 무슨 호수인가 물으니 호수가 아니고 바다란다. 한산만이 이곳까지 물길이 이어져 마치 호수처럼 보인다. 일명 개미목이라고도 부르는 의항(蟻項)은 한산대전에서 대패한 왜군들의 잔적들이 문어포에서 도망갈 길이 트였다는 말에 속아 이곳 산허리를 뚫고 도망가기 위해 개미떼처럼 엉겨붙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워낙 깊숙히 들어온 곳이라 왜적의 눈을 피해 우리 판옥선들이 숨어있기에도 최적의 장소였을 것 같기도 하다.
의항마을에서 완만한 시멘트길을 20분 쯤 오르면 문어포(問語浦)마을에 이른다. 문어포마을에 올라서면 시야가 훤히 트이면서 바다 건너 통영 미륵산과 통영시내, 소죽도,대죽도가 지척으로 보이고 우측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한산대첩기념비도 눈에 들어온다. 문어포 마을의 유래는 왜군이 한산대전에서 대패한 후 패잔병들이 문어포 개 안에서 노인에게 도망갈 길을 물었다고 한다. 이곳 지형이 계속 넓은 넓은 바다로 뚫려있는 것처럼 보이는 데 그런지를 묻자 그렇다고 거짓대답을 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문어포마을에서 걸어서 5분 정도 비탈길과 동백숲길을 지나면 한산대첩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문어포 산정이다. 이 기념비는 거북선을 대좌로 한 높이 20m의 비석으로, 이충무공의 한산대첩을 기념하기 위해 1979년에 세웠다. 한산대첩기념비라 쓴 정면 제목은 고 박정희 대통령이 썼고, 비문의 글은 노상 이은상 선생이 짓고 글씨는 우석 김봉근 선생이 썼다. 기념비 앞에 서면 한산대첩이 일어났던 한산만이 한 눈에 들어오고, 멀리 이충무공이 우국충정의 시를 읊었던 제승당 수루(戍樓)도 내려다 보인다.
문어포에서 내려와 다시 선착장 인근에 위치한 제승당으로 향한다. 제승당(制勝堂)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을 지휘통제하던 곳이다. 1593년 8월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를 제수받아 한산도에 통제영 본영을 설치했을 때 지금의 제승당 자리에 막료 장수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운주당(運籌堂)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폐허가 된 이곳에 제107대 통제사 조경이 1740년 유허비를 세우면서 운주당 옛터에 다시 집을 짓고 제승당이라 이름붙였다. 제승당 경내에는 이 충무공 영정을 모시는 충무사(忠武祠), 적의 동정을 염탐하던 망루인 수루(戍樓) , 이충무공이 부하 장졸들과 활쏘기를 연마하던 한산정 등이 있다.
한산섬 달 밝은 밤에 수루에 혼자 앉아
큰 칼 옆에 차고 깊은 시름 하는 차에
어디서 일성호가는 남의 애를 끊나니
제승당 수루에 걸린 이충무공의 시를 다시 읽으면서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의 깊은 애국심을 새겨보고, 애국충절이 무엇인지, 국가와 민족을 위하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국민의 한 사람으로써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글, 사진/임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