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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수전사 KOREAN WAR: CIA - SECRET NAVAL RAIDS
잇빨중사 추천 7 조회 1,176 22.10.30 19:51 댓글 12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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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2.10.31 16:22

    첫댓글 글만 보아도 오금이 저립니다

    아마도 우리나라 일에 우리나라 사람들이라 더 그런듯 합니다.

    엄청난 분들 이셨습니다.

    감사합니다.

  • 22.11.01 00:46

    잇빨중사님 궁금한 점이 있는데 휴전협정이 발효 된 후 이북 지역에서 활동하던 비정규전 부대들은 모두 퇴출에 성공했나요?
    서해에서 활동하던 동키나 동해에서 활동하던 Y부대 수기를 여러개 읽어 봤는데 갑작스러운 종전에 당황해하며 이미 북파된 대원들을 걱정하는 대목이 공통적으로 적혀있었습니다.
    설마 문피아에 연재하시는 '검은백조'처럼 일방적으로 통신을 차단하고 버려진건 아니겠죠?

  • 작성자 22.11.01 02:59

    버려진 건 아닐 겁니다. 다만 데려올 방법이 없었죠. 영도 해상유격대가 일부 해상으로 구출작전을 시도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같은데, 힘들죠. 그리고 무전기는 비정규전 부대에 지속적으로 계속 보급해야 하는 물품입니다. 무전기 하나로 못 버텨요.

    또한, [천국의 공룡] 후반부에 묘사가 될 것인데, 제대가 겨울 산악에서 도저히 버틸 수 없어서, [해산] 했다가 봄에 모이기로 한 제대가 있었습니다. 그게 제가 군에서 읽은 겁니다. 애국가 부르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게릴라전은 추위와 허기의 총체입니다. 당시 상황은 얼어 죽거나 굶어 죽거나...

    휴전 시점에 비정규전 군인을 떠나서, 국군 포로들도 북한 공산당이 온갖 사기 수법을 동원해서 국군 포로들이 못 내려가게 막았어요. 이 부분을 알아보시면 정말 억울하게 남아서 평생 고통 받은 분들 많습니다. 귀환 (노인) 국군 포로 증언 찾아보면 서명하고 남으로 갈 수 있다는 것조차 모르고 남은 포로들 엄청 많습니다.

    영도유격대는 잡혀도 영도유격대라고 못 밝혔을 겁니다. 총살이라고 봐야죠. 김일성이 한반도 북동부에서 골머리를 앓은 부대입니다.

  • 22.11.01 03:11

    @잇빨중사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결국 이북에 남겨진 대원들은 '함경도의 별'에서 통신과 공중보급이 끊긴 제대들이 중과부적으로 소멸되는 과정하고 비슷한 말로를 겪었겠군요...
    한국전쟁 종전후 포로교환 과정에서 귀환한 국군포로 숫자가 유엔군 숫자보다 약간 많고 우리가 송환한 인민군보다 훨씬 적길래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북측이 농간을 부린것이었네요 ㅠ ㅜ
    2차 한국전쟁이 일어나도 북한군이 제네바 협정에 따라서 후방에서 포획한 특전사 같은 적지종심작전부대원들을 제대로 포로 대우해줄지 의문이 갑니다.

  • 작성자 22.11.01 09:54

    @아라비카 1. 한 노인 탈북 국군 포로 "우린 휴전인지도 몰랐어. 심지어 휴전이 뭔지도 몰랐지. 백주 대낮에 보초들이 삥 둘러 총뿌리를 겨누고, 운동장에 선을 그어 놓고, 저쪽이 남반부로 가는 쪽이다! 넘어가고 싶으면 가 봐!... 사람들이 부들부들 떨어. 누가 넘어가겠냐고. 그래도 우린 양반이야. 그런 절차 통보 없이 남은 사람 많어."

    2. 함경도에 별에서 죽을 때까지 싸우고 자폭하죠? 특전사라고 폼 잡는 거 아닙니다. 현실이 그래요. 일반 잡범도 보안서와 교화소에서 끔찍한 강간 구타 고문을 받는 나라에서 끝이 어떻겠어요. 전 자폭입니다. 폭약 이빠이. 건드리면 너희도 죽는다는 겁이라도 줘야 전우들이 안전하죠. 옛날 군대시절 농담으로 다 - 잡히느니 수류탄 깐다 그랬어요. 미담 우화가 아니라 현실이에요. 머리 나쁘면 포로 되어 고문 살해 루틴 90%로 봐요. 탈북 했다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재북송되는 북한 사람들 중에 콘크리트에 머리 박고 강물에 투신하는 사람들 얘기 들어보셨죠? 더러운 나라에 들어간 게릴라도 더러워지는 법입니다.

  • 22.11.01 18:31

    @잇빨중사 재작년에 태풍수해복구 자원봉사 갔다가 같이 일하던 11여단 팀에서 근무하는 학군 후배하고 얘기를 나누어 봤는데
    , 퇴출작계가 실질적으로 북진해온 아군과 연결작전 하는것 외에는 전무하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황금박쥐에 할당된 섹터가 평안도 어디쯤 이라고 들었는데 인민군 1개 군단에다 경보 저격 여단이 득시글한 그 곳에서 아군이 청천강 넘어올 때까지 지역대 아니 대대에서 얼마나 생환할수 있을지 의문입니다...
    SAS 수기 '브라보 투 제로'처럼 작계 수행 후 전선을 향해 도보 탈출하거나 전투물자가 소진되면 통신,암호기재나 화기를 파기한 뒤 투항해서 종전될 때까지 심문만 잘 버티면 살아 돌아올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잇빨중사님 말씀을 되새겨보니 생포되어도 제네바 협정에 따라 포로 대우 받기는 힘들것 같습니다.
    설악단이나 목장에서 화선 넘어서 공작 보낼때 아카보는 안 들고 가도 청산가리 앰플이나 자폭용 수류탄을 지참하고 갔다는 수기를 군 복무시절 읽어봤는데 이제야 어떤 심정으로 그랬는지 이해가 갑니다.

