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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전원마을, 코츠월즈(Cotswolds)
영국인들이 은퇴 후 살고싶은 곳 1위
전통이란 무엇인가? 옛것을 보존한다는 것. 그건 조상들의 영혼과 숨소리가 듣고싶어서가 아닐까? 필자가 영국에 4년간 살면서 자주 스스로에게 물었던 질문이고 답이기도 하다.
<한국의 굿>, <아시아의 하늘과 땅> 등으로 유명한 사진작가 (故)김수남은 그의 저서에서 ‘변하지않는 것은 보석이 된다’고 썼다. 맞는 말이다. 영국이야말로 변하지않는 보석으로 지금도 우리들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코츠월즈(Cotswolds)는 런던에서 약 200km 떨어져 있는 영국 중서부의 한적한 농촌마을과 도시를 가리킨다. 13-14세기 양모산업이 번성하였던 아름다운 구릉지대. 옛모습 그대로의 고풍스러운 건물과 전원 풍경이 방문객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영국에서 가장 영국다운 농촌모습을 아직도 고스란이 간직하고 있다. 영국인들이 은퇴 후 살고 싶은 곳 1위로도 자주 등장한다.
코츠월즈의 공식 웹사이트(http://www.cotswolds.com)에 의하면, 코츠월즈라는 이름은 양(羊) 우리를 뜻하는 '코츠(cots)'와 완만한 언덕을 일컫는 옛날 영어 단어 '월즈(wolds)'에서 유래된 합성어, 즉 '양들이 있는 구릉'의 의미라고 한다.('Cotswolds' is a combination of two very old English words. Everyone's pretty much agreed that Wolds are gentle hills. And most people agree that 'Cots' are sheep enclosures. So 'Cotswolds' probably just means an area of gentle hills with plenty of sheep around.)
중세시대 양모산업의 발달로 아름다운 건축물들이 도로변에 가득 세워졌으며, 보존상태도 훌륭해 과거 모습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1960년대 영국 정부가 자연이 아름다운 지역으로 선정한 곳으로 크고 작은 마을 100여 개가 오밀조밀 들어서 있다.
아름다운 풍광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영국 내에서도 '그림엽서 같은 마을(picture postcard village)'로 손꼽히는 곳, 케이트 모스, 엘리자베스 헐리 같은 유명인들이 숨 막히는 런던 생활이 싫다며 박차고 나와 보금자리를 튼 곳이다. 유기농 선진국 영국에서 그린 시크(Green chic·고급 자연주의)를 주도하는 지역이기도 하다.
코츠월즈의 자연은 산업화의 반작용이 재발견한 아름다움이다. 중세 때 코츠월즈는 가내 수공 형태의 양모 산업을 기반으로 영국 내에서도 부유한 지역으로 손꼽혔다. 귀족들의 대저택이 즐비하고 한가로이 정원을 꾸미던 여유로운 전원이었다. 하지만 산업혁명으로 기계식 대량 생산이 시작되면서 급격한 쇠퇴를 맞이한다. 돈줄이 마르자 사람들은 떠나고 마을은 황폐해졌다. 쇠퇴 일로를 걷던 코츠월즈로 사람들이 다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후반 산업화에 반기(反旗)를 든 미술공예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고 한다. 미술공예 운동을 이끈 공예가이자 시인인 윌리엄 모리스는 산업화의 물결이 미치지 못한 코츠월즈를 본거지로 삼았다. 산업혁명으로 뒷전에 밀렸던 자연과 예술이 다시 부흥했다. 코츠월즈는 최근에는 걷기여행지로도 각광을 받고 있다.
런던에서 코츠월즈로 가는 방법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패딩턴역에서 기차를 타고 가는 방법과, 옥스퍼드까지 가서 옥스퍼드에서 버스를 타고 가는 방법 등이 있다. 코츠월드는 마을이 많기 때문에 어느 마을로 갈 것인가를 먼저 결정한 후 기차나 버스를 선택하면 된다. 런던 패딩턴 역에서 기차를 이용할 경우 북서쪽으로 2시간 20분 정도 달리면 첼트넘(Cheltenham) 스파역에 도착한다.
필자의 경우에는 아내, 영국에서 살고 있는 아들과 함께 가족여행으로 영국에서 평소 알고 지내는 여행사 대표의 안내를 받아 자동차를 이용, 옥스퍼드 쪽으로 직행했다.
