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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한남금북정맥이 분기하여 충청북도 땅을 지나 경기도 안성땅 칠장산에서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갈리어 금북정맥은 남으로 기수를 돌려 충청남도 땅을 아우르고 한남정맥은 북서로 그 줄기를 틀어 용인의 석성산을 지나 에버랜드 넘어가는 작고개를 건너 할미성을 올라 향수산 지나 영동고속도로와 남쪽으로 나란히 가다 수원 광교산쪽으로 빠지고 고급주택가 금호베스트빌리지인 향린동산이 있는 향수산 정상(여기에서 말하는 향수산 정상이란 향린동산 맨 위 도로에서 약간 솟은 통신시설이 있는 봉우리를 말함)에서 서쪽으로 기수를 돌려 88골프장을 동서로 관통하여 무푸레고개 법화산 무등재 지나 시종일관 북진을 한다 그 흐름을 살펴보면 천주교용인공원묘지 대치고개 정자공원묘지 대지산 부천당고개 불곡산 태현(태재고개) 새마을고개 새나리고개 고든골고개 갈마치고개 이배재 검단산 남한산성에 이르러 동진을 하여 산성끝 521봉 은고개 중부고속도로 595봉 검단산 하남시 창모루마을 한강변에서 그 소임을 다하는 도상거리 약 45km 정도의 산줄기를 나는 한남남한산성지맥이라고 이름짓는다. [신경수님 글] |
ㅁ산행코스 : 에니메이션고등학교 앞 버스정류장- 하남시 중소기업 홍보관(벤처센타)-검단산 입구-등산로-구당 유길준 묘 앞-
유길준 묘 위 쉼터-전망대바위 아래-헬기장-검단산(헬기장, x658.4)-정상 전 삼거리-용마산 갈림길-철탑-고추봉(
두리봉, x566)-용마산(△595.7)-철탑--죽림원 입구-중부고속도로 지하통로-은고개(뒷말)-43번 4차선국도(엄미1리
버스정류장)-엄미리계곡 삼거리-은고개 삼거리-은고개 입구 버스정류장-△303.5-철탑(48번)-346고지-남한산성 성
곽(한봉x414, 갈림)-남한산(△522.1)-암문-외동장대터-벌봉(x515)-13암문-은고개 갈림길-봉암성(외성)-북문(전승
문)_제4암문(연주봉 옹성)-서문(우익문)-청량산(△495.34, 수어장대-△479.9-제6암문(서암문)-영춘정-남문(지화문
)-남문매표소 버스정류장
[산행지도]
배낭을 챙기려니 어색하리 만큼 몇 달의 시간이 훌쩍 지나 갔나 보다. 봄이 지나고 여름, 배낭을 메고 떠나려니 어설픈 생각이 들
고 번개처럼 지나간 시간을 헤아려 보게 된다. 그러다 한켠에 잊고 있던 지도를 그리고 교통편을 알아 한 봇짐 메고 서울근교의
산행부터 시작해 보기로 한다.
남한산성 지맥의 분기점 향수산에서 시작하려 했지만 그 아래 골프장을 걸을 수 없을 것 같아 한강이 흐르는 팔당대교의 하남시 바깥
창모루에서 끝이 나는 합수점 부터 산행하기로 한다.
경의중상선 용산역에서 이촌역 방면 지평행을 타고 도심역에서 하차하여 112-1번 버스를 타고 한국에니메이션 학교 앞 버스정류장
에서 내려
횡단보도를 건너 하남시 중소기업 홍보관 건물 뒤를 돌아 주차장으로 오면 상점과 검단산 입구의 화기물 보관소로 지나 검단산 등
산로의 도로가 시작된다.
[검단산 등산로 입구]
등산객들이 이곳저곳에서 같은 친구를 기다리는 가 보다. 웅성웅성하고,
이 길은 걸었던 길로 10년이 넘어서 와서일까, 기억마져 희미해져 있고 그 기억을 살리려 애써 보지만 아무런 필림이 없다. 상추
고구마를 심은 밭 위 커피자판기가 있는 의자에 앉아 아침을 먹고 구당 유길준 묘 앞을 지난다. 한국 최초의 미국 국비 유학생이란
키 포인트의 유길준을 기억하며 고도를 높여 간다.
