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루전ILLUSION
윤호는 선생님이 자기더러 쌍소리를 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때 그 일을 제대로 이해하는데 중학교 이학년 음악 시간이 되기까지 거의 6, 7년을 기다려야했던 것이다.
그런데 전쟁을 겪으면서 공산주의자와 ‘나라 팔 놈’이라는 말은 자연스럽게 연결되었고, 그것은 그 노래를 부른 양수와 이미지가 결합되는 희한한 체험을 하게 된다.
양수가 가톨릭 계통의 사립 여중학교 음악교사로 부임한 것은 4월 초였다.
부임하던 날 그는 거기서 젊은 여선생을 만났다.
“저어 저는 국어를 맡고 있는 전매리입니다.”
매리는 양수가 살고 있는 집이 신문 기자 가족이 살고 있는 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살고 있는 바로 한 동네인 왜옥 동네에 살고 있는 이웃사촌이었다.
“반갑십니다. 전매리 선생님. 낯선 곳에서 고향 사람 만난 것 같십니다.”
양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반가워했다.
“저도 깜짝 놀랐어예. 아침에 교무실에서 인사하실 때 처음에는 긴가민가 했거든예.”
일제 말기, 성문교회를 담임하던 전다위 목사가 일제의 강압으로 신사 참배와 동방요배를 시행한 허물로 해방이 되자 자진해서 교회 담임직을 내려놓고 그 교회 조사로 있다가 목사가 된 후배 홍신명 목사가 승계하게 했다. 교회는 그를 위해, 적산으로 관리 중인 왜옥동네 주택 중 하나를 미 군정으로부터 불하 받아 전 목사가 거처하게 하고, 교회 사택인 목사관은 홍 목사가 들었다. 국어교사 전매리는 전다위 목사의 딸로서 새로운 목사 사택이 된 왜옥 주택에서 출퇴근을 하다보니 이웃집에 사는 공장 직공 곽양수의 얼굴을 더러 보았을 것이다. 그 직공이 음악교사로 나타났으니 긴가민가 할 수밖에 없었던 것.
그는 사범학교 본과를 졸업해서 시골 중학교 교사로 배치받아 근무하다가 해방이 되자 바로 현재의 사립여중으로 적을 옮겼다. 그래서 부임한지 막 한 학기를 끝낸 참이다.
그 매리를 득순도 교회에 다니게 되면서 알게 되었었다. 물론 그러한 알음에는 약국 김희자 권사 덕이었다. 내재봉을 하는 득순에게 신학기가 되면서 입을 봄옷을 몇 차례 나누어 잇달아 들고 와서 수선을 맡기느라고 윤호네 집에 몇 차례 드나들었다.
그러면서 여학교 시절부터 자기 속마음은 무엇엔가 갈망하는 마음과 열화 같은 감정으로 들끓고 있었다고 한다. 그것이 그에게는 글 솜씨와 독서로 나타났다면서 혼자의 시간에 오로지 책 읽고, 사색하고, 그리고 일기를 쓰고, 하나님께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독백을 읊어댔다고 했다. 그럴 때 양수의 등장은 매리에게 하나의 빛이었다고, 그의 수기 ‘미망’에서 고백하고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