코츠월즈는 지역이 넓다. 옥스퍼드 교외에서 서쪽 끝 첼트넘(Cheltenham)에 이른다. 남북으로 약 160km, 100여 개 마을을 총칭하는 이름이다. 필자 가족은 일정상 부득이 코츠월즈 마을 중 버퍼드(Burford), 버턴 온 더 워터(Bourton-on-the-Water), 스토우 온 더 월드(Stow-on-the-Wold) 등 세 마을 만 돌아보기로 했다.
첫 번째 방문지인 버퍼드는 대중교통으로 갈 경우 런던 패딩턴역에서 옥스퍼드역까지 1시간, 옥스퍼드에서 버스 853번으로 버퍼드까지 약 45분 걸린다. 자가용의 경우 런던에서 M40 을 타고 가다 옥스퍼드 방향 A40을 타면 옥스퍼드를 지나 버퍼드에 이른다.
버퍼드 로타리 옆에 ‘코츠월즈 게이트웨이(Gateway)’ 라는 레스토랑 건물을 만나는데 그 입구에 Cotswolds-Area of Outstanding Natural Beauty 라는 표지석이 보인다.
마을에 들어서면 완만한 경사의 중앙도로 양쪽에 고색창연한 중세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마을 뒤에 푸른 초원이 깔린 구릉도 함께 눈에 들어온다.
버퍼드는 옛날부터 양을 치는 것을 주요산업으로 발전한 마을이다. 마을을 둘러싸듯 집들 주변에 양이 풀을 뜯는 한적한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에서 유일한 번화가인 하이 스트리트를 따라가다 보면 향토자료관인 톨시 하우스(Tolsey Museum)를 만날 수 있다. 톨시하우스는 과거 양모상인들의 회의공간으로 이용되던 곳이다. 현재는 지역 역사를 간직한 소규모 박물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중앙도로 인근의 14세기에 세워진 빈민구호소와 세례 요한 교회(Church of St John the Baptist) 건물 등도 볼거리중 하나이다.
마을 북쪽을 우회해서 흐르는 윈드러시 강(the river Windrush) 주변에는 짐 마차를 위해 세워진 중세의 작은 석교가 그대로 남아 있다. 코츠월즈 마을 들은 특별히 유명 관광명소가 있는 것은 아니다. 마을 전체가 볼거리이고 즐길 거리다. 천천히 마을 구석구석을 걷다 보면 영국중세의 고풍스런 아름다움이 마음 속으로 깊이 스며든다. 시간여유가 있을 경우 훌륭한 스콘을 선보이는 근사한 찻집인 Huffkins, 촬스2세 등이 머물렀던 유명호텔인 Bull도 들러보자. Bull호텔은 호텔이지만 고급요리를 선보이는 레스토랑도 함께 운영한다. 15세기 여관인 Lamb Inn도 분위기 넘친다. 판석바닥과 기둥, 삐걱거리는 계단 등이 인상적인 여관이다.
버퍼드를 둘러본 후 다음 코스인 버턴 온 더 워터(Bourton-on-the-Water)로 이동한다.
코츠월즈 공식웹사이트, 여행전문가이드북인 ‘Just Go' 및 마을 리플렛 등은 이곳을 ‘코츠월즈의 베니스’라고 소개하고 있다. 수심이 겨우 10cm 정도의 작은 윈드러시강 지류가 마을 중심부를 휘감으며 흐른다. 이태리 베니스 운하와는 비교될 수 없을 정도로 작은 물줄기에 불과하지만 아기자기한 풍경은 베니스를 능가할 정도다.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과 중세 건물들과 어우러져 아름답기 그지없다. 강을 따라 급경사진 돌 지붕에 창문과 굴뚝이 있는 17세기 경의 석조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창문과 정원에는 꽃이 장식되어 있고, 강변의 오솔길에는 나무가 우거져 마치 명화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하다.
자동차 및 장난감박물관과 향수박물관 등도 이 마을의 볼거리이며, 9분의 1로 축소해놓은 모델 빌리지도 자랑거리이다. 코츠월즈 라거, 비어, 진과 보드카 등을 생산하는 주조회사도 있는 데 투어코스로 일반에게 주조과정이 공개되며, 아름다운 정원 주택인 리빙 그린 센터(Living Green Centre)도 투어코스에 포함되어 있다. 버드랜드 파크에는 전세계로부터 들여온 500여 종의 희귀조류가 사육장에서 재롱을 부리며, 이중 특히 영국에서 보기 힘든 황제 펭귄들도 볼 수 있다.