밧줄이 설치된 오르막 나무 숲이 우거져 그늘 아래 밧줄 잡고 나무계단을 올라 유길준묘위쉼터의 현위치목에 도착하게 된다.
[유길준 묘 위 쉼터]
지맥 본릉과 만나는 능선 위에 서니 다리가 멍하니 떨어지지 않은다. 안창모루와 바깥창모루로 내려 갈 수 있는 본능 길의 삼각점
292봉이 지척이다. 깜박 잊고 지나쳐 '검단산 정상 1.04km, 에니메시션 1.86km'의 이정목을 지나 돌계단과 밧줄 잡고 고도를 점
점 높혀 갔다.
검단산 정상의 이정목은 1.45km로 거리가 줄고 전망대바위 아래의 현위치목을 지나 참나무숲이 우거진 고도의 높이가 느껴지는 산길
이다. 숲이 우거진 목책계단으로 올라 검단산 정상 0.26km의 이정목을 지나 바로 헬기장이다. 그리고 검단산 정상이다. 검단산
정상도 너른 헬기장에 정상석이 있다.
[검단산 정상]
헬기장인 정상에는 정상석 옆 이유를 알 수 없는 제물이 차려져 있고 등산객도 많다. 막걸리와 아이스크림도 먹을 수 있는 상점
도 차려져 있고 학생들도 북적인다. 검단선사가 은거하였다하여 검단산이란다.
검단산에서 한강 건너 운길산과 직녀봉과 견우봉이 쌍봉을 이루고 북한강 건너 중미산 유명산 용문산 백운봉이 우뚝하고 남한강,
두물머리, 팔당댐의 조망된다. 예봉산, 적갑산, 갑산, 고래산으로 가는 산줄기(천마지맥)와 맞닿아 있는 것 같다.
눈을 돌려 한강의 물줄기를 따라 가면 남산, 아차산, 용마산, 북한산 등 서울 도심의 풍경이 조망되고 산줄기가 이 땅의 산을 거미줄
처럼 엮어 나간다.
물을 가르는 선이 모두 산이고 산과 산이 연결된다.
밧줄이 설치된 돌계단을 내려 목탁소리 들려 내려 가는 길에 스님이 불전함 앞에 예배 올린다. 정상전삼거리의 현위치목이 설치돼
있다.
곱돌약수터 0.82km와 용마산 갈림을 지난다.
가야할 능선의 조망이 터지고 고추봉(두리봉)이 반기 듯 빠른 걸음을 걸어 남진하며 간다. 경기도 하남시의 산길에서 동쪽으로
팔당호가 발 아래 흐를 것이고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가 그려지고 한남앵자지맥을 걸었던 광주시의 정암산과 해협산
의 산줄기가 생각난다. 그뿐인가. 언젠가 여행삼아 왔던 장다산묘가 능내역에 가까이 있고 양수대교에서 내려다 보이던 새우탕
먹던 생각도 스쳐간다.
용마산 가는 이정목과 철탑을 지나 구불어진 소나무가 발걸음을 잡고
[고추봉(두리봉)]의 정상을 밟는다.
정상에는 '벌봉 9.58km, 엄미1리 버스정류장 4.46km, 용마산 1.62km, 검단산 2.1km, 하남공영차고지 2km'의 이정목이 있으며
이정목에 고추봉(두리봉)이라 표기하였다.
두 번째 와 보는 이곳 생각나는 것은 고추봉이라는 것 밖에, 이름값도 못하는 것 같았다.
이정목은 '벌봉 7.98km를 지나 용마산 정상
[용마산 정상]
'이천 21'의 2등급 삼각점과 정상석이 있는 정상에서 보이는 조망권은 팔당호 건너 남종면 귀여리 뒷산 해협산이지 싶다. 팔당호를 돌아 그곳으로 올랐던 기억이 엊그제 같은데.
