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들고 가시밭 길
김흥겸은 1961년 서울 아현동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신학과에서 수학하였다
그는 대학 2학년 때
가난한 이들을 구하려는 큰 뜻을 품고
서울의 이름난 달동네
난곡동의 전도사가 되어
그들과 호흡을 같이 하였다
나는 새도 둥지가 있는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
겨우 판자집에서 사는 이들을 철거하는
금권정치에 맞서 싸우다가
옥에 갇힌 그의 재판 날
마지막 진술은
'철거민 없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였다
그는 다시 자신도 밤거리에서
카세트를 팔면서 이리저리 쫏기며
노점상을 하는 이들과 함께 하였다
1997년 1월 이 모진 세상에
오레두길 원치 않으신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36세로 이곳에
영원한 안식처를 얻었다
그가 작사 작곡한
'민중의 아버지'란 노래를 새긴다
이 노래는 군사독재 금권정치에
항거하는 젊은이들이
마치 불란서 혁명때 부르던
'라마르세이예즈'처럼
즐겨 부르던 노래이다
1997년 3월
아들의 명복을 빌며 아버지 김영윤 쓰다
해팔이 안식처에 서철협회장과 전국연합의장을 지낸 고광석님
허병섭두레장님을 좇아 무주자활센터장으로 있는 오용식님과
함께 다녀왔습니다.
해철이가 가장 가까이서 섬긴 고회장님은 여지껏 해철이를
신방과 출신으로 알고 계셨습니다.
하긴 제게도 예수 예자도 꺼내지 않았었지요.
카페 게시글
◈김흥겸과 함께
김흥겸 비문 ㅡ 십자가 들고 가시밭 길/김 영 윤
영원한방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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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9.18 1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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