마지막 일정은 스토우 온 더 월드(Stow-on-the-Wold). 해발 244m로, 코츠월즈지방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다. 양모제품의 마켓타운으로서 번영했던 마을이다. 근사한 건축물과 경사진 담이 눈에 띄는 골목 안에 대규모 시장 광장이 자리해 있다.
가이드북 ‘Lonely Planet'에 의하면, 과거에는 양들이 이 골목을 따라 축제장소로 이동했다고 한다. 현재까지도 매년 두차례(5월과 10월) Stow Horse Fair가 열린다. 가이드북 ‘Just Go'는 돌 바닥 광장인 마켓 스퀘어에 있는 돌로 만든 십자가는 마켓 크로스로 불려 양모의 공정한 취급을 행했던 도시의 상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최근에는 골동품(앤틱)의 도시로서 인기가 있어 마켓 스퀘어 주변에만도 전문점이 30곳이나 있으며, 주말에는 앤틱을 사기 위한 손님들로 활기를 띄고 있다고 한다.
이들 세 마을 이외에도 ‘Just Go' 및 ‘Lonely Planet' 등 가이드 북들은 바이버리(Bibury), 캐슬 쿰(Castle Combe), 레치레이드(Lechlade), 로어 슬러터 & 어퍼 슬러터(Lower & Upper Slaughter), 브로드웨이(Broadway), 치핑 캠던(Chipping Campden), 민스터 러벌(Minster Lovell), 윈치콤(Winchcombe), 페인스윅(Painswick), 켈름스콧(Kelmscott) 등도 코츠월즈의 대표적인 마을로 소개하고 있다.
이중 코츠월즈의 남동쪽에 있는 마을 바이버리(Bibury)는 자연 회귀를 실감할 수 있는 곳이다. 시인 윌리엄 모리스가 ‘영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이라 묘사했던 마을이다. 개발의 뒤안길에서 방치됐던 방직공들의 집이 지금은 그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풍경을 자아낸다.
윈치콤 동쪽으로 차로 15분 정도 떨어진 브로드웨이(Broadway)나 그 옆의 스노스힐(Snowshill)은 좀 더 아기자기한 동화 속 한 장면을 선사한다. 브로드웨이는 전원풍 인테리어로 유명한 로라 애슐리가 살던 곳이고, 스노스힐은 영화 ‘브리짓 존스의 일기 1’을 찍은 곳이다. 브리짓이 크리스마스를 맞아 방문한 시골 고향집이 여기에 있다. 빨간 공중전화 부스 옆 가지런한 돌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어느덧 영화 속 장면으로 빨려 들어간다.
자료를 찾다가 우연히 2011년 10월 20일자 조선일보 트레블 란에서 코츠월즈에 관해 흥미있는 기사 하나를 발견했다. 영국 촬스 황태자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서 유기농 농장을 경영, 이곳에서 나온 수익금 전액을 자선기금으로 쓴다는 기사다.
“밭에서 방금 따온 당근이에요. 겉은 이래도 맛은 죽여준다니까요. 이거 한번 봐요.” 소박한 아낙이 흑갈색 흙이 덕지덕지 붙은 당근을 들어 우지끈 동강 냈다. 흙냄새가 당근에서 폴폴 풍겼다. 이곳은 코츠월즈 남쪽 테트버리(Tetbury)에 있는 ‘베지 쉐드(The Veg Shed)’. 낡은 이 허름한 창고 매장의 주인은 놀랍게도 찰스 황태자다. 가게 옆 농장에서 갓 따온 유기농 채소가 여기서 팔린다. 찰스 황태자는 1980년대 초반 테트버리에 있는 대저택 ‘하이그로브(Highgrove)’를 사들여 농장과 정원을 가꿨다. 친환경 유기농을 실천하기 위해 그는 이 작고 허름한 창고를 운영한다. 테트버리 시내에는 저택과 같은 이름을 내건 유기농 가게 ‘하이그로브’가 있다. 수익금 전액이 자선기금으로 사용된다. 고부가가치의 수단으로 여겨지는 유기농이 코츠월즈에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수단으로 승화되고 있는 것이다.
A Journey through the Cotswolds라는 영문가이드북에 의하면, 남부 코츠월즈에는 영국 왕실가족 소유의 땅이 많다고 한다. 촬스 황태자는 물론, Princess Anne, Prince and Princess Michael of Kent 등도 이 지역에 집을 가지고 있다고 공공연히 소개하고 있다.(글,사진/임윤식)
*사진중 일부는 코츠월즈 홈페이지 http://www.cotswolds.com에서 다운 받거나 A Journey through the Cotswolds라는 영문가이드북 사진을 재촬영한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