'벌봉 7.91km과 벌봉 7.19km의 이정목을 지난다. 죽은 소나무 한그루가 길을 막고 철탑 지나 '은고개밥상, 메밀꽃, 산양산삼농
장, 할머니 청국장'의 미리 전화하라는 안내판과 '벌봉 6.37km, 은고개 버스정류장, 엄미1리 버스정류장'의 이정목에서 직진하던 길
을 버리고 왼쪽 음식점 메뉴판 쪽으로 내린다.
은고개의 중부고속국도를 지나야 하기에 은고개의 상황을 몰라 10여 년 전 어두운 새벽녘 은고개에서 헤매던 기억이 아직도 있기에
미리 내려서기로 한다.
묘를 가로질러 콘크리트 도로의
죽림원의 표지석을 지나 연두색 철책 넘어 못다한 산줄기가 앞을 가르며 '벌봉 5.68km'의 이정목이 세워진 것으로 보아 이곳의
등산로가 맞는가 보다고 생각한다.
낚시터였던 곳은 공터로 채워지는 작업이 한창이고 장모님밥상이란 간판이 붙은 중부고속국도의 긴 지하통로를 지나
[중부고속국도 지하통로]
음식점 몇 집이 있어 그 중 한 곳에서 점심을 먹고 식수를 보충하여 43번 국도의 엄미1리 버스정류장과 도로건너 '은고개입구'의
버스정류장 뒤 내려오는 등산로가 있음을 알게 된다.
퇴촌으로 버스타고 갈 때 보았던 생각이 이제서 난다.
서울 하남의 방향 따라 엄미니계곡삼거리, 은고개삼거리를 지나 장승이 세워진 '의안대군 방석묘역'으로 가는 도로 건너 '남한산성
세계유산 광주시 입니다'란 교통판이 있는 은고개이다.
[은고개]
이제부터 하남시와 중부면의 경계를 간다. 북쪽은 하남시, 남쪽은 중부면의 가른다. 남진하던 산행도 서진으로 바뀌어 간다.
'좌익문(동문), 한봉, 벌봉'의 이정철주가 세워진 그 뒤 빨간 박스 옆 계단으로 오르게 된다. 묘원 가로 올라 등산로의 밧줄쳐진
등산로로 올라
[삼각점 301.5봉]의 삼각점을 찍고 선답자 분들의 표지기가 수북히 있는 검단지맥△303.1이라 준희님의 흔적이 남아 있다.
303고지의 현위치목을 지나 벌봉으로 가는 이정목은 계속 이어져 간다. 84번 철탑을 지나
[가야할 능선]의 조망이 터져 반가움에 부름받고 가는 것 같다. 드디어 남한산성이다!
석축을 쌓아 철탑을 세운 x338.1봉을 사면으로 돌아 밧줄 따라 걷고 엄미리의 갈림길을 지나 346고지의 현위치목을 지나 벌봉으로
간다.
벌봉의 이정목은 1.31km의 다 와 가는 느낌이다.
[남한산성]시작되다.
남한산성은 해발 480m가 넘은 험준한 자연지형을 따라 11km가 넘는 성벽을 구축하고 있으며 면적은 2.12제곱이다. 남한상성은 본성으니 인조 2년(1624)에 통일신라시대 주장성의 성돌을 기초로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에 둘레 6,297보, 여장 1897개. 옹성 3개 문 4개, 암문 16개, 우물 80개, 샘 45개 등을 만들었다. 외성은 병자호란 이후 쌓여진 것으로 본성과 시차를 두고 구축됨으로써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각 시기별 성을 쌓는 기버을 특징적으로 잘 보여주고 있다. 이외에도 남한산성 내에는 200여기의 문화재가 산재해 있어 자연생태환경과 더불어 산성 내 구석구석이 역사와 설화가 깃들어있다. [남한산성 세계유산센터 안내문] |
성벽이 흩어져 조금은 남아 있는 몇 장의 성돌을 딯고 성곽이 시작되는 남한산성 안으로 올라 선다. 이정목은 '큰골 1.2km, 한봉
1.1km, 벌봉 0.4km, 동장대터 0.9km'의 한봉으로 둘러쌓인 성곽을 버리고 벌봉과 동장대터로 간다.
허물어지고 망가진 성곽 따라 가는 옛 흔적이 남아 있는 길이 왠지 씁쓸하다.
