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된 태만’에서 벗어나라 “은사를 불일듯 하게 하라”-로이드 존스
‘태만과 우울’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을 허락해서는 안 된다.
이 불쾌감이 나를 다스리도록 허락하면 여러분은 비참한 가운데 머물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할 수 있는가?
여러분과 나의 임무는 우리의 감정을 불일듯 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믿는 일이다.
성경 어디에서도 우리가 우리 감정을 맨 첫 자리에 내세운 적이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할 일이다.
저는 저 자신을 행복하게 할 수 없다.
하지만 저는 저의 믿음을 저 자신에게 상기시킬 수는 있다.
저는 저 자신을 믿도록 권면할 수 있다.
저는 시인이 시 42편에서 한 것 같이 내 영혼에게 말할 수 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며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그를 믿고 그를 의지하라. 이것이 그 방법이다.
‘내가 체험하든 못하든지 간에 나는 성경을 믿는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인 것을 믿는다. 나는 거기에다 나의 영혼을 의탁할 것이다.
나는 무엇이 닥쳐와도 그것을 믿을 것이다.’라고 말하시라.
믿음을 맨 윗자리에 놓고 그것을 굳게 붙잡으시라.
여러분이 참으로 행복하고 축복받기를 원하신다면,
만일 여러분이 기독교인으로서 참된 기쁨을 알기를 원하신다면,
여기에 처방이 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행복에 목마른 자가 아니다.
자극을 찾는 일을 계속하지 마시라. 의를 찾으시라.
여러분 자신을 향하여, 여러분 감정을 향하여 말하시라.
“나는 감정에 대하여 걱정할 시간이 없다. 나는 그 밖의 다른 무엇에 관심이 있다.
나는 행복하기를 원하지만 그보다 더 의롭게 되기를 원한다. 거룩하게 되기를 원한다.
나는 나의 주님처럼 되기를 원한다. 나는 주님이 사셨던 것처럼 이 세상을 살기를 원한다.
나는 주님이 걸어갔던 것처럼 걸어가기를 원한다.”
여러분의 전체적 목적을 의와 거룩에 두시라. 여러분이 그렇게 분명히 하면 할수록
여러분은 복 받게 되고, 채워지고, 여러분이 갈구하는 행복을 얻게될 것이다.
행복을 찾아 보시라. 그러나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의를 찾아보시라. 그러면 여러분이 행복해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행복은 여러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여러분이 구하지도 않았는데도 거기에 와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최고의 기쁨을, 묘사할 수 없는 행복을 체험해 보시기를 원하시는가?
여기에 단 한 가지의 길이 있다. 실제적으로 그를 찾으시라.
주 예수 그리스도 자신에게만 눈을 돌리시라.
만일 여러분의 감정이 침체되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여러분은 주저앉아
자신을 불쌍히 여기지 마시고 무엇을 할려고 노력도 마시고
다만 -이것은 단순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핵심이다- 마치 어린 아이가
다른 사람이 자기의 장난감을 빼앗아가가거나 부숴뜨렸을 때
그의 아버지나 어머니에게 달려가듯이 그에게 곧 바로 나아가 그의 얼굴을 찾으시라.
그러므로 만일 여러분과 제가 이 상태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때 우리가 해야할 한 가지 일은 그에게 나아가는 일이다.
만일 여러분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나면 여러분의 행복과 기쁨에 대하여
걱정할 필요가 없다. 그는 우리의 평강이실 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과 행복이 되신다.
그는 생명이시다. 그는 모든 것이 되신다.
따라서 감정을 이 위대한 장소의 중앙에 놓으려 하는 사탄의 선동과 유혹을 피하시라.
그 중앙에 거기에 존재하실 권리를 가지신 단 한 분이신 영광의 주님을 모시라.
그는 여러분을 위하여 사랑하여 십자가에 달리셨다. 형벌을 당하셨다.
여러분의 죄로 인한 수치를 당하시고 여러분을 위하여 죽으셨다.
그 분을 그곳에 모시라. 그를 찾으시라. 그의 얼굴을 찾으시라.
그러면 이 모든 것을 여러분에게 더하실 것이다.
- 로이드 존스, 『영적 침체』, PP 172-1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