  • 22.11.04 09:39

    동종의 고속수송선이 93년도에도 진해 교육함으로 있었습니다. 구명보트를 제외하고는 외형이 거의 유사합니다. 함수에는 3인치, 함미에는 40mm 보포스포, 양현에는 단정이 2개 달려 있었습니다. 주기적으로 훈련병들 진해에서 한산도까지 운송하고 단정 내려서 한산도에 접안했었습니다. 당시에는 너무 오래된 함선이기도 하고 협수로가 많아 고속수송선이라기는 민망한 수준으로 운항했습니다. 그래도 거의 50년 다되어가는 배를 보면서 미제가 튼튼하구나 생각 많이 했습니다.

  • 작성자 22.11.04 10:13

    제가 군에 있던 80년대에는 해상훈련 때 침투를 위해 타거나, 제주도 가기 위해 목포 기지에 가거나 여타 작전으로 인천의 기지에 갔었는데, 정말 미국 배 즐비했지요. 근 40년 된 LST에 상륙정까지. 우린 알아보죠. 그 회색 페인트 도장을 아무리 발라도 (열심히 발라도) 6.25 때 받은 배들로 버티고 있구나, 하고.

  • 22.11.04 11:10

    90년대에도 당시 기함은 1944년 미제 구축함(기어링급)이었습니다. 국산 호위함, 초계함과 비교하자면 미제는 강철의 느낌, 국산은 알루미늄 캔의 느낌이었습니다. LST, LSM, ,목재의 기뢰부설함 모두 미제였습니다.

    훈련 나가서 미제 구축함이 꿋꿋하게 큰 파도를 헤쳐나가는 모습을 흔들리는 국산 초계함에서 바라볼때면 마치 든든한 큰 형님 바라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지금의 한국이 필리핀, 콜롬비아등에 국산 초계함을 공여하는 것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낌니다.

    당시의 국산 호위함, 초계함은 과장해서 중세의 전열함 수준의 무장이었습니다. 함은 작은데 함포는 이태리제 76MM 함포, 40MM쌍포, 단포, 30MM쌍포, 20MM벌컨, 폭뢰, 어뢰, 하푼미사일, 엑조세 미사일, 심지어 충각공격도 고려했는지 선체 하부는 철, 상부는 알미늄이었습니다. 게다가 디젤엔진에 추가하여 가스터빈도 달고 있어서 고속 항해시에는 고속정에 버금가는 속도였습니다. 무장제거시 38노트까지 나곤 했습니다. 덩치는 작은데 구축함, 전함, 미사일함, 고속정, 어뢰정, 구잠함의 기능을 집약한 상황이었던 것 같습니다.
    훈련 수준도 엄청나서 항공기 타켓을 76MM포로 맞추기도 했습니다.

  • 23.06.15 18:51

    이런 글을 읽게 되다니 놀랍습니다. 저의 큰아버지께서 625 당시 저 부대에 계셨다고 생각됩니다. 625 이전 조부모님은 영도에 터를 잡고 일을 하고 계셨습니다. 큰아버지는 당시 경남고를 막 졸업하셨는데 실종 되셨다가 종전 3년 후에 돌아오셨다고 들었습니다. 부친께서 듣기로는, 비행기를 타고 북한으로 침투하셨고 같이 간 인원은 80명 정도였다고 하셨습니다. 침투해서는 그룹별로 나누어서 작전을 하다가 퇴출할때는 동해안에서 잠수함을 타고 일본으로 갔다가 귀환했다고 들었습니다. 부친이 공직에 계시면서 뒤에 군적을 확인해 보셨는데 복무기록은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개월 전에 제가 미국 어학연수를 다녀와서 인사드리러 갔는데 갑자기 영어로 "I was in Oklahoma in 1952"라고 하셔서 깜짝 놀라 무슨 말씀이신지 여쭤보니 입을 굳게 닫으셨던 기억이 납니다. 뒤에 부친께 그런 말씀 들었다고 하니 부친께서도 북한 다녀온 건 아는데 미국에서 훈련 받으신 이야기는 처음 듣는다고 하셨습니다.

  • 23.06.15 18:49

    북한에 다녀온 이야기도 말씀하지 않으시다 부친께서 자꾸 캐물으니 저 정도 말씀하신거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트라우마나 아니면 세뇌를 당하신듯 들어오고 나간 정도만 말씀해 주셨고 임무 내용이나 그런건 절대 말씀 안해 주셨다고 하셨어요. 그리고, 침투때 80명이 들어가서 나올때는 몇 명 없었다는 말씀이 기억나고, 집으로 돌아오실때 공군 대위 군복을 입고 오셨다고 말씀해 주신 기억이 나네요. 잇빨중사님 덕에 좋은 글 읽고 생각이 나서 댓글 남깁니다. 감사합니다.

  • 작성자 23.06.15 20:37

    @이승철 산 증인이시네요. 큰아버님의 경우는 무전기/무선통신이 살아 있던 제대 같습니다.

    저도 1985년도에 대대 교범실에서 읽고 많이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영도유격대 영화가 제작에 들어갔다가 좌초되어 미뤄진 것으로 아는데, 제발 부탁으로 사실적인 영화가 만들어지길 간곡히 바랍니다. 제가 알기로도 영도/부산의 경남 젊은이들도 사정 상 꽤 있었던 것으로 압니다. 그리고 징집연령 아래 분들이 많으셨을 것이고요.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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