[남한산 △522.1]과
남한산의 삼각점에 판독되는 글씨가 보통삼각점과 틀리다. 이곳 남한산부터 남한산성 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성벽을
더 둘러 쌓은 이중의 성벽이다.
[성벽에 피어난 기린초]
그 중 외성을 따라 간다. 털중나리가 성벽에 피어나고 두리뭉실한 시설물이 있는 검단산의 모습도 보인다. 기린초가 피어난
암문을 통과해 보았다 다시 안으로 들어보고 꽃사진도 담아본다.
본성, 봉암성, 한봉성 내의 발굴조사 안내문이 있는 터가 있는 외동장대터다. 장대란?
장대란 지휘와 관측을 위해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누각건물로 남한산성에는 5개의 장대가 있었다. 이곳은 외동장대가 있던 곳으로 동장대와 벌봉 일대를 조망할 수 있다. 외동장대는 조선숙종 12년(1686) 윤지선이 수어청 군사를 동원하여 봉암성을 축성할 때 건립한 것으로 추측되며 군사들이 진을 치고 훈련하던 곳으로 보인다. 고지도를 보면 다른 지도와 달리 외동장대는 누각에 관 한 기록이나 표시가 없어 처음부터 축대만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
[벌봉의 음각]은 알 수 없고 기도를 올린 듯한 제단의 커다란 바위위가 벌봉이다.
[벌봉]으로 올랐다.
암문 밖에서 이 바위를 보면 벌처럼 생겼다하여 벌봉이라 한다. 병자호란 때 청 태종이 정기가 서려 있는 벌봉을 깨뜨려야 산성은
함락시킬 수 있다하여 이 바위로 깨트리고 산성을 굴복시켰다는 전설을 의미하면서 벌봉에서 보이는 강 건너 보이는 팔당 건너 예
봉산도, 지나온 검단산도, 청계산가 관악산도, 남산타워와 롯데타워도, 북한산과 도봉산의 조망도 서울시내가 한눈에 보이는 조망
대다.
남한산성 13암문의 이정목엔 위례둘레길 코스로 시작되고 남한산성의 봉암성과 한봉성을 지나 북쪽의 외성 끝을 돌아 성벽 안 그물
쳐진 다랭이밭 위로 올라 허물어진 성곽 따라 산딸나무꽃 핀 성곽 밖으로 눈요기 하며
북문으로 간다. 귀룽나무가 이름표를 달고 우거진 그늘 아래 잠시 쉬어 가고 훤히 트인 길 따라 한봉과 노적산의 갈림길과
은고개갈림길을 지나 길게 늘어선 성곽을 보면서 걷고 이중의 성벽을 지나온 것이다.
[봉암성]이다.
본성의 동쪽인 동장대 부근에서 북동쪽의 능선을 따라 벌봉 일대를 포괄하여 쌓은 외성이란다. 봉암성의 지도에 위치를 그려
넣고
성벽에 핀 기린초가 예뻐 그냥갈 수 없기에 사진에 담아 본다.
[동장대터]의 제3암문을 지나
자연지형 따라 성벽을 쌓아 성문을 연결하여 병자호란의 아픔을 지켜 온 한양의 수호 성, 성곽길을 걸으며 우리 역사의 생생한
발자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본다.
제4암문(북암문)과 제1군포터도 지나고
[북문]에 선다.
북문이란
남한산성에는 동, 서, 남, 북에 4개의 대문이 있는데 북문은 병자호란 당시 성물을 열고나가 기습공격을 감행했던 문이다. 싸움
에 패하지 않고 모두 승리한다는 뜻에 전승문이라고 했다는 안내표지석을 읽고 북문을 나선다.
보수 공사중으로
성벽안 도로 따라 가다 제5암문인 연주봉옹성 암문을 통과 길다란 성벽 사이를 걷는다.
[연주봉옹성]
[롯데타워]조망
연주봉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기 위해 성문 밖으로 성벽을 더 둘러쌓은 이중의 성벽인 옹성, 벌봉의 이중 성벽과 같다고 보면 될까.
이곳 연주봉 옹성에 올라 본다. 북쪽으로 아차산과 남양주 일대의 한강이 조망 된다. 언제나 서울시내의 한복판 미사일이 쏘아
올릴 것 같은 롯데타워의 모습을 담아 본다.
첫 번째 산행시 같이 동행했던 고인이 되신 분이 종주하면서 찍어 주신 연주봉 이곳이 생각났다. 그때 없던 롯데타워.. 하루가 멀다
하고 긴 산행을 했을까. 그 때도 기록을 보니 21시간을 꼬박한 산행이었다.
본성으로 드나드는 통로였던 암문을 향한다.
성벽을 따라 남한산성 서문인 우익문에 도착 나의 특별히 생각하고 있던 서문이 기다리고 있었던 듯 반긴다.
[서문]
임경업 장군을 낳게 한 매화나무터를 찾아 보지만 알 수 없고 서문의 성곽따라 가 남한산성 서쪽 등성이에 커다란 무덤 하나 있다는
그 무덤이 임경업 장군이라는 이야기를 상상하며 애써 보지만 무성한 나무가 빼곡한 금안산과 이성산 산줄기만 바라보다 되돌아
온다.
이 무덤에는 구렁이 처녀와 가난한 총각의 설화가 정말일까,
[청량산 정상의 수어장대와 무망루]
수어장대는,
조선 인조 2년(1624) 남한산성을 쌓을 때 만들어진 4개의 장대 중 하나이다. 장대란 지휘관이 올라서서 |
무망루는
조선 영조 27년 광주유수 이기진이 증축한 수어장대 2층의 내편 문루로서 그 편액이 2층 누각에 |
그뿐이랴.
수어장대라 음각된 매바위가 한켠에 자리하고 이승만 대통령의 방문 기념식수비가 있다. 청량당의 슬픈 역사 앞에 있는 멋진
소나무도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는지 힘에 겹다.
[청량산 의 구소삼각점]이 뜻있는 산행이 되지 싶다. 우리나라 구소삼각점 10개 중 1개라니,
탁지부측량소삼각점 度支部測量所三角點광주시 향토문화유산 기념물 제7호 대한제국 말기(1908~1910년초) 탁지부(度支部)에서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하기 위하여 건국 이래
|
[삼각점 479.9봉]의 성곽 따라 서울시내가 조금은 보일 듯 구름이 걷히는 것도 하다.
제6암문인 서암문을 지나 천주사지터 위 영춘정에 올라 본다. 공사 중으로 얼마 후면 이곳 영춘정도 또 다른 색깔로 단장되지
않을까 싶다.
[남문]의 왼쪽의 옛사진을 보고
[남문]
똑같이 사진에 담아 보았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지화문의 현판을 올려다 본다. 그리고 남문을 지켜주는 수호문처럼 서 있는
성곽 안으로 350-500년 된 느티나무와 함께 문화와 역사가 살아 숨쉬는 현장에서 비를 맞는다. 한참을 퍼질러 앉아던 시간이 금
같이 가고..
민낯으로 떠났던 산행에 최종 목적지처럼 걸어야 할 성곽을 생각하며 성곽 안으로 내려선다
도로 따라 걸으며 서문의 구렁이 처녀와 가난한 총각 이야기의 매화터가 궁금하고 연주봉옹성을 통하는 암문이 뚜렷한 뇌리에 남아
돈다.
수어장대 청량당의 이회가 처형되어진 이야기와 그의 아내의 투신자살 모두가 역사의 슬픔 앞에 나는 하루종일 성곽을 따라 걸었다.
고즈넉한 남한산성을 거닐며 우리의 역사를 되짚어 본 이야기를 빼곡히 담은 사진첩을 들고 남문 버스정류장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
촉했다.
소낙비가 주루루 내린다.
쫄딱 맞고 버스에 올라 308번 지방도로를 타고 구불거리며 고도높은 남한산성을 내려가 성남시 산성역에서 전철로 환승하였다.
ㅁ백두대간의 한남정맥 중에서 5지맥 4분맥 30단맥(?) 중 다 종주하고 단맥 몇개만 남았다.
첫댓글 혼자서 여전히 산행 하는구려
장마철 건강도 신경 쓰면서
오랫만에 소식들어요,
언제 같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